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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03

       

       여기서 자고 가라고 말한 렌까는 여전히 살짝 상기된 얼굴로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그런 그녀의 뜨거운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아니, 그건 좀…….』 

       『시간이 늦었으니 묵고 가시죠.』 

       

       렌까는 단호했다. 아닌게 아니라 시간이 꽤 늦긴 했어서, 렌까 역시 예의상 묵고 가라고 물어본 것일까? 하지만 아무래도 예의상 묻는 것이 아닌 듯한 느낌이다. 

       

       렌까는 정말로 나를 자고 가도록 할 셈인가? 그것도,

       

       『시라바야시 상. 침대에서 자본 적 있나요? 제 방에는, 두 사람이 누워도 넓을 정도의 큰 침대가 있습니다만……』

       

       다른 곳도 아닌, 자신의 방, 자신의 침대에서?

       

       『아니. 음. 그런 민폐를 끼칠 수는 없지. 갈게. 내 모자랑 상의를 어디 걸어놨더라. 아. 현관 쪽이었던가.』

       

       더워서 교복 상의를 잠깐 벗어뒀었기에 지금은 반팔 셔츠 차림이었다. 내가 몸을 돌리려 하자, 렌까는 나를 향해 한걸음 바싹 걸어오며 말했다. 

       

       『어떻게 돌아갈 셈인가요? 자동차를 운전할 다까히로 상은 퇴근했습니다만.』 

       『택시 불러서 타고 갈게. 전화 좀 빌릴—』

       『이 저택은 지도에도 없는 곳에 있습니다. 택시는 이곳까지 오지 않아요.』 

       『그럼, 산 아래 큰길까지 걸어내려가서 타야겠네. 거긴 택시 지나다니는 거, 전부터 봤어.』  

       『…….』

       

       렌까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후우 내쉬고는, 

       

       『……와루이 히토(나쁜 사람)!』 

       

       하고 중얼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

       『…….』

       

       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 렌까는 다시 웃는 얼굴을 지어보이며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오늘은 어쩔 수 없네요. 돌아가세요. 저만 부끄러운 꼴이 되었습니다.』

       『으응.』

       『하지만 그 대신으로,』 

       

       하는 말과 함께 대뜸 내 품으로 와락 안겨드는 렌까.

       

       『어……』

       『잠깐만이라도, 이러고 있을게요.』 

       

       품에 안긴 렌까의 몸은 뜨거웠다. 

       

       나는 내 가슴팍에 안긴 렌까의 정수리를 내려다보며, 어떻게 행동해야할지 몰라 가만히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렌까가 까치발을 들었는지 그녀의 정수리가 내 머리 옆으로 쑤욱 올라오더니—

       

       『에잇.』

       『아야!』

       

       내 목을 살짝 깨물고는, 포옹을 풀고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배시시 웃는 얼굴이었다.

       

       『야. 무슨.』 

       『킥킥. 억울하면, 언제든지 되갚아도 좋답니다?』 

       『…….』

       『자아, 현관까지만 배웅할게요. 상의는 아까 제가 현관에 잘 걸어두었습니다.』 

       『하…….』 

       

       렌까는 빙글 몸을 돌려 현관 쪽으로 안내했고, 상의를 걸친 나는 마루를 내려가 구두를 신었다. 

       

       『그, 그럼 갈게. 나중에 보자.』 

       『멀리 나가진 않겠습니다. 조심히.』

       

       나는 렌까의 배웅을 뒤로하고 자택을 빠져나와, 남산을 내려가는 비포장도로를 걸어내려가며 생각했다.

       

       ‘위험해.’

       

       슬슬 렌까가 무섭다. 아니, 예전에도 종종 무서웠지만, 이제는 조금 다른 의미로. 

       

       나도 바보는 아니다. 렌까가 어느새부턴가 나에게 의지하며 친구나 동료 이상의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것은, 나 역시 어렴풋이 짐작해오고 있었다. 

       

       가까운 스킨십도 서슴없이 해 오고, 종종 민망할 정도의 장난을 치기도 한다. 틈만 나면 나를 붙잡아두려고 한다. 이렇게까지 티를 내는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어. 

       

       그리고 그런 행동 하나하나가, 비록 때때로 조금 과격할지언정 렌까로서도 꽤나 용기를 내서 접근해오는 행동이라는 것 역시 알았다. 딴에는 나름 용기를 내서 노골적으로 어프로치를 했는데, 거절당하니 적잖이 마음이 상했겠지. 

