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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04

       

       “아무튼. 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이 늦은 시간에 하숙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아지트부터 들른 것은 할 일이 있어서였다. 나는 이유하에게 물었다.

       

       “지하실 좀 내려갈 건데, 같이 갈래?”

       “지하실이라면…… 아.”

       

       이유하는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마문을 열어 이계에 들어갈 셈이구려?”

       “응. 별건 아니고, 다들 잘 지내고 있나 보려고.”

       

       내가 만든 마문 너머의 이계로 수감자와 부족민들이 이주한지 이틀 째. 잘 적응하고 있는지 슬슬 확인차 들러볼 셈이었다.

       

       원래는 분대원들이 깨어있을 때 함께 가보려고 했지만, 시간이 늦어서 굳이 자는데 깨울만한 일도 아니고…… 지금 이유하라도 깨어있으니 함께 가보면 좋을 것 같았다.

       

       “물으나마나, 내 물론 그대를 따르지 않겠소? 앞장서시오.”

       

       우리는 지하실로 내려갔다. 지하실 창고에는 가게에서 팔 물건들 뿐 아니라 몇 가지 포대며 잡동사니가 쌓여 있었다. 나는 이유하에게 물었다.

       

       “이거 다, 오늘 사 온 거야?”

       “그렇소. 오늘 그대가 없는 동안 다함께 장에 다녀왔었소.”

       

       어제 분대원들과의 대화에서 수감자와 부족민 얘기를 할 때, 나는 분대원들에게 적당히 돈을 주며 부족민들에게 필요할만한 것들을 사라고 했었다. 특히 밭농사라도 지을 수 있게끔 감자나 옥수수 등의 종자라든지 그런 것.

       

       분대원들은, 내가 렌까랑 쇼핑이니 아베크니 하는 동안에 내가 지시한 대로 해준 모양이었다.

       

       “고생했어.” 

       “흐읏.”

       

       나는 이유하의 머리를 톡톡 두드려 주고는, 지하실 한구석의 빈공간에다가 마문을 열고, 옆에 쌓여있던 포대며 각종 상자를 마문 안쪽에 던져넣었다. 들고 들어가려면 힘드니까.

       

       “그럼 들어갈까. 여기 들어가보는건 이틀만이네. 엄청 오래 전인것 같은데.” 

       

       그렇게 짐부터 먼저 보내놓고 마문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왜?”

       “…….”

       “아니, 왜.”

       “잡아 주시오. 내 이런 옷이라, 넘어질까 두렵구려.”

       

       이유하가 슬쩍 고개를 돌리고는 손을 내밀어 왔다.  저게 딱히 움직이기에 불편한 옷은 아닐텐데…… 

       

       하긴, 막 입어도 되는 교복과는 달리 흰 모시적삼은 혹시라도 더러워지면 곤란할테니 그럴만도 하겠다.

       

       그렇게 손을 잡고, 울렁거리는 감각과 함께 마문을 통과하자 당도한 곳은 넓은 공동. 

       

       저번에 분대원들과 함게 왔을 때와 마찬가지의 공간이었지만, 조금 달라져 있었다. 이곳에 처음 들어온 첫 탐사 때에는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었는데, 그때와는 달리 동굴 벽 곳곳에 횃불이 걸려있던 것이다. 

       

       “오…….”

       

       부족민들이 걸어둔 것이겠지. 그런데, 동굴 안에 부족민들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간 걸까?

       

       바닥에 불 피운 흔적이라든지 동물의 뼈 같은 각종 생활의 흔적은 곳곳에 쌓여있었지만 정작 사람은 없었다. 이유하가 둘러보더니 말했다.

       

       “다들 밖으로 나간 모양이오.”

       “그런가 봐. 하긴, 여기는 백오십 명이 머무르기는 좁으니까.”

       

       나는 앞장섰다. 동굴을 빠져나가자, 며칠 전에도 본 산악지대가 눈앞에 드러났다. 시간은 노을이 지는 저녁 무렵.

       

       바깥세계와 시간의 속도가 거의 같다고는 해도 시간대가 다르기에 바깥과 약간의 차이 정도는 있었다. 

       

       “다들 어디에…… 아!”

       

       주변을 둘러보니, 가늘게 흐르는 계곡물을 둘러싸고 흰색 통나무로 세워진 울타리가 빙 둘러쳐 있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저긴가 보다. 가 보자.”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곳도 아닌데 하루이틀만에 이렇게 울타리까지 짓고 정착을 했다니. 새삼 느끼지만 적응력이 대단한 사람들이네.

