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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0

       [ (속보)D등급 능력자 임혜성. 랭커 <공간왜곡> 압살하며 16강 진출…… ]

        [ (칼럼)현실 조작 능력자의 새로운 패러다임, <현상거절>을 탐구하다. ]

        [ 협회와 아카데미를 향한 불신…… ‘저 사람이 어떻게 D등급이냐?’ ]

       

        팔락.

       

        승천전이 진행 중인 히어로 아카데미.

       

        일성 그룹 소유의 호텔에서 신문을 읽던 중년 사내, 한석구가 안경을 올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이거, 투자의 기본도 지키지 못했다고 아버지에게 한 소리 듣겠군.”

       

        일성 그룹의 부회장이자, 계열사 사장인 그가 히어로 아카데미로 온 이유는 간단하다.

       

        보석을 찾는다. 아직 세간의 조명을 받지 못한 히어로를 찾아, 그 능력을 개화시키고 그룹의 강력한 조커 카드로 양성한다.

       

        그게 본래 한석구의 목적이었다.

       

        하지만.

       

        “독이 되었어. 어느정도 성장을 기대했는데 이건 싹이 아니라 찬란한 꽃내음을 피우고 있군.”

       

        한석구가 읽는 신문의 1면에는 모두 D등급 능력자 <현상거절>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본래 한석구가 노리던 사람이 바로 그였다. 그가 사랑해 마지않는 딸과 모종의 연관이 있는 남자.

       

        “저점매수가 아니라 고점매수를 하게 생겼어. 끙!”

       

        앓는 소리를 낸 한석구는 신문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아. 김 부장. 지금 바쁜가?”

        ‘아닙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다름이 아니라 내가 전에 말했던 사람 있지 않나.”

        ‘예! 그 히어로 아카데미의 D등급 학생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그래. 그 사람과 독대하고 싶은데. 자리를 좀 마련해 줄 수 있겠나?”

        ‘알겠습니다. 허나 소문에 의하면 워낙에 마이 페이스인 사람이라 제안을 받아들일지 모르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전력으로 갈 생각이네.”

        ‘……알겠습니다.’

       

        뚝.

       

        전화를 끊은 한석구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1박에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호텔 스위트 룸이지만, 그의 눈에는 그저 평범한 객실처럼 보인다. 뻔한 사실이었다. 그는 ‘일성’의 부회장. 그룹의 황태자니까.

       

        “제대로 된 보석을 아버지께 보이면 더 신임을 얻을 수 있을 텐데.”

       

        욕실로 이동하던 한석구는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반쪽짜리 황태자의 운명이란 대게 이런 식이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또 자리를 노리는 형제들을 막기 위해선 그에게 쉴 시간 따위는 없었다.

       

        “최악의 경우엔… 유리에게 기대야 할 수도 있겠군.”

       

        그에겐 강력한 카드가 필요하다. 딸에게 의지하는 건 아비로서 할 수 있는 최악의 경우였지만, 한석구는 그조차 염려해 두고 있었다.

       

        * * *

       

        “미팅이요?”

       

        평화로운 평일 점심.

       

        대뜸 나를 찾아온 중년 사내의 부탁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승천전에 참가한 학생들은 모두 학교 수업의 면제 특권을 가진다. 따라서 집에서 하루종일 누워있다 간 편의점에서 만난 사람이었다.

       

        “예. 임혜성 님이 불편하시지 않으시다면, 간곡히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

       

        철저한 을의 자세로 답하는 중년 사내의 목소리.

       

        나는 그의 옷깃을 흘깃 보았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일성’ 그룹의 배지가 걸려있었다.

       

        ‘스카웃 제의인가?’

       

        뜬금 없어도 너무 뜬금 없었다.

       

        <히사있>의 재벌 그룹이 초능력자로 이루어진 독자적인 무력단체를 양성한다는 건 나도 알고 있었다.

       

        당장 괴수와 빌런의 공격으로 세계의 절반이 파괴됐다. 강력하고 유망한 히어로를 영입하는 건 그들의 가장 중요한 사업 중 하나인 것이다.

       

        ‘비유하자면 길드, 클랜, 태스크 포스 같은 그런 건데.’

