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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0

       “대부분의 일들이 도련님의 계획대로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이번 공모전도 성행하겠군요.”

       “계획이랄 것까지야 있나…. 그냥 ‘이렇게 되면 좋겠다’라고 말했던 건데. 운이 좋았지.”

       

       

       나에게 충성 맹세를 한 이후로, 시온은 적극적으로 나의 ‘취미 활동’을 돕고있었다.

       

       문학과 관련된 여러 일들이다. 내가 직접 하기에는 어렵거나 시간이 많이 필요한 일들─, 문학과 관련된 이슈나 소문들을 취합해서 나에게 보고하는 일들을 하고있었다.

       

       전생이었다면 ‘독서 커뮤니티’를 통해 문학계의 동향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겠지만….

       

       이 세계에서는 아무래도 사람이 직접 발품을 파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래서 시온에게서는 많은 도움을 받고있었다.

       

       

       “이번 공모전에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공모전 때보다 많은 독자들이 참여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그건 확실히 더 많이 참여할걸. 아마 압도적으로 몰리겠지.”

       

       “그렇습니까?”

       “어. 추리소설이잖아. 두 작품의 특성 상 캐릭터 팬덤도 넓고.”

       

       

       이런 종류의 ‘2차 창작’ 공모전은 팬덤의 크기가 참여자의 숫자를 결정하는 법이다.

       

       그리고 [셜록 홈즈 X 아르센 뤼팽] 공모전은 특히 그 팬덤이 명확했다.

       

       추리소설이라는 장르 자체의 매니악함, ‘셜록 홈즈’와 ‘아르센 뤼팽’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 추리소설을 읽는 모든 독자들이 곧 ‘팬덤’이나 마찬가지였다.

       

       

       “재미있는 작품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네.”

       “으음, 그래도 참여작이 너무 많아지면 읽는 것도 고역일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참여자들은 글쓰기에 서툴 가능성이 높지 않습니까?”

       

       “그것도 맞지. 재미없는 소설을 억지로 읽는 건 역시 피곤한 일이고…. 그래도 그 피곤함도 나름의 즐거움이 있거든.”

       “이번에도 하나하나 직접 읽으실 생각이십니까?”

       

       “어.”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얼마나 많은 독자들이 이 공모전에 참여할지는 모르겠지만, 한 작품도 빼놓지 않고 직접 읽을 생각이었다.

       

       괜히 ‘거름망’을 만들어 진흙 속 진주를 놓칠 바에야, 진흙 알갱이 하나하나 직접 세어보는 게 나았다.

       

       

       “…도련님께서는 독서와 관련된 일이라면 참 단호하신 것 같습니다.”

       “취미는 양보할 수 없으니까.”

       

       “시간이 부족하지 않겠습니까?”

       “글쎄….”

       

       

       공모전 작품의 제출 기간과 그 이후의 평가 기간을 생각하면 역시 일정이 빠듯하겠지만.

       

       그래도.

       

       

       “글을 읽는 일이라면, 하루 종일도 할 수 있어.”

       “…예. 그러면 편안한 독서가 가능하도록 미리 준비해두겠습니다.”

       

       “어어. 늘 고마워. 시온.”

       “저의 기쁨입니다. 도련님.”

       

       .

       .

       .

       

       하프 앤 하프 출판사.

       

       나는 출판사 사장 라이안, 그리고 돕기 위해 찾아와준 킨더슬리 사장님과 함께 출품작들을 살폈다.

       

       

       “출품작이 엄청 많네요? 저희 킨더슬리 출판사에서 했던 ‘호메로스’ 작가님의 공모전 때보다 훨씬 많은 것 같아요.”

       “그러게요. 읽는 보람이 있겠어요.”

       

       

       떠올려보면, 전생의 나는 책을 많이 읽지 않는 편이었다.

       

       300페이지 내외의 소설책 한 권. 그것이 내가 하루에 소화할 수 있는 책의 양이었다. 그 이상은 시간이 부족한 탓에 읽을 수 없었다.(번역하려고 자료 찾아보는 건 ‘독서’로 안 친다.)

       

       도서관 단위로 책을 읽는 몇몇 친구들에 비하면 확실히 나는 독서가 부족한 편이었다.

       

       가장 큰 문제점을 꼽으라면 역시 ‘속도’가 부족했다. 번역 작가로서의 직업병 탓에 책을 읽을 때마다 주석이나 원어를 찾아보느라 독서가 길어지고는 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점은 이 세계에서 환생한 이후로 꽤 터무니없는 방식으로 해소되었는데.

       

       

       “작가님, 이 책은 왜 후보에서 빠진 건가요? 무척 재미있고 색다른 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요!”

