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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0

   

    시간은 의외로 빠르게 흘러 어느새 비무 대회의 접수일이 되었다.

   

    화산에 가보지는 않았다.

   

    춘봉이가 괜찮다 하긴 했지만, 확률이 어떻건 춘봉이를 두고 도박을 할 생각은 없었다.

   

    앞으로도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이야, 사람 진짜 존나 많네.”

   

    접수대가 있는 화음현의 널따란 광장. 

   

    개미 떼마냥 몰려 있는 인파에 서준이 질색을 했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 인구수를 절반으로 줄여버리고 싶은 충동에 손이 벌벌 떨릴 정도였다.

   

    “미친놈아!”

   

    떨리는 손을 발견한 춘봉이 기겁하며 서준의 손을 후려쳤다.

   

    그녀는 단전에서부터 우러나오는 한숨을 내쉬며 서준의 손을 잡아챘다.

   

    “너, 내 손 놓기만 해봐.”

    “어멋. 설레라.”

    “지랄 좀 제발.”

   

    화산파에서도 사람들이 이리 몰릴 거라는 건 알았는지 접수대를 여러 개로 나누어 놓았다.

   

    그중 그나마 짧아 보이는 줄 끝에 선 서준이 주변을 둘러보며 혀를 찼다.

   

    “이 사람들이 다 참가자는 아니겠지?”

    “아니지. 근데 참가자 다 모아놓으면 이 정도는 될걸?”

    “진짜?”

   

    그게 말이 되나? 그러면 비무 대회를 도대체 며칠을 치러야 되는 거지?

   

    툴툴대던 서준이 문득 눈을 빛냈다.

   

    지루한 대기 시간. 친절하게도 자신이 지루하지 않게끔 사건을 만들어주는 손님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서준이 냉큼 그리로 뛰어갔다. 

   

    “야 이 새끼야! 새치기 하지 마!”

    “급한 일이 있어 앞에 좀 서겠소.”

    “급한 일이 혹시 저승사자와 함께하는 두근두근 데이트니?”

    “이, 이 자식! 내가 누군 줄 알고!”

   

    새치기 하는 친구를 적당히 두들겨 패 쫓아내고 나니 쌓인 스트레스가 조금은 풀렸다.

   

    “아유 좋다.”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는 서준. 춘봉이 한숨을 내쉴 때 새치기를 하는 놈이 또 보였다.

   

    “아니, 저 새끼!”

   

    후다닥 달려간 서준이 다시금 정의를 구현했다.

   

    그렇게 대충 새치기 하는 놈을 열몇 명쯤 두들겨 패고 나니 기나긴 줄이 꽤 줄어들었다.

   

    “새치기 하는 놈이 왜 이렇게 많아?”

    “이 정도면 적은 편이지.”

    “이게?”

   

    서준이 헛웃음을 흘렸다. 

   

    하여간 무림인이라는 새끼들은 도대체가 말이야.

   

    “근데 뭐 시험 같은 것도 있나 본데?”

   

    접수대 옆에 커다란 통나무 하나가 놓여있고, 그 앞에서 무인들이 무기를 휘두르는 모습이 보인다.

   

    아마 저 통나무를 베어내는 게 시험이 아닐까 싶었다.

   

    “당연히 있겠지. 사람들 다 받아주면 비무 대회만 몇 달 동안 해야 될걸?”

    “그것도 그렇네.”

   

    그렇게 한 시간 정도를 더 기다린 끝에 드디어 서준의 차례가 왔다.

   

    정확히는 춘봉이 차례였다.

   

    “어? 뭐야. 너도 나가게?”

    “왜. 불만이야?”

    “아니, 그냥. 안 나갈 줄 알았지.”

   

    서준의 말에 콧방귀를 뀐 춘봉이 접수대 앞에 앉아있는 사람에게 이름을 말했다.

   

    “춘봉.”

    “네, 저기 통나무를 베어내시면 통과입니다.”

   

    피곤에 찌든 접수원이 영혼 없는 손짓으로 통나무를 가리켰다.

   

    이제 보니 쌓인 통나무의 잔해를 치우는 사람들도 있었다.

   

    비무 대회라는 게 보통 일이 아니구먼.

   

    서준이 혀를 내두를 때, 춘봉이 검을 뽑아들었다.

   

    쉬익-

   

    검기 하나 맺히지 않은 검이 아무렇지도 않게 통나무를 훑고 지나갔다.

   

    “엥?”

   

    서준이 당황했다.

   

    춘봉이 통나무의 윗부분을 손으로 밀어내자 깔끔하게 베인 단면이 드러나며 통나무가 쓰러졌다.

   

    “아니, 검기 없이 이런 게 된다고?”

    “뭐라는 거야. 너도 되잖아.”

    “진짜?”

   

    사람 허리보다 굵은 통나무다. 저걸 그냥 검으로 베는 게 가능한 일이라고?

