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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0

       

       

       “···빨리, 설명해.”

       

       “네, 네.”

       

       

       부하가 눈치를 보는 게 느껴졌다.

       

       심기가 그렇게 불편해 보이는 걸까? 하지만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분명히 수상해.

       

       그때 그 얼굴. 그 웃음.

       

       자기는 잡히지 않을 거라 확신하는 듯한 웃음이었어.

       

       대부분의 무고한 용의자는 그런 상황일 때 그렇게 대담하지 못해.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왜 당황하냐고 비웃기도 하지만, 그건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의 허세.

       

       실제로 자신이 하지도 않은 사건에 휘말려 용의자 취급을 받게 된다면 엄청나게 당황한다.

       

       이런저런 불안증세를 보여주기 쉽다고.

       

       ···하지만, 그녀는 어땠지?

       

       불안은커녕 자신만만한 웃음.

       

       자신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잡히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담긴 목소리.

       

       물론 어제 부하에게 말한 것처럼 그녀가 범인이 아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수상했다. 너무나도.

       

       마치 범인이 잡힐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한 그 모습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용의자는 38세 남성, 에리오 올란드. 능력은 복제. 시야에 담은 사람의 능력을 하루 동안 사용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걸로 그녀의 능력을 복제했다?”

       

       “네. 타인에게 혐의를 뒤집어씌우기 참 좋은 능력이네요.”

       

       

       부하의 말대로 그 남자가 범인이라면.

       

       그렇다면 모든 게 맞아떨어진다.

       

       모든 일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는 이야기니까.

       

       우연히 그녀가 간 장소에서 범행이 일어난 게 아니라, 그 남자가 그렇게 되도록 꾸몄다는 말이 되니까.

       

       거미 그림을 그려 넣은 것도 범인을 특정하기 쉽게 일부러 그렸다고 생각할 수 있다.

       

       자세한 동기는 조사해봐야 알겠지만, 수사가 더 이루어지기는 힘들겠지. 이미 잡혔으니까.

       

       이치에 맞는다. 사리에 맞는다.

       

       하지만 위화감이 엄습했다. 분명히 그게 정답이라고 이해하고 있는데도.

       

       

       “···왜 우리에게 이야기하지 않았지?”

       

       “네?”

       

       “우리가 맡고 있던 사건이잖아. 왜 내가 뉴스로 범인이 잡혔다는 걸 처음 접해야 했냐고.”

       

       “···어, 그게. 자수···했답니다.”

       

       “자수?”

       

       “네. 보복이 두려워졌다. 위버멘쉬에게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바에야, 감옥에서라도 살아남겠다. 그렇게 진술했다더군요.”

       

       “하. 웃기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렇게 많은 빌런을 썰어 재꼈으니 사형선고는 당연하지.

       

       사형이 집행되는 건 여론도 어느 정도 반영되는 편이라, 빌런들을 죽였다는 점에서 실제로 사형은 집행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죽여 마땅한 놈들을 죽였다는 여론이 생길 테니까.

       

       ···하지만, 당한 놈들이 과연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을까?

       

       빌런 조직에 시비를 걸었다가 감옥에 가서 객사한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교도관이 틀어막아야 하긴 하지만, 어차피 범죄자 소굴.

       

       한두 명 죽어봐야 범죄자가 범죄자를 죽이고 형량이 늘어날 뿐이라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다.

       

       

       “그렇게 많은 수를 썰어 재꼈는데 감옥에서 살아남겠다? 말도 안 돼.”

       

       “···그렇긴 하죠.”

       

       

       피로 피를 씻는 복수가 벌어질 거다.

       

       어차피 그들은 범죄자. 형량 조금 늘어도 신경 쓰지 않는 놈들은 발에 챌 만큼 있다.

       

       그런 놈들은 사례를 충분히 한다면 사람을 죽이고도 남을 놈들이야.

       

       얼마 안 가서 싸늘한 시체가 되어있을 거다.

       

       그걸 모르는 건가? 아니, 모를 리가 없을 텐데.

       

       그 정도로 큰 조직이면 어느 감옥에 가도 조직의 빌런들이 수감되어 있을 거다. 살아남기는 불가능해.

       

       그리고 그것뿐만이 아니야.

       

       어찌어찌 교도소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쳐도, 가만히 있었다면 아르테 이시스가 최우선 용의자다.

       

       어째서 자수했지?

       

       

       “왜 그러십니까? 평소 같았으면 신경 쓰지 않고 다음 사건이나 확인하시는 분이.”