       

       이유하와 함께 산길을 걸어가며 울타리를 향해 다가가자, 덩쿨같은 것으로 울타리를 엮고 있던 부족민 하나가 나를 발견하고는,

       

       『……우왓! 천인! 시라바야시 천인이 오셨다!』 

       

       하고 외치며 울타리 안으로 잽싸게 들어갔다. 잠시 후, 

       

       『하! 머지 않아 찾아온다고 하더니, 정말로 하루이틀만에 올 줄이야.』 

       

       지팡이를 짚으며 걸어나오는 건장한 체격의 노인. 수감자였다. 

       

       『약속했으니까요. 그리고 혹시 필요할지 몰라 선물을 좀 가져왔습니다.』 

       

       나는 우리가 빠져나온 동굴 쪽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감자나 옥수수같은 작물 종자와 밀가루 포대, 기름 등등 유용한 물건들을 동굴 안쪽에 가져다 놨으니까, 부족민들이랑 확인해 보세요.』

       『오오! 마침 고맙군. 그렇잖아도, 정글이었던 요쿠센에선 농사를 못 지었지만 이곳에서는 밭농사를 지으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거든. 잘 받아가지. 그런데……』

       

       나에게 감사를 표하던 수감자는 내 곁의 이유하를 슬쩍 바라보더니 나에게, 

       

       『후 이즈 잣토 가—루 위즈 유—?』 

       (Who is that girl with you?)

       

       하고 영어(?)로 물어왔다. 왜 굳이 영어로 묻나 싶었는데, 저번에는 나와 함께 들어온 렌까가 대동아공영회측 사람이었기에, 지금도 혹시 그런 경우일까봐 조심스럽게 영어로 물어온 것이리라. 

       

       그나저나 이 양반, 내가 하는 유창한 영어는 잘 알아듣더만 본인의 발음은 형편없네. 물론 일본인 치고는 잘 하는 편이다만. 

       

       나는 수감자에게 말했다.

       

       『일본어로 말해도 됩니다. 이 아이는 저의 믿을 수 있는 동료니까요. 물론, 대동아공영회에 맞서 싸우기 위한 동료죠.』

       

       그제서야 수감자의 긴장이 풀렸고, 이유하도 수감자를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이유하도 나에게서 설명을 들었기 때문에 수감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었다. 

       

       『데쓰젠으로부터 이야기 들었습니다. 긴 시간,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데쓰젠을 도와준 것, 고맙습니다.』 

       『하하! 도움은, 내가 시라바야시 군에게 많이 받았지. 자아, 들어가지. 아직 누추하지만.』 

       

       인사를 나눈 우리는 수감자를 따라 울타리 안쪽으로 들어섰다. 나는 정착지를 둘러보며 말했다.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이렇게 정착했네요.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것도 아니고 여기도 고작 하루이틀 지났을텐데.』

       『우선은 급한대로 나무를 베고 울타리부터 세우긴 했지만, 이전 정착지에 비하면 아직은 비좁아.』 

       

       수감자의 말대로, 아직은 정착지라기보단 임시 야영지 같은 느낌이었다. 울타리도 아직 엉성하고, 울타리에 둘러싸인 면적도 그리 넓지는 않았다.

       

       『그나마 이 울타리도 오늘 오후에서야 겨우 다 둘러친 것이라, 어제까지는 동굴에서 지냈고. 이제서야 부족민들이 지낼 움막을 짓는 중이야.』

       『그렇네요.』

       

       과연, 곳곳에서 막 지어지고 있는 조잡한 움막들이 보였다. 땅을 파거나 기둥을 세우던 부족민들이 이쪽을 돌아본다. 나는 수감자에게 물었다.

       

       『마수는 위험하지 않았습니까?』

       『이 근방의 마수는 이미 모두 우리에게 사냥당했거나, 도망갔네.』 

       

       하긴, 이전 정글지형의 요쿠센에서도 중대형 마수를 사냥하던 부족이었다. 이곳의 소형~중소형 마수들은 별 위협도 되지 않겠지. 

       

       ‘다행이다.’

       

       아무리 환경이 좋아도 150여 명의 인구를 갑자기 다른 곳으로 이주시키는 것은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는 일이기에 내심 걱정했었는데, 생각보다 잘 적응하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수감자 역시 새로 지어지고 있는 정착지를 뿌듯한 눈길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고작 하루이틀 지냈을 뿐이지만, 우리 부족이 살기 좋은 곳이라고 느꼈어. 요쿠센과는 달리 이곳 「하쿠린」에서는……』

       『하쿠린, 이요?』

       

       나는 수감자의 말을 끊고 물었다. 이 이계에 벌써 이름을 붙인 것일까? 수감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이곳에 「하쿠린」이라는 이름을 붙였지.』 

       

