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401

       이렇게 즉흥적으로 사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사실 이런 삶이 처음이었던 것은 아니다.

        

       대학교 다닐 때, 1학년 때는 대충 이런 식으로 살았던 것 같은데. 수능 공부도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았으면서, 고등학교 졸업했다는 해방감에 굉장히 늘어져서 그때그때 하고 싶은 걸 대충 하며 살았었다. 덕분에 학점도 망쳐서 다른 학년 때 보충해야 했지만.

        

       물론 그때와 지금이 다르긴 하다. 그때는 돈도 없고 부모님께 얹혀살고 있어서 진짜로 ‘하고 싶은 것’을 다 하지는 못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는 않았으니까.

        

       게다가 취업이니 자격증이니 하는 것들도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고.

        

       이세계 한 번 다녀오니 인생이 폈다니까.

        

       “기분 좋은 모양이네.”

        

       “좋지 않을 이유가 없죠.”

        

       조수석에서 고개를 돌려보자, 내 뒤에 앉은 샤를로트와 미아, 앨리스가 보였다.

        

       운전석에 앉아 콧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클레어였다. 차 안의 음악 선정은 클레어가 미리 해둔 플레이리스트대로. 대체로 나는 별로 관심 없는 아이돌 노래 중간중간 뜬금없이 무척 분위기 있는 재즈가 섞인 리스트였는데, 그 구성이 조금 웃기면서도 마음에 들었다.

        

       처음에는 클레어가 운전석이었고, 옆자리에 샤를로트가 앉을 예정이었는데, 서울에서 고속도로로 나가기 전에 클레어가 몇 번이나 나에게 말을 걸기 위해 돌아보는 바람에 안전을 위해 중간에 차를 멈춰 세우고 자리를 바꿨다.

        

       아무래도 클레어도 한껏 마음이 들떠서 그런지 몸의 제어가 잘 안 되는 모양이다. 그래도 운전은 똑바로 했지만.

        

       “이런 식으로 놀러 가는 건 처음이라서, 엄청나게 두근거려요.”

        

       미아가 조금 상기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가, 좌우에 있는 앨리스와 샤를로트에게 마구 쓰다듬을 당했다.

        

       나는 친구들이랑 이런 식으로 놀러 갔던 게 언제였더라.

        

       적어도 10년은 된 것 같다. 대학교 졸업하고 나서는 대학 친구들은 대학 친구들대로 전부 자기 동네로 가서 찢어지고, 같은 동네에 살던 고등학생 때까지의 친구들도 이런저런 이유로 먼 곳까지 이사 가버렸으니까.

        

       그리고 나이를 먹다 보니 친구들은 여자친구나 가정이 생기기도 했고. 아무래도 이런 식으로 모여서 놀러 가기는 애매해졌었다.

        

       이세계에 간 것도 이세계에 간 것이고, 역시 내가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바로 이 점이었다. 어려졌다는 것.

        

       설령 이세계로 다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아직 남은 학교생활이 있었으니, 조금 더 느긋하게 이런 삶을 즐겨도 될 거다.

        

       기분이 안 좋을 수가 없지.

        

       “운전, 재밌습니까?”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클레어에게 그렇게 물었더니, 클레어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말했다.

        

       “재밌어. 솔직히 이 차도 가지고 돌아가고 싶을 정도야.”

        

       “가지고 돌아간다고 해서 계속 타고 다닐 수는 없을 테지만요.”

        

       “그건 아쉽지…….”

        

       차라는 게 기름만 넣는다고 가는 게 아니니까. 이런저런 부품들은 수명이 있었고, 엔진오일이라든지 타이어라든지 갈아주지 않으면 안전에 심각한 영향을 주는 부분들도 있었다.

        

       “다만, 차를 가지고 가는 것 자체는 고려해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타고 다닐 수는 없어도, 분해해 보고 어떤 힌트를 얻을 수는 있겠죠. 증기기관 자동차가 있는 만큼 내연기관 자동차도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 배터리나 전기회로들도 중요하고. 일단 전기는 확실하게 가지고 갈 필요가 있어. 에이다 선생님께 알려드리면 어떻게든 이론을 접목하는 게 가능할까?”

        

       앨리스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 사이에, 미아는 과자 봉투를 뜯었다.

        

       “드실래요?”

