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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0

       일반적인 학파라면 무법자를 문하생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이 알려진 순간 큰 곤욕을 치룬다.

        허나 해주학파만큼은 예외였다.

        아녜스나 루퍼트는 딱히 사람을 가리지 않는데다 오히려 은익 기사단이 가입하면 좋아할 게 분명했다.

       

        왜냐하면 저들의 잘못은 그저 허가받지 않고 마탑에 들어왔다는 것 하나 뿐.

        일반적인 무법자들과 다르게 범죄자나 마탑에 해를 끼치려는 이들이 아니었다.

        반면 해주술사가 되겠다고 스스로 들어온 선배들은 이미 대륙의 수배자로 탈바꿈해 걸출한 악명을 퍼뜨리고 있다.

        날이 갈수록 높아지는 안내데스크 여직원의 데시벨이 이를 증명했다.

       

        “슬슬 올 때가 됐는데.”

        “뭐가?”

        “신입 말입니다.”

        “이딴 곳에 무슨 신입이 와? 그래서 가입 신청서를 이렇게 많이 갖다 놓으란 거였어?”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다수의 발자국 소리.

        나는 못 마땅한 기색의 토비를 보낸 뒤, 계단으로 이어지는 비밀통로의 입구를 열었다.

        이전 프리나가 도주하던 나를 잡아끌었던 그 장소였다.

       

        예상대로 은익 기사단의 단원들이 떼로 덤벼오는 치안대에 쫓겨 달아나던 중이었다.

        로브자락을 휘날리며 추격해오는 마법사들의 대열은 기사단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저쪽도 마음 같아서는 검을 뽑아들어 반격하고 싶지만 피해가 커질까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마리엘을 데려가는 것이지 전쟁이 아니었으니까.

       

        “자자, 다들 이쪽으로 들어오시죠.”

        “……!!”

       

        계단 사이에서 난데없이 나타난 문에 대열 중간의 인원들이 깜짝 놀랐다.

        그것도 잠시, 눈치 빠른 이들은 곧장 선두를 멈춰세우고 통로 안으로 몸을 날렸다. 

        동시에 후미에선 연막탄이 터졌다. 그간 모험가 생활을 해왔다더니, 그래도 기본은 있군.

       

        “젠장, 무슨 마법사 놈들이 떼로 덤벼들고 있어……!”

        “핍이 잡혔어. 지금이라도 구하러 갈까?”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단순히 무단으로 마탑에 들어왔을 뿐, 아직 범죄를 저지르신 건 아니니까요. 출입 금지 조치를 받고 밖으로 퇴출될 겁니다.”

        “너는……?”

        “우선 목소리를 낮추고 이쪽으로, 꼬리를 밟히면 곤란하니 말이죠.”

       

        나는 치안대에 들키기 전에 문을 닫고 해주학파의 창구로 안내했다.

        추격전은 특기가 아니었는지 약해진 기사단의 위세에 절망했는지, 몇몇 이들의 표정이 어두웠다.

       

        벽난로가 있는 작은 방.

        안전이 확보되자 일행 중 유일하게 위치노트를 든 기사 더글라스가 자신을 소개했다.

       갑옷을 입었다면 기사의 표본이라 여겼을 훤칠한 얼굴이었다.

        모험가의 등급은 검술만으로 결정되지 않음에도, 그는 단원들 중 유일하게 금색 플레이트를 목에 걸고 있었다.

       

        “더글러스 피셔라고 한다. 이쪽은 오웬과 아이린이다.”

        “음.”

        “잘 부탁드립니다.”

        “해주학파 소속의 클락입니다. 저희 학파의 가입을 원하신다고 창구에서 말씀하신 게 사실이신가요?”

       

        조금 전 몸소 겪은 일로 마탑 내에서 해주학파의 취급이 어떤지 알았겠지.

        무장한 기사 수십 명 앞에서 태연히 벽난로에 장작을 던지는 나를 보고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칙칙한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어서일까.

        ‘해주’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한 바깥에서 왔음에도 몇몇 이들은 용캐 ‘저주’라는 단어를 떠올려 입에 올렸다.

       

        “아니신가요?”

       

        그러나 아무리 꺼림칙해도 자신들의 주인이 탑을 오르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한 곳.

        잠시 서로 대화하던 이들은 이내 앞으로 오더니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우리는 전(前) 홀크로프트의 기사단 은익의 단원들로 마리엘 레반시아 님을 찾기 위해 왔다.”

        “오오, 기사님들이시로군요. 이거 영광입니다.”