       “아아. 그거 표절이에요. 유명하지 않은 소설들에서 문장이랑 사건 몇 개씩 가져와서 섞어놨더라고요. ‘푸른 봄의 계곡’, ‘검은 십자가’, ‘릴스와 하이네’, ‘게릭 워크’, ‘총을 든 남자’, ‘묘지기 없는 마을’…. 그 외에도 이것저것?”

       

       “그걸 전부 읽어보셨어요…?”

       “킨더슬리 출판사에서 출판된 책이라면 전부, 다른 출판사에서 출판한 책들도 입소문이 도는 책이라면 대부분은 읽었네요.”

       

       “네?”

       “재미있는 책들이 많더라고요.”

       

       

       이 세계에서 이름있는 소설들을 ‘전부’ 읽은 덕에, 주석과 자료를 따로 찾아볼 필요조차 없이 곧바로 관련있는 소설들을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었다.

       

       즉, 속독으로도 꽤 깊은 독서가 가능했다.

       

       물론 ‘롤스 카멜’이 쓴 소설처럼 문장에 깊은 언어유희가 스며든 소설이라면 여전히 문장 하나하나를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천천히 읽지만 말이다.

       

       추리소설처럼 ‘트릭’과 ‘정보’ 위주의 소설이라면 한 권의 책을 읽기 위해 한 시간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게 가능한 건가요…?”

       “요령이 있으면요?”

       

       “요령으로 되는 걸까요….”

       

       

       전생의 한국에서는 ’10분 독서법’같은 걸 만들어서 강의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걸 정말 독서라고 할 수 있는지는 역시 의문이 좀 들기는 한다. 단순히 머릿속에 줄거리를 때려박는다고 그게 ‘독서’는 아니니까.

       

       독서의 즐거움은 그 ‘과정’에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기 때문에, 나는 정말 좋은 책이라면 일부러라도 천천히 읽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기본을 준수하지 않은 소설을 ‘거르는’ 목적이라면 10분에 한 작품을 쳐내는 것도 가능했다. 전생에서도 신입 번역가 작업물 검수할 때 딱 그 정도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취미와 작업의 차이였다.

       

       

       “제 게으름 탓에 좋은 소설을 놓친다면 아쉽잖아요. 그러니 더 많은 소설을 읽을 수밖에 없죠. 형편없어 보이는 소설이라도 일단 읽어보고요.”

       “그래도 헤로도토스 작가님 정도 되면 첫 문장만 봐도 좋은 소설을 알 수 있지 않나요?”

       

       “으음, 글쎄요. 물론 엉터리같은 소설은 첫 문장부터 티가 나기는 하지만─.”

       

       

       나는 출품작 중 하나를 집어들어 ‘합격’에 속하는 작품들이 있는 곳에 내려놓았다.

       

       내가 내려놓은 작품을 따라 읽던 킨더슬리 사장님이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내가 ‘합격’이라 평가한 작품인 탓에 조금 더 읽어보려는 모양이었다.

       

       어쩐지 조금 웃음이 나왔다.

       

       

       “첫 문장만으로 소설을 평가해버리면, 읽지 않은 다른 문장들이 억울하지 않겠어요? 브라운 신부도, 셜록 홈즈처럼 상대방의 옷깃만 보고도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했는지 알아챌만한 관찰력이 있지만, 선입견에 빠지지 않도록 우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잖아요. 홈즈는 가끔씩 선입견 때문에 골탕을 먹기도 하고요.”

       “하하! 헤로도토스 작가님께서도 브라운 신부를 재미있게 읽으셨나봅니다! 명불허전이라더니, 호메로스 작가의 소설답게 확실히 재미있더군요! 저는 그래도 작가님의 셜록 홈즈가 더 재미있는 추리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푸흫.”

       “하핳.”

       

       “왜 웃으십니까들?”

       

       

       내가 ‘호메로스’라는 사실을 모르는 라이안 사장이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덕분에 나와 킨더슬리 사장님이 웃음을 터트렸다.

       

       라이안 사장만이 홀로 어리둥절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중에 라이안 사장에게도 내가 ‘호메로스’라는 사실을 알리게 될 기회가 있으려나. 잘 모르겠다.

       

       

       “오늘은 이 정도로 분류하면 되겠네요. 남은 출품작들은 제가 가져가서 읽어도 괜찮을까요?”

       “물론입니다! 헤로도토스 작가님께서 뜻하시는대로 하시지요! 하하!”

       

       “감사합니다.”

       “뭘요!”

       

       .

       .

       .

       

       브라운 신부는 모순에 대한 추리소설이었다.

       

       이 소설에는 거창한 트릭이나 논리적 합리성이 필요하지 않았다. 브라운 신부의 작가─, ‘G. K. 체스터튼’은 사람들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모순과 왜곡에 대하여 깊게 이해하는 사람이었다.

