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406

       

       가게 1층에서 문턱 너머에 있는, 거실 겸 회의실로 쓰는 넓은 방. 지금 그곳에는 이부자리가 깔려 있었다. 

       

       “예서 묵고 가시오. 기왕지사 내 진작에 방을 차게 해 두었으니.”

       

       과연, 고작해야 선풍기만 가져다놓은 하숙방보다는 여기가 쾌적하긴 했다. 여름에는 에이컨 틀어놓고 자는 것만큼 좋은게 없지. 이게 야…… 아니, 이게 최고지.  

       

       그런데, 바닥에 깔린 이부자리가 미묘하게 넓은 것이 신경쓰였다. 게다가 베개는 왜 두개 씩이나……?

       

       ‘아니, 잠깐만. 렌까는 그렇다 치고, 이유하 얘까지 갑자기 왜 이래. 무섭게.’ 

       

       나는 걸터앉아있던 문턱에서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아니, 아니 괜찮아. 나 하숙방 가서 잘 테니까, 너도 졸릴텐데 이만 2층 올라가서 자.” 

       “내 그저 잠이 오지 않아 나와있는 것 뿐이오. 그대 자는 것을 보고 가리다.” 

       “아니. 그러지 않아도……”

       

       그 때, 

       

       “크흐음!”

       

       하는 헛기침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계단에서 1층으로 내려왔다. 안경을 쓰지 않아 눈이 3자가 된 송병오 녀석이었다. 

       

       “어, 병오야. 웬일이냐.”

       

       내가 녀석을 부르자, 녀석은 부한 눈으로 내 쪽을 한참 바라보더니 더벅머리를 긁으며 중얼거렸다. 

       

       “음? 백철연이 자넨가? 인제서야 온 모양이군?” 

       

       송병오의 말에 대꾸한 것은 이유하였다.

       

       “어찌하여 여길 내려왔소?” 

       “으응, 이유하 자네도 있었나? 나야 무어, 자던 중에 소피가 마려워서 변소에 좀 가려고 일어난 참인데……” 

       

       녀석은 뜨다말다한 눈으로 고개를 휘적휘적 두리번거리더니 으스스 몸을 떨며 말을 이었다. 

       

       “헌데 여긴 왜 이리 춥나? 약도 없다는 여름 감기를 다 들겠군!” 

       “…….”

       “거 이유하 자네는 마력이 남아돌면 윗층이나 좀 시원하게 해주게 그려. 그렇잖아도 양복자 고것이 아까부터 덥다고 야단이었네!” 

       

       송병오 녀석이 그렇게 투덜거리자, 

       

       “다레다요(누구야!)! 밤중에 누가 이렇게 사와기스기떼(떠들어대고) 난리나노…… 으응, 류까 쨩? 류까 쨩 어디 갔다노? 류까 쨩! 밑에 있으면 여기도 히야시 좀 해 줘어……!”

       

       마침 위층에서 양복자가 자다말고 빼액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송병오 녀석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 보게! 저것도 양반은 못 되는구만.”

       

       송병오 녀석은 그렇게 말하고는, 부엌이 있는 뒷마당 쪽으로 어기적어기적 내려서서, 고무 스레빠를 끌고 변소로 들어갔다. 

       

       “…….”

       

       이유하는 그 모습을 아무 말 없이 차갑게 바라보다가,

       

       “……후우.”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나에게 말했다. 

       

       “그대는 하숙으로 돌아가시오. 나도 이만 올라가 보겠소.” 

       “으응.”

       

       나는 하숙집으로 도망치듯 돌아갔다.

       

       

       

       ***

       

       

       

       다음날인 1939년 7월 30일, 일요일 아침. 

       

       “레이트버드 기상……!” 

       

       나는 하숙방에서 느즈막히 일어났다. 역시 잠은 혼자 자는 것이 편하다. 옆에 누가 있으면 잠이 잘 안 온다고. 

       

       일어나고 보니 하숙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함원삼 아저씨는 진작에 인력거를 끌고 나갔고, 함서주는 가게 일을 보러 간 것이다. 

       

       나는 외출 채비를 하고 하숙집을 나와서 가게로 향했다. 어디까지나 위장사업이지만 그래도 사업이니까, 이것도 출근이라면 출근이겠지. 

       

       하숙집으로부터 100미터도 안 떨어져있어서 1분만에 가게 앞에 도달한 나는, 가게 앞에 묶여있는 강아지에게 다가갔다. 

       

       푸른 빛이 살짝 감도는 북실북실한 회색 털의 중형견의 목에 메인 빨간 개목걸이에 쓰여진 ハッチャン(핫쨩)이라는 이름이 선명하다.  

       

       “핫쨩. 너도 잘 잤니.”

       “으르르……”

       “어이쿠. 얘 봐라.”

       

       핫쨩은 으르렁거리려고 하더니, 내가 허리춤에 찬 승마 채찍에 손을 가져다대자 곧바로 배를 뒤집는다. 

       

       “헥헥헥……”

       “옳지, 옳지.”

