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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0

       

       

       

       

       

       40화. 낡은 단검 ( 6 )

       

       

       

       

       

       자욱하게 일어났던 흙먼지가 가라앉았다.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케니스.

       

       

       “파, 팔라딘님?”

       

       “케… 니스?”

       

       

       데모닉의 검이 한차례 크게 떨렸다. 검을 감싼 신성력이 파도처럼 일렁이며 그의 심경을 대변했다.

       

       흙먼지를 뚫고 나타난 케니스는 혼란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흐릿했던 금빛 눈동자에 점차 총명한 기색이 깃들었다.

       

       

       “아,윽… 이건, 지금…? 도대체 무슨…”

       

       

       머리를 부여잡고 비틀거리는 케니스. 그녀의 황금빛 동공이 거칠게 떨리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서…뭐,라고? 아,아…? 아윽?! 아아악!!”

       

       ㅡ콰앙! ㅡ쩌저적!

       

       

       바닥에 무릎을 꿇고 몸을 떨어대는 케니스의 주변으로 그림자와 얼음이 미친 듯이 발광했다. 

       

       무수한 얼음기둥이 솟아오르고 그림자가 꿈틀거리며 땅을 내리쳤다.

       

       

       “무,무슨 일이야. 저게?”

       

       “아마… 움브라의 안에 있던 케니스가 깨어난 거겠지. 어떻게 깨어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 케니스라고?”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는 프리가에게 데모닉이 짧게 대꾸했다. 그의 눈은 뒤에서 열심히 지팡이를 흔들고 있는 루엘을 향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지팡이를 흔드는데 집중해서 이쪽을 바라볼 여유가 없어 보인다.

       

       

       ‘저 아이의 지팡이에 깃든 힘이 케니스를 깨운 건가?’

       

       

       움브라에게 먹혔던 케니스의 의식이 돌아온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지만… 

       

       

       ㅡ투콰쾅! ㅡ쯔저적!

       

       

       얼음과 그림자가 날뛰면서 주변 모든 것을 파괴한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그 진동과 충격의 여파가 전해질 정도.

       

       데모닉은 가라앉은 눈으로 그 현장을 바라봤다.

       

       

       “그쪽의 아가씨. 만약의 사태를 준비해라.”

       

       “아가씨라니, 프리가라고 불러. 그보다 뭘 준비하라고?”

       

       “북부에서 온다던 공녀님이셨나.”

       

       

       데모닉이 거대한 도끼를 들어 올린 프리가를 바라봤다.

       

       

       “공녀님에게는 저게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아마 지금 케니스는 움브라와 내면에서 싸우는 중인 것 같다.”

       

       “내면에서?”

       

       “몸의 주도권을 두고 싸우는 거지.”

       

       “그럼 이렇게 보고만 있으면 안 되잖아!”

       

       

       격분한 프리가가 도끼를 들고 뛰쳐나가려는 걸, 데모닉이 붙잡았다.

       

       

       “멈춰라! 지금 섣불리 나섰다가는 케니스가 위험할 수도 있다.”

       

       “뭐?”

       

       “두 개의 영혼이 하나의 몸을 두고 싸우는 거다. 외부의 자극이 어떻게 작용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어.”

       

       “젠장, 그럼 이렇게 보고만 있으라는 거야?”

       

       “… 케니스를 믿는 수밖에.”

       

       

       그림자와 얼음이 발광하는 파괴의 한가운데에서, 케니스는 머리를 부여잡고 연신 소리를 질렀다. 고통스러운 비명 같기도 했고, 광인이 지르는 고함처럼도 들렸다.

       

       이따금 악마가 지르는 비명처럼 짐승의 울음소리도 들리는 듯했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케니스를 바라봤다.

       

       

       ‘케니스… 부디, 부디 힘을 내라.’

       

       

       데모닉은 저도 모르게 로켓 브로치를 움켜잡았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손아귀에 딱 맞게 감겨 온다.

       

       자신이 선택할 순간이 오지 않기를 기도했다. 품속의 작은 단도, 그 감촉이 선명했지만 애써 무시했다.

       

       

       ㅡ콰광!

       

       

       미친 듯이 발광하며 주변을 파괴하던 얼음과 그림자가 잠잠해졌다. 데모닉은 긴장된 눈으로 파괴의 현장을 바라봤다.

