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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06

       자신의 마법으로 집무실을 밝힌 채 업무를 수행하던 카라미나 왕국의 여왕 베니 카라미나는 각지에서 올라온 보고를 살피다 긴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의 앉은키를 넘어설 정도로 들어온 정보가 많은데 저 중에서 희망적인 정보는 존재하지도 않았으니까.

       

       어디의 마을이 마물에 의해 멸망했다. 또 어디에서 군대가 패전했다. 그런 소식을 계속해서 읽어나가던 베니는 문득 예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녀가 아직 어리고 미숙했을 적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하늘에서 내린 천벌처럼 모습을 드러낸 외신에 의하여 수많은 나라가 멸망하고 인류가 존속할 수 있을지 없을지조차 불분명 하던 때가.

       

       그 때에 왕국은 현 인류의 힘만으로 상황을 돌파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여겼고 다른 세계에 있는 용자를 불러 도움을 청하기로 결정했다.

       

       왕국 역사상 단 한 번도 실행된 적이 없는, 과거에서 전승되어왔을 뿐인 도박에 가까운 의식은 성공했으며 동시에 실패했다.

       

       다른 세계에서 사람을 불러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남자는 용자가 아닌 무력한 일반인에 불과했으니까.

       

       그 때를 떠올릴 때면 베니의 입가에는 웃음이 새어나왔다.

       

       의식이 펼쳐졌던 날.

       

       인류의 역사는 여기에서 끝맺음 지어질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설마 울고불고 화를 내던 파이스님께서 세상을 구하는 데 성공하실 줄이야.

       

       그러고 보면 그 의식은 완벽하게 성공한 거였네요. 파이스님은 분명 세상을 구할 용사셨으니까요.

       

       …

       

       파이스님.

       

       당신께서 지금까지 남아 있으셨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요?

       

       그 때 이 세상을 위해서라도 자신은 돌아가야 한다 말하던 당신을 말렸더라면 외신이 태양을 집어삼키기 전에 그 놈을 물리칠 수 있었을까요?

       

       홀로 남겨두어 미안하다며 어색하게 웃음 짓던 당신의 손목을 붙잡았더라면 이 무능한 여왕의 마음에 한 줄기 빛이 새겨져 있었을까요?

       

       세상을 구하고서 다시금 자신이 살던 곳으로 돌아간 그 이름을 되뇌이던 베니는 재차 긴 한숨을 내뱉었다.

       

       이제는 여기에 없고 다시 볼 방법도 없는 이름을 계속 생각해봐야 무얼 할까요.

       

       지금 제가 할 일은 그저 절망 속에서 무언가를 찾아내는 것. 한 나라의 머리된 인물로써 마지막까지 책임을 수행하는 것.

       

       일이나 합시다. 아직도 제가 검토해야 할 서류가 한 가득 남아있으니까요.

       

       서명을 끝마친 서류를 옆으로 밀어둔 채 베니가 새로운 서류를 집어든 그 때에 갑자기 그녀의 집무실 안에 균열이 생겨났다.

       

       베니의 대처는 빨랐다.

       

       수많은 전선에 참여해 보았던 그녀는 여왕임과 동시에 한 명의 숙련된 전사였으니.

       

       베니는 균열을 본 그 순간 지팡이를 꺼내 들고 자기 주변에 네 개의 마법을 캐스팅 한 후 상황을 지켜봤다.

       

       만일 저 곳에서 무언가 현상이 일어난다면 바로 대처할 수 있도록.

       

       세상의 한 가운데에 생겨난 균열은 점차 주변으로 크기를 키워가다가 결국 세상을 부수어 버렸다.

       

       뭐가 오려는 거지? 베니가 입술을 꾹 깨물던 그 순간 균열의 너머에서 인간의 형체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것은 여자였다.

       

       비녀를 가지고서 묶어 올린 머리카락.

       

       후줄근하다는 느낌을 주는 정체 모를 재질의 옷.

       

       무심한 눈동자와 꾹 닫혀 있는 입술. 손짓 발짓 하나하나에 묻어나오는 고풍스러움.

       

       쉽사리 다가갈 수 없는 고귀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여성은 가만 베니를 바라보다가 한 쪽 눈썹을 치켜들었다.

