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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0

       

       스르륵 –

       

       뜬눈으로 밤을 지새던 엘프가 결국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푹신한 잠자리가 그녀에게는 낯설게만 느껴졌다.

       

       대략 20년정도 흘렀을까.

       

       그 시간 동안 그녀에게 허락된 잠자리는 차디찬 바닥 뿐이었다.

       

       두리번.

       

       두리번.

       

       불안 하게 흔들리는 눈이 연신 주위를 살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계속해서 생기는 불안감은 어쩔 수가 없었다.

       

       “….”

       

       밖으로 나온 그녀가 어딘가를 향해 걸었다.

       

       “….”

       

       조용하게 문이 열리며 곤히 잠들어 있는 사람이 보였다.

       

       크리스라고 하였던가.

       

       그녀의 손이 감겨 있는 크리스의 눈을 쓰다듬었다. 

       

       스윽 –

       

       의식이 혼미한 와중에도 선명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

       

       이 사람이 자신을 대신해 울어 주었다는 것을.

       

       겪지 않아도 될 감정들을 피눈물을 쏟으며 받아 내었다는 것을 말이다.

       

       움찔.

       

       크리스의 몸이 움직이자 그녀가 다급하게 손을 떼어냈다.

       

       상처와 흉터가 가득한 손이 혹시나 그의 잠을 방해했을까 봐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

       

       저주속에서 무너져가는 동안 크리스를 느낄 수가 있었다.

       

       단단하며 거대한, 하지만 포근하고 따듯한 마음.

       

       그때 느껴던 존재감과는 다르게 크리스의 몸은 평범했다.

       

       마나라고는 일반 인간과 다를 게 없었으며 육체 또한 기사들 보다 한참이나 약했다.

       

       이런 몸으로 그 끔찍한 저주와 싸워 이겨 냈다는 것인가.

       

       “….”

       

       한참을 물끄러미 크리스를 바라보던 엘프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방금까지 느끼고 있던 불안감이 씻은 듯이 사라진 것이다.

       

       크리스에게서 느껴지는 편안한 분위기가 그녀의 마음을 달래주고 있었다.

       

       세계수와 닮은 분위기.

       

       향기마저도 세계수와 닮아 있었다.

       

       스윽 –

       

       크리스의 옆에 조용히 앉은 그녀가 나지막이 숨을 내쉬었다.

       

       이곳이라면 편하게 잠들 수 있지 않을까.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동족들의 모습이 사라질 것만 같았다.

       

       

       ***

       

       

       “실망이네.”

       

       “….다 사정이 있었어요.”

       

       두 영감의 눈이 게슴츠레하게 바뀌었다.

       

       “험험…무릇 남자에게는 다 사정이란 것이 있는 법이지.”

       

       “둘이서 같이 나올 때부터 짐작은 하고 있었네.”

       

       클로셀 영감이 대놓고 음흉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사정을 다른 사정으로 오해한 듯싶었다.

       

       “아뇨, 그 사정이 아니라…”

       

       나 역시 당황스러운 상황이다.

       

       나는 어제 엘프의 숲으로 돌아온 후 피곤에 찌든 몸으로 잠에 들었다.

       

       머리를 대자 마자 기절하듯 잠에 빠져든 것이다.

       

       그리고 개운한 몸으로 눈을 떠보니 웬걸?

       

       내 옆에 여자가 누워 있었다.

       

       어제 내가 구해 냈던 엘프였다.

       

       “제가 그런 게 아니고…”

       

       “손녀사위가 되기로 약속해 놓고 벌써 이러긴가?”

       

       “제가 언제 약속했다고…”

       

       그러니까 나도 피해자란 말이다.

       

       자는 중에 몰래 들어온 엘프를 내가 어떻게 알아채냔 말이다.

       

       나의 반박에 클로셀 영감이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내가 결계속에 있을 때는 귀신 같이 알아채더니…그걸 지금 나보고 믿으라고 하는 소린가?”

       

       “제가 의도한 게 아니라니까요!”

       

       애초에 내가 왜 변명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영감들의 손녀사위가 될 생각도 없을뿐더러, 다 또한 당황스러운 일이니까.

       

       “흠흠…”

       

       영감들이 뒤늦게 내 옆에 있는 엘프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클로셀영감이 점잖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대의 이름을 알 수 있겠소?”