       

       역시 승마 채찍으로 인한 복종 효과는 영원히 가지는 않는구나. 그래도 하루이틀 본 사이도 아닌데 가끔 이렇게 이빨을 드러내는 것을 보면 조금 아쉽네. 

       

       아무래도 며칠에 한 번씩, 아무도 안 볼때마다 애견정신을 주입해줘야겠다. 

       

       나는 핫쨩을 쓰다듬어주고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파뿌리를 다듬던 함서주가 일어나며 나를 반겼다. 

       

       “오셨어요?” 

       “응. 일요일인데도 고생하네.”

       “고생이랄게 뭐 있나요? 좋아서 하는걸! 그리구 남들 쉬는 공일이라구 장삿집이 놀면 되겠어요? 쪽파 하나라두 더 팔어야지……” 

       

       함서주는 그렇게 말하며 배시시 웃었다. 가게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얼굴 표정이 밝아진 것 같아서 나도 좋네. 

       

       나는 가게에 놓인 신문을 집어들고는, 안쪽의 1층 방으로 들어서며 함서주에게 물었다. 

       

       “애들은?”

       “동무분들요? 아직 자는 것 같던데요.” 

       “다들 방학이라고 늘어졌구만. 성실한건 서주 너밖에 없네.”

       “저가 애두 아니구, 멀 자꾸 쓰다듬구 그래요! 머리 흐트러지는데…… 헤헤.” 

       

       기특해서 쓰다듬어줬더니만, 머리 흐트러진다고 불평하며 꽁지머리를 다시 묶으면서도 웃는 낯이다. 

       

       “애들 깨워서 내려올테니까 아침 좀 부탁할게.”

       “네에.”

       

       나는 함서주에게 간단히 아침거리를 부탁하고는 2층으로 올라가 남자 방에 들어섰다. 나는 송병오 녀석의 궁둥이를 발로 차 주며 녀석을 깨웠다.

        

       “야 인나.”

       “으음! 뭐, 뭔가! 자네로군……” 

       

       얼마나 잤는지 눈이 팅팅 부은 송병오는 안경을 주섬주섬 주워 쓰고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말했다.

       

       “푸함…… 벌써 아침인가?”

       “아침은 진작 아침이지. 너는 어제도 일찍 잔 것 같더니 여태 자냐.”

       

       내가 그렇게 말하자 송병오 녀석은 억울하다는 듯 투덜거렸다. 

       

       “내 늦잠을 잔 것으로 책망하지 말게! 어제는 여기 남아있던 우리야말로 고생했네. 특히 내가 말이야!…… 자네가 말한대로 부족민들에게 줄 것들을 사느라 장을 봐 오고, 지하실로 일일이 옮기고…… 양복자 고년은 더우면 능력 쓰기 힘들다고 엄살을 피우고, 무라사끼 녀석은 애초부터 여길 오지도 않아서, 힘 쓰는 일은 내가 거진 다 했네 그려!” 

       

       그러고보니 지하실에 쌓여있던 물자들……. 밀가루 포대며 온갖 잡동사니가 많았는데, 이 녀석이 고생했구나. 

       

       근력도 없는 녀석이 땀 뻘뻘 흘려가며 힘썼으리라 생각하니 좀 안쓰럽긴 하네.

       

       “고생했다.” 

       “그리고선 저녁까지 기다렸는데 오지를 않길래 먼저 잤었네그려. 자네는 새벽녘에나 오지 않았나? 자네야말로 하루종일 쇼핑구경이나 하고 놀다 오다니, 형편도 좋지!” 

       

       나는 녀석의 앞에 신문지를 던져주고는, 벽에 등을 기대고 다다미 바닥에 대충 앉으며 대꾸했다.

        

       “좋긴 무슨. 렌까 땜에 죽겠다.”

       “그건 무슨 말인가?”

       “아이고. 하루종일 높은 아가씨 비위 맞춰주는게 쉬운 줄 아냐? 그리고 어제 늦은 것도, 한밤중에 남산에서 여기까지 택시타고 오느라……” 

       

       거기까지 말한 나는 나는 중얼거렸다. 

       

       “나도 차나 한대 살까.”

       

       가끔 보면 이곳저곳 이동할 일이 은근히 많은데, 아무래도 내 자가용이 한 대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기동성의 면에서 유용하지 않을까. 

       

       내가 그렇게 말했더니,

       

       “허어! 그야말로 부르주아지의 고민이로군! 물론 딴을 말하자면은 이 자본주의 사회라는 것은 자네같은 부르주아지가 돈을 써야 돌아가는 것이지마는, 자전거도 비싸 못 사는 사람이 많은 세상에…… 게다가 굳이 자동차가 필요한가? 우리같은 사람은 그저 튼튼한 두 다리로 걷거나, 아니면 뻐스, 전차면 족하지! 하여간 자네가 돈 많은 것은 알지마는 헛되이 돈을 쓰지 말란 말일세.”

       

       하고 일장 잔소리를 늘어놓는 송병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녀석에게 말했다. 

