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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06

       [바다 다녀왔는데 수영복은 안 입으셨나요]

        

       “일단 이분은 잠깐 차단하겠습니다.”

        

       도네를 보내고도 차단 받을 소리를 하는 게 참 대단하다.

        

       [유료밴ㅋㅋㅋㅋㅋㅋ]

       [선이 없네 저사람ㅋㅋㅋㅋ]

        

       슬쩍 채팅창을 보니 그런 반응이라 안심이었다.

        

       “설령 저희가 수영복을 입었다고 하더라도 그 사진을 보여줄지 말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 같이 동의하지 않는 이상 보여줄 생각 없으니까요.”

        

       [게임에선 입어놓고]

        

       “그렇다면 피규어 같은 걸로 만족하십시오. 밴 당하고 싶으십니까?”

        

       내 말에 채팅창이 엎드리는 이모티콘으로 가득 찼다. 저런 이모티콘도 있구나. 방송 채팅창 전용인가?

        

       “영상은 편집해서 올릴지, 올리지 않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찍은 사진이라도 보여드리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화면에 사진을 띄웠다.

        

       제일 먼저 올린 것은 휴게소 사진이었다.

        

       출발 시점부터 사진을 찍었다가는 사람들이 우리가 사는 곳을 알아낼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가는 도중의 사진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했다.

        

       사실 우리는 눈에 띌 수밖에 없는 구성이긴 했다. 아마 이 근처 사는 사람이 우리 방송을 보고 있다면 우리가 어디 사는지 정도는 추리해내는 게 가능할 거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우릴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고, 내가 검색해본 범위 내에서 우리가 사는 동네에 관해 이야기가 오가는 것을 본 적은 없다.

        

       다행히 우리가 사는 곳이 아파트라서, 설령 주소지를 알아낸다고 하더라도 쉽게 문 앞까지 오지는 못하겠지. 물론 그 스토커가 같은 동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긴 하겠지만.

        

       뭐,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아무튼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었으므로, 사진 선정은 그렇게 했다.

        

       [엌ㅋㅋㅋㅋㅋ]

       [많이 드셨네ㅋㅋㅋㅋ]

       [가서 배 안 부르셨어요?]

        

       “어차피 여기서 다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어차피 가서 또 놀았으니까.”

        

       옆에 있던 클레어가 웃으며 보충 설명을 해주었다.

        

       사진에는 테이블 한가득 휴게소 음식을 늘어놓은 우리 모습이 있었다. 외모 때문에 케이블 국뽕 예능에서 종종 나오는 장면처럼 보이기도 했다. ‘한국의 휴게소 음식에 환장하는 외국인’이라는 사진으로 쓰이는 거 아닐까.

        

       만약 유명 사이트에 글이 올라오면 방송 소재로 또 써먹어야지.

        

       그러면 또 ‘한국 놈들은 차별이 심하다’라는 글이 올라올 거고, 그걸로 또 방송 각을 잡을 수 있을지 모른다. 가히 무한동력이라 부를 만했다.

        

       [휴게소 음식은 입에 맞으셨나요]

        

       “저희는 한국인이라 입에 맞았습니다.”

        

       내 말에 방 안에 가벼운 웃음이 퍼졌다.

        

       [앗 아아]

       [지금외국인최급한거냐고ㅋㅋㅋㅋ]

       [우우 쓰레기 자식]

        

       [죄송합니다ㅠㅠ]

        

       띠링. 사과 도네가 왔다. 무려 만 원짜리였다.

        

       “저희는 이세계에서 넘어왔으니 엄밀히 따지자면 외국인이 맞긴 합니다.”

        

       내 대답에 채팅방이 다시 한번 술렁였다. 물론 대부분은 웃고 떠드는 내용이었다. 이번에는 나더러 돈 때문에 국적을 버렸다는 내용이 많았지만, 대부분은 진심이라기보다는 드립 성 채팅이었으므로 나는 그냥 그대로 두었다.

        

       “여기서 식사한 뒤, 다시 출발해서…….”

        

       내가 키보드 방향키를 누르자, 화면의 사진이 다음 것으로 넘어갔다.

        

       [오]

       [예쁘다]

        

       맨눈으로 보아도 예쁜 곳이긴 했지만, 카메라 사진으로 찍혔기 때문인지 한층 더 색이 풍부해 보였다. 가을 특유의 쓸쓸한 느낌은 조금 죽었지만, 새파란 바다와 새파란 하늘이 참 예쁘게 잘 나온 사진이었다.