   

    서준이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접수원에게서 패 하나를 받아든 춘봉이 그의 허리를 툭툭 두드렸다.

   

    “야, 네 차례야.”

    “어어.”

   

    접수원에게 이름을 불러준 서준이 통나무 앞에 서 턱을 짚었다.

   

    ‘일단 도박은 하지 말자.’

   

    솔직히 감이 잘 안 온다.

   

    검에 검기를 덧씌워 깔끔하게 통나무를 베어낸 서준이 접수원에게 패를 건네받았다.

   

    “다음.”

   

    영혼 없이 작업을 이어나가는 접수원을 뒤로하고 광장을 빠져나온 서준이 진지한 표정으로 허리춤의 검을 만지작거렸다.

   

    “춘봉아.”

    “어.”

    “객잔 가기 전에 어디 잠깐 좀 들르자.”

   

    춘봉이 픽 웃었다.

   

    “나무 베어보게?”

    “응.”

    “별거 아니라니까? 절정쯤 되면 다 해.”

    “아니 진짜 말이 안 되는데.”

   

    물론 기氣라는 것을 실제로 다루는 세상에서 나무 하나 베지 못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그 기를 외부로 발출하지 않고, 체내에서도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상태로 나무를 베어내는 건 얘기가 다르다.

   

    현대 사회에서 검도 선수한테 진검 하나 주고 통나무를 베어내라 한다면 할 수 있을까?

   

    일단 서준의 상식선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쯤이면 되겠다.”

   

    화음현 외곽. 인적이 드문 곳에 도착한 서준이 눈앞에 놓인 적당히 커다란 나무를 바라보았다.

   

    망설일 건 없다. 

   

    스릉-

   

    검을 뽑아든 서준이 크게 가로로 휘둘렀다.

   

    콰악-!

   

    검이 나무를 절반쯤 베어내고 박혔다.

   

    “뭐야.”

   

    서준이 놀라 눈을 깜빡였다. 그가 생각한 것보다는 잘 베였다.

   

    그리고 춘봉도 놀라 눈을 깜빡였다.

   

    “진짜 뭐 하냐?”

   

    서준의 경지에서 이까짓 나무 하나 베지 못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춘봉은 만약 서준과 생사결을 펼치게 된다 가정했을 때 그를 이길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자신이 쉽게 베어내는 나무를 서준이 베어내지 못한다고?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며 의아한 듯 고개를 기울였다.

   

    “춘봉아.”

    “어.”

    “경지라는 게 기를 얼마나 잘 다루는가 하는 기준이라 그랬지?”

    “그랬지. 으음…. 그래서 그런가?”

   

    춘봉이 나뭇가지 하나를 집어들었다. 생각해보니 그에게 경지라는 것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준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삼류 무인이라는 게 뭐라 생각해?”

    “좆밥?”

    “맞긴 한데….”

   

    머리를 긁적인 춘봉이 나뭇가지로 땅에 글씨를 썼다.

   

    ‘삼류’

   

    “삼류라는 건 이제 막 무공에 입문한 사람들을 뜻해. 단전을 만들어서 체내에 내공이 깃들긴 했는데, 그걸 어떻게 쓰는지 모르는 경지지.”

    “아하?”

   

    ‘이류’

   

    “이류는 이제 내공을 어떻게 쓰는지 깨달은 사람들. 내공을 이용해 신체를 강화할 수 있는 경지야.”

   

    ‘일류’

   

    “일류는 내공을 체내뿐만 아니라 체외로 발출할 수 있는 경지야. 그 결과물이 검기니 권기니 하는 것들이고.”

   

    ‘절정’

   

    “그리고 절정은 체외로 발출한 기를 어느 정도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경지야. 물론 몸에서 떨어져나간 기를 다룰 수는 없지만, 몸에서 떨어져나가게 할 수는 있지.”

    “탄지공처럼?”

    “어. 근데 너는 좀 다르긴 해. 보통 절정경의 무인들이 검기를 날리거나 지탄을 날리면 그 위력이 그리 강하지 않아. 날아가는 도중에 내공이 꽤 흩어져서 위력이 약해지거든.”

   

    그래도 경지라는 게 있어서 격하의 무인들이 받아내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같은 절정의 무인에게 있어서는 견제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춘봉이의 설명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긴 하지. 나는 그냥 덜 흩어지게 잘 뭉쳐서 쏘는 거고.”

    “그게 보통 말이 안 된다고 등신아.”

    “요즘에는 내공을 죄다 쏟아부어서 쏘니까 위력도 꽤 괜찮더라.”

    “하아….”

   

    춘봉이 고개를 저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애초에 자신의 내공 태반을 공격 한 번에 몰아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아무리 자신이 다루는 내공이라 할지라도, 그걸 한 번에 쏟아낼 수 있는 용량에는 한계가 있다.

