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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06

        

       구축함은 그 자체로 바다의 성채나 다름이 없다.

       물론 다른 배들에 비해서는 조금 작은 감이 있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해도 구축함이 바다 위에 떠다니는 성을 연상시킬 정도로 거대하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으리라.

         

       그렇다면 묻는다.

         

       이 떠다니는 성이 그대로 들이박는다면.

         

       마치 눈이 돌아간 멧돼지처럼 섬에 그대로 들이박는다면.

         

       그렇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 * *

         

         

       “와, 돌겠네.”

         

       독도는 조용했다.

         

       조용하다 못해 고요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돌아버렸던 거 같아. 어디로 갈 거냐고 물었을 때 내가 왜 독도를 적었는지 모르겠단 말이지. 내가 그때 어? 독도 다큐멘터리를 보고 빡 뽕에 차 있지만 않았어도 이런 곳은 안 적었을 텐데. 어?”

         

       한국과 일본의 다툼의 재료로 사용하는 곳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의 평화로움.

       

       큰 변화도 없고, 특별한 사건도 터지지 않는다.

       크기가 너무 작아서 변수도 없고, 있는 게 없어서 즐길 거리조차 별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독도에서 보내는 군 생활이란 견디기 힘든 종류에 속하는 것이었다.

         

       무료함.

         

       눈을 뜨고 있을 때나 감고 있을 때나 이 끔찍한 적과 싸워야만 했으니까.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자기 위해 눈을 감을 때도, 정비할 때도.

         

       그 모든 순간이 시간을 느리게 만드는 ‘무료함’과의 사투였다.

         

       그리고 이 무료함이 가장 강해지는 때는 바로 지금.

         

       경계 근무를 설 때였다.

         

       “게다가 말이야. 이놈의 총과 수류탄도 지긋지긋해. 아, 너는 군대 안 갔다 오고 그냥 시험을 쳐서 경찰 붙었다고 했었나?”

         

       “예. 그렇습니다.”

         

       “나는 말이야, 어? 내가 입대했었어. 내가 몸 쓰는 데에 재주가 있기는 했는데 뭐 어디 선수로 갈 정도로 뛰어나지는 않았고, 그렇다고 공부를 엄청나게 잘하는 것도 아니었거든. 그래서 그냥 군대에 들어가서 풀칠이나 해야겠다 싶어서 딱 들어갔단 말이지. 근데 병장 진급하려니까 눈앞이 캄캄하더라고. 1년 6개월 동안 뺑이치면서 상병 달았는데, 어느 세월에 또 병장을 다나 싶었던 거야. 게다가 군 생활이라는 게 내 적성에 잘 안 맞기도 해서 그냥 한 3년쯤인가? 그때 그냥 그만둬버렸지.”

         

       보이는 것은 시꺼먼 바다.

       들리는 것은 파도 철썩거리는 소리와 부대에서 기르는 개가 가끔 짖는 소리.

         

       이 끔찍할 정도로 볼 것도 들을 것도 없는 곳에서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

         

       그렇기에 경계 근무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수다쟁이로 변한다.

       한참 떠들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든 지나가곤 했으니까.

         

       “그렇게 그만두고 나니까 좀 막막하기는 했지. 그래도 군대에 있을 때는 월급도 따박따박 나오고, 혜택도 있고, 입을 것도 주고, 먹고 잘 것도 걱정 안 해도 됐는데…. 밖으로 나오니까 그냥 맨몸으로 사회에 내던져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야. 게다가 군대에서는 그냥 시키는 것만 잘하면 됐는데, 이놈의 사회라는 곳은 뭐 내가 하고 싶은 걸 찾아다녀도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진짜 무슨 바다에 집어 던져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말이지. 그래도 어? 내가 누구냐. 싸나이 중의 싸나이, 경장 김이창 아니냐? 어떻게든 살길을 찾아냈지. 그게 뭔지 아냐?”

         

       “혹시, 군 경력자 우대 말씀하시는 겁니까?”

         

       “어, 아네? 공부해서 들어왔다고 하더니 잘 안다?”

         

       그리고 이러한 수다는 의외의 장점이 있다.