        

       “훌륭한 캠핑장에서 묵을 수 있었습니다. 차가 있어서 이것저것 가지고 간 것도 많고요.”

        

       그리고 다음 사진은—

        

       어라.

        

       나는 다음 사진이 우리가 저녁 식사 하는 사진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클레어가 나에게 던진 공이 내 머리를 명중하는 순간의 사진.

        

       밝은 낮에 찍었는지라 사진은 흔들림 없이 아주 정확하게 찍혀있었다.

        

       내가 고개를 돌리자 같은 방 안에 있던 아이들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심지어 미아마저.

        

       ……그래, 뭐. 마지막에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내 잘못이다.

        

       “재미있게 놀기도 했고요.”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그렇게 말했다.

        

       비치볼을 가지고 노는 장면도 찍어두긴 했지만, 그건 동영상이라서 일단은 넘겼다.

        

       그 다음 사진은 나와 미아가 캠핑용 의자 위에 늘어진 사진이었고, 그 다음은 우리가 바베큐 파티를 준비하는 사진, 음식을 다 같이 먹는 사진, 갈비찜을 끌어안고 먹는 미아의 사진이나 영화를 보면서 눈물 흘리는 앨리스의 사진…….

        

       언제 이런 사진을 다 찍었나 싶을 만큼 많은 사진이었다.

        

       모두의 손에 스마트폰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안 그랬으면 우리가 눈치채지도 못하는 사이에 추억이 모두 흘러가 버리고 말았을 테니까.

        

       “……이상으로, 캠핑장에서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자동차 앞에 서 찍은 단체 사진을 끝으로 우리가 찍어둔 사진 목록은 끝이 났다.

        

       [멋지십니다]

       [영상기대할게요]

       [나도 캠핑가고 싶다]

        

       “그러게요. 저도 다시 가고 싶네요.”

        

       채팅을 읽던 샤를로트가 채팅 중 하나에 맞장구쳤다.

        

       “다녀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래도 다시 가면 좋죠. 어차피 우리 모두 시간도 많으니까요.”

        

       오.

        

       샤를로트가 저런 소리를 하는 건 조금 신기했다.

        

       “왜, 왜 그러죠?”

        

       내가 뚫어져라 바라보자, 샤를로트가 조금 당황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뇨, 분명 뭔가 있었어요. 대체 뭐였죠? 뭐였길래 그런 표정을 지어요?”

        

       “제 표정은 평소와 다를 게 없었습니다만?”

        

       “다르긴 했지.”

        

       앨리스가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음.

        

       요즘 표정근을 조금씩 기르는 중이긴 했지만, 샤를로트까지 알아봤다는 건 내가 정말로 표정 관리를 하지 않고 있다는 소리긴 했다.

        

       그 뒤로도 샤를로트는 의심스럽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지만, 솔직히 매우 억울했다.

        

       나는 정말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으므로.

        

       *

        

       “그럼 이건 여기에 둘까요.”

        

       “좋네. 여기서부터 옆으로 쭉쭉 채워가면 되겠어.”

        

       클레어가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해서 나는 나도 모르게 클레어 얼굴을 보고 말았다.

        

       여기는 TV 밑 서랍장 제일 끝인데.

        

       돌아오는 길에 사진관에 들러 우리가 캠핑장에서 찍은 마지막 사진을 인화했다. 큰 인화지에 인화한 건 아니고, 손바닥만 한 사진에 뽑아낸 것이다. 그리고 역시 오는 길에 생활용품점에 들러 그 사진 크기와 딱 맞는 액자도 사 왔다.

        

       서랍의 제일 왼쪽에 올려두었더니 클레어가 저 말을 한 걸 보니, 클레어는 이 서랍 윗부분을 사진으로 꽉 채울 생각인 것 같다. 이런 식으로 나열하면 열 개는 넘게 들어갈 것 같은데 말이다.

        

       “뭐, 무조건 꽉 채우겠다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 캠핑 간 사진으로 채우겠다는 것도 아니야.”

        

       클레어는 안심하라는 듯 말했다.

        

       “사진은 어디서나 찍을 수 있고, 그중에서 좋은 사진을 고르면 되는 거잖아? 그리고 돌아갈 때 나누어 가지면 되고.”

        

       “인원수별로 뽑는 생각은 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음, 그래도 되긴 하는데.”

