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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0

    <40 – 알고 싶어서 미치겠어>

     

    “이사벨 언니. 호감을 쌓고 싶은 상대가 있는데 어떻게 해야 친해질지 모르겠으면 어떡해요?”

     

    근처 숲에서 함께 식재료를 채집하던 이사벨 언니가 나무에 얼굴을 들이받았다.

     

    “어, 언니?”

    “신경 쓰지 마.”

    “이마가 엄청 빨간데요?”

    “그보다 누구랑 친해지고 싶은데?”

    “비밀이에요!”

     

    서운하다는 기색을 감추지 않는 이사벨.

    날 위해서 소중한 휴일에 식재료까지 함께 수집하는 마당에 너무하다 싶기는 하네.

     

    “음… 비밀이지만 이사벨 언니한테만 특별히 말하는 거예요. 다른 사람한테는 말하지 말아요?”

    “그래.”

    “평소에는 한 곳에만 틀어박혀서 지내는 저 말고는 친구가 한 명밖에 없는 아이인데, 그 애가 다른 친구랑 너무 친해서 제가 더 친해질 수가 없어요.”

     

    이사벨이 알 것 같다며 미소를 지었다.

     

    “있지, 그런 타입. 한 번 친해진 사람이랑 너무 가까워서 다른 사람이랑 친해지기 힘든 사람이.”

     

    영혼의 단짝.

    베스트프랜드.

    그런 절친이 생긴 사람은 가까워지기가 힘들다.

    이사벨은 그런 얘기를 해주었다.

     

    “그럴 땐 베프 얘기를 하면서 친해져야해. 모험단의 아저씨들 사이에서는 그렇게 친해졌거든.”

    “와 정말요?”

    “그리고 등산 얘기를 하면 좋아해.”

    “네?”

    “낚시도 나쁘지 않아.”

     

    에소니아 모험단의 냉혹한 사회생활에서 터득한 사교기술, 등산과 낚시 화제 꺼내기!

     

    ‘대답하는 문은 등산도 낚시도 못 가는데.’

     

    도움은 되지 않지만 참고만 하기로 했다.

    아무튼 관심사에 대한 이야기로 흥미만 끌면 되겠지?

     

     

    * *

     

     

    지젤이 진지한 눈으로 단언했다.

     

    “오크노디 양의 주변에 그 정도로 긴밀한 관계의 친구는 없습니다.”

    “역시 그렇지?”

    “이사벨 씨의 눈을 피해 새로운 친구를 사귄 것이 아니라면 저희가 알고 있는 인물 중 한 명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사벨은 오크노디에게 은혜를 입었다.

    오크노디를 걱정하는 마음은 같은 지젤이 별도의 보수까지 지불하며 부탁을 했기에 그에게는 매일 한 번씩 오크노디에 대해서 보고 겸 상담을 한다.

    암상인으로 일반적인 직업과는 다른 경험을 쌓아온 지젤의 관점은 의외로 날카로운 구석이 있어서 이사벨도 종종 조언을 구하곤 했다.

     

    “도로시 양일 가능성이 높군요.”

    “도로시?”

    “같은 A그룹 상급반 동기입니다. 일전에는 미네르바 시험관의 관문에서 동료들에게 배신당하고 버려졌던 것을 도와주었죠.”

    “그때 그 여자가 상급반 합격을…”

     

    솔직히 놀랐다.

    포기하지 않는 집념은 높이 샀다만 험난한 세상사가 어디 집념 하나로 헤쳐나갈 수 있던가.

    도로시에게는 성공을 쟁취할만한 특별한 자질을 찾아볼 수 없었다.

     

    ‘안목의 차이.’

     

    모험가로서 야생식재료나 발굴품의 감정에는 나름 자신이 있지만, 사람을 보는 눈은 암상인인 지젤을 따라잡기엔 한참 부족했다.

    오크노디와의 첫 만남에서도 그녀가 얼마나 착하고 올곧으며 가엾은 아이인지를 몰랐던 그녀가 아닌가.

     

    ‘알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였을 줄은…….’

     

    아무리 그래도 그녀는 같은 여자기숙사에, 그것도 같은 1층에 머무르고 있건만.

    관심도 없어서 전혀 몰랐던 그녀와 달리, 기숙사도 다른 지젤이 도로시에 대한 정보를 훨씬 더 많이 지니고 있다는 것은 다소 충격이었다.

     

    “너무 자책하지는 마세요. 오크노디와 관련된 인물들의 정보를 모아두는 것은 그저 암상인으로서의 직업병 때문입니다. 시간도 많이 들고, 남에게 함부로 공유할 수도 없는 음침한 취미죠.”

