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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01

       

       

       주근깨가 가득한 볼.

       키는 나보다 작은 편이고, 나이는 대략 이립.

       

       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시종에 불과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암왕이다.’

       

       저 사내의 정체는 암왕이라는 걸 말이다.

       목소리를 듣기 전까지는 애매하다고 느끼고 있었지만, 전음을 듣고서 확신했다.

       

       더불어.

       

       ‘이질감이 가득해.’

       

       그걸 알고서 보니 묘한 이질감이 느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팔에서 느껴지는 진동도 그랬다.

       

       ‘…이건 또 왜 지랄이야.’

       

       비늘이 돋은 부분에 심장이라도 있는지. 미친 듯이 쿵쿵거린다.

       이게 왜 이러지?

       애써 진동을 무시한 채 암왕을 바라보았다.

       

       암왕은 내 시선에 당황한 듯 식은땀을 흘린다.

       아니, 그런 척을 하고 있었다.

       

       ‘이 인간들은 왜들 저렇게 연기를 잘해?’

       

       패존도 그렇고 암왕도 그렇고. 영 이해할 수 없는 연기력이었다.

       

       그런 암왕을 바라보다 시선은 절로 패존에게 향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는 듯이.

       

       설마 패존도 모르는 일인가 싶기도 했지만.

       

       ‘이 노인네….’

       

       패존이 날 보며 픽 웃고 있는 표정을 보니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이 인간도 분명 알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암왕과 패존이 연이 있었다는 건가.’

       

       무슨 연인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멀쩡하진 않을 것 같았다.

       

       하물며 암왕이 왜 저기 껴있는지도 모르겠다.

       애써 암왕이 보내는 시선을 피한 채 내가 패존에게 묻는다.

       

       -뭡니까…?

       -뭐가 말이냐?

       -저분이 왜 저기에 있는지 여쭙는 겁니다.

       -신경 쓰지 말거라. 그냥 시종 중 한 명일 뿐이니.

       -그게 뭔…. 혹, 머리라도 아프십니까?

       

       암왕인 걸 아는데 그냥 신경 끄고 시종으로 생각하라니. 

       이게 무슨 미친 소리인가.

       

       내가 어처구니 없다는 듯 말을 물으니, 패존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이리 답할 뿐이었다.

       

       -마침, 부탁할 일도 있고 하니 그런 것이다.

       -부탁이요…?

       

       패존의 말에 머릿속이 심각하게 돌아간다. 

       암왕에게 부탁이라니?

       

       -대체 누굴 죽이시려고.

       

       드는 생각은 당장 이것밖에 없었다. 

       솔직히 암왕에게 부탁할 거라곤 이런 것뿐이라 생각했으니 말이다.

       

       내 말을 들은 패존은 순간 표정을 살짝 찡그리고선 날 쳐다본다.

       

       -생각하는 게 어찌…. 음….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냐는 듯 뱉다가도 잠시 고개를 갸웃거린다. 

       왜 저러는 거지?

       

       -…대충 비슷하려나?

       -…예?

       -음, 얼추 비슷하겠구나. 그냥 그런걸로 생각하거라.

       

       이게 대체 무슨 말이지.

       

       그러니까, 아무튼 암왕이 누굴 죽이기는 한다는 말인가.

       

       그 패존이 이런 의뢰를 암왕에게 했다고 하니 다소 묘한 느낌이 들지만. 

       구태여 더 캐묻지는 않았다.

       

       각자의 사정이 있기 마련이고. 나야 패존에게 무공만 배우면 그만이었으니까.

       

       패존도 내가 자신의 무공을 대성하기만을 바랄 뿐이니 딱 그 정도의 관계였다.

       

       서로 스승 제자라 부르기 애매하다고 해야 할까.

       적어도 내가 보는 그와의 관계는 그러했다.

       

       필요에 의해 맺어진 사제관계.

       어디서 들어본 적도 없는 참 애매한 관계성이다.

       

       그러니 암왕이 비가의 이들과 뒤섞여 사천행을 같이 하는 건 나로선 좀 걸리는 부분이다만.

       나와 관련이 없는 일이라 하면, 그나마 괜찮았다.

       

       단지.

       

       ‘과연 관련이 없을까.’

       

       싶은 생각이 조금 있을 뿐이다.

       

       ‘암왕의 본가는 연가였지.’

       

       다른 것도 아니고 암왕이 바로 연일천의 후인이라는 걸 알아버렸고, 마침 사천은 연가의 흔적이 남아있던 곳이니.

       

       암왕이 거기로 같이 향한다고 하니 여러 의미로 묘한 느낌을 받아야 했다.

       

       ‘근데…. 이게 맞나.’

       

       한 명 두 명 생각하다 보니 사천행을 떠나는 무리의 상태가 조금 이상해지는 느낌을 받아야 했다.

