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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06

       공간을 접어 달리듯 빠른 걸음으로 나아간 길의 끝에 자리한 집무실.

         

       드르륵

         

       주인 없는 공간에 멋대로 발을 들여놓은 객(客)은 느긋한 태도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중원 오대세가.

         

       구파일방과 더불어 정파 무림을 양분하는 거대한 집단의 일좌를 차지하고 있는 모용세가.

         

       눈앞에 앉아 있는 사내는 바로 그 모용세가의 가주.

         

       자리가 위태로운 가문을 본신의 무력으로 붙들어 놓은 무인.

         

       이름보다 유성검(流星劍)이라는 별호로 더 많이 불리는 이.

         

       모용진천.

         

       누구나 오르길 희망하는 영광스러운 자리에 앉아 있음에도, 전혀 만족하지 못하고 정파 무림을 배신하고 마교와 손을 잡은 배신자.

         

       뒤의 설명은 오직 백우진을 비롯한 조원들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백우진이 탁자 맞은편에 앉자, 찻잔을 들고 있던 모용진천이 그를 반겼다.

         

       “오랜만에 보는군.”

       “그러게나 말입니다. 심지어 여기서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안 그래도 조만간 찾아가려 했는데요.”

         

       은근한 살기가 담긴 압박에도 모용진천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랬나? 하도 찾아오지 않길래 몸소 찾아왔더니, 헛수고였나 보군.”

         

       담력 하나만큼은 인정해야겠다.

         

       절대 알려져선 안 될 비밀을 간직한 상대를 눈앞에 두고도 저리 당당할 수 있는 것은 어지간한 담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니.

         

       ‘아니면 미쳤거나.’

         

       백우진은 차게 웃으며 뇌까렸다.

         

       “내게 할 말이 있어서 온 것이라면 헛걸음은 아닐 겁니다. 만약 내가 요녕에 먼저 닿았다면 대화는 꿈도 꾸지 못했을 테니.”

       “…….”

         

       이는 진심이었다.

         

       급한 일이 해결되면 언제가 됐든 요녕으로 향할 생각이었다.

         

       언제 등에 칼을 꽂을지 모를 적을 남겨두고서 전쟁을 치를 바보 따위는 없으니.

         

       그리고 그때는 어떤 말도 나눌 수 없었을 것이다.

         

       입을 열기도 전에 그의 목이 땅바닥에 떨어져 내렸을 테니까.

         

       살기등등한 말투에 잠시 할 말을 잃었던 그가 안색을 회복하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대화할 시간 정도는 내어주겠단 말이로군.”

         

       백우진은 앞으로 쏠려 있던 상체를 의자 등받이에 기대며 대답했다.

         

       “궁금해서 말입니다. 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어서 머나먼 요녕에서 이곳까지 왔는지.”

       “고맙다고 전해주게.”

       “…뭘 말입니까.”

       “자네의 호기심에게 말일세. 덕분에 목숨을 부지하지 않았나.”

       “…….”

         

       이때 그는 진심으로 고민했다.

         

       그냥 죽일까.

         

       그러는 사이, 모용진천이 말을 이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한 가지 물어도 되겠나.”

         

       이에 백우진이 입술을 삐죽 내민 채로 대답했다.

         

       “시답잖은 거면 넣어두고, 아니라면 말해 보십시오.”

       “그렇다면 묻도록 하지.”

         

       찻물로 입 안을 한 번 더 축인 그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왜 지금까지 나를 살려두었나?”

       “시간이 없었을 뿐입니다.”

         

       천마에게 반강제로 끌려가게 된 마교에서 생각보다 오랜 시간을 허비했다.

         

       아니, 그곳에서 얻은 것이 생각보다 쏠쏠하니 허비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을지도.

         

       마경을 나선 뒤, 중원으로 다시 돌아온 이후에는 정신없이 쏘다녔다.

         

       그들의 뒤통수를 잊은 것은 아니나, 요녕까지 다녀올 시간적 여유가 없었을 뿐.

         

       이에 모용진천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재차 물었다.

         

       “굳이 자네가 오지 않더라도 본가가 배신했다는 정보만 흘리면 되었을 텐데.”

         

       그의 말도 맞다.

         

       사실 그들을 벌하고자 한다면 굳이 직접 나서지 않더라도 무림맹에 그들의 배신을 알리기만 했어도 충분했다.

         

       그런데 그가 그러지 않은 이유는.

         

       “내 복수를 왜 남에게 미룹니까?”

         

       직접 끝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그가 겪어온 위기 중 최고로 위험한 순간을 꼽으라면 백우진은 망설임 없이 요녕에서의 일을 입에 담을 것이다.

         

       그만큼 위태로웠고, 아슬아슬했다.

         

       만약 당대의 천마가 그녀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제 형은 물론이고, 동료 대다수가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일이 잘 풀린 덕에 누구 하나 잃지 않았지만, 그때 느낀 아찔함은 지금도 그의 가슴을 서늘케 할 정도.

         

       그 모든 것은 모용세가로부터 비롯되었다.

         

       당시에는 몰랐으나, 그가 알려준 모든 정보는 대다수 거짓이었으며 유인책이었다.

         

       만약 모용세가가, 그가 배신하지 않았더라면 그러한 위기 또한 겪지 않았을 터.

         

       그토록 간담을 서늘케 했는데 어찌 복수를 남에게 맡길 수 있을까.

         

       그리고 제 손으로 직접 그를 끌어내려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지만…, 이는 일단 덮어두고.

         

       “생각보다 집착이 강했구먼, 자네.”

       “제 뒤통수를 친 상대에게는 한없이 잔인해질 수도 있고요.”

       “으음…, 난생처음 손 잡을 상대를 잘못 골랐다는 후회가 드는군.”

