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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0

     

    “아셀라.”

     

    대기실에서 경기장으로 걸어나가던 아셀라의 귓가에 차가운 목소리가 맺혔다.

     

    호위기사와 시녀들이 한 걸음 물러난다.

     

    또각, 또각.

    카밀라가 날카로운 구두굽 소리를 내며 아셀라에게 다가갔다.

     

    아셀라는 대답 없이 그녀를 바라본다.

     

    “이제는 인사도 안 하는구나. 어디서 배워먹은 태도니. 아주 막 나가겠다는 것이야?”

     

    “폐하 앞에 나설 때에요. 방해하지 말아주시겠어요?”

     

    “하, 말버릇 꼬라지하고는! 네가 나 없이 연습한 마법으로 폐하를 감복시킬 수 있을 줄 아느냐? 이미 내 수제자들이 연무를 마쳤다! 4위계 마법을 선보였지!”

     

    4위계에 도달했다면 이미 마법사로서는 대성한 경지이다.

     

    카밀라는 그런 이들을 제자로 들여놓을 정도로 실력만큼은 확실했다.

     

    마탑에 들어가지 못한 마법사들은 그녀의 밑에서라도 수련을 쌓고자 했다.

     

    물론 카밀라의 혹독한 성질을 오래 버틴 이는 많지 않았지만.

     

    오늘 경연에 참가한 마법사도 고작 세 명뿐이었다.

     

    이미 현자도 있는 황궁이다.

    그 정도로 월광궁 파벌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게 현실이었다.

     

    하지만 오늘 같은 특별한 날에는 다르다.

     

    아셀라를 돋보이는 역할로 보조할 수도 있었던 마법사들을, 카밀라는 홀랑 게오르크에게 넘겨버렸다.

     

    아셀라는 그에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카밀라는 자신을 자식으로서 믿지 않았다.

     

    그저 황가의 권력을 손에 넣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

     

    지금까지는 다루기 쉽기에 최선책이었으나, 그렇지 않다면 차선책인 게오르크에게 붙을 뿐이다.

     

    카밀라에게 아셀라는 겨우 그 정도 존재였다.

     

    “어마마마, 한 가지 묻겠어요.”

     

    “네가 내게 감히 질문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느냐?”

     

    “어마마마께선 왜 황제가 필요하신가요? 이미 황비로서 권력을 누리고 계시잖아요.”

     

    아셀라의 질문에 카밀라가 코웃음쳤다.

     

    “너 따위 꼬맹이는 이해하지 못해! 황제의 권력이 있어야 내 숭고한 사상을 비로소 이룰 수 있단 말이다.”

     

    지금의 황제는 늙긴 했어도 판단력은 정확하다.

     

    카밀라를 황비로 들인 이유도 아셀라라는 병기를 만들기 위해서였을 뿐, 자그마한 월광궁에 사실상 유기해놓은 상태다.

     

    자신이 황제가 되면 어마마마는 실세가 되어 권력을 휘두를 수 있으리라 생각하셨던 것일까.

     

    아셀라는 그 단순한 사고방식에 어이가 없을 따름이었다.

     

    “게오르크, 그 아이는 쓸만해. 야욕이 많고 승계를 위한 재능도 있지. 자만심에 차 있기에 이익이 되는 한 위험하다고 먼저 쳐내지도 않아.”

     

    카밀라가 강력하게 역설했다.

     

    “아셀라, 나는 지금껏 어미로서 너를 키웠다. 차기 황제로 즉위하겠다는 건 네 꿈이기도 하지 않느냐? 대체 무엇에 눈이 홀려 그리도 멋대로 행동한단 말이야!”

     

    카밀라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아셀라가 눈을 깜빡였다.

     

    지팡이를 쥔 손에 무심코 힘이 들어간다.

    그간 받았던 특별 교육 때문에 본능적으로 나온 반응이었다.

     

    ‘…황제가 되겠다는 꿈은.’

     

    당신의 꿈을 이뤄드리려 했을 뿐.

     

    “…후우.”

     

    아셀라가 호흡을 정돈했다.

     

    주치의의 말을 떠올린다.

     

    호흡수는 중요하다.

     

    심박을 조절하고, 긴장을 완화한다.

     

    …확실히, 카밀라의 앞에서도 조금은 안정된 기분이 들었다.

     

    눈을 뜬 아셀라는 감정을 숨긴 채, 무표정한 얼굴로 통보했다.

     

    “제 마법을 지켜보세요, 어마마마.”

     

    씩씩거리는 카밀라를 뒤로한 채 아셀라는 복도를 빠져나갔다.

