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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06

   허접 주신이 내어 준 퀘스트 덕분에 거리에 존재하는 위화감이 악신의 기운이 만들어낸 것임을 알게 된 나였지만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미적감각은 무엇인가가 잘못되었음을 알려주긴 해도 정확히 뭐가 잘못되었는지를 알려주진 않으니까.

   

   내가 직접 이상을 찾아내지 못하는 한 쓸데없이 움직여봐야 상대한테 대응할 틈을 줄 뿐이야.

   

   상대가 평범한 악신의 추종자였다면 나건 할아버지건 그들의 기운을 추적해서 따라갈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미적감각의 힘을 빌릴 필요도 없이 바로 그들의 존재를 눈치 챘겠지.

   

   하지만 나도 할아버지도 미적감각이 이상을 지적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렇다 치더라도 할배에몽의 예민한 감각을 속인다는 것은 보통의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니. 이번 일과 관련된 것은 분명 공허의 악신을 모시는 자들이겠지.

   

   이전 예술 교단에서 보았던 것처럼 공허의 추종자들은 자신의 존재를 지우고 다른 이들을 모방하는 힘을 지니고 있는데 이 능력은 비슷한 계열의 어떤 능력보다도 압도적인 수준을 자랑한다.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들의 권능이 잠입에 특화된 탓에 개개인의 무력은 허접하거든.

   

   그래서 이게 게임이었을 적엔 악신 세력 중에서 가장 상대하기 편한 좆밥들로 유명했어.

   

   잠입을 잘 하면 뭐해? 몇 번이나 엔딩을 보고 온 유저들은 걔네들이 어디에 어떻게 잠입해 있는지 다 알고 있는데.

   

   얘네들이 얼마나 꿀이었냐면 스피드런 루트에서 공허의 사도가 튀어나올 때까지 리트 박는 게 국룰이 될 지경이었다니까.

   

   근데 현실에서 얘네들을 상대하게 되니까 확실히 귀찮네. 잠입에 너무 특화되어 있어서 찾아내는 것조차 힘들잖아.

   

   게임 속 지식을 따라 움직이기엔 지금 상황이 게임하고 너무 달라져서 불안하고.

   

   그렇다고 무작정 움직이자니 그 쪽에서 이상을 눈치채고 더 깊숙한 곳으로 숨어버릴 것 같고.

   

   팔짱을 낀 채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나는 무작정 위화감을 따라 움직이는 대신 뒷골목으로 향했다.

   

   이 거리에서 정보를 모으는 카리아와 알새틴이라면 내 위화감에 대한 정보 또한 제공해 줄 테니까.

   

   “죄송합니다. 알른 영애. 지금 두 분께서 모두 자리를 비우신 상태라.”

   

   대충 이야기하면 유능한 두 사람이 모든 걸 해결해주길 바라던 나였지만 내 바람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카리아와 알새틴 양 쪽 모두가 각자의 일 때문에 자리를 비운 것이다.

   

   물론 두 사람의 부하들은 여전히 뒷골목에 머무르며 일을 수행하고 있었지만 난 그들을 믿지 못했다. 이 중에 공허의 추종자가 숨어있지 않으리라고 확신하는 게 불가능하니까.

   

   그렇다고 공허의 추종자를 찾는단 사실을 숨긴 채 필요한 정보만 내놓으라 하기엔 뭘 부탁해야 할지를 모르겠단 말이지.

   

   아악! 왜 이런 상황에 둘 다 자리를 비운 거야! 너네가 있어야 믿고 뭔가를 맡길 거 아니냐고!

   

   ‘저기. 할아버지.’

   <조언을 해줄 수는 있다만 너무 믿지는 마라. 내가 한창 활동할 적엔 이런 걸로 골몰한 적이 없거든.>

   

   악신의 추종자들이 아무리 필사적으로 숨어봐야 자신의 감각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 추종자들이 어떤 식으로 숨는지 고민한 적 없다는 할아버지의 말은 재수없었지만 설득력이 넘치기도 했다.

   

   전성기의 할아버지는 지금의 나와 비할 수 없을 만큼 위대한 성기사였을 테니. 

   

   신화의 시대에 악신과 직접 맞부딪혀왔던 성기사에게 이러한 고민을 할 일이 어디 있겠어.

   

   으으음. 믿었던 할배에몽까지 애매한 답변을 하다니 진짜 곤란하네.

   

   옆에 얼빠여우라도 있었다면 걔한테 사람들 정신을 뒤져 달라고 부탁했을 텐데 그럴 수도 없고.