       바로 같이 근무하는 사람에 대해서, 동료에 대해서 조금 더 알 수 있게 된다는 것.

       동료의 몰랐던 이야기, 과거…그 모든 것들이 이 좁아터진 곳에서 흘러나오니까 말이다.

         

       “우리 대한민국이 미군 체계랑 거의 흡사하게 군대 조직했잖냐? 이게 참 다행인 게, 미군과 비슷하게 우리도 군인을 우대하고 케어해주는 그런 느낌이란 말이지. 군인일 때 혜택도 좋지만, 전역하고 나서도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이 말이야. 그리고 그중에는 경찰도 있었고 말이야. 물론 아무나 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누구냐. 그래도 부대에서 에이스 소리 들으면서 복무했던 사람이야. 부대 내 평가도 좋고, 추천장도 잔뜩 받아뒀고, 실적 같은 것도 잔뜩 있었지. 그래서 어렵지 않게 특채로 딱 붙었고 지금 이렇게 내가….”

         

       하지만 장점이 있다면 단점도 있는 법.

       단점이라는 것은 수다가 듣기 싫어도 분위기를 위해서라면 어떻게든 맞장구를 칠 수밖에 없다는 것, 말재주가 없더라도 어떻게든 쥐어짜서 대화를 이어가야만 한다는 것….

         

       그리고.

       수다에 집중하는 만큼 경계 근무에 소홀하게 된다는 것이다.

         

       삐이이이이이——-!!!

         

       두 경찰이 초소에서 총과 수류탄을 착용한 채 수다에 집중하고 있을 때, 엄청난 크기의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

         

       “어?! 뭐, 뭐야!”

         

       “이거 경보입니다!”

         

       귀청을 찢어버릴 것과 같은 소리는 어둠을 가르며 섬 전체로 울려 퍼졌고, 초소 위에 붙어있는 사이렌은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붉은빛으로 화려하게 빛나며 위기 상황을 알렸다. 그리고 독도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조명은 자동으로 켜지며 등대처럼 밝은 빛을 사방으로 뿜어내었다.

         

       배나 미상 물체가 일정 거리 안으로 들어왔을 때 감지해서 울리는 경보 장치.

         

       위급상황을 알리는 경고이자, 대처를 할 수 있는 마지막 여유를 주는 경보였다.

         

       초소에 들어가 있는 경찰 둘은 사색이 되어 야간투시경을 허둥지둥 들어 정면을 바라보았다.

         

       경보가 울렸다는 것은 미상 물체가 코앞까지 다가왔다는 것.

         

       저게 기계 오작동으로 작동한 거라면 그나마 낫지만…그렇지 않다면 근무 태만으로 욕을 먹어야 할지도 몰랐다.

         

       아니, 그냥 욕먹는 정도로 끝나면 다행이다.

       하이에나 같은 기자 놈들이 이 일을 주워 먹으면 징계를 받을 수도 있었다.

         

       둘은 속으로 빌었다.

         

       제발 아무런 일도 없기를.

       기계 오작동이기를.

         

       하지만 현실은 둘의 기대와 달랐다.

         

       “워, 씨발….”

         

       야간투시경을 착용한 둘의 눈에 보인 것은 배.

         

       어마어마한 크기의 배였다.

         

       이 암초 같은 작달막한 섬과 비교해도 될 정도의 거대한 배.

       어두컴컴한 바다의 칠흑을 그대로 휘감은 것 같은 위용을 자랑하는 괴물이었고, 철 덩어리로 몸을 둘러싼 채 섬으로 다가오고 있는 성채였다.

         

       “아니 미친. 갑자기 오밤중에 뭔 놈의 배가 섬으로….”

         

       “무슨 문제가 생겨서 정박하려고 하는 거 아닙니까?”

         

       “그렇겠지 뭐. 그런데 그래도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말이야. 섬에 신호를 주건 연락하건. 좀 마음 준비라도 할 수 있게 하고 들어오지 말이야. 어? 저렇게 조용히 들어오다간 공격당해요. 공격. 배에 구멍 뻥 뚫려서 수장될 수도 있다고.”