       

       “병오야. 대중교통은 한계가 있어.” 

       “그거야 옛말이지! 머잖아 경성 지하철이 뚫린다는데, 구태여 자동차 따위를—”

       “지하철?”

       

       내가 되묻자 송병오는 신문을 탁탁 두드리며 말했다. 

       

       “그래 자네는 신문도 안 보나? 나처럼 세상 돌아가는 소식도 좀 알고 그러게. 경성 지하철 건설이 확정된 것이 언젠데, 내 모르긴 몰라도 몇 년만 있으면,”

       “야, 야.”

       

       나는 녀석의 말을 끊고 말했다. 

       

       “그거 30년은 지나야 뚫릴 걸.” 

       “뭐라!

       “지금 뭐 지하철 계획이 있는진 몰라도, 내가 본 미래에서는 30년은 지나야 서울에 지하철 뚫려.” 

       “아니, 그건 어째선가? 이미 공사 계획을 다 잡어놨다는데.”

       “나중에 있을 전쟁 때문에 다 취소되는 거겠지. 전쟁 터지면 이미 깔아놨던 철도도 다 뜯어가는 판에 새로 지하철을 뚫을—”

       

       내가 그렇게 송병오 녀석에게 말하고 있는데,

       

       “나니나니!” 

       

       남자 방의 문이 활짝 열리고, 옆 방의 양복자가 출렁, 아니 불쑥 들어오며 외쳤다.

       

       “있던 철도도 다 뜯어간닷떼? 손나 바까나!”

       “아니, 너는 왜 난입하는데.” 

       “그야 옆 방에서도 소리 다 들리니까라! 그나저나 철도를 다 뜯어간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전쟁 물자로 철이 부족해지니까.” 

       “그럼 그 전에 춘천 놀러가자! 아직 경춘선 남아있을 때! 아니, 춘천 말고 부산도 가 보자! 나 부산 가보고 싶따이!”

       

       ……얘는 어디 놀러갈 생각밖에 없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나중에. 전쟁 나고 철길 뜯어가려면 아직 멀었어.” 

       “모오!”

       “그보다, 다들 1층으로 내려와. 자는 애 있으면 깨우고.”

       

       나는 분대원들을 1층 거실방으로 소집했다. 잡담이나 하려고 아침부터 아지트를 찾은 것이 아니었으니까. 

        

       『아레……? 왜 여기에 이불이 있지……?』

       

       1층 거실방에 내려온 아이까와가, 거실방 한구석에 차곡차곡 개어진 이불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나도 이제 봤네. 그러고보면 침실은 2층이었기에, 원래 1층의 이 방에는 이불을 안 갖다놨었고, 이 이불은 어젯밤에 이유하가 가져다 놓은 것이었다. 

       

       이유하 얘, 어젯밤에 갖다놓은 이불을 개어놓기만 하고, 다시 2층에 옮겨놓는 것은 깜빡했구나……. 

       

       나는 슬쩍 이유하를 바라보았고, 이유하는 말 없이 살짝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이거, 다른 사람들이 알면 뭔가 오해가 생기려나……? 

       

       『에에…… 게다가 베개도 두 개나 있는 걸. 누군가 여기서 잔 사람이라도 있어……? 그러고 보니, 어제 잠깐 자다 깼을 때 류까 쨩이 옆에 없었—』

       

       그렇게 뭔가 오해가 깊어지려는 즈음, 

       

       『알았다! 겐산(원삼) 아저씨랑 쇼쥬(서주) 쨩이 여기서 잤나 봐!』

       

       하고 양복자가 나름대로의 추리(?)를 마치고는 명쾌하게 외쳤다. 

       

       『아무래도 저기 있는 하숙집보다는, 류까 쨩이 시원하게 해 준 여기가 시원하잖아? 게다가 쇼쥬 쨩은 일찌감치 가게를 열어야 하니까, 여기서 잔 것이 분명해!』 

       

       양복자는 그렇게 외치고는 자신의 추리가 어떠냐는 듯 허리에 손을 올리고 가슴을 불쑥 내밀었다. 

       

       뭐…… 완전히 틀리긴 했지만, 다들 양복자의 추리에 납득했는지 그런가보다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휴우.’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나는 문득 이유하와 눈빛이 마주쳤다. 살짝 낯이 뜨거워친 채로 고개를 돌리고 있던 이유하는,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조금 멋쩍은 듯이 웃어보였다. 

       

       ……사실, 어젯밤엔 아무 일도 없었는데 말이지. 

       

       그런데도 뭔가 들킬까봐 조마조마해지는 이 상황은, 대체 뭘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은 여기까지!!!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맛난 저녁 드세용!!!!!

    P.S. 그나저나 요 며칠동안, 초전도체 떡밥이 뜨겁네요. 상온상압 초전도체, 과연 실제로 입증되고 가까운 미래에 상용화까지 될까요?
    개인적으로 저는, ‘된다’는 쪽에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되면……좋잖아용……?

    다음화 보기


           


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