        “마탑의 학파들은 모험가 조합과 상부상조하는 관계라고 들었다. 필요에 따라 모험가들을 고용해 보수를 주고 등반에 도움을 받는다고 하더군.”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마리엘 아가씨가 계신 곳으로 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후일 홀크로프트를 재건한 뒤에 그에 걸맞은 사례를 하겠다. 내 명예를 걸고 말하건데 섭섭한 보상은 아닐 거다.”

       

        보상에는 관심 없다.

        이들을 여기까지 부른 이유는 어째서 마리엘을 데려가려 하는지 듣기 위해서였으니까.

       

        마탑에서 학파가 없다는 것은 장점보다 단점이 압도적이다.

        선현들이 닦아놓은 자원과 기반시설을 죄다 사용하지 못하는데다 본래라면 신비 역시 익힐 수 없으니까.

        지금은 내가 백방으로 뒷바라지 해주고 있다지만 언제까지 업어 키울수는 없는 노릇.

        만약 이들이 마음을 바꿔 자신의 주인의 등반을 도울 의향이 있다면, 나도 굳이 그들을 내쫓을 이유가 없었다.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백작가를 재건하기 위해서다. 홀크로프트의 직계에는 가문 대대로 내려온 신비한 힘이 깃들지. 만약 아가씨께서 마탑에서 사망하신다면 더 이상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오히려 탑 안에 있는 편이 안전할 수도 있습니다. 혹은 본인이 원하지 않을 가능성도…….”

        “외부인이 왈가왈부 하지 마라……!”

        “그만, 오웬. 이건 가문 내부의 회의에서 이미 결정된 사안이다. 아가씨께는 죄송스럽지만, 불가능한 복수는 포기하고 이쯤에서 현실을 보는 것도 미래를 위한 일이다.”

       

        결국, 무슨 일이 있어도 마리엘을 데려가야 한다는 뜻이로군.

        그렇다면 나 역시 이들을 곱게 올려 보내줄 순 없었다.

       

        “사실 마리엘 님이라면 저도 개인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말인가? 아가씨는 무사하신가?”

        “그게…… 상황이 그리 좋지는 않습니다. 사악한 마법사 놈들이 수련의 층 꼭대기에 마리엘 님을 반쯤 구금해 놓았거든요.”

        “뭣……!?”

       

        나의 말에 좁은 방에 모여있던 기사들이 술렁였다.

        몇몇 호승심 넘치는 이들은 허리춤의 칼까지 뽑을 정도였다.

       

        사실 마리엘은 잘 지내다 못해 누가 등 떠밀지 않으면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있을 정도로 호사를 누리는 중이었다.

        최근 살까지 쪘는지 가슴이 답답하다며 내게 옷 심부름 따위를 요구했다.

       

        빈둥거리는 꼴을 보다 못한 내가 마법 연습이나 하라고 마력 승강기로 던져 버렸기에 그녀는 19층에 있었다.

        지금은 내게 잘 보이고 싶어하는 세라와 아르투르 덕에 미티어와 글레시아 학파의 라운지를 빌려쓰는 중.

        고생은 커녕 갤러리 접속률이 눈에 띄게 치솟은 그녀였지만 저들은 그것을 알 턱이 없었다.

       

        당장이라도 그녀를 구해야 한다며 치안대와 정면으로 부딪힐 기세인 기사들을 달래며 말했다.

       

        “제가 기사님들이 안전하게 위로 올라가실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감사를 표하지. 대가는 반드시…….”

        “오, 대가라뇨! 그런 건 전혀 필요 없습니다. 다만…….”

       

        반역 혐의로 멸망 직전에 몰린 가문과.

        후일을 기약하며 뿔뿔이 흩어진 기사들.

        더는 갑옷도, 말도, 제국을 배신했다는 비난에 긍지마저도 없지만.

        오직 주군을 위한 명예를 가슴에 품고 찢어진 깃발 아래 다시 모인 이들.

       

        “아주 작은 부탁만 들어주시면 됩니다.”

       

        -의 계획을 망친다는 생각에 아주 살짝 가슴이 뛰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마리엘이 마탑에 있어야 더 안전하다는 말은 진심이었다.

       

       

       

        *

       

        ====

        — 마린이141 : 아가씨! 고초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어째서 알리지 않으셨던 겁니까!

        — 초전도체은발미소녀 : 그들에게 감시를…… 이것도 겨우…….

        — 마린이141 : 지금 당장 구하러 달려가겠습니다! 안 그래도 탑을 오를 수 있게 해주학파의 마법사와 접촉한 참입니다.

        — 마린이141 : 헌데 갤러리에 아가씨와 비슷한 ‘초천재금발미소녀’라는 아이디를 쓰는 유저가 가끔 보입니다.

        — 마린이141 : 심지어 갤러리에서 꽤 높은 직책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던데…….