       

       “그 쪽이 이 반지의 주인인가?”

       

       여성이 내민 반지를 본 순간 베니는 눈을 뜬 채로 멈춰버렸다.

       

       저 반지는.

       

       왕국의 인장이 박혀 있는 반지는.

       

       모든 여정이 끝난 후 베니가 몇날며칠을 고민하며 만들어낸 마법이 기록된 저 반지는.

       

       이젠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랑하는 이에게 작별선물로 건네준 저 반지는.

       

       결코 착각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맞는가보군.”

       “왜 당신이 용사님께서 들고 계셔야 할 반지를 들고 있는 거죠?”

       “왜 들고 있냐니. 당연히 그 용사란 놈에게 받았으니까 그렇지.”

       “…용사님께서 반지를 순순히 내어주었다고요?”

       “그렇다만?”

       

       베니는 그 이상 대화를 나눌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왜냐하면 파이스는. 헤어지는 그 마지막까지도 서로 사랑을 속삭이던 남자는. 저 반지를 다른 이에게 내어줄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이것 참. 성질이 급하군 그래.”

       

       베니가 준비해두었던 마법이 쏘아졌음에도 여성의 얼굴에는 여유가 가득했다.

       

       처음에는 마법을 감지하지 못하는 사람인가 생각했던 베니였지만 그 희망적인 관측은 순식간에 박살이 나버렸다.

       

       어느 순간 여성에게로 쏘아지던 마법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처럼 말끔하게.

       

       …뭐야?

       

       왜 내 마법이 이렇게 허무하게 사라져버린 거지?

       

       무언가 실수가 있었던 것일까 싶어 베니가 재차 마법을 사용했지만 그런다고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녀의 마법은 여성의 근처에 다가선 순간 방금 전처럼 흩어져 버렸다.

       

       “…당신. 뭐야?”

       

       기이한 일이었다.

       

       겉으로 보기에 여성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처럼 보였다.

       

       마력도. 특별한 기운도. 그 무엇도 관측되지 않았으니까.

       

       허나 그것이 평범함이 아니라면?

       

       너무나도 드높은 무언가를 지녀 베니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뿐이라면?

       

       처음 외신을 마주했던 그 순간처럼.

       

       생각해보면 그랬다. 저 여성이 파이스에게서 저 반지를 빼앗아 올 수 있는 존재라면 당연히 파이스보다 강하다는 소리.

       

       외신을 쓰러트린 용사보다 강한 존재라면 나로서는 감당할 수 없어.

       

       …

       

       난 이대로 죽는 건가?

       

       베니가 공포에 질리건 말건 여성의 얼굴은 시종 태연했다.

       

       그녀는 가만 베니를 살피다가 푹 한숨을 내쉬더니 자신이 지나온 균열 쪽으로 목소리를 냈다.

       

       “파이스. 무얼 꾸물적대고 있는 게야. 네 놈이 느려 터져서 그대의 연인이 내게 성을 내지 않으냐.”

       “제발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 좀 주시면 안 될까요!? 몇 년 만의 재회란 말이에요!”

        …어라? 방금 그 목소리는.

       “그래서 네 연인이 겁에 질려 쓰러지기 직전인데도 구경만 하고 있겠다는 게냐?”

       “네? 화령님. 또 무얼 하신 겁니까?”

       “왜 내가 무언가를 했다는 전제인게냐. 닥치고 나오기나 해라.”

       

       여성이 닦달을 함에 따라 균열 너머에서 또 다른 인형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의 모습은은 여성이 기억하는 것과는 여러모로 다른 부분이 많았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주름이 늘어났고. 전장에서 벗어난 지 오래인 탓인지 그 눈에서는 독기가 빠졌고. 꽤나 길었던 머리카락은 짧고 단정해져 있었지.

       

       허나 그 웃음만큼은. 허술하고도 부드러운 웃음만큼은 베니가 기억하던 그대로였기에. 베니는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게 누구인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용사님.”

       

       파이스 스코비아.

       

       과거 왕국의 잘못으로 이세계에 끌려온 불쌍한 남자아이.

