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2화. 방문 수색 ( 2 )
오줌을 지린 사내들이 벌벌 떨면서 일렬로 무릎 꿇었다. 바닥에는 누런 물이 가득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음.”
루나가 까마귀 가면을 살짝 기웃하며 사내들의 면면을 유심히 훑었다.
이단 심문관 시절의 별명을 기억하는 녀석이라면 분명 자신이 잡은 것일 테고, 자신과 ‘대화’도 나눈 경험이 있을 터.
일이 쉬워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끄르르릅, 끄륽…”
루나와 눈이 마주친 사내 중에서 거품을 물고 기절하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험상궂게 생긴 사내들이 벌벌 떠는 모습은 그야말로 뱀 앞의 개구리.
에샤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단 심문관이 무서운 사람들인 것은 아는데, 저렇게나 벌벌 떨 정도인가. 저건 너무 심한 것 같기도 하고.
이러한 에샤의 의문은 지극히 평범한 이들이 공통으로 하는 생각이었다.
평범하고 선량한 사람은 살면서 이단 심문관을 만날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단 심문관과 접점이 없어 그들의 무서움을 소문으로만 접했다.
요컨대 물 건너 불구경, 완벽한 타인의 이야기인 것이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음지의 세계에 발을 들이고 있는 이들이라면 이단 심문관의 무서움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절대로 이단 심문관을 만나지 마라. 잡히지도 마라.
잡힌다면 차라리 그 자리에서 자살해라.
뒷세계에 반쯤 진담처럼 전해지는 농담이었다.
“무, 무, 무엇 때, 때문에 오셨습니까…? 저, 저희는 정말로 이, 이단이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마, 맞습니다! 그 씹어먹을 새끼들이랑은 상종도 안 한다고요!”
사내들이 루나를 향해 아우성치며 자신의 무고함을 피력했다.
“……정말 몰라? 알아야 할 텐데. 몰라도, 알아 와야 할 거고.”
철그럭.
루나가 제 모닝 스타를 살살 흔들었다. 사내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다 못해 파랗게 죽어갔다.
“…이 구역에 악마 추종자가 숨어있지? 잡아 와. 지금, 당장. 아니면 너희가 대신 ‘대화’를 하게 될 거야…”
“다, 당장 잡아 오겠습니다! 지금 당장!”
우르르!
사내들이 문을 향해 뛰쳐나갔다. 텅 빈 건물에는 찌릿한 오줌 내음만이 감돌았다.
“……도대체 영문을 모르겠군.”
돌아가는 상황을 알 수 없는 에샤가 답답함을 토로했다. 루나는 대답할 기미도 없이 구석진 그림자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
“……”
침묵.
무거운 침묵이 얼마나 흘렀을까.
우다다다다ㅡ
저 멀리서부터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더니 사내들이 우당탕 굴러들어왔다.
“차, 찾았습니다! 여기, 여기 잡아 왔습니다!”
“으으읍! 으읍, 으브으응!”
과연, 사내들은 비쩍 마른 여인을 밧줄로 꽁꽁 묶어 짐짝처럼 들고 왔다.
루나와 눈이 마주친 여인은 거의 경기를 하며 몸부림쳤다.
한눈에 알아본 것이다.
눈앞의 여인이 이단 심문관이라는 것을.
“…좋아. 여기 조용한 곳이 있어?”
“지, 지하실이 있습니다!”
여인을 끌고 지하실로 내려간 루나는 한참이나 올라오지 않았다.
──────!!!
까드까득까득까득까득ㅡ
서걱. 서걱. 서걱. 서걱.
드드드득ㅡ 드득- 빠드드득-
간혹 지하실에서 짐승의 울부짖음 같은 것이 들려왔다. 무언가 자르고 문지르는 소리가 비명의 뒤를 따랐다.
“커흡, 허윽, 윽, 으으윽…!”
트라우마가 도진 사내들이 눈을 까뒤집고 기절했다. 도대체 지하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적어도 에샤는 알고 싶지 않았다.
아주 잠깐의 시간이 지나자 루나가 지하실에서 올라왔다. 피 한 방울 묻지 않을 말끔한 모습이 오히려 이질적이었다.
“…성과가 있어.”
“뭐지?”
루나가 의기양양하게 송곳니를 내밀었다.
“이 송곳니. 악마와 관련이 있는 거였어.”
