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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0

       마야의 아빠는 솜씨 좋은 화가였다.

       아빠는 연극의 간판을 그려주는 일을 하다가 엄마를 만났다고 했다.

         

       환상 같은 눈속임으론 진정한 감동을 줄 수 없다며 마법을 깔보던 아빠.

       거기에 열 받은 엄마가 온갖 무서운 환상들을 만들어 내 아빠에게 쏟아부었다.

       그것이 두 분의 첫 만남이라고 했다.

         

       서로 사귀냐는 주변의 질문에 화가와 마녀는 항상 헛소리 말라며 일축했다.

       그러나 두 분은 텅 빈 것에서 무언가를 그려내는 데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백지에 분홍색이 칠해지고, 종이가 더욱 진한 색으로 물들고, 두 분이 인생 최고의 역작이라 일컫는 작품을 내놓기까지 걸린 세월은 3년이었다.

         

       그 작품이 발표되고 17년이 흘렀다.

         

       갸오옹.

       마야는 자신의 손바닥에 머리를 비비려 드는 진흙 색 덩어리를 바라봤다.

         

       녀석은 마야가 예전에 키우던 고양이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고 있었다.

       뒤뚱거리는 걸음걸이와 목을 쭉 내뻗으며 꼬리를 씰룩거리는 그 움직임은 어린 시절의 녀석을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겉모습만 봐서는 누구도 첫눈에 이것을 고양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없었다.

         

       구경꾼들은 그녀가 만들어낸 조악한 조형물을 곡예사 특유의 유쾌한 장난이라 생각했다.

       이렇게 농담이 끝나고 나면, 그녀가 제대로 된 환상을 만들어 내리라 여겼다.

       빵 덩어리 같은 겉모습이 갈라지면서, 안에서 진짜 고양이가 튀어나오는 퍼포먼스를 기대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마야는 사람들의 기대를 배반했다.

         

       바람개비, 마차, 그네.

       차례로 그녀가 만들어낸 형이상학적인 조각들.

         

       사람들은 그녀가 무엇을 만들어내려고 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이것들에는 고양이의 울음소리 같은 실마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끝입니다.”

         

       싸늘하고 무덤덤한 목소리.

         

       그제야 사람들은 이것이 그녀의 최선임을 알아차렸다.

       허탈한 숨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채용은커녕 여기에 서 있는 것도 낯부끄러울 정도의 실력이었다.

         

       구경꾼들은 아쉬운 소리를 하며 물러났다.

       일부는 좀 무례한 말을 던지기도 했다.

         

       -저 얼굴로 차라리 배우를 하지 그랬냐.

       -글쎄? 인형 역할 외엔 못할 것 같은데.

         

       그 소리를 듣는 마야는 화가 났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녀는 결코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는 법이 없었다.

       그녀는 조용히 자신이 만든 환상들을 정리했다.

         

       다른 환상들에 대해서는 앞에서 대놓고 독설을 던지던 서커스단 사람들.

       그들은 그저 쓴웃음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아무 말 없이 떠났다.

       초등학생이 그린 낙서에 진지하게 선과 명암을 입에 담는 비평가는 없는 것이다.

         

       마야는 자신의 손에 안기려 드는 고양이를 슬픈 눈으로 바라봤다.

         

       미안. 나는 아직 환상에 실체를 부여할 능력이 안 돼.

       아니, 그걸 떠나서 제대로 된 환상을 만들 능력도 안 돼.

         

       고양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주인이 자신을 쓰다듬어주지 않는지 궁금하다는 듯.

         

       환상에 의지나 영혼은 없었다.

       그가 취하는 모든 행동은 그녀의 의지가 만들어 낸 것이었다.

       녀석이라면 이렇겠거니 하고.

         

       환상의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그녀가 길렀던 고양이를 쏙 빼다 박았다.

       마야는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귀, 꼬리, 눈동자, 털, 색깔, 발톱 그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의 머릿속에 삼차원의 완벽한 이미지가 존재했다.

       모래알보다 더 작은 단위로 알갱이 하나하나 완벽하게.

         

       그러나 환상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너무 세세하고 과도한 정보량.

       그리고 ‘상’에 대한 불분명한 인식.

         

       둘 다 그녀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마법은 신비(Mystic)의 영역에 속하는 학문이다.

       물질로 존재하는 실재(實在)와 정신이 속하는 관념(觀念)의 세계 중간에 있는 것이다.

