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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01

        

       배.

       태산처럼 거대한 배.

       강철을 두들겨 만든 성채가 지금 바다에 떠 있다.

         

       저 배야말로 바다에 떠다니는 성채요, 물 위에 솟아난 요새이니.

         

       덩치 그 자체로도 위압감을 주며, 저 배에 달린 각종 무기는 가까이 오는 이들을 잿더미로 만들 힘이 충분히 존재했다.

         

       ‘구축함이라.’

         

       일본은 해군이 강했다.

       뭐, 실제 일본은 군대를 가질 수 없기에 해상자위대(海上自衛隊)라는 이름을 붙이긴 했지만…그 본질은 누가 보더라도 해군이었다.

         

       공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허락을 맡아야 하는 족쇄를 차고 있는 해군.

         

       하지만 족쇄가 달려있다고 해도 일본 해군의 힘은 무시무시했다.

       일본은 섬나라라는 특성상 배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었고, 과거 서양 세력이 일본에 요구했던 것 역시 강력한 해군이었기에 그쪽으로 발달이 많이 된 것도 있었다. 게다가 현대에 이르러서는 미국이 러시아와 중국에 대적하기 위해 일본에 해군과 관련된 것을 많이 지원해줬고, 그 때문에 일본은 적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강력한 힘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 힘이 어찌나 강력한가 하면….

       단독으로 중국의 해군과 맞붙어도 승산이 있을 정도였다.

         

       물론 이 ‘승산’에는 중국이 내실보다는 껍데기를 부풀렸다는 사실이 포함되기는 했지만, 그것을 감안한다고 해도 체급 자체가 비교도 되지 않는 패권 국가의 해군과 비교된다는 것 자체가 일본 해군의 강대함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 비정상적인 성장 덕분에, 해군과 비교하면 육군과 공군의 세가 약하기는 했다.

       정경유착으로 인한 방산 비리가 끼어든 것은 기본이었고, 집착에 가까운 국산화 때문에 단가가 크게 올라 가격 대비 효율을 전혀 내지 못하고 있기까지 했다. 그 때문에 과할 정도의 돈을 들여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예산을 쓸데없는데 깎아 먹으니 세세한 부분에서의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필요한 물품에까지 영향이 가는 상황이었다.

         

       공군 위치에 있는 항공자위대(航空自衛隊)는 외국에서 수입해오는 무기보다도 비싼 비행기를 타면서도 잦은 고장에 시달리며 목숨을 내놓고 자국의 전투기를 운용하고 있는 상황이며, 육군 위치에 있는 육상자위대(陸上自衛隊)의 경우 방산 비리에 너무 연관이 많이 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방산 비리 때문에 예산이 엉뚱한 곳으로 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예산이 해상자위대와 항공자위대 쪽으로 더 많이 쏠리게 됨으로써 푸대접까지 받고 있었다.

         

       해상자위대의 성세가 양(陽)이라면, 항공자위대와 육상자위대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음(陰)에 해당하는 것이겠지. 그나마 항공자위대의 경우 해상자위대 다음으로 정부가 신경 써주고 있으니 조금 나은 편이기는 했지만, 육상자위대의 경우 관심이 많이 떠나가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육상자위대가 약해지게 되니 적이 상륙했을 때 육상자위대가 적들을 무사히 물리치기 힘들게 변했고, 그것을 본 정부는 육상자위대보다 해상자위대와 항공자위대에 더 힘을 쏟는 게 바르다면서 그쪽에 예산을 몰아주고 있다.

         

       육상자위대에게 있어서는 악순환이라 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반대로, 해상자위대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육상자위대에게서 빼앗은 예산만큼 더 좋은 배를 건조하거나 사 올 수 있고, 더 좋은 무기를 배에다가 실을 수 있게 될 테니까.

         

       ‘보자. 배가 낡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름의 구색은 갖추고 있구나.’

         

       빼앗아 온 예산의 힘일까?

       낡아 보이는 구축함임에도 불구하고 나름 좋은 무기들이 올라가 있었다.

       최신까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크게 오래되어 보이지는 않는 무기들.

