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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03

        

         

       나쁜 놈들 치우는 데에 있어서는 진심, 현저한 지능의 상승을 보이는 청이다.

       하지만 출신이 출신이어야지.

       청은 현대에서 자고 나란 사람이며, 딱히 생사결을 나누거나 죽고 죽여야 할 원수도 없는 사회에서 계략이라고 해도 뭘 꾸며본 역사가 있어야지.

       그러니 청의 계략이라고 해도 사실 딱히 대단한 것도 아니다.

         

       신에게는 아직 세 병의 독이 남았습니다!

         

       순진해 빠진 뱀 할아버지가 극독을 세 병이나 선물해주었다.

       그것도 어떠한 강압이나 야료도 없는 순수한 선의의 선물이었다.

         

       청의 계략이 뭐 얼마나 고차원적일까.

       밤중에 몰래 숨어들어서 여기저기 독을 뿌려놓을 예정이었다.

         

       손님에게 험한 일 혼자 맡길 수는 없다고 진가주가 동행하기로 했다.

       이후 살월문에 줄초상이 나면 광주 사람들 모두가 살월문이 수작을 부렸다고 생각할 것이 아닌가.

         

       진가주가 생각하기로는 나쁘지 않다.

       일단 소문이 번지기만 해도 살월문이 바짝 움츠려 몸을 사릴 터, 아주 많은 시간이 필요한 진가장에게는 반가운 일이다.

       재수가 좋아 하독이 치명적인 피해라도 입히게 되면 아예 밀어버릴 수도 있다.

       혹은 문주나 최측근들을 없앨 수 있으면 사파의 특성상 저들끼리 싸우다 자멸할 가능성도 높고.

         

       그런데 이게 웬걸.

         

       “금적방이 망했다고?”

         

       갑자기 하루아침에 금적방이 망했단다.

         

       “자세히, 자세히 말을 좀 해 봐라.”

         

       “모르겠습니다. 새벽녘에 불길이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 방화수들이 몰려갔다가, 온통 시체밭이라서 다시 도망쳐 나왔답니다. 온 광주에 지금 저주가 내려서 천벌을 받은 것이라고 소문이 자자합니다.”

         

       “으음.”

         

       진가주가 턱을 문지른다.

         

       천화검 그 아이가 한 일인가?

       하지만 어떻게?

         

       그리하여 진가주가 객청으로 향했다.

       물론, 신당 차려 독립한 청이 객청에 머무르는 것은 아니고, 제 이 회 진가장 복구 대회를 준비하는 중이라서.

       한참 줄에다 글씨 매달고 있던 청이 진가주를 보고 반갑게 달려온다.

         

       “앗, 가주님 오셨어요?”

         

       어쩜 이렇게 해맑게 웃을 수가 있는지.

       그 모습을 보니 진자강도 참으로 기꺼운 마음이다.

       생각해보면 내 새끼들도 이렇게 반겨주지 않는데, 자식 키워봐야 다 허사라더니 어째 남의 딸이 남의 애비를 더 반겨준단 말인가.

       천화검 반만이라도 하면 얼마나 좋아.

         

       오늘도 어김없이 어르신의 사랑을 적립하는 청이다.

         

       “혹시 천화검도 그 소식을 들었나요? 금적방이 망했- 음. 그래요. 못 들었군요.”

         

       “엥,”

         

       청의 표정은 대단히 정직하다.

       혹시 금적방의 멸망이 천화검의 솜씨인가 물어보려던 진자강이 곧장 결론을 내렸다.

       이 아이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구나.

         

       “금적방이 망했어요?”

         

       “간밤에 혈사가 있었다나 봐요. 장원에 온통 시체들 뿐이라니, 외부에 머물던 문도들 빼고는 몰살을 당했다고 해요.”

         

       교수님처럼 나긋나긋한 말투지만, 어째 그 내용은 흉악하기 그지없다.

