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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05

       그리폰이야 어찌 되었건, 하늘이 검게 물든 뒤에도 우리는 아직 졸리지 않았다.

        

       밖에 나왔기 때문일까.

        

       그래서 영화를 한 편 더 보기로 했다.

        

       영화를 고른 앨리스 본인을 포함하여 모두 더 울고 싶은 기분은 아니었기에, 이번에는 가벼운 액션 영화를 보기로 했다.

        

       그래서 내가 추천했다.

        

       가족 영화이면서 시간 보내기 적당한 영화라면 역시 80년에서 90년대 영화까지가 좋겠지.

        

       어차피 OTT만 접속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영화니까.

        

       그 시절의 슈퍼카를 개조하여 타임머신으로 만든다는, 지금 보면 다소 황당한 설정의 영화였지만 나는 그 영화를 꽤 좋아했다. 실제로도 재미있게 잘 만들어서 팬이 많은 영화이기도 했고.

        

       세 편이나 되는 영화였기에, 우리는 프로젝터에 그 영화를 틀어두고 모여앉았다.

        

       미리 사 온 과자를 뜯어 펼쳐두고 하나씩 입에 넣으면서—

        

       “……그거, 먹을 생각이십니까?”

        

       “응? 그야 아까 먹고 남은 거잖아. 시간이 오래 지나지도 않았으니 상했을 리도 없고.”

        

       클레어가 당당하게 말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영화를 보면서 팝콘이나 과자도 아니고 불고기 냄비를 끌어안고 있는 건 조금 이상한데.

        

       “저쪽에서는 갈비찜 먹고 있잖아?”

        

       확실히, 미아 쪽에서는 갈비찜을 끌어안고 있었다.

        

       쟤는 음식이 또 들어가나 보네. 아까 가득 찼던 거 아닌가?

        

       다시 보아도 위장 안에 4차원 주머니가 들어있는 것 같다.

        

       앨리스와 샤를로트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다소 황당하다는 듯 웃었다.

        

       하긴 클레어 말도 맞지.

        

       요즘에는 영화관에서 팝콘 말고도 별의별 걸 다 파니까.

        

       몇 년 정도 지나면 불고기 정도는 팔 수도 있는 거겠지.

        

       ……그래도 갈비찜은 안 팔 것 같지만.

        

       *

        

       결국 영화 세 편이 끝날 때까지 열심히 떠드느라 영화를 제대로 보지도 않았다.

        

       아마 내용을 제대로 끝까지 본 적 있는 나 정도가 아니면 우리 중에서 스토리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리라. 사실 영화를 보려고 틀어두었다기보다는 그냥 보고 싶은 사람 보라고 틀어둔 거라 아무래도 상관없긴 했다.

        

       우리는 영화 세 편이 모두 끝나고 나서야 우리가 자정 넘어서까지 떠들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실 자정 넘어서까지 떠든 적이야 자주 있다. 평소에도 저녁에 방송하고 오전에는 쉬었기 때문에 늦게 자는 게 큰 문제는 없었고.

        

       이 나이에 늦게 자면 키가 덜 크는 게 아닐까 싶긴 했지만 사실 미아를 제외한 나머지 네 사람은 이미 클 만큼 컸다고 생각한다. 이게 다른 세상 사람이라 성장 속도가 빠른 건지 아니면 서양인이라 그렇게 보이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정도 몸매에 키라면 어딜 가도 부끄럽지 않을 수 있을 거다.

        

       그리고 미아는 미아대로 지금이 귀여우니까 괜찮지 않을까?

        

       ……미래에 미아한테 접근하는 남성이 있다면 그 양반 취향을 좀 심각하게 의심해봐야겠지만.

        

       자정이 넘었다고 자러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낭만 넘치는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하는 걸까?

        

       모두 접이식 의자의 위치를 바꾸어 나란히 누워있었다.

        

       바다를 향해 나란히 누운 다섯 소녀.

        

       그것도 모델을 해도 될 것 같은 외모의 소녀들이다. 우리 모습은 아마 잡지에서나 나올 법한 모습일 거다. 아니면 이런 부류의 영화라든가. 음, 영화보다는 드라마에 가까우려나. 일상 드라마.