         

       예산이 부족했다면 저렇게 낡은 구축함에 올라갈 일은 없을 무기들이었다.

         

       ‘낡은 배에 그럭저럭 쓸만한 무기라.’

         

       하지만 진성은 구축함에 있는 무기들을 보며 도리어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은 꽤 스산한 느낌을 주는 것이었다.

         

       ‘중요한 건 무기가 아니지….’

         

       무기?

       중요하다.

       전쟁할 때 무기가 중요하지 않으면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하지만 말이다.

         

       저들이 상대해야 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다.

         

       저런 무기는…큰 의미가 없다.

         

       도리어 무기 외의 것이 중요했다.

         

       예를 들자면 축성(祝聖)이나, 퇴마(退魔) 같은…초자연적 존재에 대한 방비 같은 것 말이다.

         

       ‘뱃사람만큼이나 미신에 민감한 이들은 드문 법. 그렇기에 어지간한 귀신은 배에 접근하지 못하지만….’

         

       뱃사람은 미신에 아주 민감했다.

       얼마나 민감하냐 하면, 선원 중 여자가 있으면 재수가 없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여자가 뱃사람이 되는 것을 꺼리며, 현대에 들어서도 해상 조난의 피해자들이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인신공양(人身供養) 행위를 하는 사건이 벌어질 정도.

       배에 타고 있을 때 털을 깎으면 재수 없다는 이유로 몇 달 동안 머리카락과 수염을 깎지 않는 사람도 있었고, 통장에 돈이 들어가 있으면 바다에 빠져 죽을 확률이 높아진다면서 번 돈을 모조리 도박에 꼬라박는 인간도 있었다.

         

       뱃사람과 미신은 떼어놓을 수 없는 사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이렇게 미신에 민감하다는 것은 꼭 나쁜 것은 아니었다.

       이 미신이 뱃사람을 지켜주는 일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바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수시로 종교인을 불러 축성을 받거나 축복을 받는 것은 기본이고, 부정한 것을 쫓기 위해 온갖 부적이나 기기묘묘한 주물을 가져다 놓는다. 게다가 부정한 것을 쫓기 위해서라면서 일반적으로는 이상하게 보일법한 행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며, 그것이 아무리 요란하고 시끄러워도 자신에게 피해가 가지 않으면 어지간하면 용납해준다.

         

       이러한 행위 중에는 효과가 없는 미신도 많았지만, 실제로 효과가 있는 것들도 많았다.

       예를 들자면…물에 빠져 죽은 귀신들의 접근을 막는다거나, 배에서 죽은 사람이 귀신이 되지 않게 하는 위령(慰靈) 효과를 발휘한다거나, 위험한 지역을 가기 전 불안감을 느끼게 한다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자아. 낡아빠진 배에 얼마만큼의 방비가 되어 있을까.’

         

       그것이야말로 진성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수단이며, 진성이 끌고 온 귀신들에게서 목숨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벽이었다.

         

       오직 그것만이 그들의 목숨줄이었다.

         

       진성은 귀신들이 배에 접근하는 것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저 귀신들이 배에 접촉하는 그 순간.

       그 순간 그는 알게 되리라.

         

       저 배가 얼마만큼이나 철저하게 ‘방비’를 했는지 말이다.

         

       [ 둥실둥실. ]

         

       [ 물에 흔들거리는거이 깃털 침대에 누워있는 거 같으이 파도가 참으로 퐁신퐁신한 솜이불을 덮은 것만 같구나 보자 흔들흔들 움직여 다다르니 아이코야 쇳덩어리야 차갑고 또 차갑다. ]

         

       [ 바닥에는 따개비 흔적, 녹슨 자욱, 곳곳에 난 흠집이야. 히히 이것을 타고 올라가 보자. 저 위에서 맛난 냄새가 가득 나니 어찌 즐겁지 않을까? ]

         

       마침내 귀신들이 배에 다다랐다.

       파도에 떠밀려 다니는 쓰레기처럼 귀신들은 둥실둥실 움직이며 선체에 부딪혔고, 부딪치기 무섭게 눈을 까뒤집으며 팔다리를 허우적댔다.

