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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00

        

         

       옛적.

       진성에게는 과거이며, 미래였던 그 옛날.

       세계 3차 대전이 일어났을 적 세상은 어지러웠다.

         

       도덕과 윤리는 땅에 떨어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되었고, 사람들은 제 이득을 위해서만 움직이게 되었다. 피를 보기를 주저하는 자는 거의 없었고, 피를 보기를 두려워하는 자는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리하여 선인이라 할지라도 언제든 마음의 칼날을 세우고 사람을 죽일 수 있었으니 그야말로 현세가 곧 지옥이 되었다 표현해도 부족하지 않을 것이라.

         

       사람이 피를 보기를 주저하지 않았으니 집단은 더더욱 그러하였고, 그 집단이 모여서 만들어진 대집단은 선을 확연히 넘었고, 대집단이 모여 이루어진 국가는 생존을 위하여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거대한 괴물이 되었다.

         

       괴물.

       살인에 주저함이 없는 이들로 모여있는 군집.

         

       국가는 그 자체로 거대한 괴물이었고, 맹수였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금기조차 범하고,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을 거리낌 없이 행하며, 선을 한참 전에 넘어버린 집단. 국가를 발전시키고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것 대신 오직 생존만을 위하여 행동하는 괴물.

         

       물어뜯을 나라가 있다면 물어뜯어서 소화해 자신의 생명을 늘린다.

       감당하지 못할 존재가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세를 약화한다.

       먹어 치울 수 없을 것 같다면 위협을 없애기 위해 공격을 감행한다.

         

       세계 3차 대전의 국가란 파괴적이고, 폭력적이며, 사악하며, 이기적이었다.

         

       남미에서는 나라의 껍데기나마 유지하기 위하여 수도 없이 인신공양을 행했다.

         

       캐나다는 분열된 미국 때문에 피해를 보고 싶지 않다는 이기적인 마음 때문에 국경지대에 지뢰를 깔고 독가스를 살포해 사람이 살 수 없는 죽음의 땅을 만들었다.

       그 죽음의 땅의 이름은 데스 벨트(Death belt)라 하여, 살아있는 존재가 숨을 몇 번 들이쉬면 온몸에 물집이 생기며 쓰러지는 맹독지대가 되었다.

         

       아프리카는 혼란을 틈타 아프리카 통일을 이루겠다고 독재자들이 나서서 전쟁을 일으켰고, 그 여파로 국가가 무너지고 부족과 집단만이 살아남았다.

         

       중동은 광신도들이 국가를 점령한 뒤 한 세력만이 남을 때까지 데스매치를 벌였다. 그 전쟁은 아주 끔찍하고 잔혹했으며, 사람이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

       그 잔혹한 전쟁 중 데스매치에 휩쓸려 피해를 본 이들이 속출하였고, 광신도들은 전화에 휩쓸린 무력한 이들의 피와 눈물을 밟고 사막 전체를 붉게 물들였다.

       그리고 그렇게 한쪽이 절멸할 때까지 그치지 않을 것 같은 거대한 광기는 결국 사막에서 수행하던 모래술사와 식물술사를 건드렸고, 그들은 크게 분노하며 중동 곳곳에 재앙을 일으키고 다녔다.

         

       광기.

         

       그렇다.

         

       세계 3차 대전은, 전 세계를 광기로 몰아넣었다.

       사람을 미치게 만들고, 나라를 미치게 했다.

       그리고 그 광기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나라가 망하고 사람이 죽어 나갔으며, 광기에 너무 휩쓸린다면 그대로 광기와 함께 파멸해버리고 말았다. 마치 기름이 강한 불꽃을 뿜어냈다가 사라지듯이, 그렇게 사라져버린다.

         

       그 때문에 세계 3차 대전에서 국가가 살아남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전쟁 전 이름을 떨친 국가라고 할지라도 운이 없다면 멸망했고, 전쟁 전 어디 붙어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생소한 나라여도 운이 좋다면 살아남았다. 광기 넘치는 세상에 적응한다면 전화가 휩쓰는 와중에도 나름 평화로운 생활을 영위할 수도 있었고.

