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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00

        

         

       침상 위 이불을 뒤집어쓴 여인의 태가 볼록하다.

       근육녀에 면사녀임을 알아도, 그 태를 보니 또 가랑이가 볼록해지는 것이 사내의 숙명이 아니겠는가.

       망치의 표정이 음흉함 그 자체가 된다.

         

       ”이보시오, 토목선녀. 님들이 오셨는데 그리 누워서 맞이할 셈이오?“

         

       망치가 그리 불러보았으나, 여인은 미동조차 없다.

       망치가 낄낄 음흉한 웃음소리를 낸다.

         

       “크흐흐, 세상 물정 모르고 자는구만. 아주 누가 업어가도 모르겠어.”

         

       망치가 그리 말하며 이불을 홱 걷어낸다.

       그러자, 짠. 유감스럽게도 이불입니다.

       그리고 딸랑딸랑! 이건 방울입니다.

         

       “뭣?”

         

       너무나 기초적인 수작질에 당하는 것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누구라도 당할 수밖에는 없는 함정이다.

       토목선녀가 살월파의 암습을 어떻게 알고 준비를 했을 것이며, 알았다고 해도 또 언제 올 줄 알고 침상을 비운단 말인가.

       하지만 그보다 먼저 사파인 특유의 촉이 따른다.

         

       좆됐다. 뭔가 좆나 좆된 기분이 든다.

       망치가 그에 언성을 높히는 순간이었다.

         

       “젠장! 모두-”

         

       -아아악!

         

       처절한 비명이 벽 너머로 울려퍼진다.

       그리고 침실의 남향, 나무 살에 종이를 붙여 장지문으로 짜인 벽면에 사람의 그림자들이 지는 것이다.

         

       “형님……?”

         

       “함정이다. 모두 숨어. 어떤 놈들인지는 모르겠지만, 들이치면 일제히 몰아치고 혼란을 틈타 빠져나간다.”

         

       망치가 아둔한 외모와는 달리 빠르게 판단을 내린다.

         

       광주의 삼대사파는 금적방과 광주선방, 그리고 살월파이다.

       ‘방’으로 끝나는 방파는 직업을 나타내니, 금적방은 고리대금업체, 광주선방은 해운 조선 조업 업체다.

       살월파는 순수하게 암흑가를 힘으로 휘어잡았다는 소리다.

       그리고 망치는 뒷골목 수라장을 헤치고 암흑가를 휘어잡은 살월파의 행동대장이다.

         

       그렇게 사파 무인들이 구석에 붙어, 손에 병장기를 꼬나쥐고 숨을 죽이고 있을 때다.

         

       쨍그랑 쨍쨍 무언가 날아와 장지문을 때리며 깨져나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개중에 몇 개는 종이를 쏙 뚫고 들어와 방 안에서 깨져나가니, 순식간에 쿰쿰한 기름 냄새가 훅 끼친다.

       누구라도 단박에 화공이라는 단어가 머리 속에 스쳐지나가니, 이 새끼들이 사람을 산 채로 태워버릴 작정이구나 하고.

         

       그에 살월파 무인들이 서로의 눈치를 한 번 보고, 일제히 바닥을 후려밟으며 뛰쳐나간다.

         

         

         

       청은 유심히 청력을 기울여보니 한 놈은 따로 방을 뒤지고, 나머지 다섯 놈이 우르르 침실로 몰려간 모양.

       청이 진가의 사람들을 마당에 둔 채로 스르륵 어둠 속으로 녹아든다.

         

       안 그래도 인기척이 거의 없는 청이다.

       물론, 신투로서는 좀 많이 모자라다.

       신투의 수업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원래 본성이 생겨먹기를 동작이 크고 호쾌하여 몰래 살금살금 돌아다니기를 참지 못하는 까닭이다.

       그럼에도, 인기척이 거의 없다는 점은 확실히 신투의 수업이 효과적이었다는 반증이 되기도 한다.

         

       별장이 커야 뭐 얼마나 크겠는가.

       금방 집을 뒤지는 사파 놈을 찾아낸다.

         

       “씨벌, 개털이네.”

         

       장이란 장은 다 열어제끼며 안을 더듬으나 애초에 비어있었던 별장에 뭐 든 것이 있겠는가.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불굴의 의지로 계속 서랍이며 장을 열기에 집중하니, 바로 뒤에 청이 망치를 치들고 있음에도 눈치채지 못한다.

