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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00

       

       

       그날, 경성으로 돌아온 늦은 오후.

       

       렌까를 보내고 가게로 들어선 나는, 분대원들과 함께 저녁시간을 가지며 내가 겪은 시험에 대해 적당히 공유해 주었다. 

       

       이러이러한 곳에서 이러이러한 시험을 치르고 왔다고 말이다. 

       

       “가혹하구려!”

       

       내 설명을 듣던 이유하가 젓가락을 내려놓고는 탄식하듯 말했다. 

       

       “측은지심(惻隱之心)은 인지단야(仁之端也)라 하였거늘, 사람을 가여이 여기는 마음을 저버리게 하여 낭심구폐(狼心狗肺)한 이로 만드는 냉혹무정(冷酷無情)한 그것이, 정녕 시험이었단 말이오?”

       “맞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라는지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대충 너무 잔인한 시험이라는 뜻이겠지. 이유하가 재차 물어왔다. 

       

       “하여, 그대는 어떻게 하였소? 그대가 시험을 통과하였음은, 즉……”

       

       이유하 뿐만 아니라, 모두가 나를 조마조마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나는  품에서 적석을 꺼내들며 말했다. 

       

       “물론 내 손으로 그런 짓을 할 수는 없어서, 내가 가진 적석과 연결된 이계에 그 사람들을 모두 이주시켰어.”

       “허어! 과연 그런 방도가 있었군! 하여간 다행일세그려!” 

       

       송병오 녀석이 무릎을 탁! 치며 감탄하고는, 안경을 빛내며 물어왔다. 

       

       “그러니까, 오늘 오전에 우리가 함께 들어갔던 그 이계에, 그래 그 수감자와 원시 부족민들이 들어갔단 말이지?”

       “그렇지.” 

       “그 부족민들에게도 다행이지마는 우리에게도 잘 되었네그려!. 내가 봐도 그 이계는 우리끼리만 탐사하고 공략하기엔 면적이 너무 넓어 무리였으니 말일세. 많은 사람이 필요한 이계가 아닐까 나도 생각했지. 그리고……” 

       

       송병오는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자네가 그 부족민들을 거둔 다른 이유는, 언젠가 우리의 아군으로 쓰기 위함이겠지? 대동아공영회에 대한 반골심리가 가득한 사람들일테니 말일세.”

       

       이 녀석도 여기까지 생각할 수 있었구나. 사실 꽤나 머리가 좋은 녀석이었으니, 역시 이런 현실적인 부분에서 눈썰미가 좋았다. 내가 고개를 끄덕여주자,

       

       “아따시! 아따시도 원시인 만나볼래! 미따이 미따이!” 

       

       양복자가 출렁, 아니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얘는…… 그냥 호기심이 많은 거라고 생각하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지금 말고, 나중에.”

       “에엣? 어째서!”

       “조만간 찾아뵙겠다고 했으니, 적당히 며칠 뒤에 마문 열고 들어가 볼 거야.” 

       “후엥……”

       

       수감자와 부족민들이 내 이계에 들어간지 이제 고작해야 한나절 쯤 지났다. 당장 들어가서 상태를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수감자는 자기 말로는 곧 죽네마네 엄살을 피웠지만, 그 나이에 근골이 건장한 것을 보면 정말 며칠만에 죽을 사람은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너무 일찍 찾아가면, 부족민들 입장에서는 내가 무슨 감시나 통제라도 하는 것처럼 보여서 불편하게 여길지도 모를 일. 

       

       『저기……』 

       

       지금까지 양복자로부터 통역을 들은 아이까와가 손을 들고 조용히 물어왔다.

       

       『그 사람들, 굶고 있진 않을까……?』

       

       세심한 성격의 아이까와가 마땅히 할 법한 걱정이었다. 하지만, 

       

       『그건 안심해도 좋아. 부족민들은 정착지를 나설 때부터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들어갔으니, 당분간은 입고 먹을 것은 충분해.』 

       『으응…… 그건 그렇다고 해도, 마수한테 당해서 다치거나 하면 어떻게 해……?』

       『그것도 괜찮아. 거기도 치유사 역할을 하는 부족민은 있고, 게다가 사냥꾼들의 역량을 생각하면 마수는 오히려 좋은 단백질 공급원이 되어줄 걸.』

       

       그렇게 말해주니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하는 아이까와. 이번에는 이유하가 다시 나에게 물어왔다.

       

       “허나 아무리 토인이라 할지라도 사냥한 짐승과 산에서 캔 들풀만으로 연명하기란 고난한 일. 기왕 거두었다면, 무어라도 베푸는 것이 좋지 아니하겠소?”