       

       사천의 패자라는 당문의 가주인 독왕과 살수의 왕이라는 암왕을 비롯해.

       

       중원 무인중 가장 꼭대기에 있다는 삼존중 한 명인 패존까지.

       

       사천행을 떠나는 이들이 하나 같이 어디 가서 방귀 좀 뀌는 인간들로 모여있었으니, 그걸 볼 때.

       

       ‘적어도 습격받을 일은 없겠네.’

       

       안전에 대해선 확실한 수준이었다.

       여기서 상황이 안 좋아지려면, 암왕이 대뜸 다 죽이려고 드는 것 말고는 크게 없으리라.

       

       그 외에도 어떤 미친놈이 당문의 수송마차를 습격할까 싶으나.

       만일 그렇다고 하더라도 딱히 걱정은 없을 것 같다.

       

       독왕은 죄인을 사천까지 데려가기 위해 상당한 전력을 끌고 온 모양인데.

       

       그가 과연 패존과 암왕이 이 무리 안에 있다는 걸 알았더라면, 이런 전력을 끌고 왔을까 싶었다.

       

       아마 아니었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우선 암왕에게서 거리를 벌리기 시작할 무렵.

       이번에 누군가 내 쪽으로 다가오더니 목을 끌어 안는다.

       

       “…?”

       

       끌어안는다기보단 조인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았다. 

       이게 뭔가 싶어 힘으로 풀어버리려던 찰나, 뒤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향기에 손을 멈칫해야 했다.

       

       “동생, 진짜 갈 거야?”

       

       이건 구희비에게서 나는 향기였으니 말이다.

       

       “…이게 뭐 하는 거야 누님?”

       “정말 그 먼 곳을 갈 거야? 누나랑 집에 안 가고?”

       “가야지.”

       “집에?”

       “아니, 사천.”

       

       내 대답에 구희비가 감싸고 있는 손에 힘이 강하게 들어간다.

       

       “대체…. 뭐 하는 건데.”

       “아주, 집 밖에 계속 싸돌아다니고. 사춘기가 잘못 왔어. 옛날에 귀여웠는데.”

       

       구희비의 말을 듣고서 어처구니가 없었다.

       “잘못 오긴 뭘 잘못 와.”

       사춘기를 겪을 만한 나이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옛날이 이상했음 이상했지, 옛날이 더 귀여웠다는 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구희비의 팔을 대충 풀고선 그녀를 바라보니.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인상을 강하게 찌푸리고 있다.

       

       그런 구희비를 보니 귀여운 척을 하는 것 같은 모습이라 속이 메스꺼웠다.

       

       저 인간 자기 나이를 잊은 걸까. 

       다 큰 처녀가 왜 저러고 있는 거야.

       

       “아주 마음에 안 들어….”

       “누님은.”

       “응?”

       “결혼 안 해? 나이가 한참 지나지 않았나.”

       “…”

       

       구희비의 나이를 생각하다 무심코 궁금해서 물은 말인데.

       

       질문을 들은 구희비의 표정이 순식간에 달라진다.

       그 모습이 마치 악귀와 같았다.

       

       그런 표정을 확인한 직후, 내가 살짝 물러나며 말했다.

       

       “…아니, 그냥…궁금해서 물어봤….”

       “동생, 머리털 다 태워지고 싶었어? 말을 하지, 누나가 그런 거 잘하거든.”

       “미안.”

       

       어지간히 화가 났는지 눈빛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진짜 그냥 궁금해서 물은 건데. 어지간히 기분이 나쁜 모양이었다.

       

       ‘하기야,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 저 미친 성격을 누가 데려가겠어.’

       

       혼기는 이미 꽉 차다 못해 넘쳐 흐르고 있었으나.

       구희비는 약혼도 혼인도 딱히 안…. 아니 못 하고 있는 편이었다.

       

       전생에도 굳이 혼인을 안 했던 걸 떠올리면, 평생 노처녀로 늙을 생각인 걸까.

       

       무인중에선 그런 인물도 널리 퍼졌다고 하니, 상관은 없겠지만.

       저렇게 반응하는 거 보면 신경을 쓰고 있기는 한 모양이다.

       

       “집으로 간다고 하면, 봐줄게.”

       “그건 무리야.”

       “단호하네. 짜증나게.”

       

       내 대답에 혀를 하며 구희비가 고개를 휙 돌린다. 

       내게 더는 할 말은 없는지 그대로 구가의 이들이 있는 쪽으로 걸어간다.

       

       “오든지 말든지 알아서 해.”

       

       가다가 문득 쏘아붙이는 목소리도 여전하다. 

       

       저 인간은 대체 언제쯤 성격이 부드러워질까.

       

       아마 무리겠지.

       

       ‘무리일 거야.’