       

       그 점에 있어서는, 나 역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나는…… 

       

       선을 넘을 수는 없었다. 친구나 동료 이상의, 이성간의 관계로 넘어서는 그 선을 말이다. 그 선을 넘어서는 것은,

       

       ‘목숨이 위험해.’

       

       농담이 아니다. 나에게 있어서는 정말 목숨이 위험한 일이다. 

       

       내가 아직은 누군가를 이성으로서 책임질 능력도 없고 그럴 상황도 아니라는 것은 제쳐두고서라도, 정말 목숨이 위험하기에 안 되는 일인 것이다.

       

       우선, 렌까의 아버지…… 그러니까, 시마즈 당주의 문제가 있었다.

       

       시마즈 당주에게 있어서 나는 쓸만한 권속일 뿐, 딱히 사윗감 같은 것은 아니다. 그런 내가 외동딸을 건드렸다는 것을 당주가 알게 된다면…… 당주는 대동아공영회의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나를 죽이려 들겠지.  

       

       그리고 렌까의 마음을 생각해서도 선을 넘는 것은 차마 못 할 일이었다. 

       

       그동안 내가 렌까와 더욱 가까워지려고 노력해온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렌까로 하여금 스스로 대동아공영회를 배신할 마음을 갖도록 이끌어주기 위해서였다.

        

       그것이 내가 마침내 대동아공영회를 무너트리고 일본제국을 패망에 이르게 했을 때, 렌까에게 상처를 덜 주는 유일한 길이었으니까.

       

       내가 렌까를 가지기 위해서가 아니란 말이다. 

       

       애초에 모든 일이 끝나면 나는 미국으로 떠날 생각이다. 그 생각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었다. 책임지지도 못 할 렌까와 선을 넘는 것은, 결국 렌까에게 지우지 못할 상처를 안겨주는—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될 짓거리일 뿐이다. 

       

       그러니 나를 위해서라도, 또 렌까를 위해서라도,

       

       선을 넘는 것만은 안 된다.

       

       ‘후우…….’

       

       뭐, 방금같은 포옹까지는 아슬아슬하게 세이프겠지. 음. 친구끼리도 반가우면 얼싸안고 그럴 수는 있는 거니까. 

       

       산 아래로 내려가 택시를 탄 나는 느즈막한 시간에 아지트에 도착했다. 

       

       늦은 시간이었기에 가게 문은 닫혀 있었지만, 유리창 너머로는 희미하게 전등불이 켜져 있다. 가게 일을 보던 함서주가 하숙집에 들어가고 아직 있나?

       

       문을 슬쩍 열고 가게로 들어서니, 가게에서 안쪽 방으로 이어지는 문턱에 앉아있는 사람은, 흰 소복 차림의……

       

       ‘귀신?!’

       

       ……이 아니라, 이유하였다.

       

       “엇, 깜짝이야.”

       “뭘 그리 놀라시오?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아니, 그야, 어두운데서 그런 걸 입고 있으니까…… 웬 소복을 입고 거기 그러고 앉아 있어?”

       “소복이 아니라 적삼이오. 온종일 교복을 입고 있을 수는 없으니 편한 것으로 입었을 뿐이오.”

       

       얇은 흰색의 모시적삼. 그러고보면 전에 이유하의 고향집에 갔을 때도 밤에는 이런 차림이었었지. 학교 기숙사에서는 그 무슨 파자마 원피스같은게 여학생들의 생활복이었는데, 역시 이유하는 조선옷이 편한가보다. 

       

       그나저나, 옷차림을 물어본 것이 아닌데.

       

       “아니, 그게 아니라 왜 2층에 안 있고……” 

       

       가게 건물의 1층 앞쪽은 가게로 쓰는 공간이 있고, 안쪽의 문턱을 넘어서면 넓은 방 하나가 있다. 우리는 이곳을 거실 겸 회의실 겸 다용도실로 쓰는 중이다.

       

       가게 건물의 2층에는 일본식 육첩(대략 3평) 방이 두 개 있어서, 각각 남자 침실과 여자 침실로 정해놓았었다.

       

       그런데 얘는 왜 이 늦은 시간에 혼자 나와있단 말인가.

       

       혹시 다른 애들도 아직 안 자고 뭔가 하는 중인가 싶어서 나는 이유하에게 물었다.

       

       “애들은 자?”

       

       내가 묻자 이유하는 살폿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 물으니 꼭 부인에게 묻는 낭군같구려? 염려 마시오. 다들 세상 모르고 자고 있으니.”

       

       아니, 별 생각 없이 물어본 건데 그렇게 말하니 진짜 좀 그렇네. 나는 헛기침을 하고는 다시 물었다. 

