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402

    <402 – 선입견의 너머에 기다리는 것>

     

    지고쿠 해적단은 본래 981기 하급반 사이에서도 가장 밑바닥을 기어 다니는 약골들.

     

    “와, 진짜 포인트가 어떻게 0포인트일수가 있냐? 니들 밥은 먹고 다니냐?”

    “그게… 주방에서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하면 밥을 무료로 주느라…”

    “저, 저는 공부할 시간이 부족해서 설거지 대신에 매점에서 1포인트짜리 흑빵 10일치 묶음을 10% 할인할 때 구매해서…”

     

    사략해적 지고쿠조차도 이런 놈들을 털어먹는 것은 사람 된 도리가 아니다 싶을 정도의 딱한 녀석들!

     

    “너희들, 해적이 되어라!”

     

    지고쿠는 오합지졸들을 거두어 단원으로 받았다.

    최초에는 아무 쓸모도 없는 것들이었다.

    지고쿠 혼자 모든 일을 다 하고 간신히 그 뒤를 쫓기에 급급한 패거리들.

    굳이 상급반의 일원인 지고쿠가 자신의 시간과 정성을 들여가며 이런 풋내기들을 키울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지고쿠의 시야는 남들과는 달랐다.

     

    ‘기프트 아카데미의 입학생은 모두 내로라하는 세계각국의 인재들과의 경쟁을 돌파한 자들. 순위에서 뒤처질지라도 자질마저 바닥이지는 않지.’

     

    즉, 아카데미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약한 애송이조차도 저 바깥에서 구할 해적들보다 월등히 뛰어난 자질을 지녔다.

    또한 자질이란 같은 방식의 수련과 시험 속에서 모두 같은 속도로 개화하지 않는다.

    방향이 맞는 사람은 누구보다 빠르게 개화하지만 재능이 가리키는 방향과 교육방침이 어긋나는 이들은 그만큼 긴 시행착오를 요구한다.

     

    -해적꼬맹이. 바다에서 살아남고 싶다면 강해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살아남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아직 그녀가 미약한 해적꼬맹이였던 무렵.

    지금의 오크노디보다 나약했던 시절.

    그녀는 한 해적의 굳은 일을 대신 해주는 말단잡부부터 시작해서 해적에게 필요한 모든 지식을 곁눈질로 훔쳐 배웠다.

    만일 그녀가 거기서 안주하고 더 이상의 성장을 포기했다면 평생 변변찮은 해적으로 말단에 머무른 채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끈질기게 버텼다.

    그리고 마침내 전투원이 될 기회를 마주했다.

    자신 대신 총을 다루던 사수가 적의 사격에 당해 쓰러졌을 때.

    빼앗아 쥔 총으로 적을 겨누고 적의 몸에 총탄을 적중시키는 순간, 그녀는 깨달았다.

    이것이 자신의 재능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비로소 ‘올바른 성장방향’을 찾아내었음을.

     

    “잡학다식한 졸개들아. 너희의 진가를 개화할 날이 오늘은 아니다. 하지만 대포를 쏘는 것뿐이라면 부족한 너희의 재능으로도 충분히 할 수 있지!”

     

    대포보다 훨씬 조준이 복잡하고 촉박한 시간 안에 적을 맞추어야 하는 마법조차도 다룰 줄 아는 해적들에게 적을 관측하고 조준하는 행위는 간단했다.

     

    “좌현, 3초 간격으로 대포 3문씩 발포하라!”

     

    귀청이 찢어지는 굉음을 귀마개가 아닌 마나연공법으로 견뎌내며 정확한 지시를 따라 사격을 개시한다.

    지고쿠해적단이 장악한 포대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적의 함선에 적중하였고, 연이어 적선을 난타하며 누더기로 만들었다.

     

    “포신의 열이 올랐습니다!”

    “그럼 마나를 끼얹어서 열을 빼내라!”

    “주변의 포탄이 터지지 않는 선에서 포신에 깃든 열만 빼내는 작업이다. 실수하면 포대 하나를 둘러싼 단원은 모조리 즉시실격이다!”

     

    충분히 긴장될만한 일임에도 지고쿠해적단의 단원들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하, 그 정도야 식은 죽 먹기 아니야?”

    “크루즈선의 괴물 같던 재단간부와 싸우는 것도 아니잖아.”

