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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03

       

       

       

       

       

       

       한 사내가 어둡게 물들어있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밤하늘처럼 보이지만, 지금은 정오를 막 넘었을 대낮이었고.

       그걸 볼 때 저 하늘이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란 걸 볼 수 있었다.

       

       사내가 그런 하늘을 보며 무덤덤하게 고개를 올리고 있을 때.

       

       쿵-! 쿵-!

       

       거대한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는게 귓가에 스친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을 즈음. 사내는 느낄 수 있었다.

       

       저 멀리서 누군가 사내를 향해 다가오고 있음을 말이다.

       

       묵직한 인기척을 느낀 사내가 이내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시선을 옮긴다.

       

       그곳에는.

       

       그드드득-!

       

       대충 봐도 작은 언덕만 한 크기의 마물을 한 손으로 끌고 누군가 다가오고 있었다. 마물은 이미 죽음에 이른 상태다.

       

       몸 여기저기 움푹 파이고 피부를 뚫고 뼈가 튀어나와 있는 것이, 상당히 난폭하게 당한 모습이다.

       

       마물을 저 지경이 되게 한 것이 무엇인가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사내의 시선이 마물을 끌고 오는 이에게 향했다.

       

       짙은 녹색 머리칼에 비스듬히 올라간 입꼬리.

       거대한 육체와 턱에 묻은 피가 이상하리만치 어울리는 광기에 젖은 남자.

       

       그는 중원의 이들에게 녹왕이라 불리는 인물이었다.

       녹왕을 바라보던 사내가 묻는다.

       

       [당 대주. 이게 뭐 하는 짓이지?]

       [아, 대주. 오랜만이오.]

       

       씩 웃으며 대답하는 녹왕을 보며, 사내가 인상을 찌푸린다.

       

       [이건 선물. 하도 날뛴다는 놈이 있기에 가는 길에 드셔보라고 잡아 왔소만.]

       […]

       

       녹왕의 말에 사내가 손을 휘젓는다. 

       그 순간. 

       

       화르르륵-!

       

       녹왕이 잡고 있던 마물이 순식간에 검은 불꽃에 뒤덮여 타오르기 시작했다.

       

       [쯧.]

       

       그걸 확인한 녹왕은 혀를 짧게 차고서 주먹을 마물로 향해 짤막하게 뻗어내는데.

       

       팡-!

       

       콰득- ! 후우우우웅-!

       

       주먹에서 터져 나온 풍압이 불꽃에 뒤덮인 마물을 흔적도 없이 지워버린다.

       

       잿더미만 남아있었다지만, 가공할 만한 권기였다.

       

       [거, 기껏 가져왔더니 사람 성의를 개 무시하시는구먼.]

       [용건.]

       [낄낄…. 하여튼 재미없는 인간이야.]

       

       녹왕의 말에도 사내는 별다른 반응을 내비치지 않고 있었다. 

       그저 덤덤한 자색 눈동자로 녹왕을 바라볼 뿐이다.

       

       그걸 가만히 지켜보던 녹왕이 끝내 콧바람을 내쉬고는 말을 꺼내든다.

       

       [천라흑망대가 괴멸했다는 소식은 들었소?]

       

       녹왕의 말에 사내의 눈동자에 이채가 감돈다.

       

       사내 또한 알고 있는 소식이었다. 천마 직속 부대중 하나인 천라흑망대.

       나름의 전력중 하나라는 부대가 한순간에 괴멸했다고 하였지.

       

       [그것도 한 놈의 손에 말이오.]

       

       팽가의 괴물이라 불리는 고수.

       도제(刀帝) 팽우진의 손에 말이다.

       

       [신기하지 않소? 나는 그 노인네가 고작 그런 인물에게 질 거라곤 상상을 못 하였거늘.]

       [내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지. 당 대주.]

       [아니, 그냥 신기하다 이 말이지.]

       

       낄낄 웃으며 녹왕은 계속 말을 언급하고 있지만, 사내는 그 모습이 영 거슬리는 느낌이었다.

       

       [누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어서 말이오.]