       “그 말도 맞아. 부족민들에게 필요할만한 것들을 내가 좀 챙겨가면 다들 좋아하겠지. 그럼, 다음에 들어갈 때 뭘 챙겨가면 좋을까?”

       

       내가 좌중을 돌아보며 묻자, 송병오가 안경을 올리며 대답했다.

       

       “내 농사를 잘 알지는 못하지마는, 정글과는 달리 산악지대는 밭농사 정도는 지을 수 있을테니 감자나 옥수수 종자라도 가져다주면 어떤가?”

       “그것도 괜찮겠네. ……자!” 

       

       나는 박수 한 번을 쳐서 분위기를 환기시키고는, 대화를 정리했다. 

       

       “그러면, 각자 뭐가 필요할지 생각해서 조만간 장을 좀 보자. 돈이야 뭐, 이 가게 매입하고 꽤 많이 남았으니까 그걸로 충당하면 되고.” 

       “오·케—!”

       

       그렇게, 시험에 대한 이야기와 이계의 처우에 대한 이야기를 분대원들과 함께 마친 뒤.

       

       밤이 되자 나는 분대원들을 가게 건물 2층의 남녀 각방에서 재우고, 나는 하숙방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다. 내 방이 따로 있는데 굳이 송병오 녀석이랑 부대껴 잘 필요는 없지.

       

       그렇게 혼자 누워있자니, 잠들기 전 떠오르는 이런저런 생각에 휩싸였다. 분대원들에게는 말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었다. 

       

       ‘……렌까.’

       

       그것은 바로, 렌까에 대한 것. 

       

       내 시험에 대해서도 이야기했고, 이계에 들어간 수감자와 죄수들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지만,

       

       이번 시험에서 렌까가 어떤 역할을 했고, 헤어지기 전까지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렌까와의 관계를 설명하기 곤란했으니까. 

       

       ‘렌까를 어찌해야 하지.’ 

       

       나는 아까 저녁, 렌까와 헤어지기 전에 있었던 일을 회상했다. 

       

       그러니까, 내리려던 나를 렌까가 멈춰세우고, 렌까가 운전석의 다까히로더러 잠시 나가있으라고 했을 때부터의 일을…….

       

       …….

       

       『다까히로 상. 잠시 나가주시겠어요? 시라바야시 상과 단둘이 할 이야기가 있거든요.』

       

       잠시 나가있으라는 렌까의 말에, 다까히로는 조금 의아해하면서도 운전석 문을 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아가씨.』

       『느긋하게 담배라도 피우고 오도록 하세요. 모처럼이니 저 상점에서 구매하는 것도 좋겠네요. 시라바야시 상이 개업한 상점이니까요.』

       

       ……나한테 무슨 진지한 얘기를 하려고 다까히로를 물리는 걸까. 정작 내리려던 나는 다시 뒷좌석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렌까를 바라보았고, 렌까는 그런 나에게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후훗. 다시 단 둘이네요.』

       

       아니, 무섭게 왜 그래. 삐에로 인형이냐고. 렌까는 나를 바라보며 빙글빙글 웃더니, 문득 창 밖으로 보이는 가게를 향해 시선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아까…… 그러니까 오늘 낮에, 당신을 부르러 가게에 들렀을 때의 이야기입니다만, 그 때 시라바야시 상은 부재중이었지요.』 

       『어, 그랬지.』

       『가게를 맡던 하무 쨩에게 물어보니, 시라바야시 상은 경성 부내에 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때 사실은 가게의 지하실에서 마문을 열고 분대원들과 함께 탐사중이었지만, 누가 오면 나 없다고 하라고 함서주에게 시켰기 때문에 함서주는 그렇게 둘러댔었던 것이다.

       

       근데 이 얘기를 왜 다시 꺼내는 걸까. 

       

       『맞아. 잠깐 나가 있느라 그랬는데. 근데 왜?』

       

       내가 그렇게 대꾸하자, 렌까는 나를 향해 배시시 웃음을 지으며 되물어왔다. 

       

       『하지만 시라바야시 상. 그때, 가게 안에 있었죠?』 

       

       헉. 나는 속으로 숨을 삼켰다. 어떻게 알았지.