“…허. 악마…? 확실한 건가?”
“확실해.”
에샤가 까득 이빨을 깨물었다.
악마? 악마라고?
10년 전, 마을 사람들과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범인이 악마라고?
잊었다고 생각한 복수심은 명확한 대상을 찾자 다시금 불씨를 지폈다.
“좋아. 아주 좋군.”
분노는 불꽃이다.
불꽃은 무언가를 태움으로써 존재하는 법.
분출할 대상이 없는 분노는 스스로를 살라먹고 파괴한다.
가까스로 감정을 추스른 에샤가 기대어린 눈빛으로 루나를 바라봤다.
그녀는 대단했다. 자신은 10년 동안 송곳니의 주인을 찾아다녔는데, 루나는 순식간에 송곳니의 주인을 찾아내지 않았는가.
얼굴도 예쁜데 능력도 뛰어난 루나가 새삼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렇다면, 이 송곳니는 어느 악마의 것이지?”
루나가 난처한 듯 살짝 시선을 돌렸다.
“…그건 나도 몰라. 이 송곳니의 주인이 악마라는 것만 알아.”
“……악마이기는 한데 어떤 악마인지는 모른다는 건가.”
“응.”
루나의 그림자 속에서 로드가 속삭였다.
“막내야. 저 송곳니가 우리 일족의 것이라고 말해야 하는 거 아니냐?”
“……아직 아니에요. 우리는 에샤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니까. 어쩌면 우리를 적대할 수도 있어요. …그러면 일이 귀찮아질 거예요.”
아직 에샤라는 사람과 충분한 신뢰가 형성되지 않았다.
조금만 더, 에샤를 믿을 수 있다고 판단할 수 있을 때까지만.
로드가 중얼거렸다.
“…선택은 네가 하는 거지만, 노파심에 미리 말해두마. 어떤 이유에서든 상대에게서 진실을 숨겼을 때, 대부분은 좋은 결말이 아니더구나.”
“……알았어요.”
“……알았으면 됐다. 그나저나 우리 일족이면서 동시에 악마라… 으음. 악마, 악마… 뭔가 생각이 날 것 같은데 가물가물하구나.”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로드는 루나의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이거 골치 아프게 됐군.”
에샤가 슥슥 이마를 문질렀다.
“그렇다면… 악마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을 더 많이 찾아야겠군.”
“응. 맞아.”
흠칫.
둘의 대화를 조심스레 엿듣던 사내들이 몸을 떨었다.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스친다. 불행하게도 그런 종류의 예감은 빗나가는 법이 없다.
철그럭.
“…들었지? 더 잡아 와. 이 구역에 숨은 악마 추종자가 저 여자 하나는 아니잖아.”
루나의 모닝 스타가 쿵, 떨어지자 바닥이 움푹 파였다.
사내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며 우당탕 뛰쳐나갔다.
이후, 사내들의 자발적인 협조 덕분에 루나와 에샤는 쾌적하게 악마 추종자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까드드드득- 까득- 까득- 까득- 까득-
“끄아아아아악! 도, 동부의 사막!! 그, 그곳에 사는 마녀라면 분명 알고 있을 겁니다!”
다음 행선지가 결정됐다.
* * * * *
타다다닥. 타다닥.
키보드 두들기는 소리와 수화기 너머로 사무적인 이야기가 오가는 이곳은 어느 회사의 사무실이다.
파티션으로 나누어진 공간에서 저마다의 업무를 열심히 처리하는 스무 명 남짓의 남녀.
그들을 이끄는 것은 회사 내에서 싸이코 상사로 악명이 자자한 박덕춘 부장이었다.
‘탐난다.’
그가 싸이코로 유명해진 것은 대단한 이유가 아니다.
그는 못난 녀석에게 가혹했고, 잘난 녀석에게는 더더욱 가혹했다.
사람이 들어왔다?
일단 일을 시킨다. 엄청 많이.
박덕춘 부장은 업무가 무한하게 솟아나는 업무의 화수분이었다.
악랄한 점은 딱 한계에 가까울 정도로만 업무를 준다는 것이다.
못 할 것 같지만, 이를 악물고 달려든다면 어떻게든 할 수 있을 정도의 양으로.