        

       클레어는 잠깐 고민하다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것보다는, 각자 다른 사진을 가지고 있어야 서로 만나고 싶어지지 않겠어? 모든 추억을 되새기려면 무조건 만나도록 해야 그 명분 때문에라도 다시 만나지. 안 그러면 앨범에 넣어두고 시간마다 꺼내 보면서 궁상이나 떨걸.”

        

       ……그런가?

        

       “확실히, 그것도 그렇네요.”

        

       샤를로트가 대답했다.

        

       그리고 나는 그 대답에 다시 한번 샤를로트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아까부터 왜 자꾸 그런 표정을 짓는 거죠? 정말로 뭔가 있는 거 아닌가요? 또 음모라도 꾸미나요?”

        

       “……제가 그렇게 자주 음모를 꾸민 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만.”

        

       내 말에 샤를로트가 기가 막힌다는 듯 눈을 크게 굴렸다.

        

       “어린 시절부터 여신을 몰아내기까지 하나의 거대한 그림을 그려온 사람이 할 소리인가요, 그게.”

        

       “맞아요! 시간을 몇 번이나 돌려가면서 그렸으면서!”

        

       옆에서 듣고 있던 미아가 그렇게 외쳤다.

        

       아니, 그때는 시간을 돌려가면서 그릴 수 있었으니까 그랬던 거고. 게다가 세계의 진상에 대해서는 나도 한참 뒤에야 겨우 알 수 있었다.

        

       “…….”

        

       하지만 그 시간을 돌리는 능력으로 미아에게 패드립을 쳐봤던 나는 차마 미아에게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뭐, 그런 약속을 잡아둘 수 있으면 좋긴 하잖아.”

        

       앨리스가 나서서 중재하듯 말했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의지만 있으면 시간을 낼 수 있지 않을까? 나도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게 조금 신기하긴 한데, 솔직히 이런 삶을 겪어본 이상 일 년에 하루 이틀이라도 이런 날을 보내지 않으면 삶이 너무 지루할 것 같아.”

        

       “……저도 동의하는 바예요.”

        

       샤를로트가 말했다.

        

       “지금까지는 오로지 제 나라와 왕위만 생각하며 살았는데, 그래요, 우리는 앞으로 살날이 아주 길게 남았으니까요. 인상에 낙이 있긴 해야죠.”

        

       미아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야, 언니. 언니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렇게 말하는 클레어에게,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거 아십니까? 저는 원래도 그런 생각으로 삶을 살아왔습니다.”

        

       내 대답에 앨리스는 피식 웃었고, 샤를로트는 이마를 짚었다. 미아는 눈을 깜빡였다.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는데요.”

        

       “그렇습니까?”

        

       미아의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미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다른 세 사람도 바로 나를 따라 했다. 미아는 나름대로 저항했지만, 자기보다 키 큰 여자 네 사람의 손을 완전히 피하지는 못했다.

        

       그래.

        

       내가 그렇게 뛰어다니는 이유는 해피엔딩을 위한 거였으니까.

        

       그거야말로 제멋대로인 ‘인생의 낙’이 아니면 뭐겠냐고.

        

       그렇게 생각하니, 괜히 웃음이 나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볼드모트 님,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 쓰면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낄 때가 바로 제 소설을 읽고 칭찬해주시는 분들이 계실 때 입니다. 혼자 쓸때는 이게 잘 쓴 글인지 아닌지 제대로 판단이 서지 않지만, 이렇게 꾸준히 읽어주시고 좋아해주시는 분들을 보면 마음이 놓여요. 오늘도, 내일도, 그 평가를 계속 받을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하겠습니다. 언젠가 여러분이 떠났다가 돌아오더라도, 더 풍성한 글을 준비해두고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

    Ilham Senjaya 님,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익명으로 후원해주셨기에 독자 닉네임 기능으로 인사드립니다!

    제가 쓴 글을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처음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큰 기대 없이 그냥 사람들이 읽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쓰기 시작했는데, 제 생각보다도 훨씬 많은 분들이 제 소설을 읽어주셔서 너무 즐겁습니다. 제가 매일 쉬지 않고 글을 쓸 수 있는 이유는 저의 글을 읽어주시는 여러분 덕분입니다! 독자가 없으면 시장도 존재할 수 없고, 시장이 없으면 회사도 존재할 수 없으니 그 플랫폼에서 연재중인 제 작품도 존재할 수 없었겠죠. 제가 쓰고 싶은 글을 쓸 수 있는 것이 여러분 덕분이라는 사실을 언제나 잊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저의 소설을 사랑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시간과 돈이 아깝지 않은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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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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