        

       “고마워요.”

        

       미아가 봉투를 내밀자 샤를로트는 빙긋 웃으면서 안에 있던 노란색 과자를 하나 꺼냈다. 바나나 맛 과자였다. 저것도 정말 오랜만에 보네.

        

       미아는 먹는 것을 좋아하긴 했지만, 확실히 자기만의 취향이 있는 것 같다. 매운 것보다는 맵지 않은 것, 짠 것보다는 단 것. 그리고 채소보다는 고기.

        

       살찌기 좋은 것을 그렇게 좋아하고 또 자주 먹는데도 살이 찌지 않는 것은 조금 이상하지만.

        

       “아, 고마워.”

        

       앨리스에게도 과자 봉투가 가고, 앨리스는 웃으면서 과자를 꺼냈다.

        

       “여기요.”

        

       미아는 몸을 살짝 내밀어 내 쪽으로 봉투를 내밀었다.

        

       “고마워요.”

        

       나는 봉투 안에서 과자를 두 개 꺼내서, 하나는 클레어 입 앞에 대주었다. 클레어는 그 과자를 입으로 받았다.

        

       클레어와 앨리스는 진작에 자매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래서 그렇게 대하고 있었지만, 미아와 샤를로트는 사실 처음 이쪽으로 건너왔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일단 같이 지내면서 천천히 친해져 볼까,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막상 지내다 보니 이쪽도 자매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뭐, 그렇다고 대놓고 그렇게 말하기에는 얽힌 사연이 각자 좀 많기는 하지만 말이다.

        

       잠깐 차 안에서 대화가 끊어졌다.

        

       하지만 그건 어색한 침묵은 아니었다. 그냥 문자 그대로 각자 생각에 잠겨서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을 뿐, 이 좁은 공간에 다섯 사람이 모여있다는 것이 불편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한동안 과자봉지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과자 씹는 소리만 들리던 차 안에서 먼저 말소리를 낸 사람은 운전 중인 클레어였다.

        

       “아 맞다. 중간에 휴게소 들러도 돼?”

        

       “뭔가 필요한 게 있으십니까?”

        

       “응? 아니, 그보다는 그냥 가보고 싶어서.”

        

       그 말에는 나도 피식 웃고 말았다.

        

       하긴, 그렇게 여행에 대해서 열심히 공부하던 클레어였으니 휴게소의 존재와 역할을 모를 리가 없지.

        

       “저는 좋습니다.”

        

       “사실 가서 먹어보고 싶은 것들을 몇 가지 생각해놨거든.”

        

       “오.”

        

       먹을 거라는 말에 미아의 눈이 반짝였다.

        

       캠핑계획을 세울 때도 바베큐에 그렇게 관심을 가졌으니, 그것도 당연하려나.

        

       사실 휴게소에서 먹는 음식이라고 뭔가 더 특별하게 맛있거나 한 것은 아니다. 가격으로 보면 더 비싸기도 하다.

        

       하지만 원래, 여행 가다가 도중에 먹는 것만큼 맛있는 것도 없는 법이다.

        

       왜냐하면…… 어, 여행이니까.

        

       “그럼 조금만 더 가서, 다음 휴게소에 들를게.”

        

       클레어는 더 신이 났는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핸들을 쥔 손가락까지 까닥거렸다.

        

       *

        

       “끄읏.”

        

       밖으로 나온 클레어가 양손을 머리 위로 쭉 뻗으며 기지개를 켰다.

        

       “운전은 재미있긴 하지만, 자세가 고정된다는 것이 조금 불편하긴 하네.”

        

       “꽤 멀리까지 왔으니 그럴 만도 합니다.”

        

       나도 가볍게 몸을 풀어주며 대답했다.

        

       우리 두 사람뿐만이 아니라 나머지 세 사람도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나름대로 풀어주고 있었다. 이건 따로 배우지 않아도 알아서 하게 되는 행동인 거 같다. 내 친구들도 차에서 내리면 꼭 그랬었는데.

        

       “일단, 화장실에 갈 사람들은 다녀오도록 하십시오. 5분 정도 뒤에 휴게소 건물 앞에서 적당히 모이면 될 것 같습니다.”

        

       내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는 다녀올게요.”

        

       “아, 저도…….”

        

       “나도 다녀올게.”

