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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0

       쿠루미 공주님과 동거한 지도 벌써 사흘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폭풍전야라고 해야 할까.

       

        그동안 저택은 너무나도 평화로웠다.

       

       식사부터 시작해서 조금이라도 귀찮은 일이 있으면 어떻게 알고 나타나는지 사용인들은 내 수발을 알아서 다 들어줬고.

       

       정차 나는 ‘손님’에 불과한데도.

       

       ‘이래서야 그냥 일본 료칸에 여행 온 것 같잖아…’

       

       내가 지금 일을 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휴가를 즐기러 온 건지 헷갈릴 정도로 편안했다.

       

       그래도 언제나 잊지 않고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하는 일이 있었으니.

       

       “소피아. 왔어?”

       “응. 신우는 오늘도 ‘고생’이 참 많네.”

       “하하…”

       

       아침 일찍 출근하는 소피아와 언제나 안부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나와 공주님의 동거에 잔뜩 삐졌던 그녀. 

       

       첫날에 걱정돼서 몰래 한 번 지켜봤다.

       

       그러자 양쪽 뺨을 마치 복어처럼 빵빵하게 만든 채로 그 상태에서 하루 종일 경비를 서고 있는 소피아를 보게 됐고.

       

       “그, 그 정도로 화가 났었다고?!”

       

       이에 나는 사태가 심각하다고 판단.

       

       그런 토라진 소피아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이런 식으로나마 만남을 가지게 된 것이었다.

       

       “아직 아침밥 안 먹었을 거 아니야. 어서 들어가서 먹어.”

       “응? 아니, 나 아침밥은 원래 잘 안 먹잖아.”

       “?! 사람이 아침밥이 얼마나 중요한데! 됐으니까 어서 그 공주님이랑 같이 밥 먹어!”

       “아, 응…”

       

       이러는 와중에서 내 몸 상태는 끔찍이도 챙겨주는 소피아였다.

       

       “그럼 저녁에 퇴근 전에 또 봐.”

       “응. 그래.”

       

       그렇게 나는 다시 저택 안으로 들어가 슬슬 잠에서 깬 쿠루미 공주님께도 정중히 아침인사를 했다.

       

       그런 다음 평소처럼 식당용 다다미방에 들어가 마주 앉은 채 조식을 먹던 중.

       

       “오늘은 왠지 술이 먹고 싶어지네요.”

       

       그것은 갑작스레 일어난 ‘사건’이었다.

       

       “술… 말씀이십니까?”

       “네. 술이요.”

       

       공주님 입에서 ‘술’이라는 단어를 듣게 되다니.

       

       물론 그녀는 성년이 이미 지난 성인이었고 충분히 술을 먹을 수 있는 나이였다. 하지만 그래도 낯설기란 마찬가지였다.

       

       왜냐하면 고귀한 이미지를 가진 헌터 가문의 사람들은 결코 남의 앞에서 술이나 여자, 도박 같은 욕망이 담긴 말을 입에 담지 않으니까.

       

       ‘그런 말을 헌터 가문… 그것도 세계 10대 가문의 공주님 입에서 듣게 될 줄이야…’

       

       원작에서는 그냥 헌터 가문과 술자리를 가지는 것만 해도 몇백 시간의 끈질긴 플레이타임과 운이 따라야지만 비로소 가능했다.

       

       ‘그만큼 나를 신뢰한다는 건가?’

       

       원작에서는 설정팔이로 잠깐만 등장하셨던 공주님인데.

       

       그런 쿠루미 님께서 내게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자 왠지 모르게 원작 고인물로서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이어서 들려오는 공주님의 이야기.

       

       “오늘은 마침 보름달이 뜬다고 해요.”

       “그래요? 예쁘겠네요.”

       “네. 그래서 달을 안주 삼아 술을 입안에 적시고 싶은 거랍니다.”

       

       달을 안주 삼아 술을 마신다라.

       

       뭔가 무협영화의 한 장면 같아서 멋있었다.