       

       “….”

       

       영감의 질문에도 엘프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차가울 만큼의 무표정.

       

       그것이 무안했던지 클로셀 영감이 악수를 청하려다 말고 손을 집어넣었다.

       

       “말을 잘 안 해요. 영감님이 이해를 좀…”

       

       “충분히 그럴 만 하네.”

       

       어제 대충 이야기해줬었다.

       

       모진 일을 당한 만큼 상태가 정상이 아닐 것이라고.

       

       영감들도 이해를 하는 눈치였다.

       

       클로셀 영감이 다시 음흉한 눈으로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자네는 알고 있겠지?”

       

       “…예?”

       

       “이름 말일세. 하룻밤을 같이 보내놓고 이름도 모른다 하지는 않겠지?”

        

       “그렇게 말하면 굉장히 이상하잖아요.”

       

       이름이야 당연히 들었다.

       

       “세레나라고 하던데요.”

       

       “호오…”

       

       여전히 세레나의 얼굴은 차가웠다.

       

       방에 있을 때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나를 빼고는 전부가 세레나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심지어는 우리를 따라온 영혼들마저도.

       

       “…세레나? 웃어 보는 게 어때?”

       

       세레나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하지만 나에게서 시선이 벗어나기 무섭게 미소가 사라져 버렸다.

       

       “음…”

       

       아무래도 아직은 힘들어 보였다.

       

       불과 어제까지 고통에 시달리던 엘프이니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때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엇! 크리스님!”

       

       이놈을 만나기를 벼르고 있었다.

       

       신을 모시는 사제라는 놈이 정작 중요할 때는 코빼기도 안 보이더니 이제 와서 나타나는 꼴을 봐라.

       

       동종업계 종사자로서 참을 수가 없는 행태였다.

       

       “이제서야 기어와?”

       

       “그런 게 아닙니다! 저도 나름 교단에서 맡은 임무가 있는지라…”

       

       한스의 변명은 이러했다.

       

       네크로맨서의 등장을 교단에 보고하는 것이 상당히 오래 걸렸다고 한다.

       

       사안이 사안이다 보니 회의가 길어졌다나.

       

       부랴부랴 일을 끝 마치고 전투가 벌어지는 곳으로 가니 이미 나는 없었다는 것.

       

       변명은 그럴싸했지만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어휴…”

       

       “크리스님! 소문은 들었습니다. 반려가 생기셨다고…이분이 혹시?”

       

       “…반려?”

       

       도대체 소문이 어떤 식으로 퍼진 건지 감도 안 잡힌다.

       

       머리가 지끈거려왔다.

       

       방에서 나온 지 몇 분이나 지났다고 벌써 소문이 퍼졌단 말인가.

       

       세레나를 살펴보니 신경도 안쓰는 눈치였다.

       

       오히려 한스의 등장을 경계하고 있었다.

       

       낯선인간이 나타난 것이니 세레나의 처지에서는 충분히 그럴 만했다.

       

       “야, 너 저리 가.”

       

       “예?”

       

       “환자가 불편해 하잖아.”

       

       “아…다치셨다면 제가 치료를…!”

       

       억울해 하는 한스를 쫓아낸 나는 인적이 드문 곳으로 몸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그것조차 불가능할 것 같다.

       

       내가 가는 곳마다 엘프들이 따라 붙었기 때문이다.

       

       “크리스님께서 깨어나셨다!”

       

       “엘프의 구원자!”

       

       처음 왔을 때보다 훨씬 뜨거운 분위기였다.

       

       그때는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면, 지금은 찬양을 받는 수준.

       

       굉장히 부담스럽다.

       

       그도 그럴 것이···.

       

       “저게 크리스님의 방울인가 봐!”

       

       “한번 흔들어 주시지 않을까…?”

       

       엘프들이 내 일거수 일투족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머쓱함에 뒷머리를 만지려고 했더니 또 반응이 터져 나왔다.

       

       “다치셨다고 들었는데 그게 혹시…머리?”

       

       이 말이 나오자 엘프들 사이에 비장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크리스님의 상처를 두고 볼 수는 없다. 포션을 가지고 있는 엘프가 있는가?”