    “그렇지 않아. 덕분에 도움을 받았으니까. 충분히 훌륭한 취미라고 생각해.”

    “그리 보였다면 다행입니다. 참고로 그 아이, 요 며칠간 자동세탁마법진을 사용한 적이 한 번도 없으니 조금 냄새가 날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기분 나빠.”

     

    이왕이면 취미레벨로 그쳤으면 좋겠다.

    한 끗만 엇나가면 영락없는 스토커잖아.

     

     

    * *

     

     

    도로시에 대한 수소문은 어렵지 않았다.

    A그룹 여학생에 대한 정보라면 모두 꿰뚫고 있는 또 다른 인물의 도움을 받은 덕분이었다.

     

    “도로시? 아아. 활 매고 다니던 그 애 말이군요. B그룹의 움직임이 다시 심상치 않아서 A그룹끼리 뭉쳐 다니려고 동행을 권했는데, 고향친구에게 배신당했던 충격 때문인지 혼자 다니고 싶다네요.”

     

    서귀연의 홍일점, 아카디아.

    깐깐하고 어려운 사람이라는 첫인상과 달리, 그녀는 A그룹 여학생들의 안전을 신경 쓰며 상급반 학생이자 귀족다운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오크노디의 소재지를 놓칠 때마다 종종 도움을 받는 입장에서 지젤만큼 고마운 사람이었다.

     

    “도로시 양이 묵은 방 번호를 알 수 있을까요?”

    “120호에요.”

     

    기숙사로 돌아오는데 입구에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나는 남학생의 등이 보였다.

     

    “여자기숙사 앞에서 뭘 하고 있어?”

    “오크노디의 동료인가.”

     

    도로시를 한 번 배신했던 남자, 록펠.

    수심에 잠긴 그가 커튼이 쳐진 창문을 바라보았다.

     

    “도로시가 사과를 받아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고지식하네.”

    “미안한 짓을 했으니까.”

    “알면 저지르지 말질 그랬어?”

    “그때는… 제 정신이 아니었다. 고향의 모두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도로시와 함께 탈락할 바에야 나라도 합격해야 한다고 생각했지.”

    “나라면 절대로 안 봐줄 거야.”

    “…”

    “너무 그런 얼굴 하지 마. 안 그래도 도로시를 보러 가는 길이니까.”

     

    록펠이 다급히 팔을 들어 이사벨의 어깨를 붙잡으려던 손을 허공에서 멈칫했다.

    누군가를 붙잡을 자격도 없는 자신이 이제 와서 이런 이기적인 부탁을 해도 되는 걸까?

    망설임을 떨쳐내지 못한 그가 도로 손을 거두었다.

     

    “쪼다 같기는. 남자가 그리 소심하면 어떡해?”

    “…도와주는 건가?”

    “기분 나쁜 남자가 며칠째 기숙사 밖에서 누구를 기다리고 있다고 전해주는 정도라면.”

    “염치없지만 부탁한다.”

     

    도로시가 머무르고 있다는 120호의 문을 가볍게 노크한 이사벨.

     

    “누구세요.”

    “이사벨. 숲에서 널 도와줬던 오크노디의 동료.”

    “…들어와요.”

     

    끼익. 불안한 마음을 담듯, 발 하나 넣기도 부족할 정도로 살짝 열린 문.

    씻지도 않았을 거라는 지젤의 말처럼 며칠 머리를 감지 않은 사람 특유의 꿉꿉한 냄새가 난다.

     

    “용케 합격했네.”

    “검은 모자 교관을 터치했더니 엄청나게 많은 점수가 들어왔거든요. 한 1800점정도?”

    “어떻게 그게 가능해?”

    “하루를 쉬고 다음날에 술래잡기를 시작했던 응시생들이랑 다르게 교관은 시험이 시작하는 순간부터 술래잡기 점수가 쌓였나봐요.”

    “…운이 좋으면 합격할지도 모른다던 말이 그걸 말하는 거였나?”

     

    그런 규칙이라면 처음으로 교관을 터치한 사람은 시험시작 순간부터 쌓였던 교관의 점수를 한 방에 일시불로 전부 땡겨서 받을 수 있다.

    그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오크노디라면 혼자 교관을 터치하고 역주행을 해서 마법진까지 가뿐하게 통과할 수도 있었다.

     

    “백분의 일로 점수가 줄어서 실제로 들어온 점수는 18점에, 제때 도착도 못해서 -50점까지 받았었지만. 덕분에 포기하지 않고 계속할 수 있었어.”