       풍선처럼 부푼 몸에 툭 튀어나온 팔다리는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있는 몸체에 비하면 너무나 작아, 팔다리라기보다는 돌기처럼 보였다. 얼핏 아이들이 보는 TV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불편한 인형 탈을 입은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가까이서 본다면 그러한 인상은 싹 사라져버린다.

       부풀어서 터지기 직전의 몸은 그 자체로 토악질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역겨움을 가지고 있었으며, 푸르딩딩하게 변해버린 안색은 척 보기에도 공포심을 불러일으킨다. 한 번 쓰윽 훑어내리는 것만으로 녹아내리는 살점이 손끝에 묻어 내릴 것만 같은 부패한 모습은 생리적인 혐오감마저 불러일으킨다.

       거기에 저 귀신들의 팔다리는 어떤가.

       보잘것없어 보이는 저 손에는 꺼림칙함이 가득 묻어나온다.

       바닥에 붙어있는 따개비를 떼어 벽면에 붙여 사다리를 만드는 모습에서는 집요함마저 느껴지고, 살점이 녹아내리고 뜯겨나감에도 따개비와 선체에 몸을 비벼서 위로 올라가려는 모습에서는 집념이 느껴진다.

         

       ‘방비가, 없군.’

         

       그 모습에 진성은 환하게 웃었다.

       꺼림칙하게 웃었던 아까와는 다르게, 정말로 기쁘다는 듯한 환한 미소였다.

         

       ‘너무 낡은 배였기에 미리 해놓았던 방비는 노후화가 되어 의미가 없게 되었고, 새로운 방비는 돈이 들어서 하지 않았겠지. 기껏해야 배가 망가지거나 사고를 당하지 않도록 제사를 지내주는 것이 고작이었으리.’

         

       만약 제대로 된 배였다면 지금과는 상황이 조금 달랐으리라.

       배에 붙자마자 귀신들의 몸에 불이 붙거나, 튕겨 나가거나, 그대로 터지면서 귀신들의 몸을 바다로 가라앉혔겠지. 그것도 아니라면 강력한 주술적 효과나 마법으로 만들어낸 힘으로 근처에 접근하지 못하거나, 아예 인지조차 하지 못했으리라.

         

       그렇게 되었다면 진성이 직접 나섰어야 했을 것이다.

         

       진성이 직접 주술을 이용해 그 방비를 모조리 걷어내고, 귀신들이 배에 침투할 수 있도록 직접적으로 손을 써야 했겠지.

         

       물론 그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주술이라는 것이 반드시 대가를 요구한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이것은 분명히 진성에게 이득이었다.

         

       ‘다른 주술의 대가가 더해지면 회복이 늦어질 수도 있었을 테니….’

         

       진성은 미소를 지으며 자기 팔을 바라보았다.

         

       팔 곳곳에 도려내진 상처가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식인종이 진성의 팔을 칼로 조금씩 도려내서 먹은 듯한 것 같았다.

       게다가 그 깊이가 어찌나 깊은지, 도려진 곳에서는 뼈마저도 보이고 있었다.

         

       ‘팔이 더 썩지 않는 것을 보니 의식의 대가는 다 지불한 듯하고….’

         

       이는 저 귀신들을 부리기 위해 지불한 대가.

       팔이 산채로 썩어들어가고 부패하는 것이 바로 앞서 행한 주술 의식의 대가였다.

         

       패혈증(敗血症)을 막기 위해 직접 칼로 썩은 부위를 도려내야 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가벼운 대가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큰 대가도 아니었다. 적어도 내장이 썩어들어가거나, 전신 곳곳이 썩어가거나, 나병(癩病)에 걸리거나, 뼈가 썩어 문드러지거나 하지는 않지 않았는가.

         

       게다가 다른 주술에 쓸 수 있는 본인의 썩은 살점까지 얻었으니, 의외의 소득까지 있는 셈이다.

         

       ‘귀신들이 슬슬 갑판으로 올라가기 시작하는구나. 나 역시 움직이는 것이 좋을 터.’

         

       진성이 너덜너덜한 팔을 허공에 휘적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 위에 부유하는 귀신들을 뗏목처럼 이용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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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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