       

       그리고 몇 년이란 세월을 거쳐 결국 이 세상을 구원했던 영웅.

       

       “예. 공주님. 당신의 기사. 파이스 스코비아. 긴 세월을 거쳐 다시금 당신의 곁을 지키러 돌아왔습니다.”

       

       그는 예전처럼 어색함이 가득한 예법으로 인사를 건넸고. 베니 또한 예전처럼 그 어색한 예법을 웃으면서 반겨주었다.

       

       *

       

       

       “아라님. 너무 무드가 없다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곰방대를 입에 문 채로 두 사람의 재회를 구경하고 있으려니 백호가 내게 한소리를 했다.

       

       “몇 년 만에 재회하는 것인데 파이스가 답답하다고 먼저 앞으로 나서시다뇨.”

       “내가 그러지 않았다면 저 놈팽이는 지금도 심호흡이나 하고 있었을 것이야.”

       

       몇 년만의 재회고 나발이고 말이다.

       

       잠시 기다려 달라 하고서 몇 번이나 심호흡 하고 할 말을 준비하고 머리를 쥐어 싸매고 하는 꼴을 내가 왜 보고 있어야 하느냐.

       

       방송 시간 때문에라도 시급하게 움직여야 하거늘.

       

       “정말 사람의 마음을 모르시네요.”

       “백호야. 적당히 하지 않으면 그대의 송곳니가 없어져버릴 수도 있느니라.”

       

       협박을 통하야 백호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을 즈음에 파이스와 공주의 재회는 거의 끝나가는 상태였다.

       

       아직도 할 말이 많은 것 같기는 하다마는.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기에 말을 참는 모양이구나.

       

       “이 분은 화령님입니다. 저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강자이시며, 제가 이 세상에 다시금 방문할 수 있도록 해주신 분입니다.”

       

       파이스의 소개가 이어짐에 따라 여자의 얼굴이 점차 창백해진다. 방금 전 자신이 저지른 무례가 생각난 것이겠지.

       

       “혹시나 하여 미리 말해두겠다만 방금 전 일에 대해 사과할 필요는 없다. 그 정도는 내게 자그마한 위협도 되지 못하니.”

       

       괜히 호들갑을 떠는 꼴이 보기 싫어 미리 사과를 차단하였더니 파이스의 연인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최소한 마을의 놈들보다는 이해력이 좋구나.

       

       “이 쪽은 백호님이십니다. 신수이시며…”

       

       파이스의 주도에 따라 서로의 소개를 끝마친 후 파이스의 연인인 베니는 사람을 불러 우리들을 응대하려고 했다.

       

       용사의 일행이니만큼 거기에 걸맞은 대접이 필요하다 여긴 것일테지.

       

       분명 그녀의 행동은 예의가 발랐으나 본인이 원하는 내용은 아니었다.

       

       “그런 자잘한 것은 되었다. 본인이 바라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니까.”

       “그러면 무엇을 바라고 계시는 지 알려주시겠습니까?”

       “우선은. 그래. 지금 이 세상이 기이하게 물든 것이 외신이라는 녀석 때문이더냐?”

       “예. 그렇습니다. 대지에서 태양을 앗아간 것은 분명 외신입니다.”

       “그 외신이라는 녀석은 여전히 이 대지에 남아있느냐?”

       “그 또한 그렇습니다. 외신은 여전히 대지에 남아 이 세상을 집어삼키려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 외신이라는 녀석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고 있느냐?”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계속 그 위치를 추적하고 있으니까요.”

       

       진즉에 여기로 올 것을 그랬구나. 만나서 몇 마디를 나누었을 뿐인데 본인이 궁금해하던 내용이 모두 다 해결될 듯 하니 말이다.

       

       “…저어.”

       

       만족스러움에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으려니 베니가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내었다.

       

       “그것은 왜 물어보시는지요?”

       “지금부터 반나절이 지나기 전에 그 녀석을 박살낼 생각이니까.”

       “예?”

       “더 쉽게 말해주랴? 아침이 오기 전에 그 외신이라는 놈의 멱을 따버리겠단 소리다.”

       

       그래야 여유롭게 방송 시간을 맞출 수 있을 테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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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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