       

        모든 히어로는 아카데미 입학과 동시에 히어로 협회에 이름이 올라간다. 다음으로는 졸업 후에 그들의 행보가 결정되고.

       

        간략하게 말하자면 세가지 루트가 있다고 봐야했다.

       

        첫 번째는 ‘기업’과 계약을 맺고 기업 소속의 히어로로 활동하는 것.

        두 번째는 ‘정부’의 소속으로 들어가 반 공무원, 반 군인이 되어 활동하는 것.

        세 번째는 ‘용병’ 단체에 가입해 큰 보수를 받으며 세계를 유랑하는 것.

       

        뭐, 초능력에 뇌가 절여져 빌런으로 타락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그건 극소수의 경우에 불과하니 넘어가도록 하고.

       

        “이거, 제가 랭커도 아닌데 재미있는 제안이네요.”

       

        대뜸 나를 찾아온 그는 ‘일성’의 높으신 분과 미팅을 해달라고 말했다.

       

        “<현상거절>님은 당장의 등급이 낮게 책정되어 있을 뿐, 사실은 그 랭커도 이기신 분이 아니십니까.”

        “…….”

       

        공손한 중년 사내의 대답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나보다 연배가 훨씬 높은 그가 저자세로 나오니 싫은 소리를 하기가 어려웠다.

       

        ‘딱히 지금은 어딘가에 소속될 마음은 없는데.’

       

        내 가장 큰 목표는 편안한 삶을 살다가 이야기의 종막에 다다르는 것이다.

       

        따라서 졸업이 한참 남은 지금 소속을 결정하는 건, 썩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얘기 정도는 할 수 있겠죠.”

       

        결국 나는 그리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시간 조금 들인다고 손해가 발생하는 것도 아니고, 분명 일성 정도의 그룹이라면 적지 않은 용돈도 함께 주겠지.

       

        “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조심스럽던 중년 사내의 얼굴에 화색이 감돌았다.

       

        내가 제안을 거절할 줄 알았던 건지, 노심초사하던 마음이 빤히 보이던 그가 밝은 미소를 지은 것이다.

       

        “정확한 시간과 장소는 문자로 전송하겠습니다. 만약 약속을 잡기가 어려우시다면 편히 말씀해주십시오. 저희 측에서 최대한 시간을 조율하겠습니다.”

        “그러면 좋겠네요. 이제 승천전 32강이 끝났을 뿐, 행사는 진행 중이니까요.”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곧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허리를 꾸벅 숙인 중년 사내가 점차 멀어져 간다. 편의점 앞에서 이런 대화를 나누는 것이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팔락!

       

        음료수를 가득 담은 비닐봉투를 들고 걸음을 옮기려던 나는 행동을 중단했다.

       

        “아.”

       

        그제서야 잊고 있던 사실이 떠올랐다.

       

        Z급이나 S급은 물론이고, A급 학생 대부분이 기업의 후원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얘기가 빠르지 않나. 내 핸드폰에 연락처가 등록된 사람 중, 일성에 큰 관련이 있는 사람이 둘이 있었다.

       

        “일단은 한유리한테 전화해 볼까.”

       

        <재창조>의 한유리는 일성과 깊은 관계인 수준이 아니다. 당장 일성을 지배하는 회장가의 직계 손녀니까.

       

        꾹.

       

        대수롭지 않게 핸드폰을 꺼낸 나는 연락처를 찾아 통화 버튼을 꾹 눌렀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여, 여보…… 세요?’

       

        핸드폰을 만지고 있었나?

       

        통화음이 두번도 울리지 않았는데 한유리가 전화를 받았다.

       

        “아, 한유리. 나 묻고 싶은게 있어서.”

        ‘묻고 싶은 것? ……부담 없이 물어보세요. 저는 모르는 게 거의 없는 사람이니까요.’

       

        역시 믿음직한 녀석이다.

       

        은근히 맹한 구석이 있고, 냉랭한 인상과 달리 제법 자상하다.

       

        “방금 일성 사람이 찾아왔어.”

        ‘네, 네?! 그게 무슨 소리인가요!’