         

       “흐음. 그건 좀 이상하긴 합니다. 혹시 뭐 조난이라도 했던 거 아닙니까? 아니면 GPS가 맛이 가서 헤매고 있다가 섬을 발견해서 그냥 다짜고짜 오고 있다던가?”

         

       “그것도 가능성이 있긴 하지. 네가 여기 오기 전에 말이야. 부자 놈들이 요트 타고 배에서 논답시고 별 준비도 안 하고 저 멀리까지 나갔다가 조난할 뻔해서 해경까지 출동했던 적이 있었어요. 그때 그 요트가 잠시 여기 들렀었는데, 그게 참 가관이었단 말이야.”

         

       “아, 그런 일도 있었습니까?”

         

       “그래. 그러니까 뭐 저 배도 그럴 수도 있겠지. 아니, 애초에 그런 배가 아니면 뭐겠냐? 옛날 같으면 북한 놈들 배가 아닌가 긴장이라도 했을 텐데, 요새는 뭐…대한민국이 어디 다른 나라랑 전쟁을 하는 것도 아니잖아?”

         

       둘은 거대한 배를 보고 잠시 놀라기는 했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그냥 급한 일이 있는 배가 연락도 없이 다짜고짜 와서 정박하려는 게 아닌가 싶었다.

         

       실제로 어선이나 군선에 문제가 생겨서 독도에 정박하는 예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으니, 그 생각이 마냥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명확한 적대세력이 없는 것도 그들이 심각함을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였다.

         

       옛날에는 북쪽 지방을 점거하고 있던 괴뢰 집단이라는 명확한 적대세력이 있었지만, 북한이 멍청한 짓을 하다가 스스로 자멸한 이후에는 대한민국과 적대하고 있는 나라가 없어지게 되었다.

         

       잠재적 적국으로 여기는 곳들이 있기는 했지만, 그 체감은 크지 않았다.

         

       일본과 중국이랑은 사이가 그리 좋지는 않은 편이었지만 전쟁을 벌일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은 건 아니었고, 무역과 교류를 활발하게 이어 나가고 있었다.

         

       러시아 역시 마찬가지.

       주변 국가들에 깡패 소리를 듣는 러시아였지만, 한국과의 사이는 그리 나쁜 편은 아니었다. 한국의 관점으로는 러시아는 힘세고 성질 더러운데 자신에게 묘하게 잘 대해주는 깡패같은 느낌이었고, 러시아의 관점으로는 한국은 조금 비리비리하기는 해도 의리도 있고 독한 면도 있는 사람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 면모가 잘 맞았던 것일까?

       러시아는 묘하게 한국에게 잘해주는 편이었고, 한국 역시 러시아의 무력을 경계하기는 하면서도 꽤 잘 교류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둘은 크게 위기감을 느끼지 않았다.

         

       진짜 전쟁을 벌이는 게 아니고서야 적의를 가지고 이 섬에 들어올 리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게다가 대한민국이 무슨 눈뜬장님도 아니고, 적군이 쳐들어올 정도라면 그들에게 언질이라도 주었을 게 분명했으니…. 저 배가 적대적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리라.

         

       그렇다.

       저 배는 안전하다.

         

       다만, 저 배의 존재를 미리 눈치채지 못했던 것은 욕을 먹을만한 일이기는 하지.

         

       둘은 그냥 그렇게 생각했다.

       그냥…그렇게 여겼다.

         

       하지만 경계하는 이에게 낙관이란 그 어떤 독보다 무서운 맹독인 법.

         

       “어…? 근데 저 배 왜 저러냐? 왜 속도를…?”

         

       “어…. 어어…! 요, 요격! 요격해야 합니다!”

         

       “씨발 지금 배에 구멍 뚫어봤자 늦었어!”

         

       배가 그 어떤 조명도 켜지 않으며, 그 어떤 신호도 보내지 않고, 속도조차 줄이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콰아아아앙-!

         

       구축함은 굉음을 내며 독도로 올라섰다.

         

       섬 전체에 지진처럼 울리는 진동과 함께 굉음을 퍼뜨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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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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