       하쿠린이라. 뭔가, 왠지 나에게는 조금 기시감이 느껴지는 이름인데, 뭐랄까…… 

       

       『아니, 잠깐만요. 그거 설마.』

       『보게. 이 주변, 이 산악지대에 펼쳐진 숲의 나무들이 마치 자작나무처럼 희지 않나.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를 이곳으로 인도해 준 자네를 기리기 위해, 자네의 씨인 시라바야시(白林)를 독음으로 읽은 것이지.』 

       

       역시, 백림(白林)이었구나. 내 성씨에서 따온 명칭이라니, 좀 부끄러운데. 그거야 아무래도 상관 없긴 하지만……

       

       『부족민들이 불만을 갖지 않을까요.』

       

       부족민들도 그 이름을 마음에 들어할까? 며칠 전 요쿠센에 있었을 때에는, 내가 대동아공영회에 들어가기 위해 시험중이라는 것을 밝히자 부족민들은 나에게 배신감을 느끼며 몹시 경계했었다. 

       

       수감자에게는 렌까 몰래 영어로 말하며 오해를 풀었다지만, 부족민들은 어떨까. 

       

       대동아공영회 소속인데다가, 부족민들을 갑자기 다른 곳으로 이주시킨 나에 대해서 그리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 것 같은데. 하지만 수감자는 씩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불만? 부족민들이 먼저 제안했네. 보게.』

       

       주위를 둘러보니 정착지 안의 부족민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어느새 우리를 둘러싸고는, 신뢰와 경외심으로 가득 찬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곳에 적대감이나 의심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 중에서, 특히 나와 함께 사냥을 하며 동료애를 다졌던 사냥꾼들이 한 걸음 나서며 외쳤다.

       

       『시라바야시 천인! 천인 덕분이라고!』

       『시라바야시 천인 덕분에 이곳으로 올 수 있었습니다. 전설 속의 아메리카가 어떤 곳인지는 몰라도, 저희에게는 이곳이야말로 낙원.』 

       『지옥 같던 요쿠센과는 달리, 이곳 하쿠린은 그야말로 젖과 꿀이 흐르는 낙원이지요.』

       

       힘 좋은 오오노, 활 잘 쏘는 야우마, 창과 그물의 아미야리……. 내가 부족민 생활을 할 때 함께 사냥을 했던 동료들이었다. 

       

       『너희들…….』

       

       내가 녀석들을 하나하나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이자, 아미야리가 비장한 얼굴로 덧붙였다. 

       

       『게다가 지금 바깥은 다이토아의 세상이니, 나가봐야 지옥이지 않겠습니까. 그곳에서 싸우는 시라바야시 천인을 지지합니다.』

        

       나도 부정은 못하겠다. 여기보단 바깥이 더 지옥이지. 수감자가 나에게 말했다.

       

       『어떤가? 모두가 자네에게 감사하고 있네. 물론 내가 부족민들에게 자네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자네가 우리와 함께 지내면서 신뢰를 쌓은 덕분이겠지.』

       

       수감자는 이곳에 들어온 이후, 부족민들에게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제대로 알려준 듯 했다. 

       

       또한 부족민들의 입장에서도 그 실체도 모를 ‘낙원 아메리카’보다는 이곳의 환경이 살기 좋다고 느꼈기에, 마치 내가 그들을 낙원으로 이끌어준 것처럼 받아들였으리라.

       

       그리고 수감자가 덧붙였듯이, 비단 며칠이나마 내가 부족민들과 부대끼며 사냥을 하는 등 유대관계를 쌓았다는 점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열의에 찬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부족민들은, 들고 있던 창이나 막대 등을 쿵! 쿵! 쿵! 하고 바닥에 찍으며,

       

       『천인! 천인! 천인! 천인!』

       『시라바야시 천인! 시라바야시 천인!』 

       

       하고 내 이름을 합창하기 시작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런 원주민 퍼포먼스는 좀 부담스럽다. 나를 좋게 봐주는거야 좋은 일이지만…… 뭐, 좋은 거겠지.

       

       그래. 부족민들은 이곳에 만족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정작, 이 노인은 어떨까.’ 

       

       나는 옆에 선 수감자를 돌아보았다. 젊은 시절 요쿠센에 들어가, 불과 몇 주 사이에 60여 년이나 늙어버린 노인. 나는 그에게 조용히 물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음?』

       『부족민들은 이곳에 만족합니다만, 당신은 바깥으로 나가고 싶지 않습니까? 나가면 바로 경성입니다.』

       『…….』

       

       수감자는 말이 없었다. 나는 그에게 재차 물었다. 

       

       『대동아공영회에 복수하고 싶지 않습니까? 저의 싸움에 힘을 보태 주십시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연참! 바로 이어집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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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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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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