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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00

       다그닥다그닥!

       

       마른 황야를 달리는 새까만 말 한 마리.

       

       말의 등 위에 얹어진 안장에는 말과 대비되는 백발의 여인이 고삐를 쥔 채 앉아있었다.

       

       능숙하게 말을 몰고다니던 그녀는 협곡의 끝에서 멈춰 세웠다.

       

       이윽고 말에서 내린 여인은 낭떠러지 위에 서있던 그녀 또래의 여성에게로 다가갔다.

       

       

       “현 상황은?”

       

       “보다시피 순조로워.”

       

       

       이리 와서 같이 보자는 권유에 여인은 마법을 사용하여 자신의 시력을 강화하였다.

       

       백 리 너머의 광경을 볼 수 있게 된 여인은 모래 먼지로 자욱한 곳을 들여다보았다.

       

       

       “쟨, 변함 없이 무모하기 짝이 없는 싸움을 하고 있네.”

       

       “옛날부터 위험한 모험을 좋아했었잖아. 더욱이 걷게 되었을 무렵부터 린 엄마의 지옥훈련을 받아왔었고.”

       

       

       온몸이 새까만 혼령과 홀로 싸우고 있는 흑발의 청년.

       

       압도적인 수적 차이가 있음에도 그는 싱글벙글 웃으며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가 검을 한번 휘두를 때마다 검기가 일어나며 주변의 적들이 양단되어 사라졌다.

       

       

       “도와줄 필요는 없으려나?”

       

       “도와주면 혼자서도 충분히 싸울 수 있는데 왜 도와줬냐면서 성낼걸?”

       

       “하아…! 내 동생이지만 귀찮은 성격이라니깐. 아빠처럼 점잖으면 좀 좋아?”

       

       “아버지도 옛날에는 개구쟁이였대. 외모는 아버지와 얼추 비슷하니 철만 들면 똑같아질지도?”

       

       “우웩! 아빠처럼 행동하는 남동생이라니 상상만 해도 끔찍해.”

       

       “언니는 아버지가 무엇을 하든 다 좋아해 하면서 정작 그렌에 대한 기준은 높더라?”

       

       “그야 저 녀석이 먼저 내 마법을 무시했었잖아! 아빠가 굉장하다며 칭찬해 줬었던 마법을 말이야!”

       

       “5년 전의 일이잖아. 아직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던 거야?”

       

       “당연히 기억하고 있지! 무려 내가 처음으로 개발한 마법이었는걸.”

       

       

       과거의 일로 뺨을 부풀리며 짜증을 내는 루리의 모습을 보며 여동생인 마렛은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철이 덜 든 아이가 이곳에 한 명 더 있었다고 작게 속삭이면서.

       

       

       “아무튼 그렌은 방치해도 알아서 해결할 테니 언니는 다른 곳을 도와주면 돼.”

       

       “어디로 가면 될까?”

       

       “그렌이 있는 곳이 남쪽이고, 서쪽은 플로렌과 엘프들이 막아내고 있는 중. 동쪽은 지크의 언데드 군단이 깽판치고 있으니…….”

       

       “됐어, 그냥 날아다니다가 도움이 필요로 하는 곳에 지원할게.”

       

       

       냅다 낭떠러지 아래로 뛰어내리는 루리.

       

       낙하하는 도중에 등 뒤에 달려있던 날개를 펼치며 우아하게 날아올랐다.

       

       

       “잠깐만! 언니가 데려온 말은!”

       

       “네가 잠시 맡아줘! 정 뭐하면 네가 타고 다녀도 괜찮고!”

       

       “뭐어?”

       

       

       뭐라 따지려고 하기도 전에 하늘 높이 날아오른 언니를 보며 마렛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도 날 수 있다는 걸 그새 까먹은 모양이네…….”

       

       

       루리와 마렛은 드래곤 자매.

       

       어머니의 핏줄은 다르지만 드래곤의 피가 섞여있어 뿔과 꼬리가 달려있으며 당연히 날개도 있었다.

