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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03

       ‘백우진’과 육체를 공유하기 시작한 지 어느덧 칠 일째.

         

       어김없이 함께인 그와 그녀들의 모습을 무의식 속에서 지켜보던 그는 아릿한 고통을 느꼈다.

         

       무언가가 강제로 뜯겨 나가는 듯한 느낌.

         

       고통을 느낀 순간, 그는 곧장 알아차렸다.

         

       ‘시작된 건가.’

         

       이것이 바로 장삼이 경고했던 영혼의 마모라는 것을.

         

       이름 그대로였다.

         

       살점도, 근육도, 뼈가 뜯겨져 나갔을 때도 이런 기분은 아니었다.

         

       그야말로 ‘나’라는 인간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무언가가 뜯겨 나가는 듯한 감각.

         

       ‘크으…!’

         

       그것은 산전수전 다 겪으며 온갖 고통에 익숙해진 그조차도 참을 수 없는 통증이었으니.

         

       -무슨 일이야?

         

       무언가 낌새를 느낀 ‘백우진’이 묻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 일도 아니야.’

         

       고통을 느끼고 나니 알겠다.

         

       영혼의 마모라는 것이 어떤 느낌이고, 또 무엇으로 인해 진행되는지.

         

       육체의 주도권을 잃은 그는 반쯤은 육신 없는 영혼이나 다름없는 상태.

         

       그로 인해 영기(靈氣)에 민감해진 눈에 보이지 않아야 할 무언가가 보였다.

         

       하나의 영혼만이 허락된 육신에 욱여넣은 두 영혼.

         

       그 접점에 날카롭게 세워져 있는 본능이란 칼날이 자신을 찌르고 있는 모습이.

         

       ‘…날카롭다.’

         

       ‘백우진’의 영혼에 돋아난, 본능이 형상화한 칼날은 지금까지 제 몸을 찌르고 들어온 그 어떤 칼날보다도 날카롭고, 예리하다.

         

       ‘반대로 내 것은 좀 뭉툭한데.’

         

       더없이 날카로운 ‘백우진’의 것과 달리, 그의 것은 끝이 조금 뭉툭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대충 이유를 알 듯했다.

         

       오랫동안 육신을 잃고 방황한 만큼 육체를 얻고자 하는 본성이 더욱 강렬하게 드러난 것 아닐까.

         

       ‘이 상태라면….’

         

       제 뭉툭한 본성이 ‘백우진’의 영혼을 찌르고 들어가려면 열흘로는 부족할 듯싶다.

         

       그는 최대한 제 눈에 보이는 본성을 억눌렀다.

         

       얼마 남지 않은 그가 고통 속에 떠나지 않게끔.

         

       ‘끄윽…!’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억지로 참아내며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 * *

         

         

       시간이 흐를수록 유화연과 신예화의 감정은 차츰 안정되기 시작했다.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연모하던 이의 죽음을.

         

       그리고 그가 자신들의 죽음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백우진’의 품에 살포시 안겨 있던 유화연이 물었다.

         

       “가가…, 이제 얼마나 남으셨나요.”

         

       시간이 흐를수록 안정되어가는 자신과 달리, ‘백우진’의 눈에는 초조함이 깃들었다.

         

       ‘백우진’은 눈을 질끈 감으며 대답했다.

         

       “…하루.”

         

       오늘로 구 일째.

         

       약속했던 열흘까지 단 하루만을 남겨두었다.

         

       “아….”

         

       예상보다 훨씬 더 적게 남은 시간에 그녀의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렸다.

         

       ‘오늘이 지나면 다시는 볼 수 없는 거구나….’

         

       가슴이 크게 울렁거린다.

         

       그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생각만으로 누군가 심장을 손으로 꽉 쥐어짜는 것처럼 고통스럽다.

         

       무릎을 꿇고서라도 애원하고 싶다.

         

       가지 말아 달라고, 조금만 더 곁에 머물렀다 가라고.

         

       그러나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

         

       ‘가가도, 그도 힘들겠지.’

         

       시간이 정해져 있음은 머무르는 데에 제약이 있다는 뜻일 터.

         

       그리고 그 제약을 어김으로써 발생할 피해는 ‘백우진’과 그, 양쪽 모두에게 돌아가겠지.

         

       그렇기에 그녀는 떼쓸 수 없었다.

         

       이미 한 차례 제 욕심으로 떠나보냈는데,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떻게든 고통을 참아내려 애쓰던 그때.

         

       “우, 우진아. 조금만 더…!”

         

       신예화가 유화연이 차마 할 수 없었던 말을 입에 담으려 했다.

         

       “신 소저!”

       “히끅…!”

         

       그래서 막았다.

         

       큰 소리로 호통치고, 강렬한 시선으로 그녀에게 경고했다.

         

       그러지 말라고, 약속을 지키라고.

         

       “미, 미안….”

         

       어젯밤.

         

       ‘백우진’이 잠든 사이 만난 두 사람은 약속했다.