         

       “음. 어쨌거나 잘됐네요?”

         

       “그렇긴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군요.”

         

       어쨌거나 잘 망했다는 데에는 진자강 역시 동의했다.

         

       금적방은 고리대자들의 연합체다.

       고리대자란 현대 말로는 사채업자 혹은 고리대금업자를 말하니 광주의 돈놀이꾼들끼리 모여서 세운 방파다.

       안 그래도 사람을 쥐어짜 고혈을 빨아먹는 포악한 놈들이 무력까지 얻었으니 그 패악질이 보통이었겠나.

         

       그에 청이 태평한 소리를 한다.

         

       “에이,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그렇게 원한 쌓은 놈들은 죽어도 자연사 아니에요? 치워야 할 놈들이 알아서 망했으면 좋은 일이죠. 뭐, 앞뒤 분간 못하고 날뛰다가 누구 하나 잘못 건드렸거나 하지 않았을까요?”

         

         

       —-

         

         

       온 광주가 진가장의 저주 이야기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분명 토목선녀가 말하지 않았던가.

       진가장의 저주를 본인이 깨어버렸으니, 그 저주가 원한을 품고 주인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그리고 멀쩡하던 금적방이 하루아침에 떼몰살을 당했다.

         

       저주, 저주구나! 저주가 돌아간 게야!

         

       광주에 이미 성대한 내기판이 펼쳐진 이후였으므로, 무수한 양민들의 희비가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돈을 딴 이와 잃어버린 이가 하나같이 공감하는 의견이 둘이나 있었다.

         

       금적방 새끼들 잘 뒤졌다.

       그리고, 토목선녀가 굉장히 용하구나.

         

       그런데, 이 의견에 반기를 드는 맹랑한 꼬맹이가 한 명.

         

       “아니야! 저주가 아니에요! 다 협객님이 하신 일이란 말이에요!”

         

       그에 수근거리던 사람들이 사건에 대한 새로운 형태의 접근에 흥미를 느낀다.

         

       “협객님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냐?”

         

       그예 계집아이가 어쩐지 몽롱한 표정으로 두 손을 모았다가, 이내 그 조막만한 입술을 열어 어젯밤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다.

         

         

         

       무림에서는 항상 지나가던 사람을 주의해야 한다.

       예를 들자면 객잔의 혈투 중에 부수적 피해로 식탁을 엎어버린다든가 하면, 분노한 밥상 주인의 철권을 맞을 수도 있다.

       아니면 다 잡은 사냥감이 지나가던 사람에게 닿아서 사냥은커녕 오히려 사냥당하는 경우도 부기지수고.

         

       하지만 지나가는 사람이 한둘이랴.

       다들 지식으로야 지나가는 이의 위험을 잘 알지만, 항상 그렇게 조심하다가는 그냥 얌전히 숨 쉬는 이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금적방 무사도 어쩔 수 없이 벌어먹기 위해 노동을 해야 했다.

       얌전히 숨만 쉬면 뭘 먹고 살겠나.

       그러니 오늘도 악성 채무자의 빚을 받아낸다는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을 뿐이다.

         

       다만, 좀 막돼먹은 직업이기는 하다.

         

       “아이고, 안 됩니다! 안 됩니다!”

         

       “안 되긴 뭐가 안 돼? 그럼, 금적방의 돈을 떼먹을 작정이었단 말이냐?”

         

       “제가 어떻게든 마련해서, 제발! 딸아이는 제발.”

         

       “흥. 이미 오래 참아주지 않았더냐. 또 뭐 그리 나쁘게 생각할 거 없어. 돈을 못 갚으니 돈을 갚을 수 있게 도와주려는 거지. 다 좋은 직업을 소개시켜주려는 이 어르신의 자비가 아니냐.”

         

       “차라리 제가, 억.”

         

       여인이 호되게 걷어차여 바닥을 뒹군다.