       

       처음부터 말을 타고 다닐 필요가 없었으나 루리는 말을 타고 다니는 아비의 모습에 감명 받으며 일부러 승마를 배웠던 것.

       

       어렸을 적부터 지금까지도 아빠바라기인 언니의 행동에 마렛은 어처구니 없어 했다.

       

       

       ‘아버지와 같은 남자는 세상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으니 언니의 마음이 이해는 된다는 게 조금 씁쓸하네.’

       

       

       마렛은 비틀린 미소를 짓다가도 그녀에게로 날아드는 사역마에게서 새소식을 전해 받음과 동시에 등을 돌렸다.

       

       말의 고삐를 쥐며 안장 위에 엉덩이를 붙이는 그녀.

       

       루리의 승마술과 비교하면 여러모로 엉성하였으나 말이 온순하여 마렛도 문제없이 몰고 다닐 수 있었다.

       

       그렇게 마렛은 말한테 가속 마법을 걸어두며 북쪽을 향해 달렸다.

       

       

       “레브론 인근에서 망자의 군세가 출현! 손이 비는 인원은 황급히 북쪽으로 와줘!”

       

       

       머리가 비상한 마렛은 이번 전쟁에 사령관을 맡았다.

       

       다른 형제자매들과 정신을 연결하여 끝없이 들어오는 정보를 통해 적절한 방안을 구상하여 전파하는 것이 그녀의 역할.

       

       그러나 마렛의 몸속에서도 드래곤의 피가 흐르고 있었기에 스스로 전장에 나서는 때도 있었다.

       

       

       “북쪽에 나타난 적의 수는 추산 8천! 내가 먼저 교전에 나설 테니 조력을 부탁할게!”

       

       

       단숨에 적이 출몰한 지역에 도착한 마렛은 아공간에서 활을 꺼내들었다.

       

       활시위 위에 화살을 걸고 쭈욱 잡아당긴 그녀는 화살에 무수한 마법을 담아내기 시작하였다.

       

       

       ‘최연소 대마법사가 된 언니한테는 당해낼 수 없지만 그래도 어디 가서 무시 당할 수준은 아니니까!’

       

       

       무려 열다섯 종류가 넘는 마법을 화살에 부여한 그녀는 활시위를 놓았다.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며 앞으로 날아가는 화살.

       

       이내 담아뒀던 마법들이 하나씩 발현되기 시작하면서 화살은 유성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유성은 이내 곧 피눈물을 흘리며 괴성을 지르는 혼령 무리의 사이에 직격하였다.

       

       

       투콰앙-!

       

       대규모 폭발이 일어나며 화마가 무수한 혼령들이 집어삼키며 소멸시켰다.

       

       북부를 향해 나아가던 혼령들의 진격을 막아낸 마렛.

       

       그러나 방금 전의 공격으로 인해 그녀는 혼령의 표적이 되고 말았다.

       

       절규에 가까운 비명을 지르며 혼령들은 일제히 마렛에게 달려들었다.

       

       화살을 쏴 대응하고는 있으나 짧은 시간 안에 모든 적을 저격할 정도의 실력은 갖추고 있지 않았다.

       

       

       위기에 처한 사령관, 그러나 마렛의 얼굴은 무척이나 평온하였다.

       

       구름 한 점 없는 날씨에 느닷없이 주위를 가리는 드래곤의 그림자가 드리웠기에.

       

       

       “미안! 많이 기다리게 했지?”

       

       “괜찮아요, 와주실 거라고 믿고 있었거든요.”

       

       “그럼 그 믿음에 보답해야겠네!”

       

       

       숨을 크게 들이쉬며 고개를 뒤로 젖히는 청록색의 드래곤.

       

       단전에서 끌어올린 브레스를 뿜으며 마렛에게 접근하던 혼령들을 모조리 쓸어버렸다.

       

       날아다니는 재앙이라 불리는 드래곤의 브레스가 대지에 직격하였다.

       

       마렛이 쏘아올렸던 유성의 화살과 동등한 위력의 브레스는 끊임없이 대지를 부수고 적을 으깬다.