       

       이 피를 타고났으면 그건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았다.

       구희비가 떠난 직후.

       

       이번에 기다렸다는 듯 나타난 이는 일장로였다.

       왜 자꾸 차례대로 오는 거야? 한꺼번에 오면 편한데.

       

       나는 내게 다가온 일장로를 보며 인상을 팍 찡그려야 했다. 그걸 본 일장로 또한 눈썹을 찡그린다.

       

       “…노부를 보자마자 표정이 썩다니, 이 무슨 예의범절이더냐.”

       “또 뭘 주시려고요. 저 아무것도 안 받을 겁니다.”

       “허, 네가 뭐 이쁘다고 선물을 줄 거라 생각하느냐.”

       “주는 건 둘째치고 선물이 아니라서 문제지요.”

       

       일장로를 만날 때마다 받았던 물건을 떠올리면, 하나같이 사건 사고를 몰고 왔던 걸 떠올릴 수 있었다.

       

       이번에도 분명 그럴 게 뻔히 보였으니, 이번만큼은 절대 받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그런 다짐을 가지며 일장로를 노려보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일장로가 슬쩍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든다.

       

       그걸 보며 곧바로 일장로에게 소리쳤다.

       

       “아, 안 받아요! 이봐 이봐. 또 뭐 주려고!” 

       “이놈이! 누가 주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알아!?”

       “그럼 안 주시면 되잖습니까!”

       

       일장로와 개떡같은 실랑이를 벌이기 시작했다. 

       저 물건이 뭐가 되었든 받지 않겠다는 마음을 담아서 말이다.

       

       이 인간은 왜 자꾸 나한테 사고를 맡기려는 거야?

       이번엔 어떻게든 안 받고 도망치려던 때에, 일장로가 내게 뒷말을 붙인다.

       

       “이건 내가 아니라, 네 아비가 전해주는 것이다.”

       “…예?”

       “부자가 쌍으로 못돼먹은 게야. 다 늙은 노인네한테 심부름이나 시키다니.”

       

       일장로가 툴툴거리듯 말을 뱉지만, 지금 내 정신은 일장로의 손에 들린 물건에 쏠려 있었다.

       

       ‘아버지가?’

       

       다른 이도 아니고 구태여 아버지가 내게 뭔가를 준다고?

       그 말을 생각하며 아버지 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마침 이쪽을 보고 있던 아버지와 시선이 마주친다.

       

       찰나 동안 아버지와 눈을 맞추니 먼저 아버지 쪽에서 시선을 돌리더라.

       

       이걸 볼 때, 아무래도 일장로의 말은 맞는 듯 보였다.

       

       ‘이게 뭐길래.’

       

       거기까지 확인하고서 물건을 건네받았다. 일장로가 주는 게 아니라면 상관 없으리라.

       

       …보기에는 평범한 금속패 같은데.

       

       “이게 뭡니까?”

       “나야 모르지. 가주가 그저 전해달라 했을 뿐이니라.”

       “그럼 직접 전해주시면 되지. 뭘….”

       “내 말이 그 말이니라. 정 궁금하면 네가 가서 물어보거라.”

       “아뇨, 그건 좀….”

       “허허…. 부자끼리 아주 쌍으로 지랄이로구나.”

       

       일장로가 지친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전보다는 나아졌다지만, 아직은 아버지에게 그런 걸 묻기가 참 껄끄러웠다.

       

       ‘…쓰임새가 있으니 주신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패를 대충 품에 집어넣었다.

       아무렴 이상한 걸 주지는 않았겠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일장로님은 돌아가면 뭐 하실 겁니까?”

       “뭘 뭐 하겠느냐. 퍼질러 자기나 하겠지.”

       “…아, 예.”

       

       그런 말 하는 것 치고, 구가에서 제일 바쁜 이를 뽑자면, 첫 번째는 아버지였고.

       두 번째는 일장로였다.

       

       노년에 들은 노인이 어찌나 활발한지, 일장로는 계속 세가 밖으로 나가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 일장로를 쓱 살피며, 내가 손끝으로 누굴가를 가리켰다. 이건 개인적인 물음이었다.

       

       “그럼…. 정말 저놈도 데리고 가시게요?”

       

       일장로의 시선이 내 손을 따라 움직인다.

       

       내 손이 가리킨 방향엔 다름 아닌 구절엽이 어딘가 어두운 표정으로 서 있었는데.

       그걸 본 일장로의 표정이 살짝 씰룩인다.

       

       내가 굳이 구절엽에 관해 물어본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구절엽은 이번 사천행에 참가하지 않는다고 했기 때문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_ _ )

    다음편을 같이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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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FZ,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Under the Heavens, The Zenith's Childhood Friend, 천하제일인의 소꿉친구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 Artist: Released: 2021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struggling meaninglessly, he acknowledged his 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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