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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03

   소울 아카데미라는 게임에서 좋은 아이템을 구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내가 할아버지랑 방패를 구했던 것처럼 시련을 돌파해 획득하는 방법.

   

   다른 하나는 여러 퀘스트를 클리어하는 것으로 얻는 방법.

   

   대장장이 숙련도를 올려서 직접 만들어내는 방법.

   

   마지막으로 특정 아이템을 제작할 수 있는 대장장이를 찾아내 제작을 맡기는 방법.

   

   지금 갑옷에 새겨진 인장을 사용하는 대장장이는 분명 마지막 경우에 해당하는 NPC다.

   

   한 때 화로의 신을 모시던 자였으나 자신의 역할을 후대에 넘기고 세상으로 나선 자.

   

   어깨에 짐을 내려놓은 채 마음 가는 대로 망치를 두드리는 괴짜.

   

   게임 속에 등장하는 대장장이 NPC중에 손꼽을 만큼 실력이 좋을 이.

   

   “반푼이. 너 같은 허접을 내버려 두고 가버린 책임감 없는 녀석이 누구야?”

   “아누키라고 하십니다.”

   

   아누키라면 그 사람이 쓰는 가명 중 하나네.

   

   내 추측이 옳았어. 이 대장간은 히든 아이템을 제작할 수 있는 곳이야.

   

   매 게임을 시작할 때마다 위치가 달라져서 고인물도 운에 기대야하는 대장간을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확실히 내가 운이 좋긴 한가봐.

   

   방금 전 자칭 대장장이들 때문에 기분이 상했던 것이 다 날아가는 것을 느낀 나는 히죽 웃다가 한 가지 문제가 있음을 깨달았다.

   

   아누키에게 제작 의뢰를 맡기기 위해서는 그 녀석에게서 직접 퀘스트를 받아야 하는데 지금의 내가 퀘스트를 받아내는 게 가능한가?

   

   어떻게 말을 하더라도 메스가키 식으로 번역돼서 속을 긁어댈 텐데 자존심 높은 괴짜 대장장이가 그걸 다 받아주겠냐고.

   

   루시의 평판 때문에 본래 게임에서 수행해야했던 대부분의 퀘스트를 포기해 온 나는 현실의 벽 앞에서 좌절했다.

   

   …사실 아누키가 제작할 수 있는 히든 아이템이 꼭 필요한 물건은 아니긴 해.

   

   종결급 장비의 재료 중 하나이긴 하지만 종결급이 없어도 게임을 클리어하는 데는 아무 문제없으니까.

   

   그렇지만 아쉬운 건 아쉬운 거야! 이 세상이 게임이 아닌 현실인 이상 오버스펙은 노잼 요소가 아니라 반드시 갖춰야 할 필수품이라고!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나는 일단 만나보기나 하자는 생각으로 대장장이에게 스승이 언제 돌아오냐고 물었다.

   

   “…죄송합니다만 저도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꼭 구해야만 하는 재료가 있어 가보겠단 편지만 남기고 홀연히 떠나버리셨는지라.”

   

   자기도 아는 게 없다며 헛웃음을 흘리는 대장장이는 거짓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아누키가 지금 시점에서 구하러 갈 만한 물건이 있나?

   

   모르겠네. 그 사람은 항상 자기 멋대로 움직인다는 설정이니까. 어디서 뭘 하더라도 크게 이상하지 않단 말이지.

   

   “스승께서 돌아오신다면 알른 가문의 영애께서 찾으셨단 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대장장이가 건넨 말에 수긍한 나는 그에게 패를 건네주고 갑옷하고 대머리와 허접견이 쓸 검을 건네달라고 이야기했다.

   

   부족하다면 따로 값을 치르겠단 말과 함께. 다행스럽게도 영주가 건네 준 패가 지닌 가치가 상당했던 듯 대장장이는 이거면 충분하다고 답변했다.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영애의 몸에 맞춰서 수정을 해야 하니까요.”

   

   아누키의 제자가 지닌 실력은 상당했다. 따로 내 몸의 수치를 잰 것도 아닌데 한 번 살펴본 것만으로 몸에 딱 맞는 갑옷을 만들어낸 것이다.

   

   미적감각을 통해 봐도 따로 수정할 부분이 없는 갑옷을 본 나는 진지하게 이 대장장이를 알른 영지로 데려오고 싶단 욕심을 품었다.

   

   나중에 아누키를 만났을 때 이야기가 잘 풀린다면 두 사람 다 끌어들일 생각을 해보자.

   

   메스가키 스킬의 번역을 생각해보면 이야기가 잘 풀리긴 어려울 테니 따로 방법을 강구해야겠네.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할 방법을 말야.