         

       얼음의 원소를 다루는 마법사가 ‘얼려라’라고 마법을 사용할 때, 결코 ‘온도를 영하 몇 도로 내려 수분을 응결시킨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의 머릿속에 있는 ‘얼린다.’라는 관념에 의지를 씌어 마력을 주입하면, 실제로 얼음이 얼어붙는 현상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왜 그렇게 되는지 물으면 마땅히 답해줄 말이 없다.

       마법을 사용하는 마법사 본인들도 잘 몰랐다.

         

       아카데미에서는 이런저런 이론을 주기적으로 발표하지만, 정작 현실에서 마법을 사용하는 데 그런 이론을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학자들이나 신경 쓰는 영역인 것이다.

         

       마법은 신비에 기반한 학문이었다.

       마법은 전승으로 전해지는 기술이었다.

       마법은 경험을 통한 깨달음이었다.

         

       환상 마법에서 말하는 ‘상’이라는 것 역시 신비에 속하는 개념이었다.

       마야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마야 양, 그럼 이것을 환상으로 만들어보시겠어요?

         

       아카데미의 선생이 캔버스를 가져왔다.

       거기에는 정말 아름다운 유채색 꽃밭이 그려져 있었다.

         

       교실에 있는 모두의 시선이 마야에게 쏟아졌다.

       학기 말 시험이라 할 수 있는 ‘환상 구현’.

       이론 최고 득점자인 마야의 실력에 다들 눈이 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식물은 동물보다는 만들어 내기 쉽지만, 선생이 요구한 것은 한 폭의 ‘풍경’이었다.

       어지간한 능력이 없으면 불가능했다.

         

       마야는 마력을 집중하고 환상을 만들어 냈다.

         

       빛이 모이며 그녀가 본 것을 그대로 형성했다.

       눈을 떴다.

       결과물은 완벽했다.

         

       그러나 그녀를 바라보는 선생과 학생들의 눈빛이 이상했다.

       별종을 보는 느낌.

         

       마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이 만든 것은 완벽했다.

         

       네모난 캔버스 위에, 유채색 꽃밭의 그림.

       네모난 캔버스 위에, 유채색 꽃밭의 그림.

         

       두 개는 완벽하게 똑같았다.

         

       그녀는 합리로 구축된 세상을 살았다.

       그녀는 정보로 구성된 세상을 보았다.

       그녀는 논리를 통해 세상을 이해했다.

         

       우리가 보는 벌레 한 마리, 모래 한 알갱이도 개체마다 미세한 정보의 축적과 연결로 만들어진 것인데, 어떻게 그걸 ‘상’이라는 불분명한 매개체를 통해 바라볼 수 있는 것일까?

         

       그림을 구현하는 건 쉬웠다.

       다른 사람들은 그림을 ‘기호’로 이해하며 구현하는 것을 힘들어했지만, 마야에겐 이차원 위에 좌표마다 색의 정보를 일일이 입력하면 되는 아주 단순한 작업이었다.

       그녀의 말도 안 되는 계산량이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그녀는 강아지, 비둘기, 꽃 같은 ‘복잡한 조형물’을 어떻게 계산해야 할지 몰랐다.

       그 털 한 올의 좌표와 형상, 움직임이 만드는 형태와 곡선을 모두 파악하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상’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신비는 합리에서 너무 동떨어진 개념이었다.

         

       그래도 그녀는 이해하고 싶었다.

         

       아빠는 그녀가 델로스 공화국의 IMT(마법기술원, Institute of Magical Technology)에 들어가면 그녀의 재능을 훨씬 잘 살릴 수 있을 거라 얘기했다. 그건 마야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재능이 빛을 발하는 분야가 이곳이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그래도 환상 마법을 배우고 싶었다.

         

       그녀는 품속에서 작은 은빛 원반을 꺼냈다.

       이것은 환상 마법사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물건으로 환상을 재생하는 데에 필요한 ‘상’의 정보를 담고 있었다.

       여기에 정보를 기록하는 것도, 정보를 읽어 환상으로 재현하는 것도 오직 같은 ‘상’의 신비를 공유하는 환상 마법사들끼리만 가능했다.

         

       엄마가 딸에게 전하는 마지막 메시지.

         

       마야는 이것을 직접 재생해보고 싶었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직접.

         

       아빠도 이것이 딸의 일임을 알기에 사람을 고용해 이것을 재생해보거나 하지 않은 것일 것이다.

         

       언젠가 자신의 손으로 꼭.