    “까짓것 실수 좀 해도 실격에 그친다면 개꿀이잖아. 진짜 목숨이 걸린 것만도 못한 시험 따위, 실전을 겪은 우리한텐 아무것도 아니라고!”

     

    주말강의라고 학점경쟁을 피해 포인트를 벌 작정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도전했던 다른 학생들은 지고쿠해적단의 기개에 완전히 압도당했다.

     

    “미, 미친 거 아니야?”

    “시험에서 탈락하면 포인트도 벌 수 없는데!”

    “포신을 냉기마법으로 식히는 것도 아니고 열마법으로 열기만 빼내다니, 그런 무모한 짓을 벌이다니 시험을 망칠 작정인가!?”

     

    하지만 터지지 않았다.

    실제로 아슬아슬하게 조작에 실패할 위기였던 학생의 등에 지고쿠가 손을 얹었다.

     

    “쫄지 마라. 포탄상자까지의 거리를 생각해. 열기조작에 실패해서 주변에 열기가 새어나가도 포탄까지 닿기 전에 날려버리면 그만이야!”

     

    <열기조작>

    <파이어볼>

     

    제어불능의 기운을 마법에 수렴시켜 강제로 바다에 배출한다.

    포신의 재장전속도를 월등히 빠르게 앞당긴 지고쿠해적단의 포는 적 함대의 포대보다 더욱 빠르게 포격을 재개하였다.

     

    쾅! 쾅!

     

    “해냈다.”

    “놈들의 포대를 터뜨렸어.”

    “백병전에 돌입하기 전에 얻는 포인트는 우리의 압승이다.”

    “이얏호!”

    “지고쿠 해적단 만세!”

    “만세!”

     

    부족한 재능의 애송이들이 경험을 쌓으며 자신의 재능을 개화시키기까지 버틸 마음의 여유를 얻는다.

    불리하면 달아나고 공적만 노리며 비겁하게 굴어도 상관없다.

    지고쿠가 인도하는 길에는 확실한 보상과 성과가, 그리고 버려지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으니까.

     

    “역시 대장은 대단해.”

    “지고쿠해적단에 들어오기를 잘했어!”

     

    지고쿠해적단은 분명한 우위를 점했다.

     

    “응? 배가 왜 적선으로 향하고 있지?”

    “교관님, 조타 좀 똑바로 해봐요!”

     

    선내에 명백한 이변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지고쿠가 즉시 부하 둘을 콕 짚어 부르며 나섰다.

     

    “낸시. 브로도. 두 사람은 날 따라와라. 포격 각도를 확보하지 않으면 아무리 뛰어난 포격술을 지녀도 공적을 세울 기회가 찾아오지 않아.”

     

    감쪽같이 일어난 이변이다.

    수월하게 공훈을 세우도록 허락하지 않고 변수를 만들어내겠다는 교수의 의지가 느껴졌다.

    포격에 그리 자신이 있다면 다음은 조타도 해내보라고 학생들에게 기회를 넘긴 것이겠지.

     

    푸쉬이이이…

     

    조타사가 배를 몰아야 할 함교 내에서는 새하얀 연기가 쉼 없이 빠져나왔다.

    지고쿠는 즉시 손수건을 꺼내 럼주를 부었다.

     

    “성분불명의 가스가 내부에 찼다. 안에서 신음소리가 들리니 즉사성질의 유독물질은 아니야. 대신 폭발의 우려가 있으니 마력반응을 일으키지 말고 코와 입을 가린 채로 내부에 돌입한다.”

     

    선실 내부에 들어서자 벽에 기대어 쓰러진 교관과 바닥을 구르는 교관이 각각 한 명씩 보였다.

     

    “끄으으…”

    “으으으…”

     

    앓는 소리를 내는 두 교관의 신체를 빠르게 짚고 관찰하며 상태를 확인해낸 단원들.

     

    “타격입니다! 턱이 돌아갔어요.”

    “단도에 옆구리를 한 번 찔렸습니다. 자세가 무너지자마자 방호마법을 펼쳐 선반이 구겨진 자국이 남아있지만 그조차도 일격에 파괴하고 심장 위를 손바닥으로 내리친 자국이 남아있습니다.”

    “크기는?”

    “상당히 작습니다. 어린아이의 손바닥처럼.”