       

       『어떻게 알았을까, 라고 생각했나요? 가게 안의 공기가 차가운 것과,  방 안의 탁자 위에 고뿌(컵)가 여섯 개 나와있던 것을 보고 알았지요. 공기는 리 류까 상이 식혀준 것일 테고, 고뿌는 당신을 비롯해 당신의 분대원들이 조금 전까지 그곳에 앉아있었던 흔적이었겠죠?』

       『…….』

       

       렌까의 추리가 너무 정확해서 뭐라 즉석으로 꾸며낼 말도 없었다. 내가 부정도 긍정도 안하고 듣고만 있자 렌까는 추측을 계속했다. 

       

       『그리고 제가 시라바야시 상을 기다리던 도중, 저를 응접하던 하무 쨩이 저에게 줄 과자를 가지고 온다며 창고로 향했지요. 그런데,』 

       

       렌까는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려, 가게 건물을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말을 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특별히 창고로 쓰일만한 공간이 없으니, 아마 지하실일텐데…… 다들, 지하실에서 무언가 하고 있었던 건가요?』 

       『그게……』 

       『후훗. 숨길 필요 없답니다? 상점 개업 축하파티라도 한 것이겠지요?』 

       『어어. 맞아.』

       『하지만, 어쩐지 저만 소외된 것 같아서 슬프네요. 어째서 저는 불러지지 않았을까요.』 

       『아니, 음. 그게.』

       

       나는 대충 둘러댔다.

       

       『내 분대원 애들끼리 축하파티를 한 게 맞아. 근데 너를 무서워하는 녀석이 좀 있어서.』 

       『아라아라! 그들은 시라바야시 상의 동료라지만, 저는 좀 더 특별한 관계잖아요? 그렇지요?』

       『으응.』

       『그런데도 저에게만 숨긴 건가요? 슬퍼요…….』 

       

       렌까는 일부러 슬프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인 뒤, 

       

       『물론!』 

       

       금세 다시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오스에를 쓰면 당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알 수 있겠지만, 저는 당신을 믿으니만큼 그러지는 않을 거예요. 그러니,』

       

       렌까는 나에게 바싹 다가와 내 손을 잡고, 가까운 거리에서 눈을 빤히 들여다보며 말했다. 

       

       『당신이 하는 일은 당신이 직접 저에게도 숨김없이 알려주세요. 당신의 일이라면 저는, 무엇이든지 알고 싶으니까……』

       

       …….

       

       ……이것이, 렌까가 나를 내려주고 떠나가기 전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렌까와 한층 더 가까워지고 신뢰를 더 쌓은 것은 좋은데, 그런 말을 하는 렌까의 모습은, 아무래도 나에게 ‘의지’하는 것을 넘어서서, 뭐랄까……

       

       ‘그 눈! 그 눈!’

       

       상기된 얼굴로 살짝 헤에, 하고 벌어진 입과, 나와 시선을 맞추며 빤히 들여다보는 붉은 눈동자! 그것은 분명, 숫제 나에게 ‘집착’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것이었다.

       

       ‘이거, 괜찮은 건가……?’

       

       괜찮을 리가 있나. 렌까가 나에게 이전보다 더 비정상적으로 집착하기 시작한 이상, 나와 내 분대원들이 대동아공영회에 대한 사보타주를 한다는 것을 렌까에게 언제 들킬지 모를 일이다. 

       

       그렇게 된다면 지금까지 쌓아온 신뢰를 잃는 것은 물론, 배신당한 분노에 휩싸인 렌까는 누구보다 위협적인 적이 되겠지. 

       

       ‘불이야. 렌까는 불이야.’

       

       아무래도 나는, 불을 너무 가까이 해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하면 큰 도움이 되지만,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 통제하지 못하면 위험해질, 불과 같은 존재를 말이다.

       

       하지만 이제와서 렌까와 멀어진다든가, 렌까를 쳐낸다든가 하는 선택지는 없었다. 그럴 방법도 없었고, 그럴 생각도 없었고. 

       

       그러니 나에게 정해진 선택지는 말하나마나 오직, 단 하나뿐이었던 것이다.

       

       ‘렌까를 빨리 길들이는 수밖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은 여기까지!!!!
    입회시험 에피소드도 여기서 끝이네용!! 다음화부터는 새 에피소드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혹시…… 소제목 옆의 숫자를 보셨나용?
    400!
    400화!!!!
    오늘로 400화 째입니당!!!!!!!!

    와—아.

    쓰다보니 어느덧 400화까지 왔네요. 물론, 여기까지 따라와주신 독자 여러분들 덕분이고요. 그러니 저는, 독자 여러분들이 앞으로도 믿고 읽어주실만한 글을 쓰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그럼, 언제나 하는 말이지만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즐거운 주말 되세용!!!!!!!

    다음화 보기


           


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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