       […]

       

       녹왕의 말에 사내가 고개를 갸웃거리고선 몸을 일으킨다.

       그때.

       

       쿠구구궁-! 

       

       검게 물들어있던 하늘에 굉장한 울림이 이르기 시작했다. 마치 성이라도 난 듯 검은 열기가 점차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게냐.]

       [글쎄.]

       [필두마(必唗魔)의 죽음에 본 대주가 관련되어 있다. 그리 말하고 싶은가 녹왕.]

        

       녹왕의 말인즉슨, 천라흑망대의 대주. 필두마가 팽우진에게 사망한 것에 대해 사내가 관련되어 있지 않냐는 의심을 보내고 있다는 뜻이었다.

       

       [뭐 꼭 그런 말은 아닌데…. 혹 찔리시오?]

       […같잖구나.]

       

       뚜두둑. 

       

       사내의 몸에서 거친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움직임을 보면서 녹왕의 눈은 점차 광기로 물들어 간다.

       

       [녹왕.]

       [말하시오.]

       [본 대주의 자리가 탐난다. 그리 말하고 다닌다고 하던데. 맞나?]

       

       사내의 말에 녹왕의 미소가 짙어진다.

       

       [어떤 입 싼 놈이 그걸 말하고 다닌 거요?]

       

       맞다는 말이었다. 

       

       녹왕은 사내의 자리를 탐내고 있었다. 

       그걸 들은 사내가 옅게 한숨을 뱉어낸다.

       

       […교주께서 쓸데없는 일은 자중하라 하셨기에. 네 하찮은 욕망을 눈감아 주고 있었거늘.]

       

       천마 직속 휘하에는 총 네 개의 부대가 있다.

       

       녹왕은 그중 한 부대의 대주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 말인즉슨, 마교내에서 상당히 높은 위치에 있는 마인이라는 말이었으나.

       녹왕은 이에 대해 만족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의 주인이자 하늘인 천마의 자리는 올려다보지 못할 일이지만.

       적어도 그 바로 아래까진 올라가야 성이 풀리기 마련이다.

       

       그런 입장에서 저 사내는 녹왕에게는 하나의 걸림돌이었다.

       

       마교에는 천마 아래로 총 네 개의 부대가 있다 하였지.

       

       하나하나가 보기만 해도 오싹한 고수들로 이루어진 살상 부대였고.

       

       녹왕은 그중 녹의비격대를 이끄는 마인이었다.

       

       천라흑망대.

       귀찰검대.

       녹의비격대.

       

       그리고 마지막 하나.

       

       위 세 부대를 다스리는 본대가 있었으니.

       

       눈앞의 사내는 그 무리의 주인이자.

       

       교주의 바로 아래 있는 사내였다.

       

       사내는 녹왕에게 점차 걸음을 옮겨 다가가기 시작한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사내의 육체에선 이글거리는 열기가 들끓는 게 보인다.

        

       [내 자리를 탐한다라….]

       

       짙은 자색 안광에 머물기 시작하는 건 무슨 감정인가.

       녹왕은 그걸 보며 한없이 무거운 짜증이라 판단했다.

       

       사내는 그런 시선을 담아 녹왕에게 말했다.

       

       [네까짓 게?]

       

       묵직함 음율을 들은 녹왕의 몸에 투기가 휘감긴다.

       

       육체의 크기는 거의 머리 두 개쯤은 차이가 보이는 상태지만.

       존재감으로 하여금 사내는 절대 녹왕에게 밀리지 않고 있었다.

       

       끝내 코앞까지 다가가 서로를 마주한 순간.

       

       사내가 녹왕을 보며 말했다.

       

       [꿇거라. 시선이 너무 높지 않더냐.]

       

       그 말이 기점이었다.

       

       녹왕은 근육을 부풀리며 사내에게 주먹을 휘둘렀으며.

       사내의 몸에서 흑염이 방출되며 사방에 순식간에 흩뿌려졌다.

       

       이후 이 싸움을 끝으로.

       

       녹왕은 한쪽 눈이 산채로 뽑혀나가 외눈이가 되었고.