        

       앨리스와 샤를로트, 미아는 화장실에 다녀올 생각인 듯했다. 나는 딱히 마렵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고, 클레어도 마찬가지인 듯해 우리는 그 세 사람을 보내주었다.

        

       “……뭐랄까, 모녀 사이 같네.”

        

       “어느 쪽이 어머니 같습니까?”

        

       앨리스, 미아, 샤를로트 순으로 서서 가는 세 사람을 보고 클레어가 중얼거려서, 나는 조금 장난스럽게 물었다.

        

       “음, 글쎄. 머리카락 색은 다르니까…… 굳이 따지면 샤를로트 아닐까?”

        

       “그럼 앨리스는 이모인가요?”

        

       클레어는 잠깐 키득거리며 웃은 뒤 얼른 웃음을 지우며 크흠, 하고 목을 가다듬었다.

        

       “그럼…… 우리는 뭐 하면서 기다릴까?”

        

       “잠깐 편의점에 가죠.”

        

       마침 바로 근처에 있었다.

        

       편의점에서 카페인이 들어있는 탄산음료를 두 캔 사, 하나는 클레어에게 건넸다. 우리는 근처 벤치에 앉아서 캔을 땄다.

        

       “……좋네, 정말로. 전쟁이니 뭐니 하는 것들이랑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이렇게 친한 사람들이랑 사는 게 너무 즐거워.”

        

       “하지만 돌아갈 생각이죠?”

        

       “물론이지. 이건, 음, 잠깐의 휴가라고 하면 될까?”

        

       “그렇다기에는 너무 길어서 레오한테 미안해질 정도지만요. 지난번에 두 사람이 왔을 때 5분 지났었다고 했으니, 이제 10분인가요? 슬슬 저쪽에서도 당황할 때겠네요.”

        

       하늘은 정말 파란색이었다. 올려다보고 있으면 눈이 시릴 정도로.

        

       “뭐, 휴가 좀 길게 다녀온다고 큰 문제 없지 않겠어?”

        

       클레어는 음료를 한 모금 마셨다.

        

       “언니는 어때? 돌아가고 싶어?”

        

       “당연히 돌아가고 싶습니다.”

        

       이쪽에 미련이 없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쪽 세상의 미련과 저쪽 세상의 미련을 저울 위에 두고 재보면 저쪽 세상의 미련이 한참 더 크다.

        

       해피엔딩 맞겠다고 그렇게 개고생해서 얻은 엔딩인데, 후일담은 즐겨야지.

        

       “왜? 이쪽은 언니가 원래 살던 곳이잖아. ……고향 같은 곳 아냐? 설마 우리 때문에 억지로 돌아가려고 하는 거라면…….”

        

       “제가 돌아가지 않는다고 하면, 당신은 어떻게 반응하려고요? 설마 옆에 남겠다는 말은 하지 않겠죠?”

        

       클레어는 말이 없었다. 혹시 고민이라도 해본 건가?

        

       “제가 그 세계에서 일구어둔 것이 아까워서라도, 반드시 돌아갈 겁니다. 애초에 저는 이쪽 세상에서는 죽은 사람입니다. 굳이 더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죠.”

        

       “정말?”

        

       “정말입니다. 그리고 한 번쯤은 더 보고 싶은 사람들도 많고요. 무엇보다, 제가 돌아간다고 표현하고 있지 않습니까? 실비아 팬그리폰에게 이제 ‘원래 세상’은 아제르나입니다.”

        

       “다행이다.”

        

       환하게 웃는 클레어를 보고, 나도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어주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컨티스 님,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느세 400화나 되었네요! 외전 쓰는 게 즐거워서 쓰다보니 여기까지 써버렸습니다만,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다행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일상물을 참 좋아합니다. 고등학생때였던가, 그때 요츠바랑을 처음 읽기 시작했는데, 아직도 제가 좋아하는 만화 중 최상위권에 올라가 있습니다. 최근에는 스파이패밀리도 무척 재미있게 봤었구요. 그러다보니 제 글에서도 그런 취향이 진득하게 묻어나오는 경향이 있네요. 이번 외전은 본편의 스토리가 끝난 뒤의 일상에 관한 것이라 더 재미있게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역시, 제가 이렇게 글 쓰는데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건 저의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 여러분이 계시기 때문이겠죠.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읽어주실만한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