         

       “엄마!”

         

       그에 덜 자란 꼬마아이가 제 어미에게 달려들지만, 이미 손목을 붙들린 상태라 그저 팔이 빠져라 낑낑거릴 뿐이었다.

         

       “놔, 놓으라고! 나쁜 놈아!”

         

       그에 금적방 무사가 침을 퉤 받는다.

         

       “다 늙은 년이 주책이야. 늙은 년이 몸을 팔아봐야 뭐 동전이라도 벌게? 평생 가랑이 벌려봐야 이자라도 갚겠어? 이보쇼, 자식 좋다는 게 뭐고, 원래 딸년이란 시집에 파는 용도 아뇨. 돈 빌릴 때는 뭐라도 하겠다면서 싹싹 빌면서 비굴하게 굴더니, 돈 좀 갚으라고 하면 꼭 이렇게 지랄들이야. 내가 나쁜 놈이야!? 내가 나쁜 놈이냐고!”

         

       금적방 무사가 거칠게 소리를 지른다.

       의문문 같지만 사실 묻는 소리는 아니다.

       그럼에도 눈치없고 생뚱맞게 대답이 척 날아오는 것이다.

         

       “나쁜 놈 맞는 것 같은데. 이봐. 이 여인의 빛이 얼마길래 눈앞에서 새끼를 떼 내나?”

         

       금적방 무사가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본다.

         

       스물 중반이나 되었을까.

       미끈한 면상이나 매어놓은 안대가 외모를 다 깎아 먹는 애꾸 청년이었다.

         

       금적방 무사가 흠칫하며 어깨를 움츠리고는 청년의 모습을 위아래로 유심히 살핀다.

       딱히 무기를 들지 않았고, 손은 미끈하니 물 한 방울 묻힌 것 같지 않고, 의복에는 어떤 소속을 나타내는 문양도 없다.

       금적방 무사의 어깨가 다시 펼쳐진다.

         

       “이건 또 뭐야? 남의 행사에 함부로 끼어들면 재미 없는 거 몰라? 왜. 대신 갚아주기라도 하게?”

         

       “못할 것도 없지.”

         

       “아. 그러시구나. 금자 일백 개 되겠습니다. 바로 내실 생각이신지?”

         

       그에 지나가던 청년이 쓰러진 여인을 내려다본다.

         

       “본래 빌린 금액이 얼마였지?”

         

       “은자 열 개! 은자 열 개였어요! 그리고 우리한테는 금자 사십 개 내놓으랬잖아!”

         

       금적방 무사에게 팔이 붙들린 계집아이가 앙칼지게 소리를 지른다.

         

       “그야, 네년 굴리면 금자 일백 개는 받을텐데, 사십 개만 받으면 우리가 육십 개를 손해보는 것이 아니냐? 값은 제대로 치러야지.”

         

       “호오. 거 기적 같은 계산법이로군.”

         

       그리고는 청년이 해사한 미소를 짓는다.

       안대만 아니었다면 여인깨나 울렸을 법한 화사한 미소였다.

         

       “은자 열 개를 빌려주고 금자 일백 개를 받는다? 내 제대로 들은 것이 맞나? 대체 몇 배야? 은자 열둘이 금자 하나니까, 음, 음. 어쨌거나, 강도 새끼가 따로 없군.”

         

       “뭐, 강도? 지금 뚫린 입이라고, 감히 광주에서 우리 금적방을 모욕하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고맙게 되었군. 고마워. 진심이야”

         

       뜬금없는 소리였다.

       애꾸 청년이 정신이 아픈 놈이 아니고서야 뜬금없이 감사 인사를 할 리는 없다.

       하지만 슬슬 뭔가 불안함이 치솟으니, 이 놈은 대체 왜 이렇게 여유가 넘치지?

         

       “뭐? 뭐가 고맙다는 말이냐, 요?”

         

       “악인으로 살아줘서 고맙다는 소리지.”