       

       몇 없는 수풀을 이루던 남쪽의 태산은, 절경의 절반이 날아가며 황무지로 변모하게 되었다.

       

       

       

       

       

       

       ******************

       

       

       

       

       

       거기까지 떠올릴 즈음에, 비로소 정신을 조금 차릴 수 있었다.

       

       …꿈인가.

       하필 잠들기 전에 그놈 생각을 했던 탓일까. 쓸데없는 기억을 꿈으로 떠올려 버렸다.

       

       사천 어딘가 머물고 있다는 녹왕에 대한 기억이었다.

       

       ‘짜증나는군.’

       

       썩 좋은 기억은 아닌지라, 일어나자마자 알게 모를 찝찝함을 느껴야 했다. 

       악몽까진 아니어도 그렇게 좋은 꿈은 또 아니었다.

       

       우선 계속 누워 있을 수는 없으니 몸을 일으키려던 찰나. 

       속삭이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온다.

       

       “…볼을….”

       “아니면….”

       

       잠이 서서히 깨는 느낌이랄까. 

       뭐라고 말하는 것 같기는 한데.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힘이 잘 안 들어가는 육체에 내기를 불어 강제로 깨운 직후.

       

       “끙….”

       

       부스스한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내 인기척에 놀랐는지 주변에서 움찔거리는 느낌이 스친다.

       내가 다시금 눈을 떴을 때 처음 본 것은. 우선 베고 있던 무릎의 주인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분명 남궁비아의 무릎을 베고 자고 있었던 거 같은데.

       

       그 위치에는 어째서인지 위설아가 앉아 있더라. 

       그럼 위설아의 무릎을 베고 자고 있었다는 말인가.

       

       ‘얘…가….’

       

       그러고 보니.

       위설아가 나와 같이 간다고 했던가? 기억이 안 나는 걸 보면 딱히 내게 한 말은 없는 거 같은데….

       

       와중에 어째서인지 피곤함에서 벗어나 지질 않았다. 

       내기까지 돌린 마당에 어떻게 된 일이지.

       

       “공자님…?”

       

       살짝 비틀거리는 날 보자마자 위설아가 놀란 듯 부른다.

       흐릿한 시야가 거슬리나 그 와중에도 위설아의 찬란한 금안은 잘만 보이고 있었다.

       

       “…후.”

       “괜찮으세요…?”

       “너….”

       

       위설아의 걱정스러운 눈을 마주하며 우선 묻고 싶은 말을 물었다.

       

       “…괜찮아?”

       “네?”

       “…같이 가도 괜찮냐고.”

       “아.”

       

       대뜸 묻는 말에 위설아가 당황했는지 눈동자가 흔들린다.

       

       깨어나자마자 묻는 말이라기엔 상당히 갑작스러웠으니 말이다.

       

       “아….”

       

       내 눈을 보며 잠깐 머뭇거리던 위설아는 이내 살짝 웃으며 내게 말했다.

       

       “괜찮아요.”

       

       그 눈웃음이 유독 빛나 보이는 건 잠결에 보이는 착각인가. 아마 아닐 것이다.

       

       “이제…. 그런 건 신경 안 쓰기로 했으니까요.”

       

       위설아는 그렇게 웃으며 내게 말했다.

       그런 위설아를 보며 내가 무언가 말을 꺼내려던 찰나.

       

       -정신 차렸으면 슬슬 나오거라. 언제까지 쉴 생각이냐.

       

       귓가에 들려온 목소리에 눈썹을 찡그려야 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패존이 나를 불렀기 때문이다.

       저 귀신같은 노인네. 계속 날 보고 있던 건가?

       

       -쯧쯧, 일어났으면 파딱파딱 나와야지. 벌써 그리 여색을 밝혀서야. 

       -…안 그래도 나가려고 했습니다.

       -참도 그렇겠구나.

       -…

       

       패존의 비아냥에 한숨을 내뱉고선, 위설아의 머리칼을 살짝 쓰다듬은 뒤 마차문을 열고서 밖으로 나갔다.