         

       어리석은 미련 때문에 그의 발목을 붙잡지 말자고.

         

       당신과 나.

         

       이후의 고통은 온전히 둘이서 감내하자고.

         

       그래야만 한다고.

         

       그리고 한 가지 더 약속했다.

         

       자기들이 원하는 말을 내뱉기보다, 상대가 원하는 말을 들어주고, 이뤄주자고.

         

       “떠나기 전에 이루고 싶은 소원 같은 건 없으신가요.”

         

       흘러나오는 슬픔을 애써 억누르며 무덤덤한 표정과 말투로 묻는다.

         

       “으, 응! 우리가 들어줄 테니까…, 뭐든 말해도 돼, 우진아.”

         

       신예화도 애써 웃으며 그녀의 말을 거들었다.

         

       한쪽은 무덤덤한 얼굴로, 또 한쪽은 웃는 얼굴로.

         

       어떻게든 꽉 막고자 애쓴 두 여인의 슬픔을 어렵지 않게 눈치챈 ‘백우진’은 제게 기댄 두 사람의 손을 꼭 잡아주며 입을 열었다.

         

       “한 가지…, 아니, 두 가지…, 아니아니, 세 가지만 들어줄래?”

       “…말씀하세요.”

       “몇 가지든 괜찮아.”

         

       머릿속에 온갖 욕망이 휘몰아친다.

         

       ‘떠나기 싫다.’

         

       간신히 되찾은 제 육신을 내어주고 싶지 않다.

         

       “내가 떠날 때 웃으며 배웅해주기.”

         

       그런데도 떠나야 한다.

         

       그는 자신을 믿고 몸을 내주었다.

         

       그런 그의 신뢰를 저버리고 싶지 않다.

         

       앞으로 제 몸이 걸어가야 할 길을 전혀 준비되지 않은 자신이 걸을 수 없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연 매와 예화가 위험에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두 사람이 위험한 길을 걷지 않기를 바란다.

         

       “두 사람 모두…, 그의 힘이 되어주었으면 해.”

         

       그런데도 그들을 등 떠밀어야 한다.

         

       그녀들은 강하다.

         

       몸도, 마음도.

         

       자신이 기억하고 있던 것보다 몇 배, 아니, 몇십 배는 더 강해졌다.

         

       그런 두 사람의 힘은 제 고난을 대신 겪고 있는 그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기에.

         

       “…그렇게 할게요.”

       “응, 알았어.”

         

       이미 각오하고 있던 바였다.

         

       그는 제 연인의, 소꿉친구가 걸어가야 할 길을 대신 걸어주고 있지 않나.

         

       적은 힘이나마 그에게 도움이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했기에.

         

       힘차게 대답하는 두 여인을 보며 씁쓸하게 미소 짓는 ‘백우진’.

         

       ‘잊혀지고 싶지 않아.’

         

       사랑해 마지않는 제 연인과 소꿉친구가 영원히 자신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나’라는 사람이 그녀들의 마지막 사내이자, 사랑이었으면 좋겠다.

         

       “나를….”

         

       해마다…, 아니, 수시로 제가 있는 곳을 찾아와 미주알고주알 떠들어 줬으면 좋겠다.

         

       “나를 천천히 잊어줘.”

         

       그러나 그래서는 안 된다.

         

       그녀들을 위해서라도, 자신을 위해서라도.

         

       “천천히…, 가슴에 묻어줘.”

         

       젊고, 아름다운 여인들이다.

         

       일찍이 죽은 사내를 기억하며 여생을 보내기엔 남은 삶이 길어도 너무 길다.

         

       지켜볼 수도 없는 주제에, 알량한 욕심으로 그녀들을 옭아매고 싶지 않다.

         

       “가, 가가….”

       “우진아….”

         

       두 사람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설마 그가 그런 부탁을 할 것이라곤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

         

       그런 그녀들을 바라보며 ‘백우진’은 힘겹게 말을 이었다.

         

       “최대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내 몫까지, 나중에 죽을 때 한 점 후회 없었다고 당당하게 선언할 수 있을 만큼, 누구도 너희의 죽음이 불행하지 않다고 여길 만큼 아주 행복하게.”

         

       세 사람은 조용히 서로를 끌어안은 채 눈물 흘렸다.

         

       밤이 찾아오고, 새로운 해가 떠오를 때까지 하염없이.

         

         

       * * *

         

         

       열흘째 밤.

         

       백우진을 비롯한 조원들이 다시금 한데 모였다.

         

       이유는 하나.

         

       이제 정말로 ‘백우진’을 보내주기 위함이었다.

         

       육체의 주도권을 넘겨받은 그가 물었다.

         

       ‘정말 괜찮냐? 며칠 정도는 더 머물러도 되는데.’

         

       나흘 동안 스무 번의 고통을 견뎠다.

         

       영혼이 뜯겨 나가는 고통은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았고, 평생 익숙해지지 않을 테지만, 그들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면 며칠 정도는 더 견뎌줄 마음으로 건넨 말이었으나.

