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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03

       가을 바다도 좋다.

        

       여름 바다도 물론 나쁘지 않다.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바닷물에 풍덩 들어가 몸을 식히는 것은 꽤 재미있다.

        

       친한 친구들과 함께 가서 물도 튀기고, 친구도 물어 던지고 하는 건 꽤 즐거운 일이다. 물론 옷 여기저기에 모래가 잔뜩 들어가고 자칫 잘못하면 푹 젖은 채 차에 타게 되지만.

        

       나이 먹을수록 그렇게 물에 들어가는 과정을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물에 들어가면 몸이 더 지치기도 하고, 무엇보다 옷을 갈아입거나 다시 샤워하거나 하는 것이 별로 달갑지 않았기 때문이다.

        

       몸이 이렇게 젊어졌으니 지치지야 않겠지만, 젊어졌다고 몸이 방수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이곳이 여름 바다였다면 이렇게 느긋하게 앉아서 ‘힐링’하는 시간은 거의 없었을 거다.

        

       클레어가 가만히 있었겠냐고.

        

       바다가 차가운 계절이니 그나마 이렇게—

        

       탱—!

        

       “으꺅!?”

        

       갑자기 머리 위에서 그런 소리가 들려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비치볼이 내 머리에 튕기는 소리였다.

        

       “언니, 거기서 뭐 하고 있어?”

        

       아무래도 해변에서 애들이 가지고 놀던 비치볼이 내 머리에 맞고 튕긴 모양이다.

        

       “그게 무슨……?”

        

       “어차피 저녁 식사 때까지는 시간 한참 남았잖아. 아까 휴게소에서 잔뜩 먹었으니, 점심은 굶고 속을 비워놔야지!”

        

       “으으…… 저도 조금 전의 실비아처럼 저렇게 앉아서 쉬고 싶은데요.”

        

       “바다까지 와서 모래사장을 즐기지 않을 수는 없잖아?”

        

       휴식을 주장하는 미아를 매우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며 클레어가 말했다.

        

       “미아까지 하면 딱 네 사람이지 않습니까? 그대로 팀을 나누어서 게임을 하는 것은 어떨까요? 저는 여기서 심판을 보겠습니다.”

        

       “언니, 그게 무슨 소리야?”

        

       나의 주장에 어이없다는 듯 클레어가 말했다.

        

       “맞아요! 자기 혼자만 빠지려고 하고!”

        

       내가 멋대로 에너지 넘치는 외향형 십 대 소녀들의 사이에 밀어 넣어버려서 그런 건지, 미아가 보기 드물게 그렇게 대놓고 항의했다.

        

       “맞아, 미아, 말 잘했네. 언니, 혼자 빠지면 곤란해. 미아는 전력이 되지 않는단 말이야. 그리고 언니 움직이는 것을 보면 언니도 저쪽에 있는 앨리스냐 샤를로트만 못할 거고.”

        

       “맞아요! 그러니까— 네?”

        

       클레어의 냉혹한 평가에 미아도 동의하다가, 조금 얼빠진 표정으로 클레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니까 언니가 끼어야 미아랑 함께 두 사람이 일인 분이란 말이야.”

        

       “…….”

        

       클레어.

        

       언니라고 친근하게 부르는 주제에 평가는 정말 냉철하구나.

        

       “……알겠습니다.”

        

       클레어에게는 한없이 팩트에 가까운 말이었겠지만, 나는 그 말을 그냥 흘려들을 수는 없었다.

        

       아무리 피가 섞이지 않았지만 나는 꽤 오랜 기간을 ‘팬그리폰’으로 자랐다. 이런 식의 도발은 그냥 넘길 수 없다.

        

       “상대는 앨리스와 샤를로트인가요. 세 사람의 머릿수가 절대로 얕볼만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려드리죠.”

        

       나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언니, 걱정하지 마. 어차피 이길 거라는 생각으로 한 건 아니잖아. 그냥 재미로 한 거고.”

        

       “…….”

        

       우리 팀에서 유일하게 점수를 낸 사람이 저렇게 말하니까 뭔가 더 억울했다.

        

       “세 사람이라는 머릿수가 절대로 얕볼만한 것이 아니라고? 누가 그런 말을 해?”

