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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0

   [ 40화는 일러스트 삽화의 추가 연출이 들어가 있습니다. 다크모드 비활성화 및 세로 보기를 하시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고마워요.」

     

   비앙카는 감사 인사와 함께 힘겹게 입술을 열었다.

     

   감정을 되찾고 지난 3년.

     

   비앙카는 감정 덕에 괴로움을 알았고, 아픔을 알았다.

   동시에 이제야 겨우 제 과거가 온통 아픔투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를 죽이고 태어난 저주받은 자식.

   그걸로 인해 비앙카는 하덴하르츠에서 소외당하였고, 결국 정략결혼의 용도로 쓰였다.

     

   어린 나이에 그녀가 겪었던 일들은 온통 아픔으로 얼룩져 있었다.

     

   「감정이 없을 때는 몰랐지만 그 일들은 참으로 괴로운 일들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사실 가문 따위 아무래도 좋았죠. 제게 아픔만 주었던 가문 따위 망한다 한들 상관없었어요.」

     

   그러는 순간 그녀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그런데 그날 언니가 저를 숨겨주며 했던 말이 저를 붙잡았어요.」

     

   그 순간 비앙카의 입에서 핏물이 쏟아져 내렸다.

   크라슈가 멈칫했지만, 그녀는 뚝뚝 흐르는 핏물에도 말을 이었다.

   마치, 이 이야기를 들려줄 사람은 그밖에 없다는 것처럼 말이다.

     

   「……전 그날, 언니가 한 말을 이해하지 못했었어요. 나는 너를 미워하면서도 미워하지 않는다고, 내가 미워하는 건 너를 미워한 나지. 너는 미움 받을 사람이 아니라고 말이에요.」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의 표현.

   사람을 하나로 정의 할 수 없듯이, 감정도 하나로 정의 할 수 없다.

     

   감정은 언제나 모순투성이다.

   그 사람을 한없이 미워하는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한편에서는 그 사람을 품고 마는.

   하나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감정이었다.

     

   「감정을 얻기 전까지 그 말의 의미를 몰랐어요. 감정이란 것이 하나로 나눈 것이 얼마나 힘든지도요. 언니 또한 마찬가지였겠죠.」

     

   제니카는 비앙카를 미워했다.

   그러나 그런 그녀를 미워할 수밖에 없는 자신을 미워했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은 그녀가 감정의 연소 대상으로 삼을 수 있던 건 비앙카밖에 없었으니까.

   비앙카에게 죄가 없다는 것을 알아도 그 막연한 미움을 제니카는 지울 수 없었다.

     

   그러니 그녀는 자신을 끔찍하게 여겼다.

   그렇기에 마지막에 가서 그 사실을 비앙카에게 고했다.

     

   나는 너를 미워하면서도 미워하지 않는다.

   내가 미워하는 건 너를 미워한 나지.

   너는 미움 받을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그녀는 그러한 모순 속에 그날 비앙카를 숨겨주고 대신 죽었다.

     

   「제게 감정은 분명 아픔이었어요.」

     

   아픔투성이인 세계.

   그러나 그 세계는 감정이 없을 때 보았던 잿빛이 아니었다.

     

   비록 아픔투성이일지라도 처음으로 그녀가 삶을 나아가는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그것이 복수라는 감정의 연소라고 했을지도 말이다.

     

   「그런데도 그런 아픔보다도 지독한 것이 저주였네요.」

     

   흘러내린 눈물이 그녀의 입꼬리를 타고 내려갔다.

     

   「크라슈 님.」

     

   크라슈는 비앙카를 바라보았다.

     

   「저는 저주에 걸렸을 때보다 지금이 더 자유로워요.」

     

   크라슈는 비앙카의 말을 전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은 그녀와 같은 삶을 살아오지 않았으니까.

     

   비앙카의 눈인형 저주는 크라슈의 다른 저주에 잡아 먹혀 진작 사라진 상태이였다.

   그러니 크라슈는 감정이 없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궁금해요. 제가 감정을 조금만 더 빨리 알았다면, 언니와 조금 더 대화 해봤을까요? 오빠와 아버지와 함께 저는 보지도 못한 어머니의 죽음을 함께 슬퍼하고, 슬픔에서 나아가고자 노력했을까요?」

     

   비앙카는 감정을 몰랐다.

   그러니 제니카가 자신을 향해 보이던 감정을 그저 미움 하나로 정의 내렸다.

     

   「모르는 일이죠. 참, 하나도 모르는 일이에요. 그때의 전 감정이 눌린 인형이었으니까요. 그런데도 어쩌면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지금 제가 감정이 있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에요.」

     

   부서져 가는 미소 속.