       

       그럼 나는 오늘 공주님의 술자리에 방해되지 않도록 혼자 저녁밥을 먹어야지.

       

       그런 생각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자.

       

       “그래서 말인데요. 신우 씨.”

       “네. 공주님.”

       “혼자 술을 마시면 너무 외로워서요. 저랑 같이 있어 주실 수 있을까요?”

       “……네?”

       

       대뜸 공주님과 같은 술자리에 오를 기회를 얻게 됐다.

       

       

       ***

       

       

       술에는 미지의 힘이 있다.

       

       사람들은 그 힘을 알코올이라 부르는데, 몸에 흡수돼 봤자 안 좋은 효능만 불러일으킨다는 걸 알면서도 사람들이 술을 마시는 이유는 매우 간단했다.

       

       바로 술에는 ‘건강’을 대가로 한 ‘용기’를 얻는 힘이 존재했으니까.

       

       “…꿀꺽.”

       

       일기예보대로 오늘 한국의 밤하늘에는 화창한 보름달이 뜨고 있었다.

       

       그런 하늘을 볼 수 있게 정원과 연결된 미닫이문을 활짝 연 채로 쿠루미 공주는 각종 호화찬란한 안주가 장식된 식탁 앞에 신우와 마주 보며 앉았다.

       

       그리고 자신이 먼저 두 손으로 그의 술잔에 술을 따라줬다.

       

       “이건 저희 일본에서도 굉장히 대중적으로 마시고 있는 사케(酒)랍니다. 한국에서도 얻을 수 있다길래 사용인한테 시켜 가져온 거예요.”

       “오… 사케.”

       “술을 좋아하시나요?”

       “네?! 아, 그게… 싫어하지는 않는 타입이죠.”

       “그렇군요…”

       

       

       사케를 먹는 방식은 언뜻 보기에는 한국의 소주와 비슷해 보일 수 있으나 약간 달랐다.

       

       

       그 예로 마주 본 두 사람은 잔은 맞대지 않은 채 서로 잔을 치는 약간의 시늉만 하며 우선 술을 한 모금씩 마셨다.

       

       

       꿀꺽.

       

       

       “?! 조금 도수가 센 사케군요…”

       “후후. 네. 술은 도수가 강한 것이 맛 또한 강한 법이니까요.”

       “그렇군요…”

       

       

       사케의 평균 도수는 15도.

       

       

       그중 이번에 쿠루미 공주가 가져온 사케는 평균 도수가 무려 25도에 해당하는 고급 사케였다.

       

       

       그렇기에.

       

       

       “한 잔 받으시죠.”

       “아, 네…”

       

       

       꿀꺽.

       

       

       “한 잔…”

       “또?! 아, 네…”

       

       

       꿀꺽. 꿀꺽.

       

       

       “한 잔이요.”

       “네, 네…”

       

       

       꿀꺽. 꿀꺽. 꿀꺽. 꿀꺽.

       

       

       공주님이 주시는 술잔이라 거절할 수도 없는 상황.

       

       

       쿠루미 공주의 계획대로 신우는 그녀가 한 잔을 마실 동안 서너 잔의 사케를 입안에 털어 넣었으며 덕분에 금세 얼굴에 빨간 취기가 오르고 있었다.

       

       

       “으, 으…”

       “신우 씨?”

       “음… 네… 공주님…”

       “……”

       

       

       그리고 거의 해롱해롱해진 그의 상태를 확인하며 본인도 취기가 약간 오른 쿠루미 공주는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잠깐 옆에 앉도록 할게요.”

       “으음… 네…”

       

       

       은근슬쩍 신우와 어깨가 맞닿을 정도로 나란히 그 옆에 앉았다.

       

       

       콩닥콩닥.

       

       

       잠깐의 정적.

       

       

       쿠루미 공주가 살짝 돌아본 신우는 거의 잠들기 일보 직전의 상태였다.