   

    커다란 통에 구멍을 뚫으면 물줄기가 뿜어져나오지 않는가. 그것과 같은 이치다.

   

    구멍이 크면 클수록 한 번에 많은 물을 쏟아낼 수야 있겠지만, 그만한 구멍이 있는 건 애초에 물통이라 부르지도 않는다.

   

    “뭐, 니가 신기한 짓 하는 게 한두 번도 아니고. 아무튼 다음.”

   

    ‘초절정’

   

    “사실 여기서부터는 나도 잘 몰라. 이론으로만 아는 게 전부라서.”

    “그게 어디야.”

    “그렇긴 하지.”

   

    춘봉이가 손에 든 나뭇가지 위로 백금빛 내공을 덧씌웠다.

   

    “저번에 말했지? 검기에 별이 깃든 것을 검강이라 부른다고.”

    “그랬지.”

    “기氣에 신神이 깃들었다는 얘기도 기억해?”

    “응. 내공에 심상이 깃드는 거라며.”

    

    춘봉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절정 정도 되면 몸과 기의 균형이 얼추 맞춰져. 정기신에서 정과 기의 균형이 맞춰진 거야.”

    “강기를 쓰려면 거기에 더해서 신의 균형까지 맞춰야 되는 거고?”

    “어. 그렇게 정기신이 균형을 이루고, 내공에 스스로의 심상이 깃들어 내공의 수발이 이전보다 훨씬 쉬워지는 거지. 반대로 내공을 다루는 솜씨가 그 정도는 되어야 초절정에 이를 수 있기도 하고.”

   

    생사현관을 타통해야 하는 이유가 그래서다. 임독맥을 타통해 하늘과 땅의 기운을 받아들이고 대주천을 이뤄야만 그 정도 수준에 도달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이미 그 전에 그 정도의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모순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렇기에 초절정超絶頂이다. 인간으로서 완숙에 다다른 절정을 뛰어넘어야만 도달할 수 있는 경지이기에.

   

    그녀의 말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던 서준이 물었다.

   

    “그러면 초절정은 그냥 기를 잘 다룬다고 오를 수 있는 경지는 아니겠네.”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아무튼 처음 얘기로 돌아가서.”

   

    춘봉이 나뭇가지로 서준을 가리켰다.

   

    “너, 검술이 전하고 달라졌어. 퇴화했다기 보다는 용도가 아예 달라진 것 같아.”

   

    날카로운 지적에 서준이 눈을 깜빡였다.

   

    검이란 것은 그저 혼원신공을 펼치기 위한 붓이라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안 되나?”

    “아니, 상관 없지. 그게 네 길이니까. 아쉽긴 하지만.”

   

    에휴, 춘봉이 한숨을 내쉬며 땅에 주저앉았다.

   

    “권왕拳王이라고 알아?”

    “주먹왕? 랄프는 아는데.”

    “지랄하지 말고.”

   

    춘봉이가 휙 주먹을 휘둘렀다. 냥냥펀치다.

   

    그걸 빤히 보고 있으니 그녀가 말을 이었다.

   

    “권왕의 경지는 이류야.”

    “뭐요?”

   

    이류 따리가 권왕?

   

    무슨 개소린가 싶어 춘봉이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는 내공을 외부로 발출하지 않아. 오로지 체내에서 순환시키며 육체를 극한까지 강화시키지.”

    “근데?”

    “거기에 극한까지 단련된 외공이 어우러져 권왕의 주먹은 강기와 맞부딪혀도 상처 하나 나지 않는다고 해. 그래서 굳이 경지로 따지자면 이류지만, 강함으로 따지면 초절정 중에서도 강한 편이야.”

   

    춘봉이와 시선이 마주쳤다.

   

    서준은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을 대충 알 것 같았다.

   

    경지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그저 하나의 보편적인 기준일 뿐이다.

   

    서준 역시 비슷한 생각이었다. 

   

    내공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사실 익힌 무공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니까.

   

    오로지 검기를 날리는 데 집중한 무공을 익힌다면, 아마 일류의 무인도 검기를 날릴 수는 있을 거다.

   

    “재밌네.”

   

    서준이 씨익 웃었다.

   

    “그러면 그 위는?”

    “화경?”

    “그보다 더 위는 없어?”

   

    몸이 달아오른다. 

   

    천외천의 경지. 언젠가 닿을 수 있으리라 확신조차 할 수 없는 인외의 영역.

   

    이미 그곳을 개척한 선구자가 있을까?

   

    몸 안을 간지럽히는 기대감에 서준의 눈이 황금빛으로 달아올랐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의도치 않게 너무 설명이 길어져버려서 내일 점심 즈음에 한 편 더 올리겠습니다.
아마 할 수 있을 거예요.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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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무공 뭐 별거 없더라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fell into a phony martial world. But they say martial arts are so hard? Hmm… is that all there is t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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