   

   친구들한테 도움을 청하고 싶어도 지금 아카데미 있는 사람은 무력 원툴인 프레이 뿐이고.

   

   어떡하지? 그냥 내 운과 감각을 믿고 적당한 곳에 들어가서 깽판을 칠까?

   

   안 그래도 뭔가 박살내고 싶었던 곳이 있기는 한데.

   아니면 카리아 아래에 있는 애들 하나하나 도발해서 악신의 추종자인지 아닌지 선별을 해 봐?

   

   오. 이거 꽤 괜찮다. 감정이 흐트러지면 권능에 어설픔이 생길 수밖에 없으니까.

   

   좋아. 그러면 일단 내 앞에서 눈치를 보고 있는 깡패부터 건드려.

   

   볼까 생각을 하던 그 때 뒷골목 가게의 문이 열리며 예상치 못한 얼굴이 안으로 들어왔다.

   

   몇 달 전 카리아에게 납치당하듯 끌려간 자칼은 내 얼굴을 마주하고는 느릿하게 고갤 숙였다.

   

   “알른 영애. 오랜만에 뵙습니다.”

   

   대체 카리아를 따라갔다가 무슨 일을 겪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몇 달 만에 만나게 된 자칼의 얼굴은 초췌했다.

   

   눈가의 다크서클은 뺨을 침범한 지 오래였고 무엇을 잘 먹지 못한 듯 뺨은 푹 들어가 있었으며 애써 짓는 웃음에는 힘이 없었다.

   

   “대체 뭘 하다 오면 이런 꼴이 되는 거야?”

   

   알른 기사단에서 훈련을 받을 때보다 지금이 더 힘들어 보이잖아. 대체 카리아가 얘한테 뭘 시킨 거야?

   

   “…이야기하기가 어렵네요. 도저히 요약을 할 수가 없어서.”

   

   행동거지마다 은근히 귀족다운 거만함이 묻어나오던 자칼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서 있는 것조차 힘들어 보이는 그가 어찌 자신의 행동거지를 신경 쓰겠는가.

   

   “나중에 천천히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일단은 실례를 하겠습니다. 스승께서 시킨 일이 있는지라.”

   “스승? 히스테리 잔뜩인 노처녀 이야기하는 거야?”

   “노처… 콜록! 콜록콜록!”

   

   직설적인 매도를 들은 자칼은 사래가 들려서 한참 동안 기침을 하다가 조심스레 고갤 끄덕였다.

   

   “…카리아님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맞습니다.”

   “뭐 하라 그랬는데?”

   “그것이.”

   “왜 망설여? 내가 그 아줌마보다 못 해 보인다는 거야? 이건 좀 짜증나네. 주제 파악 좀 하게 만들라고 이야기를…”

   “뉴먼 가문의 아들을 만나 협의를 하라 하셨습니다! 뉴먼의 사람들이 이 곳에 자리 잡기로 했거든요!”

   

   뉴먼 가문의 인원들이 여기에 온다고?

   

   …카리아 결국 커즈 뉴먼 그 아저씨를 완벽하게 잡아먹었구나.

   

   인장을 주지 않았는데도 이 꼴인데 까마귀 인장까지 넘기면 대체 어떻게 되는 거야.

   

   커즈 아저씨 진짜 스트레스성 탈모로 완벽한 대머리가 되는 거 아냐?

   

   오. 그거 좀 재밌을 것 같다. 한 번 넘겨주고 커즈 뉴먼의 위장 강도나 테스트 해볼까.

   

   나는 심술궂은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카리아가 자칼을 인정했단 사실에 놀랐다.

   

   카리아 걔 자기 아랫사람한테는 엄청 가혹한 성격이거든? 그런 사람이 자칼보고 자길 스승으로 부르는 걸 허락한데다가 뉴먼 가문과의 협의 같은 중요한 일까지 맡기다니.

   

   자칼이 마음에 상당히 마음에 든 모양이다.

   

   …으음?

   

   잠시만.

   

   뉴먼 가문의 아들이라면 체스터 뉴먼 말하는 거 맞지?

   

   내가 목숨을 구해 준 꼬맹이 말이야.

   

   걔 몸이 나은지도 얼마 안 됐는데 벌써 그런 협상 자리에 나올만한 능력이 되나?

   

   미간을 찌푸린 채 그 녀석의 설정을 떠올리던 나는 체스터 뉴먼이라는 인물이 내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임을 깨달았다.