       

       시간이 흘러 적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자 드래곤은 만족하며 인간으로 폴리모프하여 내려왔다.

       

       

       “도와주셔서 고마워요. 네나 언니.”

       

       “히히! 소중한 가족인데 당연히 도와줘야지!”

       

       “어느 철부지 언니와는 다르네요.”

       

       “응?”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보다 언니, 아직 처리해야 될 적이 많이 남아있어요.”

       

       “어라? 방금 전에 다 잡은 거 아니야?”

       

       “아쉽게도 방금 조우한 적은 후발대고 본대는 따로 있어요. 그들까지 빨리 정리해야 돼요.”

       

       “아하! 그래서 막둥이…아니, 이젠 막둥이가 아니지. 룬이 나를 지나쳐서 간 거였구나.”

       

       “룬이 본대로 갔다고요?”

       

       “응! 마렛이 여기 있다고 말했는데도 무시하고 쭉 앞으로 나아가더라!”

       

       “……그럼 북쪽도 문제 없겠네요. 룬은 우리 중에서 최강이니까요.”

        

       

       화살 한 발로 지역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든 마렛은 근본적으로 전투직이 아니라서 쿨람가의 아이들 중에서 가장 약했다.

       

       반면 그들이 언급한 룬은 베른과 브리즈의 아이로, 최연소 대마법사인 루리와 최연소 검성인 그렌도 인정한 최강자였다.

       

       무려 12살에 홀로 바다를 건너 왕국을 도발하던 제국을 멸망시키는 업적을 세웠다.

       

       마법이면 마법, 검이면 검, 거기에 더해 놀랍게도 태어났을 때부터 드래곤 하트를 두 개나 보유하고 있었다.

       

       하프 드래곤인데도 말도 안 되는 돌연변이로 최강이 된 소녀는 세계를 멸망시킬 수 있는 재능을 지니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무력 다툼에서 룬이라는 이름이 언급될 때면 소녀의 형제자매들은 무한한 신뢰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다른 곳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어?”

       

       “그렌은 전부 처리했다고 방금 전에 보고가 들어왔고 플로렌 쪽은 루리 언니가 도우며 해결. 지크 쪽도 왕국에 있던 동생들이 도와서 상황이 끝난 듯해요.”

       

       “다친 사람은?”

       

       “동생들이 조금 다치긴 했는데 그쪽으로 메어리가 가고 있으니 괜찮겠죠.”

       

       “그럼 안심해도 되겠네! 죽지만 않으면 메어리가 전부 낫게 해줄 테니까!”

       

       

       플로렌은 대지모신의 재림이라는 호칭을 갖고 있을 정도로 뛰어난 지도자이자 권왕으로 자라났다.

       

       지크는 사령술에 있어서 하데스를 뛰어넘는 네크로맨서로 성장하였다.

       

       메어리는 그녀의 아버지인 베른을 추앙하는 종교를 독자적으로 만들어내며 신에 버금가는 신성력을 보유한 성녀가 되었다.

       

       그밖에도 미래의 왕, 사흉수, 마검과 성검, 그리고 악마왕이 될 재목인 형제 자매들이 넘쳐났다.

       

       제아무리 신이 구성한 군대라고 해도 베른의 아이들에게 당해낼수 없었다.

       

       

       “이래서 전 전쟁이 싫어요. 제가 없었어도 다들 알아서 적을 격파했을 거 아니에요?”

       

       “에이! 그래도 이번 전쟁에 필요한 물자들은 전부 네 돈으로 해결했잖아? 다들 고마워하고 있을 거야!”

       

       “그래봤자 고작 푼돈인데요, 뭘.”

       

       

       이번 전쟁에 쓰인 자금은 자그마치 금화 10만 닢.

       

       일반인은 절대 꿈도 꾸지 못하는 어마 무시한 액수였으나, 마렛에게는 푼돈에 지나지 않는 가치였다.

       

       그만큼 그녀가 매일 벌어들이는 돈은 상상을 초월하였으니 장녀인 네나의 입장에서는 다소 황당하였다.

