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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05

        

         

       눈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말해준다.

       특히나, 죽음을 앞둔 인간의 눈은 더더욱 그러하다.

         

       평소라면 평정이라는 이름 아래, 사회라는 방패 아래 숨겨왔을 감정이 여과 없이 드러나고, 그 감정이 눈이라는 마음의 창을 통해 바깥에 모습을 드러낸다. 아무리 마음을 숨기는 것이 능숙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죽음이라는 강렬한 위협 앞에서는 그 감정의 미약한 편린이나마 발현하기 마련이니.

         

       진성이 군인의 눈을 보고 망설임 없이 총을 쏜 것은 바로 그러한 까닭이었다.

         

       눈.

         

       군인은 말로는 굴복을 말하고 있지만, 군인의 눈은 분명히 칼을 품고 있었다.

         

       날카로운 칼날.

       역전을 노리는 전사가 품 안의 비수를 숨겨놓고 접근하듯, 숨통을 끊을 기회만을 노리며 와신상담하듯 그렇게 눈에 칼을 품고 있었다. 그 칼의 날카로움은 다 드러나지는 않았으나 분명히 볼 수 있는 것이었고, 그것이 죽음을 앞두고 있음에도 흘러나왔다는 것은 필시 ‘죽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죽기 전에 엿이라도 먹이고 가겠다.’라는 의도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었다.

         

       엿을 먹이는 것이 아니었다면?

         

       그렇다면 자위대에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실을 비밀리에 전달할 생각이었겠지.

         

       어느 쪽이건 진성에게 유리할 것이 없는 미래다.

         

       그렇기에 진성은 마지막 생존자를 죽였다.

         

       ‘흐음. 도움이 있었다면 더 편하기는 했을 것인데….’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어쩌겠는가?

       살려두면 해가 될 사람이었는데.

         

       점괘에선 겁쟁이라고 나왔지만 본래 큰 사건을 앞둔 사람은 크게 변모하기도 하는 법.

       군인에게 있어서 그 변화는 바로 지금이었을 뿐이다.

       다만 그 변화가 목숨을 앗아갈 줄은 몰랐겠지.

         

       진성은 복도를 움직였다.

       그의 발은 미끄러운 물질을 바르기라도 한 것처럼 쭉쭉 나아갔는데, 그 모습이 마치 얼음판에서 미끄러지는 것 같기도 했고, 미묘하게 뒤틀린 공간 속을 거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물론 실제로 공간이 뒤틀렸다거나 하는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의 신발이 이동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을 뿐.

         

       그는 신발의 힘을 이용해 빠르게 움직여 배에 실려있는 병기를 확인했다.

         

       어뢰, 기뢰, 이름 모를 미사일들, 탄약, 수류탄….

         

       그는 배 안을 돌아다니면서 어렵지 않게 무기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본 구축함은 처음이기는 했으나, 뭐 군사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배라는 것의 구조는 다 거기서 거기가 아니겠는가?

       무기가 있을법한 위치를 알아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것이 없었다.

         

       게다가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 역시 어렵지 않았다.

       생체인식이 필요한 곳은 지휘관으로 보이는 군인의 손가락과 눈알을 뽑아다가 가져다 대면 열렸고, 열쇠가 필요한 곳은 귀신에게 시켜서 가져오게 만들면 그만이었다.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부분은 삼매진화로 고열을 만들어 망가뜨리거나, 주술을 사용해 순간적으로 전기를 뿜어서 망가뜨렸다. 망가져서 열리지 않을 때는 귀신을 끌고 와서 힘으로 뜯게 했고, 힘으로도 뜯기지 않으면 틈을 만든 다음 급조폭발물을 집어넣어서 몇 번 터뜨렸다.

         

       과거 진성이 용병 생활할 때 폭발물을 특기로 한 용병들을 보며 어깨너머로 배운 것이 있어 나름 흉내를 내는 수준은 되었다.

         

       그렇게 진성은 손쉽게 무기들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쇳덩어리와 화약으로 만들어진 폭발물들.

       하나하나가 배를 침몰시키고, 건물을 터뜨리고, 사람을 죽이는 물건들.

         

       진성은 그것을 보며 턱을 쓰다듬었다.

         

       “흠.”

         

       어마어마한 위용을 보이는 무기들.

       자신들은 군대가 없다고 말하는 일본이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물건들이었다.

         

       ‘작전을 위해서 보급받은 것일 수도 있겠지….’

         

       딱 봐도 배에 한계 직전까지 꾹꾹 담아놓은 것이 보였다.

       평소라면 이렇게 가지고 다닐 이유가 없을 테니, 이번에 한국을 도발하는 과정에서 필요할지도 모른다면서 채워놓은 것으로 추정되었다.

         

       ‘끌끌. 생각이 보이는구나.’

         

       기본적으로는 그냥 도발로 끝내되, 만약 한국이 공격한다면 적극적으로 대응해서 전투하라는 뜻으로 주어진 것이 분명했다.

         

       그 말은 곧, 일본 윗사람들의 머릿속에 전쟁을 벌여도 일본이 유리하다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있다는 것.

         

       뭐, 실제로 틀리진 않은 말이다.

         

       일본은 한국보다 해군과 공군이 강했다.

       해군은 꽤 압도적인 수준으로, 공군은 압도적이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차이가 존재하는 수준으로.

         

       다만 한국은 일본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육군이 강하긴 했지만….

         

       그게 뭔 소용인가.

       일본에 공격하려면 바다를 건너고 하늘을 이용해야 하는데.

       일본의 해군과 공군이 더 강한 이상, 한국은 방어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

         

       한쪽은 마음껏 때리고, 한쪽은 때리지 못하고 방어만 해야 한다.