       만약 누군가 이 꼴을 관측한다면 뒤, 뒤! 하고 소리칠 만한 광경이다만.

         

       청도 청 나름대로 이게 대체 언제쯤 날 알아차리나 조심조심 뒤를 따른다.

         

       그러다가 딸랑딸랑……!

       귓가에 들리는 방울 소리에, 청의 입가가 찢어질 듯이 좌우로 쩍 벌어진다.

         

       땡. 아쉽게도 시간 초과입니다.

         

       “어허. 신당을 어지럽히다니. 천벌을 받을 것이야. 아니, 청벌이다.”

         

       “어헉!”

         

       놈이 소스라치며 몸을 돌리나, 이미 쐐액 매서운 소리와 함께 망치머리가 대기를 가른다.

       살짝 비스듬하게 휘둘리는 망치머리가 사파 놈의 발등을 찍는다!

       쩍! 고기 두들기는 섬뜩한 소리.

       눈 깜박하는 그 짧은 찰나에 살이 터지고 뼈가 짓이겨져 산 것을 뭉개는 감촉.

       내공 없이 순수하게 근력으로 휘두른 망치라서 아주 단단히 압축된 황홀한 촉감의 정수가 손바닥으로 파고든다.

       하으읏 청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달콤한 날숨이 흘러나오지만, 그보다 더 큰 비명에 묻히고 만다.

         

       “아아악!”

         

       발등을 찍은 망치머리가 단단한 나무바닥에 살짝 파고들었으니, 그 사이에 있던 피륙이 어찌 되었겠는가.

         

       청이 집이 무너져라 비명을 지르며 바르작거리는 사파 무사를 내려다본다.

       그늘져 깜깜한 눈구멍에 불온한 별빛이 반짝 광채를 드러낸다.

         

       음. 아쉽지만 내 몫은 이 정도네.

       진가 분들도 즐기셔야 할 테니까.

         

       청이 입맛을 쩝 다시고는, 돌연 다급한 표정이 되어 몰입형 연기에 들어갔다.

         

       “아니! 무사님! 발이! 발이!”

         

       “아악! 아아악!”

         

       “무사님! 정신 좀, 정신 좀 차려보세요!”

         

       “아아악! 악, 악, 악, 악!”

         

       청이 그저 벌린 채로 성대를 혹사하는 사파 무인의 뺨다구를 짝짝짝짝 거칠게 후려친다.

       그러나 충격 요법에도 효과가 없었는지, 사파 무인은 오히려 더 공포에 빠져서 손을 휘두르며 청을 두들길 뿐이었다.

       물론, 만만하다 싶으면 칼날에도 몸을 들이미는 청의 무식한 육체다.

       사파 나부랭이가 휘두르는 손길 따위야.

         

       완전히 혼란에 빠친 사파 무인의 멱살을 일단 내려놓은 청이, 어떻게 하면 정신을 차리게 만들 수 있을까.

         

       뺨을 때려도 안 되면?

       충격이 약해서 그렇다.

       더 큰 충격은 큰 공포를 이기는 법!

         

       핵꿀밤이 사파 무인의 머리로 떨어진다.

       죽음이자 세계의 파괴자인 폭력 그 자체, 실로 항거할 수 없는 압도적인 폭력이다.

         

       따악!!!

       사파 무인의 눈동자가 뒤집힐 듯이 위로 몰려 떨리다가, 가까스로 되돌아온다.

         

       “하어윽.”

         

       진짜 아프면 비명도 나오지 않는 법.

       그제야 정신이 좀 든 모양새라, 청이 그 앞에 쪼그려 앉아 다정하게 말을 거는 것이다.

         

       “이봐요. 지금 사태 파악이 안 되죠? 지금 아저씨가 기습받았잖아요. 오른발이 완전히 육포가 되어버렸는데. 지금 형편 좋게 비명이나 지를 때예요? 그 꼬라지를 하고서 날 이길 수 있어요? 그럼 지금 뭘 해야 해요?”

         

       “사, 살려-”

         

       “아저씨는 살려달라는 사람 살려준 적 있어요? 단 한 번이-”

         

       “있습니다!”