         

       ‘모든 것은 하늘의 뜻이라. 뿌리가 죽지 아니한다면 보잘것없어도 살아남아 열매를 맺을 것이요, 뿌리가 없다면 아름드리 고목이라도 그대로 썩어 죽는 것이 이치라.’

         

       그런 의미에서 동아시아는 운이 좋은 편에 속했다.

         

       놀랍게도 중국, 몽골, 대한민국, 일본 모두가 살아남았으니까.

       전쟁 전과는 그 형태가 많이 뒤틀리거나 쇠락하기는 했지만, 이 네 국가는 나라의 형태를 유지하는 것에 성공했다.

         

       정말로 놀랍게도 말이다.

         

       중국은 시대를 한참이나 앞서간 수준의 생명공학을 이용해 영토를 넓혔고, 고대에나 볼법한 잔혹하고 패도적인 면모를 보이며 세계 3차 대전이 터지는 와중에도 나라의 형태를 유지했었다.

         

       일본은 세계 3차 대전의 시작을 알리듯 대한민국과 전쟁했고, 대한민국의 능력자가 에너지 열돔을 역이용한 덕분에 큰 피해를 보게 되었다. 하지만 섬나라라는 폐쇄적인 환경과, 대한민국으로 인해 오염되고 위험해진 바다 덕분에 천연 방벽이 생겨 외적의 침입에서 안전해질 수가 있었다.

         

       몽골은 국가 자체가 약탈을 장려하고 약탈을 생업으로 삼아 살아가는 거대한 맹수가 되었다. 넓은 몽골 영토 곳곳에 유목민이 퍼져 훈련하고 중국의 국경을 침범해 온갖 물건과 사람을 약탈해갔고, 울란바토르를 기준으로 거미줄처럼 뻗어나간 ‘거점’에서 정비하고 약탈한 물건을 사용함으로써 경제활동을 행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귀신들과 함께 더불어 사는 나라가 되었다.

         

       ‘동물로 따지면 산미치광이요, 끔찍한 맹독을 품은 독물(毒物)이라.’

         

       대한민국은 옛날부터 독침 전략을 사용하는 국가였다.

       누군가 침략해온다면 이길 수는 없어도 팔다리 하나쯤은 자르고 갈 수 있다고 소리치고 다녔으며, 주변 국가가 위협을 한다면 아득바득 독을 품은 채 동귀어진하겠다며 소리를 치고 다녔다.

         

       이러한 대한민국의 독침 전략은 세계 3차 대전 이후 극단적으로 변했다.

         

       대한민국의 뒤를 든든하게 지켜주던 미국은 개판이 되었고, 여차할 때 힘을 합쳐서 중국에 대항해야 할 일본은 대한민국의 손으로 쑥대밭이 되었다. 몽골은 군사력이 강하지 못해서 큰 힘이 되지 못하고 있었고, 다른 나라에 도움을 청하려고 해도 그 나라도 개판이 되어가고 있는 상황.

       게다가 개판이 되어 있지 않다고 해도, 동아시아 저 끝자락에 있는 나라에 군사를 파병해서 도와줄 나라는 얼마 있지도 않았으리라.

         

       그런 상황에서, 중국이 손을 뻗었다.

         

       물론 처음부터 군사를 일으키지는 않았다.

       은근히 무력을 과시하면서, ‘한국과 중국은 역사적으로 매우 가까운 나라다. 지금 세상이 어지러우니 중국의 그늘에 들어와 몸을 지키는 것은 어떠한가.’라면서 제 손으로 나라를 들어 바치라고 협박했을 뿐이다.

         

       당연하게도 대한민국은 발작했다.

       절대로 안 된다고 소리쳤고, 침략하려고 한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저항하겠노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이 그렇게 강경하게 나왔음에도 중국은 물러서지 않았다.