   

   *

   

   다시금 알른 영지로 돌아온 나는 하룻밤 휴식을 취한 후 실내 훈련장을 차지했다.

   

   불만의 말을 내뱉는 자는 존재치 않았다. 베네딕이 아끼는 딸인 내가 시설을 쓰겠다는 데 그 누가 토를 달 수 있겠는가!

   

   사실 토를 달 이유 자체가 없기도 했다. 알른 가문에 존재하는 실내 훈련장은 일년 중 삼백일 정도는 비어 있거든.

   

   비가 오면 비가 와서 좋다고 바깥에서 훈련을 하고 눈이 오면 눈이 와서 좋다고 훈련을 하는 광인들이 실내 훈련장을 쓸 일이 어디 있겠어.

   

   덕분에 꽤 큰 실내 훈련장에 자리 잡은 것은 나와 에린 뿐이었다.

   

   맘 같아서는 그냥 에린도 내보내고 싶었는데 얘는 다른 일 하러 가라 그러면 제가 쓸모가 없어진 것이냐며 훌쩍이는 녀석이라 불가능했다.

   

   집사장한테 이야기 들어 보면 내가 없을 때는 자기가 선배들 기강을 잡을 정도로 잘 지낸다던데 왜 내가 있을 때는 되래 약한 척을 하는지 모르겠다니까.

   

   대체 뭐가 문제인 거야?

   

   째려보고 있음에도 웃기만 하는 에린의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은 나는 내 앞에 놓여 있는 전신거울을 보고 자세를 다잡았다.

   

   내가 실내 훈련장에 전세를 낸 명분은 새 갑옷에 적응하고 싶단 것이었지만 진짜 이유는 다른 것이었다.

   

   바로 거울을 통해 내가 움직이는 걸 보고 미적감각을 이용해서 움직임을 수정할 생각이거든!

   

   하루 동안 미적감각이라는 스킬을 경험해 본 바에 따르면 이 스킬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은 단순히 외형적인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어찌 보면 기괴해 보일지 모르는 칼의 손을 아름답다 평하고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듯한 대장간을 아름답다 평했던 것처럼 미적감각은 외견보다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그렇다는 소리는 미적감각을 따라 이상한 부분을 수정한다면 지금보다도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이야기일 터.

   

   이런 결론에 도달한 나는 레벨업이 멈춤에 따라 정체된 숙련도를 올릴 겸 실내 훈련장에서 수련을 거듭하기로 결정했다.

   

   으음. 우선은 메이스를 휘두르는 것부터 해볼까.

   

   지금까지 수만 번을 반복했을 동작을 거울 앞에서 펼친 나는 미적감각을 통해 수정해야 할 부분이 한 두 가지가 아님을 깨닫고 고갤 갸웃거렸다.

   

   바꿀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렇게나 많을 줄은 몰랐는데.

   

   그도 그럴 게 지금 내가 메이스를 휘두르는 방식은 할아버지한테 직접 전수를 받은 내용이니까.

   

   뭐가 문제인 걸까? 약점파악도 미적감각이 지적한 부분이 옳다 이야기하는 걸 보면 뭐가 문제이긴 한 것 같은데.

   

   이리저리 모양새를 바꾸어가며 메이스를 휘둘러 본 나였지만 답은 보이지 않았다.

   

   아악! 이거 은근히 열 받네!

   

   이상한 부분이 있으면 왜 이상한지도 같이 알려달라고!

   

   허접한테 허접하다고만 이야기하면 걔가 바뀌냐!

   

   구체적으로 뭐가 어떻게 모자라서 허접한지 알려줘야 발전을 할 거 아냐!

   

   하여간 변태 까마귀가 준 스킬답게 중요한 부분에서 나사가 빠져있다니까.

   

   그 까마귀한테 뭔갈 기대한 내가 잘못이지.

   

   거울을 보며 투덜투덜 거리던 나는 결국 할배에몽에게 도움을 청했다.

   

   ‘할아버지. 이상하게 들릴 지도 모르는 이야기인데요. 메이스를 휘두를 때 어색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몇 가지 있어요.’

   <어색한 부분?>

   ‘네. 이게 그러니까…’

   

   미적감각이 지적한 부분을 할아버지에게 들려주었더니 할아버지가 침음성을 흘렸다.

   

   <흐으음. 그 부분이 어색하게 느껴진다고?>

   ‘네. 왜일까요?’

   <잠시 기다려 보거라. 생각을 좀 할테니.>

   

   꽤 오랜시간 고민을 하던 할아버지는 이윽고 허탈한 웃음과 함께 자신이 착각했던 부분이 있다고 말을 했다.

