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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00

   멍하니 메시지를 바라보던 나는 주변에서 날 바라보는 시선이 있음을 떠올리고 다급히 눈을 감았다.

   

   가만 허공을 바라보고 있으면 무언가 이상하게 생각할 게 분명하니까.

   

   방금 전에 내가 본 거 분명 까마귀 여신이 보낸 메시지지?

   

   …예술 교단 변태들의 우두머리가 어떻게 나한테 메시지를 보낸 거야?

   

   네가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건 알아.

   

   허술한데다가 위엄 없는 변태인 너라도 일단 신은 신이니까. 게임에서 그랬던 것처럼 지상의 사람들에게 말을 전할 수 있겠지.

   

   근데 직접 메시지를 띄우는 건 자기 사도에 한정된 이야기잖아. 다른 신의 사도인 나에게 네가 메시지를 보내는 건 불가능 하지 않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나는 내 기억이 잘못된 걸까 싶어 빙의하기 전의 기억을 돌이켜 보았다.

   

   소울 아카데미라는 게임의 근간은 결국 선신과 악신의 대결 구도다.

   

   악신은 자신의 추종자들을 부려 어떻게든 자신들의 부활을 이루려하고 선신들 또한 그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아카데미 2학년이 되어 아카데미 바깥으로 나가기 시작하면 여러 퀘스트를 통해 이를 체감하는 게 가능하다.

   

   악신의 세력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중인 선신의 사도들을 돕는다거나, 주신 교회의 몇 안 되는 참 성직자들이 목숨을 바쳐 가며 이루어낸 족적을 따라간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야.

   

   이러다 보면 자연스레 선신과 악신의 눈에 띄게 되는데 이 상황에서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하면 선신의 사도가 될 수 있지.

   

   그렇게 사도가 되면 지금 내가 주신에게 여러 메시지를 받는 것처럼 신에게 직접 여러 퀘스트를 받을 수 있게 된다.

   

   물론 게임 속에서 주어지던 퀘스트는 주신이 내려주는 것처럼 즉흥적이고 장난스럽지는 않지만.

   

   하여튼 내 기억이 맞다면 까마귀 여신은 내게 메시지를 보낼 수 없는 게 정상이다.

   

   아니 이런 설정이 아니더라도 말야. 지금 바로 옆에 변태 사도가 있으니까 그 녀석을 통해서 이야기를 전해도 괜찮잖아.

   

   근데 날 바라보는 허접 주신을 무시한 채 직접 연락을 시도하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이야?

   

   허접 주신. 너 내가 만날 허접허접 하니까 진짜 허접이 된 거냐? 자기 아래에 있는 녀석한테 무시당할 정도로 개허접인거구나?

   

   – 띠링.

   – 띠링.

   – 띠링.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내 귓가에 연이어 알림음이 들려왔다.

   

   허접 주신인지 까마귀 여신인지는 모르겠지만 누가 됐든 간에 적당히 좀 하자.

   

   지금 주변의 엄숙한 분위기 안 보이냐고! 일 다 끝나고 나서 메시지 보내도 괜찮잖아. 이 변태 새끼들아!

   

   – 띠링.

   – 띠링.

   – 띠링.

   

   결국 참다못해 실눈을 뜬 나는 내 앞에 늘어서 있는 여러 메시지를 보고 눈을 끔뻑였다.

   

   [아. 왜요! 제가 뭐 나쁜 일 하려는 것도 아니잖아요!]

   [축복 줄 거라니까요?!]

   [좋은 걸로 줄게요!]

   [치사하게 왜 그래요!]

   [이런 예술품을 독점하는 건 나쁜 일이라고 생각해요!]

   [주신은 횡포를 멈춰라! 멈춰라!]

   

   …이건 뭔.

   

   <무슨 일이 있느냐?>

   

   너무 어이가 없어서 주변조차 잊고 멍하니 서 있었더니 할아버지가 걱정스런 목소리를 냈다.

   

   ‘어. 그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고민하던 나는 이내 답이 없음을 깨닫고 고개를 내저었다.

   

   ‘…별 일 아니에요.’

   

   까마귀 여신이 나한테 말을 걸었다는 것까지는 그렇다 치자. 근데 그 여신이란 작자가 주신에게 되도 않은 방식으로 시위하고 있단 걸 어떻게 납득시키냐고!

   

   <으음. 그렇다면 일단 알겠다.>

   

   다행스럽게도 할아버지는 그 이상 나를 추궁하지 않았다.

   

   – 띠링.

   

   [그으건 쫌 너무하지 않아요? 아무리 루시 알른이라지만.]

   [다른 거 안 돼요? 제 축복 중에 괜찮은 거 많잖아요.]

   [으으으. 알겠어요. 알겠다고요. 루시 알른을 위해서라면 저희 프레테도 이해해줄 테니까.]