         

       일본과의 전쟁 때문에 대한민국이 약해져 있어 ‘독침’을 맞아도 크게 아프지 않으리라 생각했으며, 설령 조금 아프다고 할지라도 지금이 아니라면 한반도를 쉽게 먹을 수 없으리라 생각을 했다.

         

       대한민국은 그러한 중국의 모습에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거듭했다.

         

       그리고 마침내, 선을 넘었다.

         

       강령주술(降靈呪術).

         

       연이 닿았던 강령술사에게 얻은 대주술 의식을 행한 것이다.

         

       한국은 그동안 북한지역을 방어하고 정화하면서 얻은 노하우를 사용해 북한에 제단을 만들었고, 북한에 돌아다니는 악령과 악귀, 얼마 전 벌였던 전쟁에서 죽은 한국과 일본의 군인들을 재료로 삼아 대주술 의식을 행했다.

         

       그 대주술 의식의 효과는 귀신의 숫자를 불리고 강화하는 것.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나라를 망하게 만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극히 위험한 주술이었다.

         

       극약처방(劇藥處方)이라는 표현조차도 한없이 가볍게 느껴질 정도로 위험한 대주술 의식.

         

       하지만 대한민국은 그 위험한 주술을 기꺼이 행했다.

       나라를 위해 몸을 바쳤던 군인들을 재료로 사용했고, 위령제를 해서 달래고 일본으로 돌려보내야 할 일본 군인의 시신을 제물로 바쳤으며, 돈을 갈아 넣고 사람을 갈아 넣으며 이 위험한 주술을 완성했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것은 귀신의 땅이라.

         

       북쪽 지역은 귀신 천지가 되어버렸다.

       가뜩이나 많았던 귀신은 폭발적으로 늘어났으며, 온갖 곳에 부정과 저주가 감돌았다. 악령과 악귀는 심심찮게 볼 수 있었으며, 대악령과 대악귀마저 나타나게 되었다. 게다가 대주술 의식 때문에 한반도를 감싼 바다 역시 귀신이 가득 생기게 되어 배를 띄울 수조차 없는 위험지역으로 변해버렸다.

         

       그렇게 대한민국은 고립되었다.

       지형적 특성으로 고립된 것이 아닌, 사람에게 적대적인 악령과 악귀를 나라 주변에 두름으로써 말이다.

         

       그렇게 귀신의 바다에 둘러싸인 섬으로 변해버린 한국은 고립된 대신 안전을 얻었고, 넘쳐나는 귀신을 유인해서 곳곳에 뿌리며 테러를 벌이는 독물(毒物)이 되었다. 대한민국은 귀신이라는 독을 다른 나라에 뿌리는 것을 꺼리지 않았으며, 때에 따라서는 수많은 국민을 제물로 삼아 대악령과 대악귀를 대륙으로 유도하기도 했다.

         

       귀신을 독침처럼, 가시처럼 사용하는 괴물.

       그것이 바로 세계 3차 대전의 통일 대한민국이었다.

         

       그렇게 대한민국은 세계 3차 대전에서도 나라를 유지할 수 있었다.

         

       ‘바다에 떠다니는 귀신들이 참으로 인상적이었지.’

         

       물론 지금 독물(毒物)과 같았던 대한민국은 없다.

         

       하지만 그 대한민국을 기억하는 이가 지금 이곳에 있으며.

         

       그 사람은 그때 보았던 귀신을 재현할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귀신을 뭉쳐 만든 배를 탄 주술사는 어둠에 몸을 숨긴 채 미소를 지었다.

       저 멀리 바다에 성처럼 떠 있는 커다란 배를 보며 웃었고, 좀이 쑤신 듯 움찔거리는 귀신들을 보며 웃었다.

         

       진성은 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자아, 귀신들아. 저기 감히 바다에 나온 뱃놈들이 있다. 가거라, 따개비를 붙여 사다리를 만들고, 민달팽이처럼 기어 배로 올라가 목숨을 수확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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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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