         

       말투는 한없이 가벼웠으나, 마음까지 가볍지는 않은 듯했다.

         

       이를 증명하듯, 모용진천의 이마에는 굵은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지.”

         

       삼매진화를 응용하여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기화시켜 없앤 그가 말을 잇는다.

         

       “자네와 거래하고 싶네.”

       “거래…?”

         

       눈살을 찌푸리는 백우진.

         

       거래라는 것은 상대에게 필요한 것을 내주고, 자신 또한 상대에게서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행위 아닌가.

         

       백우진은 코웃음 쳤다.

         

       ‘모용세가에 얻어내야 할 게 있을 리가…, 아!’

         

       있다.

         

       자신이 모용진천에게, 모용진천이 자신에게 얻어내고 싶은 것이.

         

       입가에 묘한 미소를 그린 백우진이 그를 향해 물었다.

         

       “자구책을 마련하러 오셨나 봅니다.”

         

       짧은 사이에 속내를 들켜버린 모용진천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잘도 알아차렸군, 그래.”

       “가주님과 제가 만족할 만한 거래는 딱 하나뿐이지 않습니까.”

       “…그것도 그렇군.”

         

       빠르게 수긍한 그가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하겠네.”

         

       땀을 뻘뻘 흘릴지언정 결코 절실함은 내비친 적 없던 그가 만남 이후 처음으로 절실한 목소리로 그를 향해 말했다.

         

       “모용세가를 살려주게. 그 대가로 내가 알고 있는 마교에 대한 모든 정보를 건네주겠네.”

         

       앞서 예상했던 그대로 제안이 전해졌다.

         

       모용진천이 요녕에서 여기까지 온 까닭은 살기 위해서였다.

         

       ‘어지간히도 불안했나 보군.’

         

       제아무리 중원의 끄트머리 땅이라고 해도 백우진에 대한 소식은 전해졌다.

         

       중원이 아니라 새외라고 해도 알 수 있을 만큼, 그의 활약상은 뛰어났기에.

         

       나날이 늘어가는 그의 소식을 보며 모용진천을 비롯한 가문 전체가 불안에 떨었을 것이다.

         

       언제 갑자기 들이닥쳐 자기네 집 대문을 박차고 들어와 피바람을 몰고 올지 모르니.

         

       그러다 마침내 모용진천은 결심한 것이다.

         

       이대로 불안에 떨어 사느니, 먼저 부딪혀 보기로 말이다.

         

       “살려달라….”

         

       눈 감아달란 말도 아니고, 봐달라는 말을 넘어 살려달라는 애절하기 짝이 없는 단어까지 사용한 것은 자존심마저 내려놓았다는 뜻.

         

       ‘어쩐다.’

         

       주도권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있다.

         

       이쪽 또한 마교에 대한 정보라면 혈안이 될 정도로 급한 상태.

         

       하지만 상대는 이를 모르기 때문.

         

       골똘히 고민하는 척하던 그가 선심 쓰듯 말한다.

         

       “뭐…,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군요. 이쪽에 전해줄 정보가 충분히 값어치 있을 때의 한해서긴 합니다만.”

         

       긍정적인 대답에 모용진천의 눈동자에 빛이 번뜩였다.

         

       찰나에 불과했지만, 그것은 분명 희망의 빛이었다.

         

       어쩌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현재 모용진천의 머릿속에는 그러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지 않을까.

         

       백우진은 그런 그에게 찬물을 끼얹었다.

         

       “희망을 품으시는 건 나중으로 미루시죠. 아직 무엇 하나 확정되지 않았으니.”

         

       의자에 등을 기대고 있던 상체를 다시 앞으로 쏟아내며 그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모용세가를 살리기 위해 제게 어떤 정보를 주시렵니까?”

         

       마침내 건네진 물음에 마른침을 삼키는 모용진천.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자신이 준비해온 것들이 통하지 않으면 자신은 물론 모용세가는 멸문을 면치 못할 터.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본가의 은신처가 있네.”

         

       그곳은 일종의 비밀 지부였다.

         

       중원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꼼꼼하게 모아 본가로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모용진천은 이곳에 오기 전 그곳에 들렀다.

         

       자신을 비롯한 극소수만이 알고 있는 그곳에 백우진에게 건넬 물건을 두고 오기 위하여.

         

       “그곳에 지금까지 마교에게서 받은 지령서들을 전부 모아두었네.”

       “지령서….”

         

       마교에서 요녕에 있는 모용세가에 어떠한 지령을 내렸다는 것은 분명 그곳에서 꾸미는 일이 있다는 뜻일 터.

         

       “이미 끝난 지령이 대다수기는 하나, 아직 진행 중인 명령 또한 존재하지.”

         

       그것들을 전부 살필 수 있다면 이는 분명 큰 정보가 될 터였다.

         

       지나온 지령들, 그리고 현재 진행 중인 지령을 하나로 엮어내면 그들이 요녕에서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 윤곽이 드러날 것이기에.

         

       제가 건넨 제안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음을 눈치챈 그가 말을 이었다.

         

       “모용세가를 살려준다는 약속만 하면 그것들을 전부 자네에게 주겠네. 또한….”

         

       하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조금 더 그의 구미를 당기게 할 만한 제안을 더 던져야만 했다.

         

       정보만 가지고 입을 삭 닦아내지 못하게, 그를 제약으로 묶는 것보다도 더 이득이 되게끔.

         

       “향후 백 년간 자네의 수족이 되어주도록 하지.”

         

       아니.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였다.

         

       “본가를 수하로 거두어주십시오.”

         

       오대세가의 자부심마저 내팽개친 채 넙죽 엎드리는 것.

         

       

       이것이야말로 모용세가를 살리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럼 저는 다음 편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셔요. (_ _)

    다음화 보기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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