     

     

     

    “다음은 월광궁에서 마법 경연을 펼치겠습니다! 무려 위대하신 황제 폐하의 세 번째 공주, 아셀라 황녀님께서 직접 시연하시겠습니다!”

     

    사회자의 안내가 나간 후 아셀라가 경기장 중앙에 섰다.

     

    단체전의 지형은 이미 사라졌고 깔끔한 무대만이 남아있다.

     

    아셀라는 시모어에게서 배운 마법진을 머릿속에서 그리며, 지팡이를 치켜들었다.

     

    ―팟!

     

    마법의 발동이 이루어진다.

     

    아셀라의 머릿속에서 그려낸 공식은 지팡이를 통해 부드러운 형태로 구성된다.

     

    그녀의 금빛 마나가 찬란하게 반짝이며 한치의 찌그러짐도 없는 완벽한 원을 그린다.

     

    “호오, 깔끔하군.”

    “현자가 아셀라 황녀를 가르치고 있다 하였던가?”

     

    황제의 형제자매들이 한 마디씩 감상을 내며 마법을 지켜봤다.

     

    아셀라는 마법진을 모두 그리고 시전 단계로 넘어갔다.

     

    그려진 세 개의 원에 마나가 본격적으로 흘러 들어가자 격한 소리와 함께 회전한다.

     

    교차하여 삼각뿔 공간을 형성한 마법진 사이에서 빛 입자가 뭉치며 형체가 나타났다.

     

    위엄 넘치는 자세의 황제를 조각한 동상이었다.

     

    “브링어, 이동마법이로군.”

    “멀리 있는 물건을 가져오는 편리한 마법이 아닌가. 3위계라 꽤 어렵다고 들었는데.”

    “허허, 아셀라 황녀님이 현자님께 많이 배우신 모양이군. 그렇지 않소? 형님.”

     

    천왕의 칭찬에 황제는 침묵하며 턱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확실히 아셀라가 보여준 마법은 나이에 비해선 천재적인 재능이 틀림없었다.

     

    “유일하지도 않지.”

     

    현자 시모어도 열 살 때 이미 4위계의 경지에 올랐다고 했다.

     

    비교 대상이 이백 년 만에 나타나 인류사에 이름을 새긴 위인인 것이 당연하다는 듯, 황제는 감탄을 아꼈다.

     

    그가 단체전에서 게오르크의 기사단에게 비웃음만을 보냈던 것처럼, 기준은 명확했다.

     

    “이것뿐이라면 실망스럽군.”

     

    황제가 심드렁하게 턱을 괴었다.

     

    아셀라는 마녀 카밀라를 품으면서까지 만들어낸 황실의 마도병기다.

     

    무려 마법의 재능만이 두 개.

     

    황제는 이것보다는 더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길 원했다.

     

    “하하, 겨우 3위계 마법이어서야. 브링어는 단체전 경기장을 준비한 궁정 마법사들도 얼마든지 썼다고.”

     

    게오르크 역시 승리에 한 발 다가갔음을 직감하며 주먹을 쥐었다.

     

    “같은 이동마법이면 브링어가 아니라 텔레포트라도 선보였어야지, 한심하기는!”

     

    라우가가 신난 게오르크를 꾸짖었다.

     

    “텔레포트는 5위계 대형 마법이잖아. 재료도 많이 들고 마법사도 여러 명 필요해.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마법은 마법사들이 가지고 놀라고 해. 통치자는 그런 세세한 일까지 신경 쓸 틈 없는 법이다, 라우가.”

     

    “어우, 젊은 꼰대.”

     

    라우가가 냄새난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게오르크는 팔짱을 끼고 분노를 숨겼다.

     

    그런 관객들의 미적지근한 반응 따위는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 아셀라는 지팡이를 멈추지 않고 즉시 다음 주문을 발동했다.

     

    “아직도 남았다고?”

     

    게오르크가 미간을 찌푸리며 집중했다.

     

    이번에 그려지는 마법진은 넷.

     

    4위계 주문이었다.

     

    “와, 지금 어떻게 구축했지?”

     

    아셀라의 모습을 똑똑히 지켜보던 라우가였으나 한순간 그 움직임을 놓쳐 고개를 갸웃했다.

     

    아셀라의 마법진이 기묘한 형태로 겹쳐지며 이해할 수 없는 구조의 도형을 만들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건 무슨 주문이지?”

    “도저히 모르겠군. 처음 보는 형태와 술식인데….”

     

    천왕과 공주들도 정체를 알 수 없어 어리둥절했다.

     

    그리고 스륵.

     

    아셀라가 추가로 마법진을 하나 더 그려내 가운데에 통과시킨다.

     

    “5위계라고?!”

