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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0

       

       

       

       거리가 꽤 떨어져 있었음에도 알 수 있었다. 방공호 안에 가득 들어차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그것은, 마치 옛날 컴퓨터 교과서에서나 본 초창기 컴퓨터인 ‘애니악’처럼 생긴 기계였던 것이다. 

       

       “미친. 저거 컴퓨터잖아. 이 시대에 이런 게 있었다고……?”

       

       내가 이렇게 조선어로 중얼거리자 잘못 들은 렌까가 되물어왔다.

       

       『……? 콘페-토-(별사탕), 말인가요?』

       

       그렇다. ‘컴퓨터’라는 단어조차 쓰이지 않던 시대다. 나 역시 잘은 몰라도, 2차 세계대전 이후에나 이런 애니악같은 초창기 컴퓨터가 만들어진 것 아니었던가?

       

       백번 양보해서, 있을 수 있다고 쳐 보자. 실제 역사와는 달리 게이트도 있고 몬스터도 나오는 세상이니까. 마력의 운용 역시 어떻게 보면 논리적으로는 프로그램의 절차와 비슷하니, 거기에서 영감을 얻어서 일이십년 쯤 빨리 개발되었다고 하면 납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쳐도 어디 미국이나 독일의 군사과학연구소 같은데에서나 있어야지, 어째서 일제 치하의 조선에 있는 학교에, 그것도 신사 아래의 지하에 숨겨져 있단 말인가?

       

       그냥 두고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앞으로의 역사가 내가 알던 것과는 크게 달라질 수도 있는 일이었으니까.

       

       ‘자세히 봐야겠어.’

       

       문 틈으로 방공호 내부를 살펴봤지만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목소리를 낮춰 렌까에게 말했다.

       

       『들어가자.』

       『……예.』

       

       렌까가 고개를 끄덕이고 나를 뒤따랐다. 그런데, 방공호 안으로 들어와 몇 걸음 떼자마자, 

       

       드르르륵— 쾅!

       

       눈 앞으로 뭔가가 빠르게 내려와 눈앞을 가로막았다. 철제 벽이 마치 방화문 셔터처럼 위에서부터 내려와 앞을 막은 것이다.

       

       ‘뭐지?!’

       

       그리고 등 뒤에서도 철컥, 하고 무겁게 금속 기어가 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렌까가 외쳤다.

       

       『시, 시라바야시 상! 문이 잠겼습니다……!』

       

       그렇게 부지불식간에 빛이 완전히 차단되어 껌껌해진 좁은 공간에 갇혀 상황을 파악할 틈도 없이, 좌우에서 짐승의 그르렁 소리가 들려왔다.

       

       양 옆에서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수많은 안광. 렌까가 뒤늦게 자신의 검에 불을 붙여 밝히자 한 무리의 클로우 울프가 모습이 드러났다. 그 모습을 보고 렌까가 숨을 삼키며 외쳤다.

       

       『진로(人狼) 떼가……!』

       

       엊그제 분대전술실습 때 상대했던 그 마수였다. 이곳이 무슨 던전도 아니고 저런 많은 수의 클로우 울프가 자연적으로 서식할 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교내 실습용 마수 축사와 이곳이 이어져있기라도 한 것일까? 

       

       나는 엄지 끝을 이빨로 깨물어 피를 내고는 검신에 먹이며 말했다.

       

       『렌까. 네가 왼쪽을 맡아. 오른쪽에서 오는 마수는 내가 처리할게.』

       『알겠습니다!』

       

       말을 마치자마자 클로우 울프 한 마리가 몸을 날려 나를 향해 긴 발톱을 내뻗었다. 나는 간단히 발톱을 피하고 놈의 앞다리와 목을 한 번에 베어버렸다.