       

       

       ㅡ사박ㅡ사박

       

       

       가볍게 땅을 밟는 소리가 적막을 끊고 들려왔다. 프리가는 도끼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아,으으… 공,녀님…”

       

       

       모습을 드러낸 케니스의 외형은 인간과 악마의 모습을 반씩 닮아 있었다. 몸을 좌우로 나누어 왼쪽은 인간의 모습이요, 오른쪽은 악마의 투구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인간인 케니스는 금빛 동공을 빛내고, 악마의 투구에서는 섬뜩한 검은색 안광이 흘러나왔다.

       

       

       《네 몸을 내놔라! 저 녀석을 죽이고, 여기 있는 모든 녀석들의 영혼을 찢어버릴 것이다!》

       

       “크하윽!”

       

       

       케니스의 입에서 거친 악마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한 몸에 두 개의 영혼이 공존하는 기묘한 광경. 

       느리지만 천천히, 악마의 투구가 케니스의 얼굴을 덮어나갔다.

       

       

       《죽어, 죽으란 말이다!》

       

       

       ㅡ콰앙!

       

       

       움브라의 오른손을 따라 거대한 얼음기둥이 솟아올랐다. 케니스는 왼손을 사용해 필사적으로 몸을 통제하려 애썼다.

       

       

       “끄,흐으읍…! 다들, 빨리…”

       

       

       케니스는 계속해서 데모닉을 향해 뻗는 오른손을 필사적으로 막았다. 그녀의 여린 왼손은 오른손을 감싼 갑주에 긁히며 피투성이가 되어갔다.

       

       

       “팔,라딘님…!! 모두 어서, 빨리 도망가세요!”

       

       《그렇게 두지 않는다! 여기서 네놈들을 모조리 죽이고, 그 영혼마저 조각낼 것이다!!》

       

       “어서! 어서, 가세요…!”

       

       

       서서히 케니스의 얼굴을 덮어가는 얼음 투구. 시간이 얼마 없다.

       이대로 자신들이 가면, 케니스는 온전히 악마에게 몸을 빼앗길 것이다. 데모닉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자신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선택… 해야 하는가’

       

       

       손에 들린 검의 무게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목에 메인 브로치가 그의 목을 조여 오는 듯 무거웠다.

       

       품에 넣어 둔 단도가 묵직하게 존재감을 드러냈다.

       

       

       데모닉의 머릿속에서, 누군가가 속삭였다. 어쩌면 미련이라는 이름이, 혹은 후회가.

       

       

       – 제 손으로 한 번 더, 다시 한번 가족을 찌를 수 있는가.

       

       

       “…”

       

       

       데모닉은 검을 꽉 쥐었다.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꽉 쥔 손이 하얗게 물들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현실감 없게 멀어져간다. 옆에 있는 프리가가 외치는 소리도 물 속에 있는 듯, 먹먹하게 들려온다.

       

       뭐라고 하는 거지? 퇴각하자는 건가? 아니면, 움브라를 공격하자고 하는 건가?

       

       프리가가 계속해서 뭐라고 외치지만, 들리지 않았다.

       

       천천히 검을 들어 올렸다.

       

       

       ㅡ차앙

       

       

       검에서 청명한 소리를 울린다. 저 멀리서 움브라의 오른팔이 천천히 움직이며 자신을 향한다.

       

       케니스를 중심으로 세계가, 무채색으로 덮여나간다.

       

       

       ㅡ투콰아아ㅡ앙!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얼음송곳이, 느릿느릿하게 날아온다. 옆에서 무언가를 외치는 프리가는 아직 공격을 눈치채지 못했다.

       

       

       ‘선택,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무수한 선택의 갈림길이 펼쳐진 듯, 수많은 길이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이 자리에서 도망치고 훗날을 도모할 수도 있다.

       

       

       ‘허나 그러지 않겠다.’

       

       

       신성력을 두른 검으로 움브라의 심장을 찌를 수도 있다.

       

       

       ‘허나 그러지 않겠다.’

       

       

       … 품속의 단도로, 한 줌의 기적에 가능성을 걸고. 자기 살을 내주며 움브라를 찌를 수도 있다.

       

       

       ‘… 신의 뜻에 따르겠다.’

       

       

       데모닉은 느꼈다. 신께서 자신에게 단검을 주신 그 순간부터. 모든것은 신의 뜻에 있음이니.

       천천히 검을 떨어트렸다. 

       

       

       ㅡ카앙

       

       

       검이 떨어지며 맑은소리를 울렸다. 서서히 무채색으로 덮여가는 세상이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왔다. 데모닉은 자신에게 주어진 이 시간이 길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신의 뜻대로 될 것이다.”