   

   그 꼬맹이는 쓸데없이 성실한 성격과는 별개로 뉴먼 가문의 사람다운 능력을 지닌 녀석이니까.

   

   방금 전에 잔뜩 놀렸는데도 수줍은 반응을 보인 걸 보면 악신의 추종자와는 거리가 있는 것처럼 보이고.

   

   그 녀석 성격상 목숨을 구원해 준 내게 해가 될 일을 하지도 않을 테니.

   

   이번 일에 끌어들이면 충분한 역할을 해줄 게 분명해.

   

   자칼도 마찬가지야.

   

   자칼이 정보원으로 일하는 걸 본 적은 없지만 그 카리아가 제자로 인정했다면 상당한 재능을 지니고 있단 소리일 터.

   

   이 녀석하고 체스터한테 사정을 설명하면 카리아나 알새틴보단 못해도 꽤 괜찮게 일을 진행할 수 있지 않을까?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나는 즉시 머릿속에 떠오른 것을 이행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애?”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네가 찾는 꼬맹이를 데리고 올 테니까.”

   

   *

   

   체스터를 찾아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커즈 뉴먼에게 이야기를 듣고 온 그 녀석은 이미 이 곳으로 걸어오는 중이었으니까.

   

   덕분에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체스터를 만난 나는 그 녀석의 손목을 붙잡고 본래 카리아와 알새틴이 사용하던 집무실로 데리고 왔다.

   

   처음에는 영문을 몰라서 얼떨떨해 하던 체스터였지만 내가 상황을 설명함에 따라 점차 그의 얼굴에 진지함이 묻어났다.

   

   “공허의 추종자들입니까. 영애의 말이 진실이라면 어려운 상황이군요.”

   “알른 영애의 이야기라면 맞다고 보는 게 옳습니다. 뉴먼 영식.”

   “버로우 영식께서 그리 이야기하신다면 심각하게 생각을 해야겠네요.”

   

   처음 만난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칼과 체스터 사이에 오가는 대화에는 어색함이 없었다.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한 두 사람은 즉각적으로 서로의 역할을 구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가 되는 역할을 맡은 건 자칼이었다.

   

   카리아로부터 대행을 맡은 그는 뒷골목에 머무는 이들을 이용해 필요한 정보를 모았다.

   

   당연하게도 뒷골목의 사람들은 갑작스레 등장한 자칼의 명령을 떨떠름하게 여겼지만 그 부분을 내가 해결해 주었기에 자칼은 편하게 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

   

   어떻게 했냐고? 제일 껄렁한 녀석의 고간을 한 번 걷어차 주니까 다들 얌전해지던데?

   

   자칼이 가지고 온 정보를 토대로 내가 필요로 하는 걸 찾아내는 일은 체스터의 역할이었다.

   

   그는 책상 위에 수많은 서류를 늘어놓은 채 그를 살피다가 의심 가는 장소 몇 곳을 내게 알려줬다.

   

   “이 세 곳이 제일 의심스럽습니다. 방학 이전과 지금의 평가가 상이하거든요. 외형을 바꿀 순 있어도 그 속까지 바꾸는 것은 어려운 일이니 이 곳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내가 내린 결론도 이 녀석과 비슷하다. 저 곳들을 조사하면 무언가가 나오겠지.>

   

   할아버지와 체스터가 의심스럽다 지정한 장소에는 내가 뒤엎어볼까 생각하던 가게가 포함되어 있었다.

   

   내 운을 생각해보면 당장에 습격해도 괜찮을 것 같긴 한데.

   

   다른 장소에도 공허의 추종자가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서 혼자 움직이긴 좀 그래.

   

   지도를 보며 고민을 하던 나는 인벤토리에서 수정구 하나를 꺼내 그 곳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연락용 수정구에 푸른 빛이 들어오기 무섭게 그 위에 한 사람의 모습의 떠오른다.

   

   <영애님. 무슨 일인가요?>

   “허접 성녀. 게을러터져선 아카데미에 안 오고 뭐 해? 그러니까 몸에 살이 붙는 거 아냐.”

   <…저 살쪘나요?>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 듣고 싶은 말 해줄까?”

   <어. 어쩐지 요즘 옷이…>

   

   창백해진 페이비를 보면서 키득거리던 나는 그녀에게 빨리 아카데미 거리로 오라 이야기를 했다.

   

   페이비가 있다면 주신 교회의 인원들을 마음대로 써먹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성녀님의 버스터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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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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