    “어린아이…?”

     

    이런 배 위에서 어린아이라니.

    지고쿠는 오싹함을 느꼈다.

     

    “당장 쓰러진 교관들을 방패로 삼아!”

     

    이런 짓을 저지를 수 있는 어린아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지고쿠의 경고가 떨어지기 무섭게 함교 내의 캐비넷 뚜껑이 뻥 날아가며 단원 한 명을 덮쳤다.

     

    “꺅!”

     

    교관을 방패로 삼고도 뚜껑에 실린 힘을 다 견디지 못하고 나가떨어진 단원.

    다른 단원 한 명이 재빨리 가루가 잔뜩 든 주머니를 던지며 이를 터뜨렸다.

     

    <마비가루>

     

    가스와는 다른 성질을 지닌 마비가루.

    사방에 가스가 가득한 환경에서라면 마비가루가 확산되는 속도도 더욱 빠르리라.

    단원이 짧은 생각으로 기뻐할 때에 지고쿠는 전속력으로 단원을 향해 달려갔다.

     

    “숙여!”

    “허억!?”

     

    마비가루의 영향을 조금도 받지 않았다는 것처럼 멀쩡하게 달려드는 그림자.

    2m30cm는 가뿐히 넘어갈 커다란 크기에 순간적으로 압도되어 몸이 얼어붙은 단원과 달리, 지고쿠는 기초마법 <라이트>로 역광을 내어 그림자를 크게 드리우고 <미러>마법으로 방향을 착각시키는 눈속임에 속지 않았다.

     

    쾅!

     

    포탄이 터질 때의 화력에 맞먹는 강력한 발차기가 포탄을 맞아도 멀쩡할 함교의 벽을 터뜨리며 연기를 일시에 외부로 배출시켰다.

    개방된 실내, 불시의 기습을 저지른 자의 정체가 마침내 또렷이 드러났다.

     

    “오크노디. 장난이 지나치지 않아?”

    “장난이라니요. 저도 진심이라구요?”

    “이런 짓을 해서 무슨 득을 보는데?”

    “해적의 꽃은 역시 선상반란! 교관들을 상대로 해적선의 간부직위를 힘으로 탈취하면 도전과제 보너스를 받을 수 있거든요!”

    “갸하핫! 역시 넌 훌륭한 해적감이야. 그래도 우리 해적단이 공적을 세우는 걸 방해하겠다면 적이 되어도 원망은 않겠지?”

    “히히. 그래도 이미 늦었어요.”

     

    빠각.

    오크노디의 손이 꺾어버린 물체의 정체를 알아차린 단원들이 경악하며 소리쳤다.

     

    “타륜이 부러졌습니다!”

    “크윽, 진행방향은… 저, 적선이 있는 방향입니다!”

     

    이 배는 강제로 적의 선박과 충돌한다.

     

    “그렇게 악착같이 포인트를 모아서 뭘 하게?”

    “사실 포인트는 그다지 필요하지 않아요. 이미 충분히 많이 있거든요!”

    “그러면 뭘 위해서 이런 짓을 한 건데?”

    “그건, 음…”

     

    오크노디가 무언가 말하기 곤란한 표정을 짓다가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재미를 위해서?”

    “…!”

     

    이 아이.

    모두의 성적이 걸린 시험에서도 그저 재미 하나만을 위해서 배에 탄 모든 학생들의 성적을 나락으로 보낼 일을 저지르겠다는 말인가?

    상상을 초월하는 잔인한 대답에 지고쿠는 눈앞의 존재를 체구에 걸맞은 어린아이가 아니라 잔인함으로 악명 높은 대해적들에 비추어보았다.

     

     

    * * *

     

     

    휴학생 전용구역에 침투한다고 대놓고 말해서 교수한테 공범으로 오해 받아 징계 받을 껀덕지를 만들면 지고쿠도 손해를 보겠지.

    후환까지 고려해서 지고쿠를 배려해준 나, 너무 친절하고 착해!

    이 정도면 분명 <착한아이>도 오르겠지?

     

    [당신의 순수악적인 기질에 교관들과 학생들, 지고쿠가 경악했습니다.]

    [공포유발 경험치+3]

    [무서운아이 경험치+1]

     

    너무해.

    지금 건 분명 착한아이 감이라고 생각했는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착?한아이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