       

       『기야아아아앗!』

       

       등을 맞댄 렌까 역시 기합을 지르며 자신에게 달려드는 마수를 양단하기 시작했다. 양단된 마수의 단면은, 불이 들러붙어 한껏 달아오른 칼날에 지져져서 체액을 쏟을 겨를도 없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렇게 렌까와 함께 등을 맞대고 칼을 휘두른지 몇 분이 지났지만, 마수는 여전히 줄지 않고 쏟아져나오고 있었다.

       

       『하아, 하아……』

       

       렌까가 숨을 몰아쉬었다. 나 역시 열기가 가득한 공간에서 격하게 움직이다보니 체력이 부치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마수도 마수지만 우선 이 공간에서 나가야 해.’

       

       깊은 지하인데다가 양면이 철벽으로 가로막힌 좁은 공간. 거기에 수많은 마수들까지 들어와 있었으니, 여기서 오랫동안 싸우다가는 산소부족의 우려가 있었다.

       

       거기다 렌까는 불을 써가며 싸우고 있었으니 시간을 지체하면 지체할수록 더욱 위험한 것은 당연지사.

       

       ‘능력을 쓰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잠깐.’

       

       나는 마수를 베어내는 한편 렌까를 돌아보았다. 렌까의 능력이라면 이 철벽에 구멍을 뚫을 수 있을 것이다. 굳게 닫힌 철문은 무리겠지만 셔터처럼 내려온 이 철벽의 두께는 그리 두껍지 않았다. 나는 렌까에게 물었다.

       

       『렌까. 이 철벽, 뚫을 수 있겠어?』

       

       내 질문에, 마수 한 마리를 베어내고 잠시 틈을 얻은 렌까가 칼 끝으로 철벽을 두어 차례 두드렸다. 그리 둔탁하지 않은 창창거리는 소리가 울려왔다. 렌까가 말했다.

       

       『철판이 얇으니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만, 시간이 다소 걸릴 것입니다. 이곳의 마수를 전부 제압하기 전에는—』

       『마수는 내가 상대할게.』

       『……! 이 많은 마수를 혼자서, 괜찮겠습니까?』

       『뭐, 전에도 본 적 있잖아?』

       

       동소문 마문에서의 일을 말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 때 잡았던 흰개미같은 마수와, 지금 상대해야 하는 클로우 울프는 그 수준이 확연히 달랐다.

       

       하지만, 나 역시 그 때와 비교하면 진일보한 상태였다. 우선 강기 등급이 한 단계 올랐고, 거기다가 아오끼 소좌의 검을 얻어 신속 부여를 받고 있었다.

       

       내가 자신있게 말하자 렌까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지요. 시라바야시 상이라면……. 그럼, 알겠습니다.』

       

       렌까는 마력을 끌어모아 검신에 쏟아부었다. 불 붙은 검신이 시뻘겋게 달아오르자, 렌까는 달아오른 칼날을 철벽에 찔러넣었다.

       

       『하아아압!』

       

       뜨겁게 달궈진 칼날은 철판을 뚫고 절반이나 박혀들어갔다. 칼날을 박아넣은 렌까는 칼자루에 힘을 주어, 마치 칠판에 원을 그리듯이 호선을 그리며 철벽을 베어내기 시작했다. 아마 몇 분이면 사람이 통과할 만한 구멍이 만들어지리라.

       

       ‘좋아.’

       

       나는 다시 마수들을 돌아보았다. 렌까의 화염에 잠시 주춤했던 마수들은, 렌까가 벽을 뚫는 데에 집중하자 다시 안광을 빛내며 다가오고 있었다.

       

       ‘혼자 상대하기엔 좀 많긴 한데.’

       

       못 잡을 것도 없는 마수였지만,  렌까까지 지켜가며 상대해야 했기에 저렇게 수많은 마수를 혼자서 상대하기엔 물리적으로 무리인 감이 있었다.

       

       ‘어쩔 수 없지.’

       

       나는 내 팔뚝에 검을 그어 피를 내었다. 아까도 엄지손가락 끝을 슬쩍 베어 피를 먹이긴 했지만 그 효과는 미미했고 오래 가지도 않았다. 그야, 엄지손가락을 슬쩍 베어 흘러나온 피가 얼마나 되겠는가.