       

       이대로 가만히 내버려 두면 숲에 있는 포션들이 다 여기로 모일 기세였다.

       

       더 번잡스러워지는 걸 원하지 않았던 나는 엘프를 제지하려고 입을 열었다.

       

       “다친 곳은 없으니까 그러지 않으셔도…”

       

       “….”

       

       “…”

       

       이 침묵은 무엇일까.

       

       “네크로맨서와 싸우면서 상처가 하나도 없으시다니…”

       

       “역시 크리스님께선….”

       

       상처가 없기는 엘프들도 매한 가지였다.

       

       저주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부상자들이 생긴 모양이지만 몬스터의 규모를 생각해 보면 없다고 봐도 무방할 수준이다.

       

       “그건 여러분들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겸손하시기까지…”

       

       이런 반응은 조금 과하지 않나 싶었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다.

       

       “하아…”

       

       그때 나를 구해 줄 구원자가 등장했다.

       

       “크리스님.”

       

       단정한 걸음걸이로 다가오는 로메넬.

       

       확실히 쓰러져 있을 때보다 활기차보였다.

       

       영혼의 상태도 아주 안정적이었다.

       

       로메넬도 나름 나와 동종업계라서 그런 건지 걸핏하면 쓰러지는것마저 나와 비슷했다.

       

       무속인들이 원래 이렇게 약하지는 않다.

       

       굿을 하다가 쓰러지는 경우 부터가 드물다.

       

       다만 여기서 벌어지는 일들의 스케일이 남달라서 그런 것이다. 

       

       “세계수께서 의지를 전달하셨습니다.”

       

       공수가 내려왔다는 말인가?

       

       안 그래도 세계수와 해결할 문제가 남아 있었다.

       

       “잘됐네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로메넬이 세계수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엘프들이 내 뒤로 따라 붙으며 행렬이 이어졌다.

       

       축제라도 벌어진 분위기였다.

       

       “세계수께서 뭐라고 하시던가요?”

       

       “저에게 들려온 의지는 간단했답니다. 크리스님을 그곳으로 모시라고 하셨어요.”

       

       역시나 간단하기 그지없는 공수.

       

       한스에게 신탁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느꼈지만 내가 받는 공수와는 너무 달랐다.

       

       정말로 무속인으로써의 성능이 구리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일단 가보시죠.”

       

       발걸음을 옮길수록 뒤에 있는 엘프의 숫자가 불어났다.

       

       세계수의 주변을 가득 메울 만큼.

       

       “흐음…확실히…”

       

       텅 비어 있던 나무에서 신령스러운 기운이 흘러넘쳤다.

       

       이제야 제대로 된 당산나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금줄이랑 부적은 다시 걸어야겠네.”

       

       저주의 여파 때문에 금줄의 상당 부분이 검게 썩어 있었다.

       

       부적 또한 말라비틀어져 재기능을 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어…음…그래서 그냥 여기로 오기만 하면 되는 거였나요…?”

       

       “세계수께선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으음…”

       

       딱히 뭔가가 일어날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방울이라도 흔들어봐야 하려나?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가던 그때.

       

       귓가로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우지직 –

       

       무언가 갈라지는 듯한 소리.

       

       나무가 갈라질 때 이런 소리가 난다.

       

       그 소리가 한 번 더 주위로 퍼져나갔다.

       

       우지직 –

       

       “…어?” 

       

       쿵 –

       

       딱 내 다리만한 가지였다.

       

       싱싱한 나뭇잎이 달린.

       

       “….”

       

       “….”

       

       “….”

       

       싸한 정적이 흘렀다.

       

       그럴 수 밖에···.

       

       세계수의 가지가 부러진 상황이니까.

       

       “….”

       

       가지를 보자마자 감이 확 왔다.

       

       이건 복채였다.

       

       굿값이라고 봐도 될 것 같다.

       

       아주 좋은 일이다.

       

       이게 엘프들의 앞에서 일어나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침묵에 휩쌓인 엘프들.

       

       나는 어색하게 입을 열었다.

       

       “…제가 그런 거 아니예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독자님들의 사랑 덕분에 PD픽을 받았네요!

    더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알고 좋은 글로 보답드리겠습니다!

    만* 독자님 2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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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판타지 세계의 무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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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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