   

   <루시. 너도 알다시피 네 체형은 다른 기사들에 비해 무척이나 이질적이다.>

   ‘그…건 그렇죠.’

   

   할아버지가 말하는 이질적임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단적으로 말해서 나는 엄청나게 작으니까.

   

   비슷한 나이대 여자애들에 비해 작은 프레이조차도 올려봐야 할 정도로.

   

   <그러니 내 방식대로 너를 가르치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지. 나의 방식은 네가 지닌 체형과 어울리지 않으니까.>

   

   할아버지의 가르침은 성기사들의 정예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아무리 내 체형에 맞추어 수정을 한다 한들 그 기반이 평범한 기사들인 이상 어색함이 존재할 수밖에 없지.

   

   <여태 네가 잘 따라와 주었기에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다만 당사자인 네가 어색함을 느낀다면 아예 널 위한 무술을 따로 만들어야겠구나.>

   ‘그런 게 가능한가요?’

   <혼자서 할 자신은 없다. 내가 나만의 무를 만드는 데에는 용사 녀석의 도움이 컸거든.>

   ‘그럼 어떻게 해요? 누군가 도와줄 사람을 찾아봐야 하나요?’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도와 줄 사람이 여기 있잖으냐.>

   ‘여기요? 에린…은 아니고 얼빠여우도 메이스에 대해서 잘 알 것 같진 않은데. 제가 모르는 누가 있나요?’

   <너 말이다. 루시야. 네가 나를 도와줘야겠다.>

   ‘…네?’

   <내 이런저런 방식을 시도해 볼 테니 네가 느낀 어색함을 이야기해다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어색함이 사라질 날이 올 터이고 그 때가 네게 알맞은 무술을 만들어 낸 시점이 될 테니 말이다.>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이해한 나는 여느 때처럼 웃음을 흘리다가 다시금 자세를 붙잡았다.

   

   ‘어쩔 수 없네요. 할아버지가 여태 도와주신 것이 있으니 부족한 부분이 있어도 제가 참아야겠죠.’

   <…하하! 그래! 네가 참거라! 대신 내 완벽한 것을 만들 때까지 필사적으로 고민을 해보마!>

   

   호탕하게 웃던 할아버지는 내게 이런 식으로 휘둘러 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건넸고 그를 따라해 본 나는 미적감각을 통해서 본 어색함을 재차 할아버지에게 전했다.

   

   내게 어울리는 방식을 찾아내는 과정은 결코 순탄하다 말할 수 없었지만 난 그 속에서 자그마한 지루함이나 질림을 느끼지 못했다.

   

   소울 아카데미라는 게임에서 기록을 세울 때 지겹도록 했던 게 이런 노가다이기도 했고 뭣보다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조금씩 나아간다는 것이 꽤 재밌는 일이었으니까.

   

   그렇게 나는 소울 아카데미 거리로 향하기 전까지 실내 훈련장에서 할아버지와 논의를 거듭하며 시간을 보냈다.

   

   *

   

   아카데미의 개학이 일주일가량 남았을 무렵 미리 아카데미로 돌아온 나는 짐을 풀기 위해 내 방을 찾았다.

   

   이 곳을 비우고서 몇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카데미의 방은 먼지 하나 없이 말끔했다.

   

   여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청소를 한 덕분이겠지.

   

   얼빠여우가 본체를 만나러 가야겠다며 떠난 덕분에 편하게 방정리를 하고 있으려니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루시. 안에 있어?”

   

   프레이 얘 일찍 왔네. 게임 속에서는 아카데미 개학 직전에나 오던 녀석인데 말야.

   

   무슨 일인가 싶어 바깥으로 나가 보았더니 프레이가 내 얼굴을 보자마자 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오랜만. 보고 싶었어.”

   “그래서 뭔데 바보 검사.”

   “대련하자. 이번에 이길 거야.”

   

   …맞다. 얘는 이런 애였지.

   

   괜히 걱정했네.

   

   푹 한숨을 내쉰 나는 그냥 프레이를 쫓아내버릴까 고민하다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 생각을 바꿨다.

   

   <이 녀석 정도면 여태 우리가 바꿔온 것을 시험하기에 적당한 상대이지 않으냐.>

   ‘그것도 그렇네요. 프레이가 지니고 있는 재능은 진짜니까요.’

   

   고민을 끝마친 나는 프레이의 애처로운 눈빛을 마주하며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이길 거라고? 너 따위가 날?”

   “응. 해낼 거야.”

   “푸하핳. 할 수 있으면 해 봐. 발악해봐야 네 허접함만 돋보일 뿐이겠지만 말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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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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