       

       이 검은 마수의 체액은 효과가 없었다. 오직 인간의 피를 먹여야지만 효과가 나왔다.

       

       ‘역시 기분나쁜 검이야.’

       

       하지만 피를 먹이면 먹일수록 신속의 효과는 확실했다. 나는 어느정도는 과거의 내 몸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을 느끼며 마수를 베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반쯤 무아지경으로 마수를 베어내던 나에게 땡그랑, 하는 소리가 들려온 것은 마지막 마수를 막 베어냈을 즈음이었다.

       

       철벽에 찔러넣어진 렌까의 칼날이 크게 한 바퀴 돌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자, 둥그렇게 잘려나간 철판이 건너편의 바닥에 떨어지며 요란한 소리를 내었던 것이다.

       

       훌라후프만한 크기로 뚫어놓은 구멍 앞에서 렌까는 숨을 몰아쉬며, 검에 불어넣던 불길을 거두고 나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하아, 하아…… 시라바야시 상, 완료했-』

       

       그런데, 나를 본 렌까는 경악하며 물었다.

       

       『괘, 괜찮은가요? 시라바야시 상?』

       『응?』

       

       렌까가 왜 저러나 하고 내 모습을 내려다보니, 아닌게아니라 교복도 너덜너덜한데다가 군데군데 피에 절어 있었다.

       

       마수를 베는 틈틈히 검에 피를 먹이려고 내 몸에도 살짝살짝 칼집을 그어서 상처를 냈던 것인데, 그러다보니 이런 꼴이 된 것이었다. 으음, 놀랄 만도 하네.

       

       『긁힌 것 뿐이야.』

       

       나는 대답했다. 진짜로 피가 조금 베어나올 정도로만 살짝 그어 생채기가 났을 뿐 그마저도 벌써 대부분은 피가 멎어 딱지가 져 있었다.

       

       『그렇지만, 시라바야시 상—』

       『어엇! 히이익! 너, 너희들은 뭐냐! 어떻게……!』

       

       렌까의 말을 끊고 구멍 안쪽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철벽의 일부가 둥그렇게 잘린 파편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는 당연히 저 안쪽에서도 들렸을 것이다.

       

       ‘저 녀석이로군.’

       

       나는 구멍을 통해 방공호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도수가 얼마나 높은지 눈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안경에 양복을 입은 사내가 권총을 빼어들고 벌벌 떨면서 이 쪽을 겨누고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칼을 들어 눈앞에 세우며 생각했다.

       

       ‘특별히 마력은 느껴지지 않아.’

       

       송병오처럼 마력탄을 쓰는 각성자라면 상대하기 곤란하겠지만, 그렇지는 않은 듯 했다. 지금의 나는 아오끼를 상대했을 때와 비교하면 강기도 한 등급 오르고 신속까지 부여된 상태로, 그냥 일반 권총탄이라면 충분히 막아낼 수 있었다.

       

       권총을 든 사내의 손은 벌벌 떨리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싸울 줄은 모르는 사람이었다.

       

       나는 렌까가 뚫어놓은 구멍을 통해 방공호 안으로 들어가며 생각했다.

       

       ‘우선 권총부터 떨구고 제압해 볼까.’

       

       『가, 가까이 오지 마! 히익! 이, 이 테로리스트-』

       

       양복쟁이는 떨리는 손으로 권총을 들고 나를 위협하더니, 문득 내 뒤에 선 렌까를 보고는,

       

       『아, 아가씨? 아가씨께서 어째서? 어째서 이곳에……?』

       

       하고, 넋 나간 얼굴로 당황하며 묻는 것이 아닌가. 

       

       ‘뭐지?’

       

       렌까를 아는 사람인가? 나는 렌까를 돌아보았다. 렌까는, ‘누구였더라’ 하고 생각하는 것마냥 잠시 미간을 좁히며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하카세(박사)?』

       

       하고 입을 열었다. 그 중간에 낀 나로서는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서로 아는 사람?’