     

   「그래도 다른 건 몰라도.」

     

   그녀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크라슈 님과는 약혼, 자로서 좀 더, 잘지, 냈을지도 모르, 겠네, 요…….」

     

   그 말을 끝으로 비앙카의 말이 끝마쳤다.

   흘러내린 눈물과 함께 비앙카의 두 눈이 서서히 감겨들었다.

     

   그것을 보고 크라슈는 입을 열었다.

     

   「……비앙카.」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것이 비앙카의 마지막이었다.

     

   감긴 눈을 타고, 천천히 흘러내린 눈물이 얼어붙은 그녀의 다리에 닿았다.

   크라슈는 천천히 그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곤 주머니에서 단검 하나를 꺼냈다.

     

   콰직, 콰득-

     

   크라슈는 단검으로 그녀의 몸을 옥죄고 있던 얼음을 깨어 나갔다.

   냉기에 손이 동상을 입으며 통증을 유발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얼음을 깼을 때 비앙카가 크라슈의 품에 쓰러지듯 안겼다.

   크라슈는 그런 비앙카의 시체를 들고, 방의 침대에 눕혔다.

     

   방 안에는 침묵만이 감돌았다.

   그 앞에 털썩 주저앉은 크라슈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썩을.」

     

   이 망할 세상이 새삼 얼마나 엿 같은지 깨달은 채로.

     

   기억 속 비앙카는 이제 없다.

   그 대신 크라슈의 눈앞에는 현재의 비앙카가 있었다.

     

   기억 속 비앙카가 잘 지낼 수 있었을 거라던 그때를 아직은 실현할 수 있는.

   그날의 비앙카가 말이다.

     

   그렇기에 크라슈는 그녀를 옆에 두었다.

     

   그녀에게는 한 번 목숨을 빚졌다.

   그러니 그녀에게 못 해준 것들을 해주었다.

     

   그녀가 마지막에 했던 말처럼 약혼자로서 좀 더 잘 지내기 위해 크라슈 또한 비앙카와 함께했다.

     

   그리고 비앙카와 크라슈와의 관계는 분명 지금은 달랐다.

   그녀의 말대로 크라슈는 비앙카와 썩 잘 지냈다고 생각했다.

     

   “집에서 저에게 감정은 늘 필요 없는 것이었어요.”

     

   비앙카의 목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그때 비하면 아직은 어리고 앳된 목소리였다.

     

   “하지만 크라슈 님의 옆에 있으면 달라요.”

     

   크라슈의 옆에 있으면서 비앙카는 점차 달라졌다.

   감정이라는 것이 궁금해질 만큼 그의 옆에 있으면 비앙카는 평온함을 느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을 미워하지 않고, 자신을 따스하게 대해주는 이가 있다.

     

   집이란 그런 것이었다.

   내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편히 잠들 수 있는 그런 곳.

     

   비앙카는 그곳이 바로 크라슈의 옆이었다.

     

   “크라슈 님 옆에 있으면 제 얼굴과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게 너무 괴로워요.”

     

   그가 웃으면 같이 웃어보고 싶었다.

   그가 슬프다면 같이 울어 보고 싶었다.

   그가 화내면 같이 화내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러지 못했다.

   그녀의 저주는 그녀에게 감정을 허락하지 않았으니까.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감정 따위 없어도 좋다고 생각했어요.”

     

   어차피 아픔뿐일 감정, 없는 것이 차라리 행복했다.

     

   “하지만 크라슈 님 앞에서라면 감정을 느끼고 싶어요.”

     

   그러나 딱 한 명.

   그의 앞에서라면 달랐다.

     

   “저는 크라슈 님을 위해 화내고, 울고 웃고 싶어요.”

     

   그러면서도 그녀는 애타게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크라슈 님이 감정이 없어지는 건 싫어요. 저처럼 되는 건 보고 싶지 않아요. 크라슈 님이 웃지 않으면 저도 웃고 싶지 않아요.”

     

   모순덩어리인 생각.

   그러나 비앙카는 이렇게 말고는 말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비앙카는 크라슈의 손을 맞잡은 채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자신의 모순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을 그녀는 무척이나 잘 알았기 때문이다.

     

   “걱정하지 마라.”

     

   그러는 순간 이어진 크라슈의 목소리에 비앙카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저주는 대상이 아닌 자에게는 반감되니까. 네 저주를 받아 간다한들 내 감정은 없어지지 않아. 나는 저주만큼은 전문가니까. 믿어도 돼.”