     

    오크노디라면 어땠을까.

    18점이 아니라 1800점을 혼자 독식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입학시험에서의 1점이 100포인트로 환산된 것을 감안하면 무려 18만 포인트를 얻을 기회였다.

     

    ‘알고 있었으면서도 노리지 않았어.’

     

    이유는 알고 있다.

    동료인 자신들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1차 관문에서 수석특전으로 즉시입학을 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함께 다녔던 모두가 걱정되어서 즉시입학을 포기한 그녀가 아니었던가.

    바보 같을 정도로 착하고 순수한 아이.

    동시에 수상할 정도로 유능한 귀족가에서 암살자로 길러진 아이.

    생각할수록 마음이 아파진다.

     

    “그 아이의 부탁이라도 받았어?”

    “그런 건 아니지만 부탁을 하나 하려고 왔어.”

    “저 밖의 바보에 대한 부탁은 아니지?”

    “그건 겸사겸사.”

    “록펠 저 바보는 좀 더 고생해야해.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아. 심하다고 생각해?”

    “관심 없어. 애초에 나라면 절대로 용서도 안 하고. 한 번 배신한 남자는 두 번이라고 못할 이유가 없으니까. 동료에는 걸맞지 않아.”

     

    연애를 위해서라면 적당히 잘생긴 록펠을 곁에 둘 수는 있겠지만, 동료나 결혼상대로는 절대 무리다.

    결정적인 순간에 배신한 전적이 있는 록펠은 책임감 없는 남자의 표본.

    믿을 수도 없고, 믿고 싶지도 않다.

     

    “록펠 때문이 아니면 뭘 부탁하려고?”

    “오크노디가 너랑 친해지고 싶어서 상담을 했어.”

    “엥? 나랑?”

     

    우울함에 빠졌던 도로시의 눈에 약간의 생기와 함께 놀란 기색이 감돌았다.

    히죽히죽.

    장난기 어린 웃음을 보자마자 알았다.

    지젤의 정보도 가끔은 틀릴 때가 있구나, 하고.

     

    “아니었어?”

    “당연히 아니지. 합격 이후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다른 사람이랑 착각한 거 아니야?”

    “괜히 시간만 뺏었네. 미안하게 됐어.”

    “잠깐만. 흥미가 생겼어. 무슨 애긴지 나도 들려줘.”

    “너한테 들려주는 게 잘하는 짓일지 모르겠어.”

    “믿어봐. 조언을 받았지만 어떻게든 혼자 힘으로 입학시험을 통과한 상급반 입학생이잖아. 숲지기의 추적능력은 제법 믿을만하다고?”

     

    하도 호언장담하는 통에 이사벨도 한 번 속아보자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거 옆방 친구 아니야?”

    “옆방?”

    “혹시 기숙사에 들어온 뒤에도 기숙사시험 같은 걸 하는 건 아닌지 무서워서 줄곧 방 안에서 주변을 관찰하고 있었거든.”

    “…문명의 품에 돌아왔으면 적응을 해. 편안한 기숙사에 1인실을 받아놓고 왜 사서 고생이야.”

    “칫. 누군 그러고 싶어서 그랬는지 알아? 불안해서 어쩔 수 없었는걸.”

     

    얘기를 되돌려서 도로시는 자신의 목격담을 들려주었다.

     

    “며칠 전에 이상한 메이드가 그 두 사람 방에 들렀어. 이상하게 111호랑 112호의 침대시트만 교환하러 들어가서 기억하고 있어.”

    “침대시트를?”

    “뭔가 밖에서 벽에 귀를 대고 엿들으려고도 시도하고 많이 이상한 메이드였지.”

    “…엿들어?”

    “뭔가 심상치 않았는데. 112호 사는 근육질 여자랑 오크노디랑 특별한 사이라도 되는 거 아닐까? 미안. 오크노디가 신경 쓸 사람은 그거밖에 모르겠어.”

    “아니야. 충분히 도움 됐어.”

    “아. 가끔 근처 방 애들이 거기 벽에서 귀를 대고 뭐가 들리나 엿듣기를 하던데. 가서 물어보면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몰라.”

     

    두 방만 교체된 침대시트.

    메이드가 엿듣는 방.

    근처 방 입주생들이 신경 쓰는 소리.

     

    ‘아, 틀렸어. 나까지 신경 쓰여.’

     

    궁금해서 미칠 것 같다.

    이 비밀을 파헤치지 않으면 오늘 밤에 잠은 다 잤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진상은 벽에다 대고 말 거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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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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