       마야는 디스크를 갈무리해 품에 넣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구경꾼들은 모두 떠나고 없었다.

       다들 그녀가 만든 것보다 더 화려하고 정교한 환상을 구경하고 있었다.

         

       일부는 그녀의 외모를 보며 수군거리긴 했지만, 다가오는 사람은 없었다.

       무감정하고 싸늘한 그녀의 표정이 무섭기도 했고, 상식 있는 교양인이라면 그것이 무례한 짓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례한 짓이었으니까.

       무례한 짓.

       무례한 짓…….

         

       “후후, 그걸로 끝입니까? 환상을 더 안 만드나요?”

         

       마야의 주먹이 잠깐이지만 쥐었다 펴졌다.

       그녀의 테이블에서 조금 떨어진 맞은 편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처음부터 그녀의 환상 시연을 지켜보던 남자였다.

         

       계속되는 실패에 상황을 파악한 사람들이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떠날 때도, 그는 여전히 자리에 남아 자신을 바라보면서 히죽댔다.

         

       에이, 이렇게 하는 거 아닌데.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 표정에서 그런 느낌이 전해졌다.

         

       마야는 속으로 이를 악물었다.

         

       환상은 속여야 하는 사람이 있어야 의미가 있는 마법이다.

       많은 사람 앞에서 시연할수록 수련에 도움이 된다고 여겼다.

         

       그래서 일부러 서커스 그랑프리에 참여했다.

       여기만큼 환상 마법을 수련하기 좋은 곳이 없다고 생각했다.

       아빠와 엄마도 서봤던 곳이니까 의미도 있었다.

         

       사람들 앞에 자신의 결과물을 내놓고 평을 듣는 것은 각오한 일이다.

         

       하지만 대놓고 비웃는 저 남자는 또 뭐람.

         

       화를 내는 마야의 표정에 변화는 없었다.

       그저 살짝 눈을 치켜뜨고 노려볼 뿐이었다.

         

       그런 모습도 남자는 즐거운지 웃음소리를 흘렸다.

       그 장난기 어린 미소에 마야는 짜증이 제대로 났다.

         

       그가 잘생겼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환상 마법사만큼 겉모습에 가치를 두지 않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런 것은 언제든 바꿀 수 있고, 속일 수 있는 것이었다.

         

       마야는 무시하고 수련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녀가 품에서 꺼낸 것은 정육면체의 나무토막이었다.

       큐브는 환상 마법사들이 가장 기초적인 연습을 하는 데 사용되는 도구였다.

         

       큐브 옆에 완벽하게 똑같은 형태의 큐브를 형성하는 것.

         

       마음을 다잡고 기초부터 수련해보기로 했다.

         

       -큐브의 상을 떠올리세요.

         

       상.

       그게 도대체 뭐란 말인가.

         

       선생의 목소리가 계속 떠올랐다.

         

       -상이란 마음의 도화지 위에 의미를 그리는 것.

       -마음이 없는 사람은 결코 상에 다다를 수 없어요.

       -마야 양은 차라리 IMT로 가서 마공학자가 되는 건 어떤가요?

         

       닥쳐.

       해내고 말 거야.

         

       눈을 감았다.

       숨을 골랐다.

       앞에 있는 나무토막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여기까지는 누구보다 완벽했다.

         

       하지만 구현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45.4 x 44.9 x 45.1 mm.

       자작나무.

       12중 나이테.

       비대칭적 나뭇결.

       17개의 홈.

       4개의 파편.

         

       하나하나의 정보량을 모두 계산했다.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버텼다.

         

       하나.

       큐브가 만들어졌다.

         

       둘.

       또 형성된 큐브.

       여기까지는 할 만했다.

         

       하지만 세에……큭.

         

       상이 흐트러지며 또 못 만든 빵 덩어리 같은 게 나왔다.

         

       너무 과도한 정보량.

       ‘상’을 이용 못 하는 그녀가 환상을 만들어내는 방법은 이게 문제였다.

         

       일일이 점을 찍어가며 구현하는 방법은 이차원에서가 한계였다.

       삼차원에 들어서면 처리해야 하는 정보량이 너무 과도하게 늘어났다.

         

       “후훗, 끝인가요?”

         

       고개를 들었다.

         

       남자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비웃는 듯.

       한심한 듯.

       사람을 조롱하는 것 같은 미소.

         

       이 남자 재수 없어

         

       마야의 냉담했던 표정에 약간의 균열이 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후 10시 55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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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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