       

       오해가 쌓이면서 만들어지는 허술하지만 기상천외한 범죄에 대해 직관하는 힘이 있었다.

       

       이러한 ‘심리적 추리’의 방법론은 추리소설의 여왕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의 소설에 영향을 주기도 했으며, 그러한 ‘여왕’의 권능에 힘 입어 현대까지도 일본의 여러 미스터리 소설들로 이어지고 있었다. 기상천외하고 오해와 모순으로 가득 찬 ‘일본식 미스터리 소설’을 읽었다면 이는 체스터튼의 영향을 받은 소설을 읽었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 내적인 모순’은 시대와 세계를 가리지 않았다.

       

       어떤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도 ‘브라운 신부’를 읽는다면 이 책이 얼마나 사려깊게 쓰여졌는지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하하. 정말로, 고맙소…. 이 은혜를 어떻게 갚을 수 있을지 도저히 짐작할 수조차 없구려…. 호메로스 작가께서는 진실로 모든 수인들의 은인이오.”

       

       

       그리고 이는 ‘수인’이라고 하여도 마찬가지였다.

       

       태어나기를 ‘짐승의 본능’을 잊지 못하고 태어나기에, 오랜 세월 박해받아온 수인. 그들을 대표하는 회색 늑대 그레이가 나에게 머리를 숙이고 감사를 표하고 있었다.

       

       

       “제가 뭘 한 게 있나요. 전부 교회의 배려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죠.”

       “이는 진실로…. 정말 아주 오랜 세월 동안 모든 수인들의 숙원이었소…. 정말, 어찌나 오랜 세월이었는지…. 하하…. 오늘이라면 이대로 죽는다 하여도 여한이 없을 것 같소….”

       

       

       그레이가 이토록 나에게 감사하고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본래 수인은 인간의 천주로부터 축복받지 못하는 족속인 탓에, ‘세례’를 받을 수 없었으나.

       

       

       “반인반수에 불과한 내가… 세례를 받다니….”

       

       

       내가 ‘브라운 신부’의 자문을 통해 알게 된 신교의 사제들로부터, 세례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어, 저, 괜찮으세요? 눈물이….”

       “아, 미안하오. 늙어서 주책이지 원…. 너무 기쁜 탓에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구려….”

       

       

       내가 처음부터 이러한 상황을 의도하고 그를 ‘신교’에 소개한 것은 아니었다.

       

       그레이를 신교에 소개해준 것은, 순전히 신교의 부탁 때문이었다.

       

       .

       .

       .

       

       [“어떻게 이 모든 것을 알아낼 수 있었습니까? 당신은 악마란 말입니까?”]

       [“저는 인간입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제 마음 속에는 모든 악마가 들어있습니다.”]

       

       

       브라운 신부의 집필이 끝나고. 유행하는 추리소설을 읽으며 다음은 어떤 소설을 표절할까 고민하던 평범한 날.

       

       나를 찾아온 신교의 사제들은 대뜸 황당한 부탁을 건넸다.

       

       

       “가경자님께서 저희를 꾸짖어주셨으면 합니다.”

       “…예?”

       

       “부탁드립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브라운 신부 시리즈는 ‘셜록 홈즈가 라이헨바흐 폭포에서 돌아오던’ 시절부터 ‘푸아로가 탄 오리엔트 특급이 폭설 때문에 고립당한’ 시절까지 집필된 추리소설입니다.

    덕분에 브라운 신부 시리즈를 출간된 순서대로 차례차례 읽다보면 그 안에 담긴 추리소설의 역사를 읽는듯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추리소설의 ‘세대 교체’가 이루어지던 시기의 소설이지만…, 1권을 먼저 읽고 바로 최신권을 읽는다고 한들 부자연스럽지는 않습니다. 격변하는 20세기 초에 쓰여진 소설이지만, 불안정함으로 가득한 인간의 본질만은 어느 시대에든 변하지 않고 여전하기 때문일 겁니다. 브라운 신부는 ‘인간’에 대해 다루는 추리소설이니까요.

    [“정말로 신비로운 것은 정체를 감추지 않고 오히려 전부 드러내는 법입니다.
모든 걸 백일하에 드러내도 여전히 알 수 없는 부분이 남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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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rviving as a Plagiarist in Another World

Surviving as a Plagiarist in Another World

Surviving as a Plagiarizing Author in This World 이세계에서 표절 작가로 살아남기
Score 4.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literature of this other world was atrocious.

So, I plagiarized.

Don Quixote, Anna Karenina, 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 The Metamorphosis… I thought that unraveling the literature of the original world would advance the literature of this other world.

“Those who dream and those who do not, who really is the mad one?”

“To live or to die, that is the question.”

“No matter how fatal the mistake, it is different from a sin.”

But then, people began to immerse themselves too deeply in the novels I plagiarized.

Can’t a novel just be seen as a no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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