         

       -괜찮아.

         

       ‘백우진’은 거절했다.

         

       -이미 인사는 충분하리만치 나눴어.

         

       ‘그러냐.’

         

       -당신이 고통 속에 머무는 것도 더 보고 싶지 않기도 하고.

         

       이어지는 말에 쓴웃음을 짓는 그.

         

       ‘알고 있었냐.’

         

       -모를 리가. 계속 고통에 신음하는 소리가 들려왔는데.

         

       알면서도 모른 척했을 뿐이다.

         

       그의 배려가 빛이 바래지 않도록.

         

       그저 감사하며 주어진 시간 동안 철저하게 이별을 준비했다.

         

       -고마웠어. 내게 시간을 준 것도, 나를 대신해서 고난의 길을 걸어주는 것도….

         

       ‘알면 됐다.’

         

       장난스러운 말투로 ‘백우진’의 진심 어린 감사에 화답하는 그.

         

       -저기…, 떠나기 전에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

         

       ‘말해 봐.’

         

       -두 가지만 들어줄래?

         

       하나도 아니고 둘이라니.

         

       대체 얼마나 뽕을 뽑으려고 이러는 걸까.

         

       그는 애써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첫 번째는…, 나 대신 연 매와 예화를 잘 보살펴줘.

         

       예상 범위에 들어가 있던 부탁이었다.

         

       그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백우진’과 약속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마.’

         

       -그래. 그거면 충분해.

         

       ‘두 번째는?’

         

       -당신이 잠든 사이에 서찰 두 장을 적어뒀어.

         

       ‘…서찰?’

         

       -응. 하나는 형에게, 또 하나는 당신에게.

         

       ‘아.’

         

       간과하고 있던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백무혁.

         

       유화연과 신예화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뜻깊은 이.

         

       -하고 싶은 말들을 몇 자 적어뒀어. 나중에 적절한 때가 되면 형에게 전해줬으면 해.

         

       그는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았다.’

         

       -당신을 향한 서찰에는 지금의 당신이 아닌, 훗날의 당신에게 필요한 말을 적어두었어.

         

       그는 곧바로 ‘백우진’의 말뜻을 알아차렸다.

         

       ‘나중에 펼쳐 보라는 거구나.’

         

       -절대 잃어버리지 않을 곳에 넣어두고 잊어줘. 그러다 문득 내 서찰이 떠오르는 순간이 생기면…, 그때 열어서 확인하면 돼.

         

       과연 무슨 말을 남겼을까.

         

       궁금하지만, 이 호기심의 해소는 미래의 자신에게 남겨두기로 했다.

         

       두 가지 부탁을 전한 뒤, ‘백우진’은 다시 육체의 주도권을 넘겨받았다.

         

       “연 매.”

       “…네, 가가.”

       “예화야.”

       “으응.”

         

       슬픔으로 가득 차 있는 두 쌍의 눈동자.

         

       ‘백우진’은 애써 환하게 웃으며 그녀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제 갈게. 어제 내가 한 부탁…, 잊지 않았지?”

       “…….”

       “…….”

         

       치솟는 울음을 참기 위해 아랫입술을 꽉 깨무는 두 사람.

         

       이내 그들은 울먹이는 표정으로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백우진’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고마웠어요, 가가.”

       “잘 가, 우진아…!”

         

       떨림 가득한 힘찬 목소리.

         

       그녀들의 미소 속에서 ‘백우진’은 차츰 몸에서 빠져나왔다.

         

       급속도로 찾아드는 허무함.

         

       장삼의 인도를 따라 ‘백우진’의 영혼은 천천히 하늘로 솟구쳤다.

         

       조금씩 높아질수록 서서히 흩어져가는 그의 형체들.

         

       흐릿한 시야 너머로 제 몸과 눈이 마주친 ‘백우진’이 물었다.

         

       -당신의 원래 이름…, 알 수 있을까?

         

       들려오는 물음에 잠시 망설이던 그가 작은 목소리로 답해주었다.

         

       “우진.”

         

       지구에서는 ‘김우진’이라고 불렸지만, 진짜 성은 모른다.

         

       보육원 원장의 성을 따랐을 뿐이기에.

         

       대답을 들은 ‘백우진’의 눈이 살짝 커다래진다.

         

       -나랑 같네, 우연히도.

         

       이윽고 입가에 머금는 웃음기.

         

       -잘 부탁해, 우진.

         

       오랜만에 들려오는 제 이름.

         

       떠나가는 ‘백우진’을 향해 그는 두 여인과 함께 손을 흔들었다.

         

       이윽고 그가 온전히 성불했다는 장삼의 말이 들려온 뒤에도 한참 동안.

         

       두 여인과 백우진은 하늘을 향해 웃으며 손 흔드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번 에피소드는 다음 편에서 끝날 예정입니다.

    그럼 저는 다음 편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셔요. (_ _)

    다음화 보기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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