       

       

       품속의 작은 은단도를 손에 쥐었다. 화려한 외형의 은단도, 그에 깃든 신성한 기운이 데모닉의 몸에 충만하게 느껴졌다. 천천히 날아오던 얼음송곳이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왔다.

       

       

       ㅡ샤악

       

       

       살짝 고개를 숙임으로 얼음송곳을 피했다. 볼에 가볍게 스치며 주륵ㅡ하고 피가 한줄기 흘렀다.

       

       

       ‘계속 가야 한다.’

       

       

       느려진 세계 속에서, 데모닉만이 바람처럼  튀어 나갔다. 자신이 빨라진 걸까? 아니면, 다른 것들이 느려진 걸까.

       

       

       ㅡ투쾅! ㅡ쾅! ㅡ쿠쾅!

       

       《미ㅡ! 네놈ㅡ 딸ㅡ!》

       

       

       움브라의 외침이 길게 늘어지면서 뚝뚝 끊어졌다. 미친 듯이 휘두르는 팔을 따라, 데모닉과 움브라의 사이에서 날카로운 얼음기둥이 솟아오른다.

       

       

       ‘왼쪽.’

       

       

       튀어 오르면서 피한다.

       

       

       ‘다시 왼쪽.’

       

       

       피할 여유가 없다. 땅을 구르면서 피한다.

       

       

       ‘오른쪽.’

       

       

       피할 공간이 여의치 않다. 한쪽 다리를 내줬다. 허벅지에 주먹만한 구멍이 났다.

       

       

       ‘다시 왼쪽…’

       

       

       더 이상 피할 수 없다. 얼음이 오른쪽 어깨를 꿰뚫었다.

       어느새 세계가 본래의 색을 되찾았다.

       

       

       ‘… 앞으로.’

       

       

       앞으로 다섯 걸음. 자신과 움브라의 사이에 다섯 걸음이 남았다.

       

       

       《미친 새끼!! 저리 가란 말이다! 저리 가! 이 몸은 네 딸이란 말이다!!》

       

       

       움브라가 미친 듯이 발광한다. 다섯 걸음 앞으로.

       

       

       ‘네 걸음.’

       

       

       날아든 얼음송곳이 앞을 빼곡하게 매운다. 모든 공간에 얼음송곳이 가득하다. 단도를 움직여 왼손만을 지켰다.

       전신에 구멍이 뚫려 뜨거운 피가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진다.

       

       

       ‘세 걸음…’

       

       《도, 도대체 왜 이러는 거냐! 네 딸이라고!》

       

       

       땅에서 그림자가 솟아오르며 발목을 잡아 내려한다. 한 번 더 단도를 움직여 그림자를 잘라 냈다. 그림자에 스친 발목이 썩어들어가며 시커멓게 죽어 간다.

       

       

       ‘두.. 걸음…’

       

       

       바닥에서 얼음과 그림자가 솟구치며 전신을 꿰뚫는다. 느릿해진 몸을 움직여, 왼손을. 왼손만을 지켜냈다.

       

       

       ‘…한, 걸음…’

       

       

       코앞까지 움브라의 얼굴이 다가왔다. 흘러내린 피로 모든 것이 흐릿하게 보여도, 움브라의 얼굴만은 또렷하게 보인다.

       

       악마는 이 순간 무슨 표정을 하고 있을까? 절망에 찬 표정? 화를 낼까? 아니면, 울어버릴까?

       

       데모닉은 천근처럼 무거운 단도를 들어 올렸다. 작은 단도를 들어 올리는데, 이렇게나 힘이 차던가?

       

       

       “…전부, 신의 뜻 대로. 될, 것이다…”

       

       

       케니스가 마지막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움브라를 막고 있음일까. 움브라는 제자리에서 움직이지도 못한 채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은단도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미친 새끼가아!! 이러면, 이러면 네 딸도 같이 죽는다!! 정녕 네 딸까지 죽일셈이냐!!》

       

       

       데모닉에게서 피 섞인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악마는, 아무것도 모른다. 신도, 신앙도. 기적을 바라는 마음도 모른다.

       

       

       “내, 딸은… 죽지 않을 것이다. 악마야.”

       

       

       데모닉의 단검이 천천히 움브라의 심장을 향했고,

       

       

       《끄,흐아아아아악!!!》

       

       

       날카로운 단도가 썩고 부패한 심장을 꿰뚫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타나 어색한 부분에 대한 지적은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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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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