       

       “···너무 수상해서 그래. 분명 뭔가 있어.”

       

       

       빌런이 빌런을 죽인 사건이다.

       

       범인이 잡혔으면 아, 그렇구나 하고 넘겨야 하는데.

       

       그녀의 얼굴이 머릿속에 아른거렸다.

       

       

       “자기과시를 즐기는 빌런은, 수사에 혼란을 주고 그걸 즐긴다고 내가 말했던가?”

       

       “예, 그랬었죠.”

       

       “그래, 그렇지. 그 녀석들은 그런 걸 즐기는 편이야.”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범인이 잡힐 걸 알고 있었다는 듯한 말투. 표정.

       

       수상하기 그지없어서 역으로 혼란스러운 행보.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우리에게 오지 않은 채로 종결된 사건.

       

       심지어 범인은 아르테 이시스를 용의자로 꾸며놓고는 뜬금없이 자수?

       

       ···너무 수상했다.

       

       

       “아르테 이시스의 정보 더 가져와.”

       

       “네? 하지만 이미 범인이 자수했는데···. 그녀를 범인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래. 그러니까 더 가져와, 빨리!”

       

       “하, 하지만 이미 권한을 박탈당했어요. 수사가 끝났으니 저희는 그녀를 조사할 수 없습니다.”

       

       

       -콰앙!

       

       

       짜증이 치솟아 책상을 세게 내리쳤다.

       

       그 소리에 깜짝 놀란 부하의 모습에 살짝 미안함이 들었다. 너무 세게 쳤나?

       

       

       “그럼 개인적으로 조사한다.”

       

       “네, 네···?! 하지만···!”

       

       “알아, 위험한 거. 그래도 수상한 걸 어떡하냐.”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서 누군가를 자수시켰다.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

       

       

       

       “곤란하네요.”

       

       [네? 뭐가요?]

       

       “어제 그 사람이요. 작가님도 들으셨잖아요? 선생님의 말씀.”

       

       [아, 아아! 그 멋있는 사람!]

       

       

       ···멋있는 사람이라는 인상인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떠나서, 지금 나한테는 거슬리는 방해물인데.

       

       방과 후, 선생님이 슬쩍 다가와 내게 일러주었다.

       

       그녀가 나와 다음 날 오후에 만나자는 이야기를 꺼냈다고.

       

       이미 범인도 잡힌 상황에서 나와 이야기하자는 말이 나온 걸 보면 뻔하지. 아직도 나를 의심하고 있는 거다.

       

       일단 거절하면 의심받을 게 뻔하니 수락하긴 했지만···.

       

       어째서? 왜 의심하는 거지?

       

       분명히 한 명 잡아다가 자수시켰을 텐데. 이미 범인이 나온 상태에서 의심하고 말고 할 게 있나?

       

       ···또 인상 때문이야? 맨날 나만 수상하다고 몰리는 기분이네.

       

       

       “하아. 시간이 남아돌 때 처리하고 싶은 일이 있었는데.”

       

       [처리하고 싶은 일?]

       

       “위버멘쉬, 수를 좀 줄여야 하니까요.”

       

       [앗. 그, 그런가요···?]

       

       

       수가 너무 많았다.

       

       현재 간부 11명, 인원은 대충 2,200여 명.

       

       이 상태로 가다가는 파워 인플레이션이 감당되지 않는다.

       

       그러니 유시우와 위버멘쉬가 직접 충돌하기 전에 적당히 줄여버리고 싶었는데, 이상한 사람이 붙으면 골치 아파진다.

       

       

       “으음, 죽여버릴까···?”

       

       [안 돼요! 아카데미 교수님과 옛 친구인 예쁜 형사님이라니, 이런 사람을 놓칠 수는 없죠!]

       

       “끄응···.”

       

       

       문제라면 작가님의 마음에 든 사람이라는 것.

       

       그녀를 보고 무언가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죽이는 건 안 된다고 결사 반대 중이었다.

       

       그렇다면 설정이라도 집어넣어서 방해하는 걸 막고 싶다고 해도 반대.

       

       아무래도 사건을 수사한다는 게 작가님의 마음에 쏙 든 모양이다.

       

       

       “하아. 어쩔 수 없네요.”

       

       

       -짝짝.

       

       

       작가님의 취향이 듬뿍 담긴 모습으로 박수를 두 번 쳤다.

       

       목줄을 잡아당기는 건 멋이 없다나, 뭐라나.

       

       이 작은 소리를 듣고 다가와야 하는 라이라만 고생이었다. 뭐, 귀는 좋은 것 같으니 상관없나?