       

       곤란했다.

       

       본래 이 사내의 뒤를 밟으며 내가 가졌던 계획은, 적석에 새겨진 마문 생성 기술을 누가 만들었는지, 또 어디까지 퍼져있는지 기술자를 추궁해서 알아내고, 만약 이 기술자가 핵심 인물이라면 내 손에 피를 묻힐 생각이었다.

       

       이런 나의 강박은 절대로 과한 것이 아니었다.

       

       게이트 생성 기술은 만에 하나라도 무분별하게 남용되었다가는 카타스트로피를 초래할 수도 있는 일이었으니까. 지금의 인류로써는 감당할 수 없는 대재앙이 닥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거기다 여기서 컴퓨터를 발견한 뒤로 그런 결심이 더욱 굳어졌다. 그런데, 렌까와 서로 아는 사이였다니. 이러면 섣불리 손을 댈 수가 없지 않은가.

       

       렌까가 그에게 쏘아붙였다.

       

       『박사가 왜 이곳에 있죠?』

       『아……! 그, 모르고 계셨습니까?』

       

       박사는 권총을 거두고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그것이, 제가…… 이 학교의 마력공학시설에 대해 관리 및 기술지원을 제가 맡고 있는 이유로……』

       『마력공학시설이요? 저것이?』

       

       렌까는 방공호를 가득 채운 진공관 컴퓨터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런 기계는 처음 보는데요.』

       『흐, 그건 저희 연구소에서…… 전세계에서 오직 저희만 가지고 있는 비밀 기술입지요.』

       

       그렇겠지. 지금까지 봐온 바로는, 아직 이 시대의 기술 수준은 그리 대단하지 못했다. 이 학교의 지하에 컴퓨터가 있다는 것은 아무리 봐도 특출난 케이스였던 것이다.

       

       『그래서, 저게 무슨 역할을 하는 거죠?』

       『예. 학교의 안전을 위한 결계를 유지하기 위한, 최첨단의 마력공학 기계입니다요.』

       『결계라면, 학교 부지를 둘러 설치된 금속 결계봉이 그 역할을 하고 있는 줄로 압니다만.』

       

       렌까의 물음에 박사가 대답했다.

       

       『흐흐…… 그렇습지요. 그 결계봉 각각에 마력을 취입하고 유지시키는 것이 바로 이 기계입니다. 이런 넓은 부지를 둘러싼 결계를 유지하려면 공짜의 것이 아니거든요. 수많은 결계봉을 동시에 제어할 수 있는 고도의 마력공학이-』

       『알겠어요. 하지만, 왜 이런 기계가 하필이면 신사의 지하에 있죠?』

       

       박사는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야, 지적도를 보면 그 이유를 한 눈에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이곳이 학교 부지의 정중앙이니까요.』

       『음…….』

       『아무튼, 예, 제가 오늘 온 이유는 이렇습니다. 일전의 사전체험실습 때, 결계를 뚫고 외부로부터 마수가 내습한 적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살펴보니, 외부에 설치된 결계봉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었기에 중앙에 있는 이 기계를 점검하러 왔는데—』

       

       사내는 부스럭거리며 수첩을 꺼내들었다. 이윽고 사내가 펼쳐보인 수첩의 한 페이지에는 나방 한 마리가 비닐 테이프로 박제되어 붙어 있었다.

       

       『자, 보시다시피 버, 벌레가 문제를 일으켰더군요! 이 녀석 때문에 일부 회로에 합선이 되어 있었습니다요.』

       

       이쯤 되니 렌까는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박사에게 따질 말은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알겠어요. 하지만, 저 철벽이나 마수는 일체 무엇이지요? 저것 때문에 저의—』

       

       렌까는 잠시 나에게 시선을 두더니, 다시 박사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친우가 크게 다쳤습니다.』

       『그, 그것이…… 외, 외부인으로부터의 테로- 시도가 종종 있는 시설이라서 말입니다요. 그, 그래서 이렇게 함정이 설치되어 있고……』

       『테로- 시도가 있었다고요?』

       

       그러고보니 아까 박사가 나를 보자마자 한 말도 ‘테러리스트’였다. 테러 시도가 종종 있었다는 말에 렌까가 묻자 박사가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으며 대답했다.