   

   내가 설명하지 않아도 된단 사실에 안도하고 있는 동안 까마귀 여신은 주신과 무언가 협상을 한 듯 했다.

   

   아니. 야. 허접 주신아. 거래의 중심인 내 의사는 물어보지도 않고 까마귀랑 거래를 하는 건 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니? 최소한 내 의견 정도는 물어봐줄 수도 있는 거잖아.

   

   나한테 협상을 맡겨줬으면 까마귀한테 있는 거 없는 거 다 뜯어낼 자신이 있는데!

   

   – 띠링.

   

   […네? 농담이죠? 루시 알른이 이거 다 보고 있었다고요? 그럴 리가.]

   [저기. 루시양? 이 메시지가 보인다면 왼쪽 눈을 감았다 떠주시겠어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시키는 대로 했더니 침묵이 돌아왔다.

   

   왜 품위고 기품이고 다 내다버렸나 했는데 내가 보고 있단 걸 모르고 있었구나.

   

   – 띠링.

   

   [주신의 사도시여. 죄송합니다. 실례를 끼쳐드렸습니다.]

   

   이제 와서 위엄 있는 척 해도 말이지. 내가 한 쪽 눈썹을 찌푸리자 상황을 짐작한 까마귀가 한탄 어린 메시지를 보냈다.

   

   [이미 늦어버렸나…]

   [하아아. 어쩔 수 없지. 그럼 이제 말 편하게 한다?]

   

   돌이킬 수 없음을 깨닫고 즉시 체념하는 까마귀의 모습은 내가 아는 까마귀와 완벽하게 일치했다.

   

   어쩜 이렇게 게임 속하고 다른 부분이 없는 걸까. 교단의 규모가 이렇게나 커졌는데 그에 걸맞는 위엄을 좀 가져주면 안 되나?

   

   …아니다. 다시 생각해보니까 얘가 달라지면 달라지는 대로 무서울 것 같네. 바보여도 내가 아는 바보인 편이 나아.

   

   [어쨌건 내가 너한테 축복 하나를 주기로 약속했거든? 주신께서 말해 둔 게 있긴 한데 그래도 축복을 받을 사람은 너니까. 바라는 게 있으면 이야기 해 줘.]

   

   까마귀 여신은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여러 가지에 대해 이야기를 해줬는데 대부분은 내 외견에 대한 것이었다.

   

   지금보다 더 아름다워지고 싶지 않냐 말하는 그녀의 어투에서는 지극히 개인적인 욕망이 절절하게 묻어나왔다.

   

   당연하게도 나는 그 모든 말을 무시했다. 내 외모에 관심 있는 건 너 같은 변태들이지 내가 아니거든?

   

   다른 괜찮은 게 수도 없이 많은데 왜 그딴 비효율적인 걸 받아야 하냐.

   

   [혹시 체형 쪽엔 관심 없니? 네가 바란다면 키를 좀 키워줄 수도 있는데!]

   

   …그런 것도 되냐?! 진짜로!?

   

   내 키가 크는 게 가능한 일이야!?

   

   드디어 내가 프레이를 내려다 볼 수 있게 되는 거냐고!

   

   순간 급발진해서 고개를 끄덕일 뻔 했던 나였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한 썩은물로서의 이성이 내 본능을 붙잡았다.

   

   진정. 진정하자.

   

   앞으로 있을 여러 시련 속에서 내 키는 전혀 중요한 사안이 아니야.

   

   지금보다 키가 조금 큰다 한들 위기에서 빠져나갈 순 없어.

   

   그렇지만 까마귀 여신으로부터 뜯어낼 수 있는 여러 보상은 내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사안이지.

   

   생각할 필요도 없어.

   

   넘겨야.

   

   아니 근데 키가 커서 팔 길이 길어지면 좀 더 잘 싸울 수 있게 되는 거 아닌가?

   

   원래 전투라는 건 체급이 전부잖아.

   

   그치? 그렇지?

   

   누가 보더라도 합리적인 선택…

   

   이겠냐아아아!

   

   혀를 깨무는 걸로 간신히 이성을 붙잡은 나는 더 이상 까마귀 여신에게 놀아나선 안 된다는 걸 깨우쳤다.

   

   지금이야 어떻게든 유혹을 버텨냈지만 앞으로도 그럴 수 있으리란 보장이 없어.

   

   빨리 원하는 거 말하고 협상해야 해!

   

   그리 판단을 내린 나는 언젠가 카리아가 줬던 보석에 마력을 불어 넣어서 주변과 나 사이의 소리를 차단한 후 입을 열었다.

   

   “까마귀 여신님. 말을 하면 할수록 추해지기만 하시는 데 잠시 조용히 계셔주시겠어요? 경멸당하고 싶으신 게 아니라면 그 편이 나을 것 같은데.”