그러니 부하의 입장에서는 이거 조금만 더 하면 끝날 것 같은데, 조금 빡세게 하면 오늘 안에 다 할 것 같은데, 를 반복하며 업무의 굴레에 갇혀버린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반년이 지나면 사람의 탈을 쓴 기계가 되든가, 스트레스성 탈모와 함께 사직서를 던진다.
‘저 새끼. 탐난다.’
사람을 지독하게 부려 먹는 박덕춘 부장이었지만, 업무 강도에 상응하는 높은 연봉과 상여급, 각종 로열티와 보너스가 쏟아졌으니.
전부 때려칠 마음이 솟아날 즈음 통장에 꽂히는 액수를 보면 짧게나마 애사심이 솟구치고는 했다.
이를 반복하니 그의 휘하에 있는 부하들은 정예 중의 정예.
달리 말하면 박덕춘 부장에게는 뛰어난 인재를 알아보는 눈이 있었다.
될 놈은 된다.
난 놈은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티가 나는 법이다.
타다다닥. 타탁.
그런 박덕춘 부장이 근래 유심히 지켜보는 한 부하 직원이 있었다.
평소 알고 지내던 부장의 추천으로 받게 된 주임급 사원이었다.
솔직히 추천이 아니었으면 고작 주임급 사원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 “아 글쎄. 일단 한번 만나보고 이야기하라니까. 내가 장담하는데,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야.”
하도 호기롭게 장담하길래 호기심이 생겼다.
고작 주임을 이렇게나 칭찬한다고? 어떻게 생긴 놈인지 낯짝이나 한번 보자는 심산이었다.
대충 일이나 조금 던져주면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지겠거니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도대체 뭐 하는 놈이야?’
일을 시켰더니 전부 해왔다.
얼씨구? 이것도 할 수 있나 보자는 심산으로 일을 던져줬더니 게거품을 물고 전부 처리했다.
어디까지 해오나 싶어 더 많은 일을 시켰더니 이마저도 전부 끝냈다.
인제 와서는 과장급에 꿀리지 않는 양의 업무를 혼자 처리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보면 볼수록 탐난단 말이지.’
무슨 인간 고무줄도 아니고. 시키면 시키는 일을 전부 해온다.
그것도 마음에 쏙 들게.
그러니 박덕춘 부장의 눈이 돌아가지 않고 배길 수가 없다.
‘저 새끼… 어떻게든 내 밑에 묶어두고 싶은데.’
오싹.
박덕춘 부장의 진득한 시선이 파티션 너머로 쏘아졌다. 열심히 일하던 박 주임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탐난다. 저 녀석.
이 프로젝트가 끝나면 다시 돌려줘야 한다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저 새끼. 내가 시키니까 하기는 하는데, 안 시키면 적당히 눈치 보면서 꿀이나 빨려는 놈이야.’
PM 짬이 어언 15년. 대충 봐도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 감이 온다.
박 주임은 유능한데 게으른 타입이었다.
시키면 딱 시킨 일만 한다. 절대로 일을 찾아서 하지 않았다.
그 말인즉, 항상 채찍을 휘둘러야 일을 한다는 뜻.
‘그렇다고 너무 채찍만 들면 도망간다. 요즘 젊은 애들은 돈이 전부가 아니란 말이지… 쯧. 그놈의 워라벨인지 뭔지.’
박덕춘 부장의 고민이 깊어진다.
어떻게 해야 저 게으른 놈을 묶어둘 수 있을까.
* * * * *
‘뭐, 뭐지? 갑자기 왜 오한이…’
부르르르!
열심히 일하던 와중 갑작스레 등골이 서늘하게 오한이 밀려왔다.
등 뒤로 시선이 느껴진다.
진득하니 노려보는 싸이코 부장의 시선이.
‘도, 도대체 갑자기 왜…?’
타다다닥ㅡ 타닥!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해야 할 일은 많고, 뒤에서는 싸이코 부장이 노려보고 있었으며, 협력 업체는 도무지 협력을 해주지 않는다.
‘아아… 케넬름 보고 싶다.’
유난히도 케넬름의 무릎베개가 그리운 날이다.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정말 엄청나게 무지막지하게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요즘 날씨가 엄청 추워졌습니다…!! 감기 걸리기 너무 좋은 날씨입니다! 독자님께서는 물을 꼬박꼬박 마시고, 적당한 운동과 휴식을 병행하여 꼭 건강 챙기시기 바랍니다!! 아프면 서러우니까요…!! 아프지 말고 행복과 말랑함이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