       

       시간은 어느덧 밤이 되어 있었다.

       

       아주 조금만 잘 생각이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오래 자버린 거지.

       

       이렇게 잘 거였으면 애들한테 좀 깨워달라 말을 전해놨어야 했는데.

       

       ‘…여긴.’

       

       피곤한 눈을 돌려가며 주변을 살폈다.

       

       처음 보이는 것은 계곡과 자갈밭. 마차들이 대부분 멈춰 있는 거로 보아 이곳에서 하루를 묵을 생각인 것 같았다.

       

       직접 보는 걸로 부족해 기감을 조금 넓히려고 했으나 기감이 내 의도보다 훨씬 더디게 퍼져나가는 게 느껴진다.

       

       ‘뭐지? 이건 또 왜이러는 거야.’

       

       이게 왜 이러나 싶어 살짝 당황할 무렵, 귓가에 패존의 전음이 들려왔다.

       

       -놀라지 말거라,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니.

       -당연한 것이라구요?

       -그래, 강제로 무아지경에 들었던 반동이니라.

       -아.

       

       수련하다 정신을 놓고 움직였던 그때의 일, 이에 대해 패존은 투아파천공이 강제로 무아지경에 이르게 했다고 했었는데.

       

       그때의 반동이란 말인가.

       

       -말했지만, 네가 아직 닿지 말아야 할 곳까지 닿아버린 탓이니라.

       

       아직 그 수준에 닿지 못했으나, 어쩌다 보니 무아지경으로 먼저 발을 디뎠던 탓이라는 말이다.

        

       ‘그 결과로 몸이 피곤하고 기감도 멋대로라는 건가.’

       

       어쩐지 내기를 써서 풀려고 해도 안 풀리더라니,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싼 채로 시선을 옮긴다.

       패존을 찾기 위함이었으나, 기감이 제대로 퍼지지 않아 이걸로는 무리였다.

       이에 결국 패존에게 말을 물어야 했다.

       

       -…어디 계십니까?

       -좌측 숲으로 쭉 들어오거라.

       

       말을 듣고서 걸음을 옮겼다. 

       계곡 뒤편으로 숲이 쫙 펼쳐져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쪽을 말하는 모양이다.

       

       빛이 들지 않는 곳인지라, 손끝에 불을 피워 앞을 밝혔다. 

       

       그럼에도 이상하리만큼 주변은 어두웠다.

       

       이것도 반동의 여파인가 싶었다. 눈이 어두워진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조금 더 들어가니. 어느덧 적당한 평야가 나오며 패존이 중앙에 서 있는 게 보였다.

       

       “왔느냐.”

       “예.”

       “끌끌…. 표정을 보니 죽을 맛인 모양이야.”

       “…나름 버틸만 합니다.”

       

       솔직히 조금 힘들긴 했지만. 수련을 안 할 만큼은 아니었다. 

       

       애써 정신을 되살리며 호흡을 정리하던 때.

       

       “육체만큼은 이제 준비가 된 것 같으니, 슬슬 다음 수련으로 넘어갈까 한다.”

       

       패존의 말에 눈을 번뜩여야 했다. 

       다음 수련이란 말은, 예전부터 패존이 말하던 한 번의 내뻗음으로 향한다는 말이었다.

       

       “나는 준비가 되었다는 생각이 드니, 네게 투아파천무의 일식을 전수할 생각이다. 이에 대해 이의가 있느냐.”

       “없습니다.”

       

       그거 하나 배우겠다고 이토록 굴러다니는 것인데. 알려준다면 당연히 배워야지.

       쉴 시간 따위는 없었다. 사천으로 향하는 시간도 이토록 쪼개서 사용해야 했다.

       

       “좋다. 그럼.”

       

       패존이 어깨를 들썩인다. 

       설마 뭐 설명도 안 하고 바로 알려주려는 것일까?

       

       “그 전에. 네가 해야 할 일이 있다.”

       “할 일이라면…?”

       

       할 일이라?

       

       뜬금없는 말에 패존에게 물음을 건네려던 순간.