       

       

       그대로 잠재우는 게 최종계획이었지만 일단은 깨어 있으니까.

       

       

       취기가 올라 솔직해진 지금도 쿠루미 공주는 헛되게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약간 두려운 마음으로 평소라면 물어보지 못했을 질문들을 지금, 이 순간을 이용해 물어보기로 했다.

       

       

       “저, 저기 신우 씨… 저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생각하다니여…?”

       “말 그대로의 의미에요. 저 키츠네 쿠루미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귀찮은 여자.

       

       

       어쩔 수 없이 따라다니는 여자.

       

       

       사람이랑 대화도 제대로 못 하는 여자.

       

       

       혹은 불쌍한 여자.

       

       

       평소에 그런 식으로 해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게 아닐까.

       

       

       그런 생각에 쿠루미 공주는 몇 초 후 자신이 한 질문의 내용에 대해 무슨 답변을 들을지 몰라 후회했지만.

       

       

       “…좋은 사람.”

       “……네?”

       “착하고… 예쁘고… 사실은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 그래서 돌봐주고 싶은 사람이요…”

       “…!”

       

       상상 이상으로 좋은 답변을 듣게 되자 술도 안 먹었는데 취기가 확 오르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며 이어 하는 질문.

       

       “그럼… 그럼 저 같은 여자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하실 것 같으세요…?”

       “쿠루미… 공주님을… 마음대로…?”

       “네! 그, 그러니까… 말 그대로 저 같은 여자를 마음대로 순종시킬 수 있으시다면…”

       “그야… 그런 예쁜 여자가… 내꺼가 된다는데… 남자로서… 당연히… 따먹어버려야죠…”

       “따, 따먹어?!”

       

       딸꾹!

       

       데이트나 그런 잡다한 것이 아닌 돌직구로 들어온 답변에 쿠루미 공주는 너무나도 놀라 순간 딸꾹질을 하고야 말았다.

       

       얼굴은 이미 잘 익은 토마토처럼 신우 이상으로 붉게 물들어진 상태였다.

       

       휘청휘청.

       

       그러는 와중에 이제는 진짜로 실신하기 직전의 상태가 된 신우 씨.

       

       곧 잠들게 될 그를 보며 쿠루미 공주는 마지막으로 떨리는 마음에 마른침을 꼴깍 삼키면서.

       

       스르륵.

       

       곧 있을 거사를 앞두고 평소 단단히 입고 있던 기모노의 상체 부분을 풀어헤친 채 마지막으로 비몽사몽한 그에게 물어봤다.

       

       “저, 신우 씨 그러면 있잖아요…”

       

       

       꿀꺽.

       

       

       

       “저랑… ‘섹스’하고 싶으세요?”

       

       그 물음에 이미 잠이 든 신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본능은 그렇다는 듯 머리가 쿠루미 공주의 풍만한 가슴골에 그대로 풍덩 하고 들어갔다.

       

       “흐읏?! 시, 신우 씨…”

       

       불러봐도 완전히 잠든 듯 대답이 없는 신우 씨.

       

       이내 쿠루미 공주는 그가 완전히 잠들었다는 걸 확인한 후 사용인들에게 시켜 일단 술자리를 전부 치워달라고 했다.

       

       그런 다음 방 안이 허전해지자 곧바로 전등을 끈 후 신우를 자신의 이불 위에 올려놓고 자신은 그런 신우 씨의 위에 올라탔다.

       

       그야말로 성교육에서 봤던 여자가 봉사하는 체위와 비슷해져 있었다.

       

       “신우 씨, 저 오늘 배란일이에요.”

       “ZZZ…”

       “일단 오늘은 아기씨만 받을 거고 다음부터는 제가 깨어있는 상태에서 성심성의껏 봉사해 드릴게요.”

       “ZZZ……”

       

       자고 있어서 대답이 없는 신우.

       

       그런 신우의 탄탄하게 단련된 가슴 위로 쿠루미 공주는 조심히 귀를 맞대봤다.