         

       “그게 무슨, 헉.”

         

       맥락 없는 소리에 금적방 무사가 되물으려다 다급한 놀람으로 숨을 들이켜고 만다.

       돌연 시야를 가리며 솟아난 그늘진 살색 기둥들 때문에.

       어느새 다가온 애꾸 청년이 그 큼직한 손바닥으로 얼굴을 덥석 쥐어 챈 것이다.

         

       동시에 어깨죽지를 콕콕 찌르는 통증과 함께 양 팔에 힘이 빠져 축 늘어지고 만다.

       그제야 가슴 속에 떠오르는 강호의 잠언, 지나가던 사람을 조심해라!

         

       “저, 저, 저, 대협, 사, 살려……”

         

       “글쎄. 이봐, 거기 꼬맹이. 고리대를 하는 놈이 이자를 안 거두지는 않았겠지. 이자는 얼마나 냈지? 이미 원금은 다 빼고도 남았을 터.”

         

       풀려나자마자 제 어미를 껴안은 꼬맹이가 대차게 소리를 지른다.

         

       “맞아요! 다 합치면 금자 한 개도 넘을 거에요!”

         

       “거참 못된 새끼로군. 그럼, 이놈이 죽기를 원하냐? 원한다면 죽여주겠다.”

         

       그에 계집아이의 눈이 휘둥그레 크게 떠진다.

       그리고는 에구구 아직 신음소리를 내는 어미를 꼭 껴안고는, 아이의 눈에 새파란 독기가 어린다.

         

       “개새끼! 죽여요! 죽여 버려!”

         

       “죽여 버려는 반말이고.”

         

       청년이 반대 손으로 금적방 무사의 멱을 쥐어 번쩍 들어올린다.

         

       “커, 커흑, 꺼억.”

         

       청이 보았다면 저거 지금 숨 새는 소리 안 들리냐고, 멱을 잡으려면 더 딱 붙여서 숨통을 꽉 막아야 한다고 조언을 해 줄 만한 광경이다.

       물론, 보통 사람들은 청이 아니기 때문에 참견은커녕 그저 고수의 위용에 침묵할 뿐이지만.

         

       그에 애꾸 청년이 좌중을 돌아본다.

         

       “너희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이놈은 죽어 마땅한 놈이 맞나? 죽어서 세상에 이로운 쓸모없는 쓰레기가 맞나?”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안간힘을 쓰던 무사가 필사적인 눈빛으로 좌중을 훑는다.

       그러나.

         

       “죽이시오! 그 새끼가 팔아치운 사람이 한둘이 아냐!”

         

       “애새끼일 때부터 싹수가 노란 놈이었어! 도박에 빠져서 집안 말아먹은 새끼야! 지 애비애미 홧병으로 쓰러뜨려 잡아먹은 놈!”

         

       결국 원한은 원한으로 돌아오는 법.

       금적방 무사의 눈빛이 절망에 물들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착하게 살 것을 그랬던가.

       하지만, 죽음이 코앞에 닥쳐서 하는 후회는 후회일 뿐, 반성이 아니다.

         

       애꾸 청년의 표정이 참으로 만족스럽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금적방이 망했다.

         

         

         

       소녀의 주장에 사람들은 시큰둥하다.

         

       “그러니까, 그 애꾸 청년이 금적방을 멸문시켰다고? 에이, 무슨 반로환동의 고수라도 되나? 내 애꾸인 청년 고수라고는 그런 소문도 들어본 적이 없는데.”

         

       그에 소녀가 빽 소리를 지른다.

         

       “애꾸라뇨! 협객님께 무례하잖아요! 독안! 독안 몰라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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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This Murim’s Crazy B*tch

I Am This Murim’s Crazy B*tch

이 무림의 미친년은 나야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female character in a martial arts game I’ve played for the first time. I know absolutely nothing about Murim, th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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