       

       서걱-

       

       섬뜩한 소리와 함께 감각에 휩싸였다. 

       

       이게 뭔가 싶을 즈음, 갑자기 내 시야가 뒤틀리기 시작한다.

       멀쩡히 정면을 보던 시선이 갑자기 아래로 쏠리더니 바닥이 보인다.

       

       그리고 가파른 속도로 지면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건 설마 목이 잘린 건가?

       

       비틀거리는 감각과 함께 그대로 머리가 지면과 그대로 충돌하기 직전.

       

       “…허억…!”

       

       갑자기 번뜩하고 정신이 차려졌다. 

       

       즉시 거친 숨을 뱉어내며 손으로 목을 감싸 쥐었다.

       다행히 내 목은 제대로 붙어있었다.

       

       …그럼 방금의 감각은 뭐지?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나오는 와중에 패존의 목소리가 섞여 들어온다.

       

       “전에 말했었지. 네 가장 큰 문제에 대해서 말이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게 문제라 했던가.

       

       몸이 부서지든 말든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분명 이는 장점일 수 있으나 너무 과하다고 했던 기억이 있었다.

       

       “원래라면, 시간을 조금 들여서 비틀린 동작들과 함께 고쳐줄 의향이었으나. 마침 더 적당한 선생이 주변에 있더구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너는 지금 한 번 죽었다. 알고 있느냐.”

       “…!”

       “목이 잘려나갔을 텐데 모를 리가 없겠지.”

       

       방금의 감각은, 패존이 의도한 상황이라는 말인가, 그렇다면 환각같은 것이었나?

       그도 아니라면 진법?

       

       대체 무슨 상황인지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고 있으니 패존의 뒤로 누군가 나타난다.

       

       그를 보며 나는 속으로 헛숨을 잔뜩 삼켜야 했다.

       정체는 바로 암왕이었다. 

       

       저 인간이 여기서 왜 튀어나오나 싶어 한껏 당황을 머금을 무렵.

       

       패존은 내 반응을 보며 말을 이어간다.

       

       “이런 방법까진 안 쓰려 했으나, 내 예상보다 네가 더 뛰어난 것 같아 욕심이 나더구나.”

       “…어르신?”

       “이왕 제자를 키우기로 했다면. 완벽해야지. 누구도 아닌 이 패존의 제자이니 말이다.”

       “그것과 암왕께서 여기 계신 게 연관이 있는지요….”

       “그럼, 당연히 있지. 이 친구가 네 수련을 도와줄 테니까.”

       

       암왕이 내 수련을 도와줄 거라고? 이게 무슨 쌩뚱맞은 말인가 싶었다.

       

       내가 한껏 인상을 찌푸린 채 패존에게 설명을 요구하지만.

       

       그는 그저 방긋 웃으며 내게 말할 뿐이다.

       

       “네가 해야 할 일은 딱 하나다. 달이 떠오를 때부터 해가 뜨기 전까지. 한 번이라도 이 친구를 붙잡으면 되느니라.”

       

       패존의 말을 듣자마자 어처구니가 없었다.

       

       “암왕을 말입니까…?”

       “그래, 기한은 네가 성공할 때까지 매일이다.”

       

       암왕을 붙잡으라고? 

       그것도 이 야밤에? 

       

       “그냥은 힘들 터이니…. 이 친구는 대신 네게 끊임없이 접근할 것이야.”

       ‘기회는 준다는 말인가.’

       

       그렇다고 해도 영 시원찮은 느낌이었다. 

       

       그냥 바로 투아파천무의 수련을 시작하길 바랐거늘.

       웬 쌩뚱맞은 술래잡기를 하라고 하니 이해가 안 될 수밖에.

       

       이런 괴상한 행동에 대해 암왕 또한 수긍한 건가.

       

       …그렇겠지. 

       수긍했으니 대뜸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겠지.

       

       까라면 까야하는 상황인 만큼, 이 나이 먹고 술래잡기를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것도 살수의 왕이라는 암왕과 말이다.

       

       ‘그럼, 직전에 내가 봤던 환영은 뭐지.’