     

   애초에 자신이 고작 눈인형 정도의 저주에 당할 리가 없었다.

   그것보다 더한 저주도 수없이 많이 이겨내고, 다루기까지 했으니까.

     

   크라슈의 말과 함께 비앙카가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녀는 자신의 무표정한 얼굴이 지금 여러 감정을 터트리고 싶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이기적이어도 좋다.

   크라슈는 그 이기적인 자신마저도 받아준 그런 사람이니까.

     

   그렇다면.

     

   “크라슈 님, 부탁해요.”

     

   이 순간.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자신의 무표정이 사라져.

   그에게 구해줘서 고맙다 웃고.

   자신 때문에 그렇게 다치면 어쩌냐고 화내고.

   자기 탓에 이렇게 돼서 미안하다고 울고 싶었다.

     

   눈인형.

   분명 감정을 없애는 저주다.

     

   그러나 사실, 눈인형의 저주는 감정을 지우기보다 누른다는 것에 가까웠다.

   감정을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로 억눌러 버리는 저주였다.

     

   그러니 사람들은 비앙카가 감정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순간 그녀의 감정은.

     

   눈인형조차 짓누르지 못할 만큼 흘러넘치고 있었다.

     

   “제 감정을 되찾아주세요.”

     

   비앙카의 말이 끝났다.

   그 말을 전부 들은 크라슈는 비앙카가 맞잡았던 손을 들었다.

     

   “부탁까지 안 해도 돼.”

     

   크라슈의 눈앞에 비앙카가 비추었다.

   백색 머리카락에 언제나 무표정하던 소녀.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빼어난 외모는 그런 무표정한 얼굴을 더더욱 부각했다.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비앙카와 처음 만난 그날, 비뚤어진 크라슈마저 저 애가 웃으면 예쁘겠다고 생각한 그런 날이.

     

   그러나 마지막까지 크라슈는 비앙카가 웃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깊디깊은 슬픔 속에서 끝을 맞이하는 것을 봤을 뿐.

     

   「그렇다면 어떤가요. 제가 감정을 얻고, 직접 체감해 보면 뭐가 더 괴로운지 알 수 있지 않을까요?」

     

   괴로움을 알기 위해 감정을 얻고자 했던 비앙카가 떠올랐다.

   그러나 그녀는 이제 이곳에 없다.

     

   단지.

     

     

   이제는 행복을 알기 위해 감정을 얻고자 하는 비앙카가 있을 뿐이었다.

     

     

   그것이 자신이 회귀를 통해 바꿔낸 미래.

   감정의 모순을 깨달은 그녀에게 크라슈가 전해줄 수 있는 미래였다.

     

   크라슈의 블랙 후드가 비앙카의 다이얼을 드러냈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으니까.”

     

   [ 비앙카의 ‘가장 소중한 사람이’ 될 것. ]

     

   마지막 다이얼.

     

   [ 조건 대상 ]

   [ ‘크라슈 발하임’ ]

     

   철커덕-

     

   그 다이얼은 이미 열려 있었다.

     

   투둑- 툭-

     

   그 순간 비앙카의 방울진 눈물이 눈을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눈에 무엇인가가 들어 가서가 아니라 슬픔으로 인해 흐르는 눈물.

     

   그 눈물은 마치, 수도꼭지가 터진 듯 계속해서 흘러내렸다.

   비앙카의 얼굴이 서서히 울음으로 뒤바뀌어 나갔다.

     

   평생을 무표정으로 살아왔던 그녀는 그것이 어색한지 제대로 짓지 못했지만 한 가지 사실은 알려 주었다.

     

   “흐잉, 흑, 크라슈 님, 미안해요. 저 때문에 미안해요. 미안해요. 팔 어떡해요. 어떡해요.”

     

     

     

   

   

   먼 미래 그녀가 울지 않아도 되도록.

   그녀가 평생 흘릴 눈물을 오늘 다 흘릴 수 있도록.

     

   “평생 울지 못한 거 여기서 다 울어.”

     

   크라슈의 자그마한 품에 비앙카가 고개를 파묻었다.

   크라슈는 조용히 비앙카의 머리를 감싸 안아 주었다.

     

   그 따스함은 비앙카가 처음으로 느껴본 가장 편안한 것이었다.

     

   소녀는 그날 처음으로 세상에 태어나 울음을 터트렸다.

   모두에게 축복받으며 태어났어야 할 그 울음은.

     

   한 사람의 따스함 속에서 그렇게 울려 퍼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삽화 및 일러스트를 총정리해서 인스타에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인스타에 ‘무화꽃란’ 입력하시면 업로드를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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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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