       

       “아니. 애들 다 자면 너도 2층 여자방 올라가서 자고 있지, 왜 혼자 나와 있어?”

       “잠도 오지 않고, 그대가 언제 올까 하여 이곳을 차게 해두고 있었소. 밤이어도 퍽이나 덥지 않소?”

       

       그러고보니 밖에 있다가 가게 안에 들어오자 시원하긴 했다. 

       

       “그렇네. 고마워.”

       

       내가 잠시 더위를 식히려고 이유하의 옆에 걸터앉자, 이유하는 내 얼굴에 맺힌 땀을 손수건으로 닦아주기 시작했다.

       

       “어어. 이러지 않아도 되는데.”

       “가만히 좀 있으시오. 땀을 이리 흘리는데 내 어찌 보고만 있…… 음?” 

       

       이유하는 내 귓가에서 목덜미로 이어지는 부분을 닦아주다가, 하던 말을 문득 멈추고 내 목덜미 부근을 유심히 바라보며 말했다. 

       

       “그대의 목에 웬 자국이 있소만.” 

       “어? 어어! 그거? 이건……”

       

       큰일 났다. 아무리 렌까가 장난으로 살짝 깨물었다고는 하지만 이빨 자국이 여전히 남아있던 모양이다. 들켰구나! 이걸 뭐라고 변명해야 하지? 

       그렇게 마음을 졸이고 있는데,

       

       “풋.” 

       

       이유하는 다 알았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이 한여름에 밤늦게까지 외출을 다니니 단정치 못하게 벌레에 쏘이는 것이 아니오? 요사이 날이 무더운 탓에 모기며 날벌레가 여간 극성이지 않소. 조심 좀 하시구려.” 

       “그, 그렇지. 아까 물렸나 봐. 어우 가려워.” 

       

       천만 다행으로 이유하는 내 목에 흐릿하게 남은 자국이 이빨 자국이라는 것까진 눈치채지 못한 듯 했다. 가게 내부에 걸린 누런 전등불도 어두운데다가, 가쿠란 교복의 옷깃이 높아서 목을 대부분 가려준 덕분이었다. 

       

       휴, 위기를 슬기롭게 넘겼다.

       

       “아무튼, 늦은 시간에 먼길 오느라 고생했소. 피로할테니 편안하게 쉬시오.” 

       “뭘. 그냥 낮에 렌까 비위맞춰주기가 힘들었지, 택시 타고 오는데 먼길 오느라 고생은 무슨.” 

       “택시를 타고 왔단 말이오?”

       “응. 왜?” 

       “택시라면, 도진(島津) 공녀가 부하를 시켜 자동차를 태워주지 아니하였단 말이오? 흠……. 도진 공녀는 거느린 권세에 비하여 야박한 면이 있구려?” 

       

       이유하 얘는 일본어를 잘만 하면서, 조선어로 말할 때는 꼬박꼬박 조선 한자음으로 읽는다. 하긴, 얘만 그런게 아니라 많은 조선 사람들이 그러긴 했지만. 

       

       그나저나 렌까가 야박하거나 그런 성격은 아닌데. 나는 렌까를 조금 변호해 주었다. 

       

       “아니. 운전수 노릇을 하던 다까히로가 퇴근해서 어쩔 수 없었어. 그래서 렌까는 나더러 자고 가라고 했는데—”

       “그게 무슨 말이오?”

       

       시원하다고 느껴졌던 공기가 일순간 추워졌다. 혹시나 뭔가 오해를 살까봐 나는 급히 덧붙였다.

       

       “어, 당연히 거절했지. 렌까도 그냥 예의상 한 말일테고, 민폐잖아. 거절하고 나와서 택시타고 온 거야.” 

       “잘 하였소.” 

       

       이유하는 내가 장하다는 듯 미소지으며 말을 이었다. 

       

       “혼자 사는 계집이 제 침소에 외간 남자를 들이려 하다니, 왜(倭)의 풍속은 예로부터 교화되지 않아 난잡하고 음습하여 천성이 그러할지 모르겠으나, 분별있는 그대가 따를 일은 아니오. 그렇지 않소?” 

       “으, 응. 그렇지…….”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아아. 한 쪽은 너무 뜨겁고, 한 쪽은 너무 차갑구나. 그 사이에 끼어 버리니, 이래서 여름에 냉방병에 걸리는구나 하는 생각이…… 이게 아니지.

       

       지금의 내 상황,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은 여기까지!!!!

    그럼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맛난 저녁 드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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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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