        

       “여기서는 별이 잘 보이네.”

        

       앨리스의 말이었다.

        

       청명한 가을 하늘에, 달까지 뜨지 않은데다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니 별이 잘 보일 수밖에.

        

       거기에 눈 앞에 펼쳐진 모습은 저 멀리까지 쭉쭉 뻗은 바다였다.

        

       이렇게 별을 보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주말마다 대학교 기숙사로 돌아가면서 하늘을 보면 이렇게 별이 보였는데…… 음, 별로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건 아니지만.

        

       “별자리라도 배워올 걸 그랬나 봐요.”

        

       샤를로트가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응. 너무 세상에 찌들어있는 학문만 배웠나 봐. 천문학 같은 것도 이쪽 세상만의 학문일 텐데. 어떤 의미로는 저쪽 세상과 완전히 다른 부분이잖아? 별의 지도 말이야.”

        

       두 사람이 이쪽 세상의 천문학을 공부하면 어느 순간부터 대륙간 탄도탄의 위험성을 논하고 있을 것 같지만 나는 굳이 그런 딴지를 걸지는 않았다.

        

       “후후후.”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클레어가 웃었다.

        

       “나는 알고 있지. 저기 보이는 게 북두칠성이잖아. 그렇지, 언니?”

        

       아니 나도 잘 모르겠는데.

        

       기숙사로 돌아갈 때 보았던 하늘은 내가 너무 지쳤을 때라서 별다른 생각을 하지는 못했었다. 그냥 그거라도 보자는 생각에 하늘을 보며 걸었던 거라고.

        

       게다가—

        

       “클레어, 다 보입니다.”

        

       클레어는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있었다.

        

       틀어둔 앱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클레어가 하늘에 대고 스마트폰을 움직일 때마다 그림도 따라 움직이는 걸 보면 스마트폰으로 보는 별자리 지도라거나 뭐 그런 거겠지.

        

       “……이럴 땐 그냥 감탄해주는 거야, 언니.”

        

       클레어가 조금 민망하다는 듯 말했다.

        

       네가 할 소리니.

        

       “그건 어떤 앱인가요?”

        

       내가 속으로 태클을 걸고 있으려니, 클레어 옆자리에 누워있던 미아가 물었다.

        

       “아, 깔아줄까?”

        

       “감사합니다. 별자리는 마법사에게 꽤 중요한 거라서요.”

        

       “별자리가 마법에 영향을 미친다는 소리는 들었습니다만.”

        

       “세상에는 별의 흐름만을 이용하는 마법도 존재하니까요…… 대부분은 그 존재조차 희미한 고대 마법이지만요. 별자리도 세월이 지나면 그 위치가 바뀌어서, 현대 마법은 대부분 별자리에 의존하지 않는 형태로 진화했어요.”

        

       “음, 별 중에 일부는 마르마로스로만 이루어졌다는 가설도 있었지.”

        

       “지구 외부의 별들에 포함된 마르마로스 때문에 영향을 받는다는 말도 있으니까요. 전부 가설이지만요.”

        

       바다가 달의 움직임에 영향을 받는다던가, 뭐 그런 이야기인 모양이다. 아카데미에서 배운 마법은 거의 실전형이었기에 그렇게까지 자세하게 배우지는 않았지만.

        

       “그럼 이 세상에서도 마법을 재현할 수 있을까?”

        

       미아의 스마트폰에 앱을 설치해 다시 돌려주면서 클레어가 물었다.

        

       미아는 고개를 저었다.

        

       “마르마로스 자체가 없으니 조금 어렵지 않을까요? 법칙 자체가 다른 것 같기도 하고…….”

        

       아무래도 힘든 모양이다.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실 것은 없습니다.”

        

       나는 그런 미아에게 말했다.

        

       “여러분이 이쪽으로 넘어올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돌아갈 수 있을 테니까요. 그때까지는 지금처럼 마음 놓고 편하게 지내다가 가시면 될 일입니다.”