        

       옆에서 앨리스가 자꾸 내 자존심을 긁어댔다.

        

       “너무 그러지 마세요, 알리스. 실비아는 원래 총기를 다루는 게 전문이니까요. 근접전 실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죠.”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샤를로트의 눈도 명백하게 나를 놀리는 눈이었다.

        

       분하다.

        

       진짜로 분했다.

        

       “샤를로트, 혹시 제게 쌓인 것이 많습니까?”

        

       “앨리스에게는 쌓인 것이 있는지 물어보지도 않는 건가요?”

        

       그야 앨리스는 나에게 쌓인 것이 많겠지. 어린 시절부터 뭔가 경쟁해서 확실하게 이겼던 적이 거의 없으니까.

        

       물론 그건 내가 시간을 몇 번이나 돌려서 최적의 결괏값만을 도출해냈기 때문이다. 내가 잘나서 할 수 있었던 일은 아니었다.

        

       젠장, 근처에 사격장이라도 있으면 내가 1등 할 자신 있는데.

        

       나중에 번화가로 놀러 갈 일 있다면 반드시 에어건 사격장을 찾아가야겠다. 그곳에서 셀 수 없이 반복 숙달한 나의 사격술을 보여주겠어.

        

       “……정말 너무 그렇게 분해할 필요 없습니다. 미아는 어딘가 개운한 표정이잖아요?”

        

       개운한 게 아니라 방전된 거겠지.

        

       내가 누워있던, 등받이가 한껏 뒤로 젖혀져 있는 접이식 의자에 미아가 거의 반건조 오징어처럼 대충 걸쳐져 있었다.

        

       뭐 저 표정이 모든 것을 토해낸 자의 개운한 표정이라면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만, 엄밀히 따지자면 저건 해탈이라기보다는 정말로 죽음의 위기 앞에서 모든 것을 놓아버린 체념의 표정에 더 가까웠다.

        

       “두 사람은 확실히 운동 강도를 더 높일 필요가 있어.”

        

       “저는 이미 충분히 운동 중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여러분과 함께 그렇게 많이 먹는데도 체중은 그대로인 걸 아십니까?”

        

       “그게 문제라는 거지. 먹은 것이 근육이 되지 않았다는 소리잖아.”

        

       아니, 나는 헬창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거든.

        

       클레어의 말을 반쯤 흘려들으며, 나는 배를 쓰다듬었다.

        

       음, 그래도 뛰어다닌 게 잘한 것 같긴 하다.

        

       만약 먹은 직후에 이렇게 격한 운동을 시켰다면 먹은 것들을 그대로 게워냈겠지만, 휴게소에 들려 잔뜩 먹은 뒤에도 차를 한참 타고 있었기에 위장이 충분히 음식을 아래로 내려보낼 시간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열심히 뛰어다니기까지 했으니 속이 많이 비워졌다.

        

       뭔가를 더 넣기에는 딱 좋았다.

        

       “아, 잠깐, 잠깐.”

        

       클레어는 그렇게 말하더니, 우리가 테이블 위에 잠깐 올려두었던 카메라를 다시 들었다.

        

       셀카 찍는 자세를 취한 채 카메라 화각 안에 우리를 모두 넣었다. 카메라의 LCD는 회전식이었기에 우리도 우리가 화면에 다 들어갔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스마트폰보다는 훨씬 작은 화면이긴 했지만.

        

       “…….”

        

       우리 모두 화면을 보고 각자 자세를 잡았다.

        

       “…….”

        

       “……아, 이거 동영상이었네.”

        

       클레어가 뒤늦게 깨달았다는 듯 그렇게 말했다.

        

       앨리스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 상관없지 않습니까? 동영상도 분명 추억이 될 겁니다. 물론 오랫동안 보관하지는 못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몇 가지 생각은 해두었다. 태양열 발전기까지는 너무 갔다고 해도, 손으로 누르거나 돌려서 충전하는 충전기를 사다가 저쪽으로 넘어가 증기기관으로 돌리는 방법을 알아낼 수는 없을까, 그런 생각.

        

       가장 큰 목적은 영상 같은 것을 오랫동안 보는 것이지만, 그래도 그걸 연구하는 과정에서 힌트를 얻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어차피 현대의 전력 생산은 결국 물 끓여서 터빈 돌리는 거니까.