       

       잠깐의 시간이 지난 후, 보라색 머리를 휘날리며 라이라가 도착했다.

       

       

       “···뭔데?”

       

       “이번에도 부탁할 게 조금 있어서요.”

       

       “···?”

       

       “혹시 그림 잘 그리시나요? 아니, 못 그리셔도 상관없어요. 잘 그리게 될 거니까.”

       

       

       그녀를 향해 싱긋 웃어 보였다.

       

       한 명을 내던져도 의심을 풀지 않는다면, 다른 방법을 쓰면 되겠지.

       

       

       

       ***

       

       

       

       “으음, 제게 또 볼일이 있으신가요? 범인은 잡혔다고 들었는데.”

       

       “아니, 그냥 사과를 하고 싶어서 왔을 뿐이야.”

       

       “사과요?”

       

       

       사과는 무슨.

       

       그냥 핑계다, 핑계. 수사받는 사람에게 일일이 사과하면 지금보다 훨씬 오래 걸릴걸?

       

       그저 반응을 떠보기 위함일 뿐. 미안하다고는 요만큼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 범인도 잡혔으니까. 그때는 너무 과격했던 것 같아서, 사과하러 왔어. 미안해.”

       

       “아뇨, 괜찮아요. 그때는 범인이 잡히지 않은 상태였으니, 제가 의심받아도 어쩔 수 없죠.”

       

       

       의심하는 게 업무인 거니까요. 하고, 그녀가 싱긋 웃었다.

       

       

       “아르테···. 정말 배려심 깊은 아이야···! 정말 생긴 대로 착하군.”

       

       

       너는 눈이 삐었냐?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걸 억눌렀다.

       

       아무리 친구라지만 저 발언은 조금···.

       

       이 여자가 착하게 생긴 거면 세상 사람들은 다 순하게 생겼을 거다.

       

       하여튼 학생들한테 이상할 정도로 약한 년 아니랄까 봐.

       

       콩깍지가 제대로 씌었군.

       

       

       “그래. 오늘은 그걸 말해주러 왔어. 이해해줘서 고맙네.”

       

       “별말씀을. 저는 범인이 아니니까 괜찮아요.”

       

       

       그걸로 대화는 끝이었다.

       

       ···별다른 수확은 없나. 역시, 심증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허탕인가.

       

       작게 한숨을 내쉬고 있자니, 부하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아, 미안하군. 잠깐 전화 좀.”

       

       “아뇨. 편하신 대로.”

       

       

       뭐지? 분명 이곳에 온다는 이야기는 해뒀을 텐데.

       

       급한 볼일이 생긴 건가?

       

       휴대폰을 귀에 가져다 대자, 부하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 하율 님! 큰일 났습니다!]

       

       “뭔데? 빨리 말해. 무슨 일인데?”

       

       [아, 아라크네가! 아라크네가 나타났습니다! 10분 전, 골목길의 빌런이 토막 났다는 신고가 들어왔어요! 그때와 똑같습니다! 피로 그려진 거미의 그림입니다! 실도 놓여있어요!]

       

       “뭐?”

       

       [역시 하율 님이십니다! 범인이 잡힌 게 아니라는 걸 알고 계셨군요!]

       

       “···.”

       

       [지금 윗선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어, 어떻게 할까요?]

       

       

       순간,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붉은 눈동자를 드러낸 상태로 옅게 웃는 모습이, 마치 나를 비웃는 듯한 느낌이었다.

       

       분명히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듣지 못하고 있는 게 분명해.

       

       ···그런데도, 마치 계획대로 되었다는 듯한 웃음이 신경 쓰였다.

       

       

       “기다려. 금방 갈 테니까.”

       

       [네, 네!]

       

       

       10분 전이면 아르테 이시스는 이곳에서 나와 대화를 시작한 직후.

       

       ···설마.

       

       

       “큰일이 생기신 것 같네요. 어서 가보시는 게 어떠신가요?”

       

       “···그래, 빨리 가봐야겠네. 배려 고마워.”

       

       “별말씀을.”

       

       

       아니, 우선 돌아가야겠지.

       

       더 이상 신경전을 해봐야 소용없을 것 같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요즘 이모티콘을 만들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습니다.

    왜냐구요?

    독자님들이 ‘작가님’의 꿀밤을 너무너무 때리고싶어하는 것 같아서요.

    꿀밤맞는 ‘작가님’ 콘이 있다면 좀 낫지 않을까 싶어서?

    고민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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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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