       

       『예, 예. 아무래도 중요한 보안시설이니까요……. 그래서 입구 자체도 신사의 제기고로 위장되어 있던 것인데, 아가씨와 그 친우분께서 이렇게 들어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아가씨의 친우께서 많이 다치셨는데, 이거 제가 어떻게 책임을 져야……』

       『책임은 제가 질 것이에요. 저희는 이만 나갈테니, 박사는 문을 열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만.』

       

       아니, 잠깐. 나는 저 진공관 컴퓨터를 좀 더 자세히 봤으면 하는데. 나는 렌까에게 손사래를 치며 『괜찮다니까』하고 말했지만,

       

       『시라바야시 상!』

       

       하고 곁에서 나를 꾸중하듯 외쳤다. 정말 괜찮다고 해도  꼴이 이러니 내 말은 설득력이 없었다.

       

       ‘젠장…….’

       

       결국, 나는 어쩔 수 없이 계단을 올라갔다. 박사 역시 볼일은 끝났다며 먼저 앞장서고, 렌까가 내 뒤를 따랐다.

       

       ‘지금 나가면 다시 확인하기 어려울텐데.’

       

       방공호의 철문은 다시 굳게 닫히고 잠금장치가 단단히 걸렸다. 게다가 이곳에서 나가면 창고로 위장되어있는 입구에 대한 보안도 더욱 철저해질테니, 아마 다시 몰래 들어가서 살펴보기는 어려우리라. 

       

       ‘……아니지.’

       

       나는 앞서 계단을 오르는 박사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컴퓨터가 아니라, 이 녀석을 추궁해봐야 해.’

       

       사실, 21세기의 그것과는 다른 체계로 구축된 마력 회로와 마찬가지로, 진공관과 전선의 배열 따위를 살펴본대도 내가 뭘 알아낼만한 것은 없었을 것이다.

       

       결계 유지용 기계라고 말하는 박사의 말에는 얼핏 듣기엔 이렇다할 허점이 없었지만, 나는 그런 박사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분명, 뭔가 숨기고 있어.’

       

       진공관 컴퓨터라고는 해도, 어쨌든 컴퓨터였다. 고작 그런 용도로만 쓸 리가 없었다.

       

       물론 저렇게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어도 그 성능은 미래의 휴대용 계산기만도 못할 것이다. 둠은 커녕 테트리스도 안 돌아갈 물건이니 컴퓨터라고 부르기도 사실 애매하겠지.

       

       그런 기계가 뭘 하겠냐 싶겠지만, 우습게 여길 일은 아니었다. 인간이 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빠르고 정확한 계산을 할 수 있을 것이고, 정교한 마력 회로를 구축하는 데에도 쓰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을 매만지며 생각했다.

        

       ‘이 적석에 새겨져있던 마문 생성 회로처럼 말이지.’

       

       그런 것들에 대해 알아내려면, 내가 저 컴퓨터를 몰래 살펴보는 것보다는 기술 책임자인 저 녀석을 조지는 것이야말로 확실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할까.’

       

       저 녀석이 비밀을 나에게 술술 알려줄리는 없었다. 게다가 렌까와 아는 사이였으니 조져서 비밀을 알아내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잠시 머리를 굴린 나는,

       

       『박사께서는 정말 대단합니다!』

       

       하고, 짐짓 감동한 듯한 목소리로 박사를 향해 외쳤다.