       

        수화기 넘어로 들려오는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 설마하니 뭔가 착각을 하는 건가, 싶었던 나는 서둘러 그녀를 진정시켰다.

       

        “걱정은 안 해도 돼. 그냥 평범하게 미팅을 하고 싶다는 말을 전하고 갔을 뿐이니까.”

        ‘그, 그렇군요…….’

       

        뭔가 아는 게 있는 건가? 한유리의 목소리가 평소와 달리 조금 떨리는 느낌이다.

       

        “그래서 말인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 내가 ‘일성’의 후원을 받고 기업에 소속되는 거.”

        ‘……!’

       

        굳이 소리로 듣지 않아도 수화기 너머의 한유리가 크게 놀란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잠시간 침묵을 유지하던 한유리는 어렵사리 운을 뗐다.

       

        ‘저는… 좋을 것 같아요. 일성은 거대해요. 현대 사회의 사람이 가진 수많은 결핍을 해결할 힘을 보유하고 있죠.’

       

        맞는 말이다.

       

        당장 전세계를 호령하는 그룹인 일성이니 히어로 하나 후원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겠지.

       

        ‘그, 그리고 저도… 당신과 함께하면 좋고요.’

       

        기어들어가는 한유리의 목소리에 괜스레 픽 웃음이 터졌다.

       

        하긴, 일성 그룹과 계약을 맺으면 한유리, 송수아와 한솥밥을 먹는 사이가 되긴 하지.

       

        “너 나 좋아하냐?”

       

        한유리의 말에 괜스레 실 없는 농담이 튀어나왔다.

       

        함께하면 좋다니. 이건 무슨 연인이나 부부가 할법한 소리 아니냐고.

       

        ‘아, 아아, 아니요?! 제가 왜 당신을 좋아해요? 빌런의 꿈 속에서 소꿉놀이를 한 것 뿐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건데!’

        “……?”

       

        잠시간 조용하던 한유리가 놀란 것처럼 소리쳤다.

       

        “물론 밥맛인 농담이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반응할 필요는…….”

        ‘아, 아니! 당신이 싫다는 게 아니라! 그냥 마음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제가 취할 태도를 말한 것 뿐이에요!’

       

        과장된 한유리의 반응이 곧장 날아든다. 완전히 자기 페이스를 잃어버린 한유리의 목소리에 나는 소리죽여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 그리고 저도 말씀드릴게 있어요.’

        “뭔데?”

        ‘최근 <히어로타임> 커뮤니티에 누군가 당신을 사칭하고 있더군요.’

        “……?”

       

        사칭?

       

        설마하니 그 놈인가? 매일매일 ‘임혜성이 송수아를 좋아하는 이유’ 같은 뻘글로 온 게시판을 도배하던 놈.

       

        ‘당신이 바라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최근 <현상거절>의 위명이 높아감에 따라 학생회 자체적으로 조사에 착수했어요.’

        “음…… 그래? 나쁘진 않네.”

       

        그 사칭범 아닌 사칭범이 지독한 모욕 따위를 한 건 아니지만, 나도 얼굴이 궁금하기는 했다.

       

        나와 송수아와 연관도 없을 제3 자가 도대체 왜 그런 분탕글을 쓰는지 궁금하니까.

       

        “일단은 알았어. 일성에 대한 얘기는 더 고민해봐야겠다.”

        ‘……팔은 안으로 굽죠. 그런 제 의견보다는 당신 스스로 뜻을 정하는 게 좋을 거예요.’

       

        지극히 현실적인 한유리의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사칭범이 누구인지 밝혀지면 나한테도 알려주고.”

        ‘알겠어요. 그리고…… 32강 축하해요. 학생회에서 당신의 경기를 보면서 응원했어요.”

        “고맙다. 다음에 보자.”

       

        짧게 답한 나는 통화를 종료했다.

       

        그녀가 하려는 말은 간단했다.

       

        일성과 계약을 맺으면 자신은 좋겠지만, 결정은 본인의 몫이니 더 없이 신중하게 선택하라.

       

        역시 학생회장. 참 좋은 녀석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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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Hiding My Power at Hero Acad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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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Hero. Everyone admires them as they wield supernatural powers that defy the laws of physics. The ability I possess is to 'reject' those p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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