   

   얼빠여우와 변태사도에게 호되게 당해왔던 나는 경멸해달라 그럴까봐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까마귀여신은 최소한의 위엄이라도 지키기 위해 입을 다물었다.

   

   “솔직히 말해서 까마귀 여신님께 딱히 뭔갈 받고 싶진 않아요. 변태들의 대장인 당신의 축복이 깃들면 벌레가 피부 위를 걸어 다니는 것마냥 소름이 끼칠 것 같거든요.”

   [잠. 잠깐! 내 이야기 좀 들어볼래?! 지금 내가 이야기한 것 말고도 더 좋은 거 많아! 진짜야!]

   “아직도 나불나불 대시다니. 그렇게 경멸을 듣고 싶으신 건가요?”

   [아니. 그게.]

   “됐어요.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으니 제가 바라는 걸 이야기할게요. 미적감각을 주세요. 당신의 쓸모없는 능력 중에서 그게 그나마 괜찮거든요.”

   

   미적감각을 입에 담은 순간 까마귀 여신이 또 다시 침묵했다.

   

   예상한 일이었다.

   

   미적감각이라는 패시브 스킬은 까마귀 여신의 사도가 되어 한참을 굴러야 얻을 수 있는 스킬이니까.

   

   심지어 스킬을 내어줄 때도 온갖 생색을 냈으니 아무 연관도 없는 사람한테 내어줄만한 건 아닐 걸?

   

   이를 알면서도 미적감각을 언급한 이유는 스킬의 유용성보단 다음을 위한 빌드업에 가까웠다.

   

   이걸 거부하는 순간 트집을 잡아서 여러 축복을 뜯어먹을 생각이거든.

   

   이미 생각해 둔 게 몇 가지 있어.

   

   까마귀 여신이 주는 스킬은 쓸모없는 게 많지만 잘 만 조합 하면.

   

   […으아앙. 결국 그걸 내줘야 하는 거구나.]

   

   응?

   

   [어쩔 수 없지. 주신과 합의한 사안이기도 하니 네가 그걸 바란다면 주는 수밖에.]

   

   으응?

   

   아니.

   

   아니.

   

   잠시만.

   

   내가 진짜 바라는 건 이게 아닌데?

   

   내가 원하는 건 다른 건데!?

   

   나는 당혹 속에서 다급히 목소리를 내려 했지만 그것보다 까마귀가 축복을 내어주는 것이 빨랐다.

   

   [스킬 ‘미적감각’이 지급됩니다.]

   [당신은 자연스레 아름다움을 알 수 있게 됩니다.]

   

   …

   

   환불!

   

   환불해줘!

   

   이거 말고 다른 걸로 줘!

   

   돈 벌 때 말고는 아무 쓸모없는 스킬을 어디다 써먹으라는 건데!

   

   나 지금 돈은 차고 넘칠 정도로 많단 말야!

   

   [내가 줄 수 있는 것 중에서 제일 값진 녀석이니까 부디 잘 써줘.]

   

   아니! 제일 값진 거 안 줘도 되니까 가져가! 다른 걸로 교체해줘! 제발! 지금이라도 바꿀 수 있게 해주면 특별히 널 위해서도 기도해줄 테니까!

   

   [하늘 위에서 네가 나아가는 길을 응원할게. 힘내! 너라면 할 수 있을 거야!]

   

   마지막에 훈훈한 척 하려고 해봐야 의미 없거든!?

   

   아니 그리고 응원한다는 건 또 뭔 소리야. 설마 위에서 지켜보고 있겠다는 건 아니지?!

   

   아무리 네가 변태 까마귀여도 스토킹을 선언할 정도로 막장은 아니잖아!

   

   [미와 예술의 신이 당신에게 축복을 내립니다.]

   [그녀의 기운이 당신에게 힘을 더합니다.]

   

   미친. 그 정도로 막장이었네? 좋은 말로 주절주절 대면서 대놓고 관음하겠다는 선언을 하다니!

   

   아악! 진짜아아아! 허접주신에 얼빠여우에 변태사도로도 모자라서 이제는 까마귀여신까지 달라붙는 거야!?

   

   대체 이 빌어먹을 세상엔 왜 이렇게 변태가 많은 거냐!

   

   주신부터가 변태라서 그런가?!

   

   그렇겠네! 젠장!

   

   짜증이 나서 이를 아득바득 갈던 나는 주변의 분위기가 이상한 것을 느끼고 슬며시 마법을 해제했다.

   

   “오오오!”

   “여신께서 축복을 내려주셨다!”

   “어찌 저리 아름다울 수가!”

   “진정 저 분이 여신의 현신이란 말인가!”

   

   슬픔과 흥분이 공존하는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던 나는 이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도주를 택했다.

   

   내가 다시는 예술 교단에 오나 봐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능 58로 계획을 세워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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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워냥님 응원의 후원 정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재밌는 작품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ㅅ브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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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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