        

       “마침 영상 올려달라는 사람도 있었고.”

        

       클레어는 녹화를 마치며 말했다.

        

       “자, 그럼!”

        

       그리고 뒤로 휙 돌아서더니,

        

       “그럼 지금부터 바베큐 파티 준비하자!”

        

       “바베큐!”

        

       그때까지 늘어져 있던 미아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벌써? 아직 해가 지지도 않았는데.”

        

       앨리스가 물어보자, 클레어는 손가락을 세워 흔들었다.

        

       “뭘 모르는 소리를 하네. 원래 바베큐 파티는 그냥 한 끼 때우려는 게 아냐. 몇 시간이고 고기를 느긋하게 구워 먹고, 고기를 다 먹고 나면 다른 것도 다 열심히 구워 먹은 다음에 그 잔불을 가운데 두고 모여앉아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까지가 파티라고. 그리고 원래 노을 졌을 때 사진을 찍어야 제일 예쁘게 나오는 법이야.”

        

       클레어, 공부 정말 많이 했구나.

        

       그리고 텐트를 살 때부터 ‘감성 텐트’ 같은 것을 검색하던 앨리스도 그 말에 혹한 모양이었다.

        

       “그래? 그럼 지금부터 준비할까?”

        

       두 사람이 그렇게 결정하는 걸 보고, 나, 샤를로트, 미아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쓰게 웃었다.

        

       뭐, 좋은 게 좋은 거니까.

        

       *

        

       지글지글, 돼지고기가 숯불 위에서 잘 익어갔다.

        

       사실 텐트장에서 빌려주는 물건도 있었지만, 우리는 굳이 바베큐용 그릴을 따로 샀다. 원래 이런 곳에서 빌려주는 물건은 뭐랄까, 사진이 예쁘게 나오지 않는 물건이 대부분이었으니까.

        

       뭐, 진심을 말하자면 그냥 돈이 있으니 쓴 것도 있다. 신나서 물건을 고르는 클레어와 앨리스에게 ‘굳이 그것까지 살 필요는 없어’라고 말하는 것은 조금 미안했다.

        

       차에 실어 온 그릴을 펼치고, 불붙인 숯을 넣었다. 그리고 그릴 위에 고기를 하나하나 올려놓았다.

        

       클레어가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고기 한 줄을 뒤집자,

        

       “와!”

        

       둘러싸고 서 있는 모두가 저도 모르게 감탄할 만큼 잘 익은 고기의 단면이 보였다.

        

       먹음직한 갈색으로 익은 고기 위에, 마름모꼴의 그릴이 닿아있던 부분만 살짝 그을린 것 같이 자국이 나 있었다. 그게 식욕을 무지 자극했다.

        

       “삼겹살이라고 했나? 저쪽에 가서도 생각날 것 같아.”

        

       “역시 그렇지? 한번 정육업자들한테 말해볼까.”

        

       앨리스와 클레어가 그렇게 대화를 나누었다.

        

       “저는 여전히 제 나라의 음식이 저의 입에 더 잘 맞습니다만, 가끔은 이런 식으로 외국식으로 구워진 고기를 먹는 것도 나쁘지 않겠죠.”

        

       샤를로트는 웃으며 말했다.

        

       지글지글 이어지는 고기 냄새를 한껏 맡으며, 우리는 붉게 물든 노을 아래서 왁자지껄 신나게 떠들었다.

       

       이 순간만큼은 왕녀도, 황녀도, 귀족 영애도 아닌, 그냥 10대 소녀처럼.

       

       ……어, 난 아니던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암컷천마 님,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시 한 번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나 저의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님들 덕분에 매일 지치지 않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남들이 읽어주지 않는 글을 혼자서 붙잡고 있는 것만큼 힘든 일도 없죠. 여러분이 계시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저이기에 여러분의 관심이 그만큼 더 소중하게 생각됩니다. 저의 글을 읽으시는 시간이, 후에 다시 떠올려봤을 때 추억으로 느껴질 수 있도록, 저의 다른 글도 읽어보실 수 있도록 언제나 여기서 꾸준히 글을 써나가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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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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