         

       당연히 전자가 더 강하다고 보는 것이 맞다.

         

       한국은 일본군이 상륙할 때만을 기다리며 거북이처럼 등딱지 속에 몸을 숨기고 기회만을 노리거나, 자신보다 강한 해군과 공군을 뚫고 일본 본토를 공격하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 지도층의 생각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었으리라.

         

       하지만 그들이 간과한 것이 있다면, 일본은 치명적인 약점을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는 것이다.

         

       회귀 전 일본은 그 약점을 제대로 찔렸다.

       능력자 단 4명에게 당해서 본토가 아수라장이 되었을 뿐 아니라, 내전의 씨앗까지 심어지게 되었다. 거기다가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던 전쟁의 판도 역시 완전히 뒤바뀌어버렸으며, 결국 일본 본토가 불바다로 변해버리기까지 했다.

         

       ‘이번에도 그렇게 된다면…. 참으로 슬픈 일일 것이다.’

         

       진성은 이번에도 그렇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일본은 평화로워야만 했다.

       불바다 속에서 유적이 타들어 가고 유물이 소실되는 일은 절대 있어선 안 되며, 음양술이라는 특이한 주술을 익히고 있는 음양사들이 전쟁에서 허무하게 목숨이 스러지는 일 또한 있어서는 안 된다. 전화 속에서 주술 자료와 주물이 소진되고 파괴되는 일 역시 막아야만 하는 일이었다.

         

       전쟁은 참으로 나쁜 것이라.

       전화(戰火) 속에서 주술자원이 파괴되고, 인적자원이 스러지는 것만큼 허망한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아직 진성은 일본을 다 연구하지 못했다.

       일본의 특이한 주술들을 다 살펴보지 못했고, 저주에 특화된 주물들 역시 수집이 다 끝나지 않았다.

       폐쇄적인 섬 특유의 환경 때문에 기형적으로 발전한 귀중한 주술과 주물에 관한 연구를 끝마치지 못하였으며, 정부가 꼭꼭 숨기고 있을 주술과 주물 역시 확인하지 못했다.

       그뿐인가?

         

       가문이라는 것이 지금까지 힘을 얻고,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 일본이다.

       가문 대대로 지켜오고 숨겨왔던 주술과 주물이라는 것이 존재해도 이상하지 않다.

         

       거기에 쓸모 있는 것들은 얼마나 많은가.

         

       신사에서 모시고 있을 신체(神體).

       신력을 사용하는 신관과 무녀.

       일본제국 당시 각 나라에서 수집해왔을 유물과 주물, 주술 자료들.

       버블경제 시절 돈을 뿌려가며 다른 나라에서 일본으로 가져왔을 물건들.

       …

       …

       …

       

       그 모든 것들이 잿더미로 변한다고?

         

       그런 일은, 절대로, 있어선 안 된다.

         

       절대로.

         

       그러니 지금 진성이 나서야만 한다.

       오만과 만용으로 거대한 화재가 일어나 귀한 물건들을 다 태워 먹기 전에, 착각 속에 빠진 인간들에게 깨달음을 안겨주어야만 한다.

         

       그 깨달음이라는 것은 참으로 가혹하고 아픈 것이라.

       자신을 특권층이라 여겼던 이들의 목이 여럿 달아나고 비명이 난무할 것이며, 힘이 적당하게 소진되어 전의가 가라앉고 염세적인 분위기가 엄습해 올 것이다. 그리고 그 후유증 역시 남아 그들을 괴롭힐 것이나….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그건 박진성이라는 주술사에게는 별 상관이 없는 이야기였으니까.

         

       경제니, 군사니….

       그런 건 그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그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진성은 진성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저 물건들을 작동시키는 방법도, 사용하는 방법도 알지 못하니…. 협조하는 군인이 있었다면 일이 조금 더 편해졌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리고, 그건 진성에게 가장 익숙한 방법으로 행해지는 것이며.

         

       ‘뭐, 크게 상관은 없는 일이기는 하지….’

         

       진성이 가장 많이 행했던 방식으로 행해지는 것이며.

         

       ‘폭발물은 폭발만 잘하면 그만이고, 배는 어떻게든 움직이기만 하면 그만이거늘.’

         

       진성의 경험을 토대로 행해지는 것이다.

         

       “자아, 귀신들아 물에 둥둥 떠다니는 밤것아. 방울 소리에 맞춰 바다로 뛰어내려 둥둥 떠올라 머리를 내밀어라. 짧은 팔을 휘젓고 다리를 움직여 죽은 생선처럼 배를 까뒤집은 채 움직일 것이며, 몸뚱이를 배에 붙이라. 그리하여 뱃머리를 돌려 뭍이 아닌 곳으로 향하게 만들어 그들을 자신과 같은 처지로 만들도록 하라….”

         

       그것은 불과 화약, 피를 동반하게 되리라.

         

       그리고, 귀신의 열렬한 환호와 함께 진행되리라.

         

         

         

         

        * * *

         

         

         

       배는 둥실둥실 두둥실 파도에 떠밀려 움직였다.

       수면 아래 배에 다닥다닥 들러붙은 귀신 덩어리들이 팔다리를 노처럼 휘저으며 움직이니 엔진이 없이도 잘도 떠서 잘도 갔다.

       해초라도 되는 것처럼 머리카락 길게 늘어뜨려 바다 아래로 뿌리를 뻗고, 그 뿌리 아래에 폭발물을 끌어안은 채 언제든 터질 준비를 하고 있으니 어찌 기특하지 않으랴?

         

       그렇게 배는 나아간다.

       귀신의 것이 되어버린 유령선은 움직인다.

         

       목적지는 독도.

         

       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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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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