         

       “대답이 너무 빠르지 않아요? 언제요? 몇년 몇월 며칠 어디서 누구를 왜 살려줬는데요? 대답. 하나. 둘. 셋. 넷……”

         

       청이 애나 할 법한 유치한 소리를 하며 손가락을 하나씩 접는다.

       사파 무인은 대답하지 못했다.

         

       “자. 이제 목숨 구걸은 안 통하네? 그럼 어떻게 해? 도망쳐야지. 자. 도망쳐 봐요.”

         

       “네? 네?”

         

       “도망치라고. 깽깽이 발로 가나요?”

         

       청이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말했다.

         

         

         

       울고 싶을 때 뺨을 때려주면?

       그러면 아마 ‘때는 이때다 지금이야말로 시원하게 울어볼 때다’ 하고 눈물샘 완전 개방 대성통곡의 호흡을 쏟아낼 수 있을 것이다.

         

       진가의 사람들은 증오하고 싶다.

       한 집에서 부대껴 살아가던 가족 친지가 처참하게 살해당했으나, 원수는 도망쳐버린 이후다.

       그렇게 한을 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때에, 장례식장을 뒤엎고 부조금을 강탈하려는 강도들이 나타나면 어떻겠는가.

       판사님, 아니 판관님도 ‘맞아 죽을 놈들이 맞아 죽었으니 이건 자연사가 아닐까요’ 땅땅땅 하고 정당방위를 인정할 것이다.

         

       장지문을 뚫고 도망치던 사파 무인이 돌연 앞을 가로막는 인영에 칼날을 뻗는다.

       끝부분이 둘로 갈라져 두 군데로 뻗어나가는 검로.

       제법 훌륭한 검기 앞에 서생과 같은 하얀 손은 당장이라도 갈라질 것만 같다.

         

       그러나 그도 잠시, 사파 무인은 갑자기 저를 들어 올리는 부드러운 힘을 느낀다.

       저도 모르게 몸이 떠올라, 판판한 등판을 타고 자연스럽게 세상이 한 바퀴 돌고, 또 그리고 퍽!

       바닥에 처박힌 사파 무인이 문득 치미는 격통에 제 어깨를 내려다본다.

       한 바퀴 돌아 비틀린 어깻죽지에 뾰족이 솟은 부러진 팔뼈가 생전 처음으로 그 뽀얀 자태를 드러내 주인을 맞이한다.

       안녕하세요, 주인님, 오른 상박의 팔뼈입니다. 칠칠맞게도 골수를 질질 흘리는 꼴로 뵙게 되어 대단히 유감입니다, 하고.

         

       “아아악!”

         

       사람은 환부를 눈으로 확인하면 두 배쯤 더 아파지는 습성이 있으므로, 끔찍한 통증에 뒤늦게 비명이 터진다.

         

       같은 일이 여기저기서 일어난다.

       물론, 한 방에 어깨를 한 바퀴 반 돌려 뼈를 밖으로 빼내는 수준의 기예는 진가주 정도의 달인에게나 가능한 일이라서, 다른 사파 무사는 그리 심하게 다치지는 않았다.

       그래서 더 재수가 없었다고 하겠다.

       덜 아파 보이는 모습에 분개한 진가 무사들이 마구 두들겨 패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악! 악! 아아악! 살려! 사!

       아닌 밤중에 비명과 애원이 요란하다.

         

       청이 사파 무인을 질질 끌며 마당으로 복귀한 때도 이때쯤이었다.

       별장 마당에서 자행되는 잔혹한 폭행을 본 청이, 깜짝 놀라 손에 쥔 머리채도 뿌리친 채로 펄쩍 뛰어 달려든다.

         

       “앗. 저만 빼고! 같이 해요!”

         

       그리하여 청도 같이 두들겨 팼다.

       발로 차고 콱 밟고 손바닥으로 내리치고 머리통을 후려치고 뺨을 걷어차 이빨도 좀 튕겨주고 손을 밟고 손가락도 팍팍 꺾고.

       진가 무사의 숫자가 더 많은 탓에 이 인 일 조로 함께 패니 더욱 즐거운 시간이다.

       세상 사람들이 보면 정파가 아니라 무슨 혈교의 악종이라고 생각할 광경이었다.

         

       그러다 문득 청이 말하기를.

         

       “어라. 가주님. 한 놈 모자란데요? 분명 다섯 놈 들어갔는데 네 놈이네?”

         

       “음?”