       

       『으, 으응?』

       

       박사가 나를 돌아보자, 나는 진심으로 감동한 듯이 더욱 존경어린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마력공학이라는 것이 이렇게 위대한 기술일지는 미처 몰랐습니다!』

       『시라바야시 상……? 갑자기 왜 마력공학 얘기를-』

       

       이런 내 모습이 이상했는지, 뒤따라 걷던 렌까도 고개를 갸웃하며 물어왔다. 그런 렌까에게, 나는 박사더러 들으라는 것처럼 큰 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검으로만 사람을 지킬 수 있는 줄 알았는데, 기계가 결계를 만들어서 학교를 지켜주고 있었다니! 마력공학으로도 더욱 더 많은 사람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달았어!』

       『……! 시라바야시 상, 그런……』

       

       렌까는 물론, 그런 난데없는 찬사를 들은 박사는 음침하게 웃으며 겸연쩍은 듯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흐, 흐흐, 이것 참, 마력공학에 이렇게나 관심 많은 생도가 있을 줄이야! 자네같은 생도가 많다면 일본의 미래는 밝을텐데 말이지…….』

       『그래서 말인데, 저 기계에 들어간 마력공학에 대해 더욱 알고 싶습니다만, 혹 폐가 되지 않는다면 박사께서 계신 곳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헤헤, 그거야……』

        

       박사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경성부 미생정에 있는 히가시노리 이화학 연구소지만, 그, 연구중이라 외부인은 들어오지 못하는 탓에…… 그, 그래! 경비원에게 히가시노리 박사를 찾아왔다고 하면 내가 나가지! 흐흐……!』

       

       미생정에 있는 히가시노리 이화학 연구소. 좋아, 기억했다.

       

       그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덧 지상의 신사 창고로 올라왔고, 박사는 내 연락을 기다리겠다고 하고는 먼저 자리를 떠났다.

       

       나와 렌까 역시 창고 밖으로 나왔다. 들어갈 때는 오후 낮이었는데, 창고에서 나오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려는 시간이었다.

       

       ‘피곤하네.’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적잖이 움직였기에 지칠대로 지친 상태라서 빨리 하숙집에나 돌아가서 푹 자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렌까에게 작별인사를 하려는데,

       

       『시라바야시 상.』

       

       하고, 렌까가 먼저 나를 향해 물어왔다.

       

       『정말 치료받지 않아도 괜찮은가요? 혹 금전적인 문제로 입원이 곤란하시다면, 제가 제공해드릴 수 있습니다만-』

       『아니, 괜찮아. 진짜 그냥 긁힌 것 뿐이라니까. 자, 봐봐.』

       

       나는 소매를 걷어서 벌써 반쯤 아물어 딱지가 앉은 생채기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렌까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눈길로 물어왔다. 

       

       『그, 제복 역시 새로 지어야 할 듯 합니다만,』

       『괜찮아. 하숙집에 여벌이 있어.』

       『…….』

       『나는 됐고, 너 아까 철판 뚫느라 마력 거의 다 소진했지? 그 정도의 마력을 몇 분 동안 계속 쏟아붇는 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 그거 몸에도 무리 엄청 가는거니까, 너야말로 집에 가서 푹 쉬어.』

       『……예.』

       

       렌까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사실 나만 무리한 것이 아니라, 렌까 역시 다치지만 않았다 뿐이지 지금 꽤나 지친 상태일 것이었다.

       

       『난 먼저 간다.』

       

       나는 지친 몸을 이끌고 하숙집으로 돌아가며 생각했다.

       

       ‘히가시노리 박사라…….’

       

       겉으로 봐서는 말도 더듬는 둥 허술하기 짝이 없는 사람같지만, 경성에 번듯하게 자신의 이름을 달아놓은 연구소가 있고, 연구소에는 경비원까지 있댄다.

       

       게다가 동양척식주식회사 소유의 마문에도, 이 학교에도 발을 걸치고 있었다.

       

       그의 배후에는 분명 뭔가가 있는 것이 확실했다. 게다가 렌까와도 아는 사이인 만큼 섣부르게 접근해도 될 일은 절대로 아니었다.