    “아니, 직접 연결은 아니야. 굳이 분류하자면 상위 4위계… 대체 어떻게 고안한 구축식인지.”

    “잠깐, 그럼 설마.”

     

    마법에 조예가 있는 천왕 한 명이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마법일세. 아셀라 황녀가 마법을 개발했어.”

     

    황제의 눈썹이 슬며시 올라갔다.

     

    아셀라는 여전히 호흡을 침착하게 안정한 채 낮게 읊조린다.

     

    “리콜.”

     

    ―카가가각!!

     

    황금빛 마나가 격렬한 회전을 마친다.

    태서랙트처럼 구성된 마법진의 조형에서 입자가 인다.

     

    이동마법과 효과는 비슷하다.

     

    시전이 완료되자 그곳에는 그 자리에 없던 무언가가 나타나 있었다.

     

    이 자리에 없는 것을 가져오는 마법.

     

    하지만 아셀라가 가져온 것은.

     

    “해츨링?!”

    “뭐, 뭐라고!”

     

    드래곤의 새끼인 해츨링이었다.

     

    손바닥만 한 작은 붉은 도마뱀은 태어나서 인간을 처음 봤는지, 이리저리 주변을 둘러본다.

     

    펄럭, 작은 날개를 펼쳐 황제의 동상 어깨 위에 걸터앉는다.

     

    꺼억 마나를 트림하니 불꽃이 함께 뿜어져 나왔다.

     

    “맙소사, 지금 아셀라 황녀가 ‘생물’에게 이동마법을 썼나?!”

    “텔레포트 아니오?!”

    “텔레포트는 시전자가 이동하거나 게이트를 여는 마법이야! 다른 생물을 이동시키는 마법은 어디에도 없어!”

     

    관객석이 순식간에 떠들썩해졌다.

     

    아셀라는 시전 성공에 차오르는 자신감을 느끼며 가볍게 입꼬리를 올렸다.

     

    시모어는 그녀가 브링어, 텔레포트, 서먼 등 공간에 관련된 마법에 재능이 있다 했다.

     

    넓게 보면 시공간.

    세상을 인식하는 시야가 남다른 이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리콜은 오늘 경연을 위해 개발한 그녀만의 마법이었다.

     

    세상 어디에도 없던 마법을 개발했으니 분명 황제도 후한 평가를 주리라.

     

    그리 생각한 아셀라였다.

     

    하지만.

     

    “폐하, 이 자리에서 저 마법을 목격한 모든 이의 입을 침묵시켜야 합니다.”

    “그렇소. 이 일이 밖으로 새어나가면 혼란이 일어날 게 분명하오.”

     

    천왕과 공주들이 호들갑을 떤다.

     

    황제 역시 심각한 표정으로 아셀라를 노려보고 있었다.

     

    마치 그녀의 가치를 놓고 운명을 저울질하는 듯한 차가운 눈빛이었다.

     

    ‘왜?’

     

    아셀라는 이 상황이 조금 이해되지 않았다.

     

    실제로 대부분의 기사나 시종 등 관중들은 박수를 보내고 있다.

     

    심각해진 이들은 고위 계층인 일부.

     

    마법 이해도가 높은 자들이다.

     

    ‘…아.’

     

    아셀라는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눈치챘다.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저것은 위험한 마법이다.”

     

     

     

    ***

     

     

     

    “반응이 왜 저렇죠?”

     

    시녀장 누님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나는 승계권자 관람석에서 아셀라의 마법 시연을 지켜보던 중이었다.

     

    “이유는 대략 추측이 갑니다.”

     

    아셀라의 마법 시연은 그녀의 유능함을 알리기에 충분했다.

     

    지나치게 유능해서 문제였지.

     

    “하하, 아셀라. 어미를 닮아 오만하니 내 사고 칠 줄 알았지. 분수를 알아야지 어디서 코딱지만 한 게 승계권을 노려?”

     

    게오르크는 신이 나서 아셀라를 비웃는다.

     

    솔직히 이건 좀 열 받았다.

     

    아셀라가 평소 시모어의 수업을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는 잘 안다.

     

    노력한 게 잘못된 건 아니잖아.

     

     

    [No. 012 : 제국의 멸망 52% → 92%]

     

     

    열심히 준비한 마법을 간신히 성공시켰는데 반응이 이러면 다 엎어버리고 싶을 만하지.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선생님?”

     

    시녀장 누님을 뒤로 한다.

     

    “게오르크 황자 전하, 한 가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만.”

     

    “뭐?”

     

    게오르크가 미간을 찌푸리며 나를 돌아보았다.

     

    네가 황실에서 망나니를 맡고 있나 본데.

     

    나도 고향에서는 알아주는 망나니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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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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