         

       그에 진가 무사들이 패던 손을 멈추고 일제히 별채, 개박살이 난 장지문 너머로 훤히 드러난 침실을 바라보는 것이다.

         

         

         

       망치는 머리를 썼다.

       부하들이 뛰쳐나갈 때, 망치는 혼자 침상 아래로 조용히 파고들었던 것이다.

       그러자 귀로 들려오는 소리.

       끊이지 않는 비명, 퍽퍽 살점 두들기는 소리, 그에 맞춰 딱딱 끊기는 신음성.

       사파인에게는 또 대단히 익숙한 소리라서 어떠한 광경일지 대충 눈에 선하다.

         

       대체 어떤 놈들이지?

       감히 대 살월문의 행사를 방해해?

       저쪽이 숫자가 많으니 일단은 참아주겠지만, 이 치욕은 꼭 되갚아주고 말리라.

         

       그러다 유독 귓가로 파고드는 목소리가 하나.

       여인의 목소리라서 그런지, 아니면 여인의 목소리 중에서도 너무나 고와 귀에 착 감기기 때문인지.

         

       가주님, 한 놈 모자란데요.

         

       망치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진가, 진가 놈들이구나!

         

       아무리 이빨 빠진 호랑이라 해도, 방계가 몰살당했지 직계가 몰살당한 것은 아니다.

       게다가 가주님이라니?

       진가주가 직접 나섰다면, 형님이 아니라 큰형님, 문주님이 와도 일 대 일로는 승산이 없는 고수가 아니던가.

         

       그래서 망치가 숨을 콱 죽였다.

         

       어차피 나가면 죽는다.

       그러니 차라리 이대로 계속 숨어있자.

       놓친 줄 알고 흩어지지 않을까.

         

       그러고 나니 탁탁 발소리가 가까워진다.

         

       -이상하다. 어디로 도망쳤을까.

         

       -이미 도망친 것이 아니냐?

         

       -음, 뒷문을 지키고 있을 걸 그랬나요?

         

       -지금이라도 빨리 추적해야 한다. 서둘러라. 한 놈이라도 놓치면 귀찮아질 테니.

       

       -예, 가주님!

        

       그러고는 다급히 멀어지는 발소리들.

         

       망치가 잠시 안도했으나, 차마 한숨까지는 내뱉지 못했다.

       그리고 나서는 밀려드는 일생일대의 갈등.

       너무 빨리 나가면 오히려 들켜버릴 수도 있고, 그렇다고 너무 뭉개면 여기로 다시 돌아와버릴지도 모른다.

         

       일 각이 일년같이 흐른다.

       사위는 조용하다.

       겨울이라 그 흔한 풀벌레조차 울지 않는 정적.

       너무나 조용해서 제 맥박 뛰는 소리마저 쿵쿵 시끄러울 만큼.

       

       시간이 흐른다. 땀이 흐른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땀은 뚝뚝 맺혀 떨어진다.

       

       도대체 얼마나 지났을까.

       극한으로 곤두선 신경이 시간을 붙들어 길게 늘이고 만다.

       

       그러기를 한참.

       망치가 조심스레 팔을 뻗어 바닥에 붙은 몸을 움직인다.

       지이익, 몸이 바닥을 쓸어내는 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손끝과 발끝에 힘을 주어 몸을 들어, 조심조심 혹여 옷자락 스치는 소리라도 날까 그렇게 안간힘을 쓰며 천천히, 천천히 밖으로 몸통을 내민다.

       

       그 순간 들려오는 목소리.

       

       “히야. 이제야 기어나오네?”

       

       퍽!

       망치가 몸을 벌떡 일으키려다 등짝으로 침상을 올려친다.

       얼마나 거친 몸짓이었는지 침상이 살짝 떠오를 정도였으니, 덜컥! 삐그덕! 침상이 요동을 친다.

       

       그리고 나서야, 저를 바라보는 열 쌍의 눈동자와 눈이 딱 마주치고 만 것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댓글을 보고야 400화인걸 깨달았네요.

    늘 감사드리고, 또 감사하십시오. 연참을 줄였으니 반절만 감사하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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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This Murim’s Crazy B*tch

I Am This Murim’s Crazy B*tch

이 무림의 미친년은 나야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female character in a martial arts game I’ve played for the first time. I know absolutely nothing about Murim, th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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