       

       다른 형제자매들에게는 없는 사업적인 재능을 지녔는데도 별 거 아니라고 말하였으니까.

       

       

       “어찌 되었든 이제 출몰하는 적의 숫자도 상당히 줄어든 걸 보면 3주 동안 이어진 전쟁이 슬슬 막을 내릴 것 같아서 후련하네요.”

       

       “진짜로 끝날까?”

       

       “제 생각으로는 이제 곧 이번 전쟁을 일으킨 주범이 나타나지 않을까 싶네요.”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로 미래의 일을 예측하는 마렛.

       

       놀랍게도 그녀의 예측은 적중하였다.

       

       

       [지금까지의 유흥은 즐거웠는가? 저주받은 일족들이여.]

       

       “왔네요.”

       

       “진짜네…….”

       

       

       직접적으로 그들의 머릿속으로 파라낙스의 목소리가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너희들의 아버지인 베른 쿨람은 금기를 범하고 세계를 혼란에 빠뜨리는 대역죄를 지었다. 사적인 원한은 없지만 너희가 아비를 대신하여 죄를 갚으라!]

       

       

       천지가 뒤흔들리기 시작하였다.

       

       파라낙스의 분노가 온 세상으로 퍼지며 쿨람가의 아이들에게 온갖 저주들이 쏟아져 내렸다.

       

       그러나 아이들은 조금도 그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너희는 결코 용서받지 못할 지어니…!]

       

       [지랄하네.]

       

       [뭣?!]

       

       

       파라낙스의 근엄한 경고 도중에 새로운 목소리가 끼어들며 그의 말을 끊어냈다.

       

       아이들에게는 익숙하다못해 친근하게 느껴지던 목소리.

       

       이를 듣자마자 모든 아이들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딱히 내가 잘못한 건 없지만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도 나한테 따져야지 강제로 아이들에게 책임을 전가해서 되겠냐?]

       

       [네, 네 녀석은 분명 죽었을 텐데…!]

       

       [당연히 널 끌어내려고 죽은 척한 거지. 이걸 속냐?]

       

       [이놈!!]

       

       

       그 뒤로 파라낙스의 목소리는 전해지지 않았다.

       

       베른의 3대를 멸족시키겠다고 벼르던 신이 어떻게 최후를 맞이했는지 저마다 예측하는 아이들.

       

       진실은 오직 그들의 아버지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는 파라낙스가 어떤 최후를 맞이하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상황이 끝난 뒤에 들려온 아버지의 한마디가 그들에게 있어서 가치 있었다.

       

       

       [얘들아, 수고 많았어. 다들 밥 먹으러 가자.]

       

       ““““““와아~!””””””

       

       

       가지각색의 재능을 지닌 인재들이 과도할 정도로 많아진 쿨람가.

       

       그들에게 있어 신과의 전쟁도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 지나지 않았던 거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렇게 에필로그도 완전히 끝났습니다!

    근데 제가 가장 큰 실수를 하나 범하고 말았습니다.

    400화까지 아직 두 편이 남아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오늘 확인하니 이번 편으로 400화더군요!

    그래서 마지막을 19금편으로 끝내지 못했습니다.

    이대로 끝내도 괜찮겠지만 조금 아쉽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마지막은 화려하게 장식해보겠습니다!

    ***

    지금까지 제 작품을 봐주셔서 독자님들에게 무구한 감사를 드립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뽀삐도 양복을 입고서 제리처럼 감사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와아!

    다음화 보기


           


The Side Character Is Retiring

The Side Character Is Retiring

seobeu ju-ingong, euntoehabnida The sub-protagonist is retiring 서브 주인공, 은퇴합니다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Possessing a Side Character of the academy who ends up with [Dishwasher] ending. Yeah, I’m retiring! [T/N: Dishwasher theory describes a supposedly common situation in Korea about how Korean women, who spend their youth dating numerous men, marry respectable and financially stable men to launder their sordid past and enjoy comfortable and lavish l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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