       

       계획을 잘 짜야 했고, 그러려면 우선 그 놈이 어떤 인물인지 알아야 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안면이 있으니 그에게 몰래 접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꼭 내가 움직일 필요가 있겠는가.

       

       ‘이런 일에는 적합한 인물이 있지.’ 

       

       

       

       ***

       

       

       

       백철연이 떠난 뒤, 렌까는 우두커니 서서 백철연이 사라져간 방향을 오랫동안 주시하다가 나지막이 읊조렸다.

       

       『오스에.』

       『예.』

       

       하지만 렌까는 등 뒤에 나타난 오스에에게 한동안 말이 없었다. 한참동안 렌까가 말이 없자 오스에가 렌까의 의중을 파악하고 먼저 입을 열었다. 

       

       『……시라바야시 상을 추적할까요?』

       『아니.』

       

       이어서 렌까의 입에서 나오는 대답은 뜻밖이었다.

       

       『지금부터는, 시라바야시 상에 대한 감시는 그만 둬.』

       『예?』

       

       뜻밖의 대답을 들은 오스에가 고개를 들어 렌까를 올려다보았지만, 렌까는 저물어가는 노을을 보며 말 없이 생각했다.

       

       ‘시라바야시 상.’

       

       처음 목격했던 순간부터, 여태껏 궁금했었다.

       

       렌까 자신과는 달리 평범한 보통의 생도가 어떻게 그리 능숙하게 잘 싸울 수 있느냐고. 그것이 마치 자신의 인생을 부정하는 것 같았기에, 그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감시도 하고 개입도 하는 등 갖은 수를 써 보았지만 별 소득은 없었다.

       

       ‘하지만 이제서야 조금 알 것 같군요.’

       

       렌까는 생각했다. 백철연이 강할 수 있었던 이유는 별다른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을 지키기 위한 마음’이었다는 것을.

       

       기실, 돌이켜보면 여태껏 백철연이 힘을 드러낸 것은 전부 다른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입학식의 사전체험실습 때 오니구모를 격파했던 것도, 

       가짜 일본인 교수 최성길과 맞서싸울 때에도,

       그녀의 약혼자인 아오끼를 해치웠을 때에도.

       

       ‘그리고, 나에게 따귀를 때렸을 때에도.’

       

       렌까는 자신의 뺨을 만지며 생각했다. 백철연이 그녀에게 따귀를 때렸던 것 역시, 스스로가 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주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그랬던 것이다.

       

       오늘 역시, 혼자서 마수를 상대해 다쳐가면서 나를 지켜주지 않았던가.

       

       ‘그런 사람에게 나는.’

       

       그저 정의로운 사람이었을 뿐인 백철연의 비밀을 알고 싶다는 이유로 부하를 시켜 감시하고 비밀을 캐내려 했다니. 그래. 전전일에 이유하가 쏘아붙인 것처럼 친우를 감시하려 했다니, 이 얼마나 옹졸하고 음습한 태도였던가.

       

       그라면 절대 이런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나도 이제 이런 짓은 그만둘 것이다.

       

       렌까는 멍하니 있는 오스에에게 다시 한 번 확실하게 말했다.

       

       『시라바야시 상을 감시하라는 명령은 이제 끝이야.』

       

       이제 그녀에게 있어서 백철연은, 뒤에서 알아내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앞에서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이었다.

       

       

       

       ***

       

       

       

       “백 동지? 무슨 일로……”

       

       다음날 아침, 학교에 일찌감치 등교한 나는 아침 조례가 끝나자마자 홍옥례를 본관 뒤 구석으로 따로 불러내, 웃으며 말했다.

       

       “응. 조선의 해방에 있어서 중요한 일인데, 사람 한 명을 좀 감시해 줄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요즘 날씨가 진짜 너무너무 덥네요……! 너무 더워서 글도 축축 늘어지는 것 같습니다. 정신이 없네요 흑흐규ㅠ

    그럼 저는 금요일에 다시 뵙겠습니다. 맛저하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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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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