       

       내 목이 떨어지던 환영, 그건 환영이라 말하기에는 너무나 실감 나는 감각이었다.

       패존은 이에 대해 분명 의도된 상황이라 하였는데.

       

       뭔가가 더 있다는 말인가.

       계속해서 의문을 떠올릴 때. 패존은 살짝 걸음을 옮겨가며 말을 뱉어냈다.

       

       “그럼 고생하거라. 가능한 빨리해내길 바란다. 네게 알려줘야 할 것이 많이 남아있으니 말이다.”

       “이대로 가십니까?”

       “알려줄 걸 다 알려줬으니, 남은 건 네가 해내는 것뿐이다.” 

       

       진짜 이대로 간다고? 

       내가 떠나가는 패존을 멍한 표정으로 보고 있으니.

       

        패존은 고개를 돌려날 바라보았다.

       

       “아. 가장 중요한 부탁이 있거늘, 이걸 안 말했구나.”

       “예?”

       “부디 무너지지 말거라.”

       “그게 뭔….”

       

       계속 이상한 말을 뱉어대는 탓에. 제대로 설명을 해달라며 패존을 붙잡으려고 했지만.

       

       나는 그 뒷말을 뱉어낼 수 없었다.

       

       푹-.

       

       무언가 내 심장을 찔러 들어왔기 때문이다. 

       

       “…!”

       

       고통은 없었다. 

       울컥 올라오는 핏물과 아득해지는 정신.

       

       그 와중에도 나는 내 심장에 단도를 찔러넣은 이를 확인했다.

       

       그곳에는 서늘한 눈으로 날 바라보는 암왕이 서있었다.

       

       

       

       

       

       ******************

       

       

       

       

       히이잉-!

       

       초승달이 떠있는 야밤, 말 한 마리가 쉼 없이 길을 뚫고 뛰어가고 있다.

       

       어딜 그리 급하게 가는지, 뒤편에 있는 마차가 미친 듯이 흔들리고 있다.

       

       “우욱….”

       

       마차 안의 아름다운 여인은 흔들림을 견딜 수 없는지, 창을 잡고 고운 손으로 제 입을 막기 바쁘다. 얼마나 심각한지 피부가 하얗다못해 파랗게 질려있는 게 보인다.

       

       이토록 거친 마차는 처음 타본 탓일까.

       모용희아는 속이 울렁거려 참을 수가 없었다.

       

       “속…속도 좀 줄여주…. 욱….”

       

       처량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로 모용희아가 부탁을 건네지만, 속도는 오히려 더 높아질 뿐이었다.

       

       ‘죽을 것 같아…!’

       

       모용희아는 머릿속에 스쳐가는 생각이 모두 주마등이 아닐까 싶었다.

       이대로 죽어도 이상할 게 없었기 때문이다.

       

       와중에도 떠오르는 생각이 몇 없는 추억보단 한 남자의 얼굴이라는 게 스스로도 우스웠다.

       모용희아는 눈을 질끈 감은 채 떠오르는 남자에게 말을 전한다.

       

       ‘…공자님…전 여기까진가 봐요.’

       

       천천히 무너지는 모용희아. 

       그녀에게 마차를 몰던 마부가 신이 난 목소리로 말을 걸기 시작했다.

       

       “조카! 창밖 좀 봐봐. 오늘 달이 예뻐!”

       “고, 고모님…속…속도….”

       “응? 뭐라구? 더 빨리 가자구? 우리 조카 보기보다 즐길 줄 아는구나!”

       “아….”

       

       조카의 부탁 때문일까, 말을 몰던 여인이 활짝 웃으며 속도를 더 높인다. 

       

       이에 모용희아가 견디지 못하겠는지 끝내 정신을 잃게 되었지만.

       여인은 그걸 발견하지 못한 채 박차를 더 가할 뿐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_ 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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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FZ,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Under the Heavens, The Zenith's Childhood Friend, 천하제일인의 소꿉친구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 Artist: Released: 2021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struggling meaninglessly, he acknowledged his 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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