        — 초전도체은발미소녀 : 그건 사칭인 것이에요

        ====

       

        “젠장……!”

        “진정하세요, 부대장.”

        “소란이 일어나면 곤란하다고요!”

       

        위치노트를 붙잡고 부들부들 떨던 더글라스의 양 어깨에 부관인 아이린과 오웬이 손을 올렸다.

        마탑의 1층은 모험가나 상인들도 많이 다니는 구역이지만, 엡실론 관에 있는 사람들은 수업을 들으러 온 마법사뿐이었다.

        해주학파에 가입해 저주명을 받긴 했으나 차림새나 행동거지는 영락없이 기사 그 자체.

        10층의 시련인 대미궁에 도전하는 조건으로 삼인 일조의 퀘스트를 통과해야 했던 그들은 최대한 발걸음을 죽이며 한 강의실로 향했다.

       

        걷는 도중 아이린이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그 클락이란 마법사, 어딘가 수상합니다.”

        “아가씨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사실 말인가?”

        “그것뿐 아니라 처음부터 우리가 올 것을 예상한 눈치였습니다.”

        “저주술사니까 그렇지. 쯧, 기생 오라비마냥 생겨 갖고는.”

        “그의 얼굴을 직접 봤어 오웬?”

        “응? 나야 앉을 데가 없어 바닥에 쭈그려 있었으니까…… 왜?”

       

        방 안에 있던 단원들 중 클락이 수상하지 않다고 여긴 이는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경계심을 표하는 더글라스와 경멸하는 오웬과 다르게 아이린은 관자놀이를 매만지며 무언가를 떠올리려 애썼다.

       

        저주술사?

        틀린 말은 아니지만 로브 아래로 드러나는 골격과 자세는 지금껏 봐온 유약한 마법사들과는 달랐다.

        손에도 굳은살이 잔뜩 박혀 있었다.

       

        무엇보다 하관만 봤을 뿐인데 어딘가 묘하게 낯이 익었다.

        모험가 조합에서 접수원으로 일할 때의 기억이 자꾸만 떠올랐다.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잡념을 털어내고 우선 임무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마침 목표로 한 강의실이 보였다.

       

        “나중에 조사해 봐야겠습니다. 조합에 있던 친구에게 연락하면 알아낼 수 있을 겁니다.”

        “알겠다. 그건 네게 맡길 테니 우선 이 일부터 처리하지.”

        “그렇게 긴장하실 필요 없습니다 부단장,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요.”

       

        기사단 내에서도 가장 혈기가 끓는 오웬이 클락의 쪽지를 확인했다.

        커다란 상자처럼 생긴 네모난 상자 안의 내용물을 모두 뽑아 바닥에 버리라는 것이었다.

       

        조잡하게 그린 그림과 똑같이 생긴 물건이 강의가 한창 진행 중인 복도에 떡하니 서 있었다.

        세 사람은 처음으로 접한 마도공학의 산물에 눈을 빛냈다.

       

        “트라팔가 호수 산 청정 얼음물, 이거 맞지?”

        “맞는 것 같아. 어차피 나머지 것들은 다 팔린 모양이네.”

        “여기에 주화를 넣으면 되겠군.”

        “아, 제게 마침 잔돈이…….”

       

        땡그랑, 땡그랑…….

       

        꾹, 덜컹! 

       

        또독, 똑.

       

        촤아악! 촥! 촥!

       

        자판기 안에 있던 병의 뚜껑을 열어 모조리 비워낸 그들은 물바다가 된 바닥을 보고 잠시 서로를 쳐다봤다.

        표적이 숨겨져 있던 것도 아니고 특별한 위험도 없었다.

        투명한 병 안에 들어있던 내용물도 그저 평범한 얼음물이었을 뿐.

       

        너무 간단해서 도리어 힘이 빠질 정도였다.

       

        “이걸로 끝인가요 부대장?”

        “그런가 보군. 적혀있는 내용은 이게 다다.”

        “뭐야 그놈, 생각보다 별 거 없잖…….”

        “지금, 뭐하는 거죠?”

       

        예상보다 빠르게 마리엘이 있는 곳까지 갈 수 있겠다며 세 사람의 긴장이 풀린 순간.

        문이 열린 강의실에서 푸른 머리의 여인이 나왔다.

        조각상처럼 아름다운 얼굴에 걸린 감정은 무(無) 그 자체.

        허나 마법사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마력에는 형언할 수 없는 분노가 담겨 있었다.

       

        바닥으로 향해 있던 눈동자가 또르르 굴러 위로 올라온 찰나, 셋은 동시에 달리기 시작했다.

        뒤이어 엄청난 냉기가 그들을 향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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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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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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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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