       

       쿵쾅쿵쾅.

       

       맹렬하게 울리고 있는 짐승과도 같은 심장의 고동.

       

       동시에 몸에서 올라오는 진득한 체취.

       

       목 부근에서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기다란 혀로 핥아줬다.

       

       마치 뼈다귀를 찾은 강아지처럼 지금만큼은 공주가 아닌 한 마리의 암컷이 되어 꼬리를 흔들 듯이 상스럽게 엉덩이가 씰룩씰룩 움직였다.

       

       ‘맛있어… 좋아해… 너무 좋아… 신우 씨…’

       

       그러다 슬슬 아래 부근의 뭔가가 자신의 사타구니를 쿡 찌르는 게 느껴졌다.

       

       슬슬 ‘거사’를 치를 시간이 왔다는 뜻이었다.

       

       “신우 씨… 좋아해요…”

       

       죽을 정도로.

       

       아니, 죽고 나서도.

       

       앞으로 자신이 살 수 있는 시간은 불과 1년 남짓.

       

       하지만 아기가 엄마의 자궁 속에서 성장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10개월 정도 된다니까.

       

       1년밖에 안 남은 시간이라도 충분히 만들고 낳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자신과 신우 씨의 아이.

       

       얼마나 멋지고, 사랑스럽고, 대견하고, 또 아름다울까.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선물이리라.

       

       그런 아기가 나중에 커서 말을 할 수 있는 나이대가 된다면 과연 어떤 옹알를 하고 있을까.

       

       태어나자마자 몇 개월 후에 엄마를 잃고, 사생아의 자식이라 가문에서도 천대받고, 심지어는 남자와의 합의 없이 만들어진 그 아이가 엄마의 묘 앞에서 처음으로 할 말.

       

       그게 과연 무엇일지는.

       

       “어머니…”

       “엄마…”

       

       같은 입장이었던 쿠루미라면 이미 아주 잘 알고 있었기에.

       

       “저 같은 걸 왜 나으셨나요?”

       “나 같은 걸 왜 나았어?”

       

       털썩.

       

       그런 현실을 깨닫고 나자 잠든 신우의 입술 사이로 들어가려던 쿠루미의 혓바닥이 도중에 멈췄다.

       

       자신이 하려던 건 사랑이 깃든 ‘섹스’가 아니었다.

       

       그저 한쪽이 일방적으로 느끼기 위해 하는 ‘강간’에 지나지 않았다.

       

       그로 인해 자신이 죽은 후 피해를 보게 될 신우 씨와 내 아기는 대체 무슨 죄가 있다고.

       

       그런 생각이 든 쿠루미 공주는 이내 신우의 몸에서 떨어졌고.

       

       “흑… 흐윽…”

       

       

       

       그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이런 개탄스러운 상황에.

       

       사랑하는 이의 아이조차 마음대로 품지 못하는 현실에.

       

       원치도 않은 출생으로 태어나 평생을 한 괴물에게 수명을 빼앗겨 죽을 때까지 돌려받을 수 없는 그런 운명에.

       

       행복해지려던 쿠루미는 겹칠 일 없이 홀로 흘러내리는 다리 사이의 액체처럼 다시 차가운 현실로 돌아왔다.

       

       그러고 나서 다음날.

       

       “신우 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는 많이 괜찮아졌어요.”

       “쿠루미 공주님…?”

       “그러니까. 이제 그만 제 저택에서 나가주세요.”

       

       그녀는 이 이상으로 행복해지는 게 두려워 자신의 마지막 행복을 스스로 내쳐버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씨, 이거 아슬아슬하게 세이프겠지…?

    쿠루미 공주 빌드업이 워낙 길어서 조마조마했는데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과 추천은 언제나 작가의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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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Catastrophic Monster Instead of a National Power

I Became a Catastrophic Monster Instead of a National Power

Status: Ongoing Author:
I was transported into a hunter genre game. Not as a national power, but as a catastrophic mon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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