        

       내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그 이후로도 한참 동안 별을 바라보았다.

        

       별을 바라보던 미아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을 때 쯤에야 우리는 텐트로 들어왔다.

        

       난로가 필요할까 싶었는데, 침낭이 꽤 비싼 물건이었는지 꽤 따뜻해서 난로 없이도 큰 문제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바닥에 깔개도 괜찮은 물건이었고.

        

       그래도 혹시 몰라서 온 핫팩을 뜯어 나눠 가지고, 담요로 둘둘 만 핫팩을 미아의 침낭 안에도 같이 넣어주었다.

        

       침낭 안에 들어가 애벌레 같은 모습으로 다 같이 사진을 찍은 뒤에야 우리는 잠들었다.

        

       *

        

       다음 날 아침.

        

       “으으…….”

        

       깔개도 꽤 괜찮은 걸 샀지만, 그래도 바깥에서 자는 건 조금 힘든 일이었다.

        

       침낭째로 몸을 일으켰는데 척추가 비명을 질렀다.

        

       잠을 깨기 위해 한동안 눈을 끔벅이며 그대로 앉아있다가, 천천히 침낭에서 나와 몸을 일으켰다.

        

       꼭 허물을 벗는 것 같네.

        

       조금 재미있다고 생각하며 침낭을 정리했다.

        

       아직 미아와 앨리스, 샤를로트는 잠에 빠져있었다.

        

       클레어는 보이지 않았다.

        

       원래도 우리 중 아침이 가장 빠른 애였으니 당연한가.

        

       텐트 밖으로 나가니, 하늘색으로 물든 세상이 보였다. 아직 새벽이었다.

        

       차가운 새벽바람이 들어가지 않도록 텐트를 잘 닫아두고, 나는 어깨에 담요를 두른 채 바닷가로 나왔다.

        

       클레어는 그 해변 한가운데 돗자리를 펴두고 무릎을 안은 채 앉아있었다.

        

       “바다가 그렇게 좋습니까?”

        

       “응.”

        

       내가 다가가는 것을 진작에 느끼고 있었는지 클레어는 별로 놀라지도 않고 대답했다.

        

       나는 클레어 옆에 앉았다.

        

       “끝이 안 보이잖아. 나는 저렇게 넓게 펼쳐진 곳이 좋더라.”

        

       “어쩌면 복잡한 제도에 너무 오래 살았기 때문일지 모르죠. 어린 시절부터 그 골목길 사이에 있었으니까.”

        

       “그런가?”

        

       개인적으로는 클레어의 머리카락 색과 바다 색깔이 참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언제 한번, 배라도 타보죠. 여기서건, 돌아가서건.”

        

       “어, 그래도 돼?”

        

       “우린 아직 젊으니까요. 돈도 있고.”

        

       “뭔가 뒷말 때문에 조금 씁쓸한데.”

        

       클레어는 쓰게 웃으며 말했다.

        

       “돌아가려니까 조금 아쉽다.”

        

       “저는 일어나자마자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아직도 등허리가 아프다. 역시 딱딱한 바닥은 질색이야.

        

       집에서도 좋은 침대 사두고 바닥에서 자긴 한다만, 아무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돌아가면 다시 우리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요즘 들어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응?”

        

       “가끔은 해야 할 일이니, 책임이니 그냥 던져버리고 도망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래? 그럼 샤를로트가 여왕이 된 다음에도 확 납치해버릴까?”

        

       “그래도 좋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본인이 들었다간 기겁할 이야기를 하면서 웃었다.

        

       아니, 정말로 기겁할까?

        

       왠지 지금의 샤를로트라면 조금 다를 것 같기도.

        

       “클레어? 실비아?”

        

       저 멀리서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앨리스가 나처럼 어깨에 담요를 두른 채 텐트 밖으로 나와 있었다.

        

       그 모습에서 황녀의 위엄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우리 또래의 소녀가 있었을 뿐.

        

       “돌아갈까요.”

        

       “돌아가자.”

        

       우리는 동시에 그렇게 말하고는 짧게 웃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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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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