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406

        

       지존 호소인의 미소가 사뭇 사납다.

       그야 사람의 본성부터가 어쩔 수 없이 간교한 생물이고, 지존 호소인 경지와는 별개로 사람이기에 엉뚱한 생각이 들 수밖에는.

         

       그런데,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어머니셨던가?

       그때, 그렇게 야단을 치시던 그때처럼 큰 거인은 없다.

       눈앞의 여인은 그저 대단히 아름답기만 한 어린 계집에 불과하지 않은가.

         

       지존 호소인이 슬며시 고개를 치미는 그 감정, 그 감정이 무엇인지 생각하다 결론을 내렸다.

       실망, 실망이로구나.

         

       그러나 금새 마음을 바꿔먹는다.

       

       아니, 아니지.

       이미 내 어머니이시니 아무리 하찮다고 해도 내 어머니, 그렇게 갖고 싶었던 어머니가 아닌가.

       내게 없었던 것, 필요한 것, 가져야 할 것, 그토록 갖고 싶었던 것. 

       그러니 이거라도 어쩔 수 없지.

       지금은 하찮더라도 괜찮다.

       차차 이상적인 어머니로 차차 가꿔 나가면 될 일이 아니던가.

         

       청이 알았다면 뭐 이런 놈이 다 있냐고, 하지만 현경은 무서우니 속으로만 궁시렁거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존 호소인은 원래 이렇게 생겨먹은 놈이었다.

       가정 교육을 아예 못 받았으니 어쩔 수 없을 수도 있고.

         

       그에 청이 침을 꿀꺽 삼켰다.

       뭔가, 잠깐 사이에 이 자식 눈빛이 많이 불손하고 위험해지지 않았나?

       설마, 아들 호소인이 패륜 호소인으로 전직하는건 아니겠지?

       

       청이 어색하게 헤헤 간신 웃음을 짓는다.

         

       “그으, 헤헤. 다 그쪽 잘되라고 한 일인 거 알죠? 참되거라, 바르거라? 내 덕분에 이렇게? 새사람도 되고? 현경도 되었고? 거기에 젊어져서 미남까지? 이야, 일석삼조 아주 꿩 먹고 알 먹고 둥지까지 드셨네.”

         

       그에 지존 호소인이 히죽 웃는다.

         

       “맞습니다. 다만, 살면서 그렇게 아팠던 적은 또 처음이었습니다. 지금도 문득 그때를 생각하면 단전이 아리고 잃은 눈가가 욱신거리곤 하지요.”

         

       “아아. 아직 아프시구나.”

         

       에이씨. 그때 죽일걸.

         

       사실, 그러라고 살려뒀다.

       단전이 아프고 눈이 쓰리면 그때마다 나를 기억하고 또 단전 잃은 병신이 무력감에 고통스럽기를 바랐으니까.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 상흔, 평생 떨쳐낼 수 없는 상처를 보고 몸부림치기를.

         

       그런데.

       얘가 현경이 되어서 돌아왔네?

       그래도 내 칼을 받아라 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해야 하나?

       설마 이게 복수인 건 아니겠지.

         

       “하지만, 어머님께서 내려주신 훈계가 아니겠습니까. 상처가 쓰리고 아플 때마다 제 어리석은 과거를 후회하고는 합니다.”

         

       “음. 그러시구나.”

         

       나도 후회할 것 같은데.

       아니.

       후회, 하고 있어요.

       우리 다투던 그날 하찮아졌길래, 그냥 죽였어야 하는데.

         

       “그리 두려워하실 필요가 없으십니다. 세상 어떤 어머님! 이 자식! 을 두려워한단 말씀이십니까? 본래 어머님! 이란 때론 자식. 이 아픈 줄을 알아도 아픈 마음으로 매를 드는 존재가 아니겠습니까.”

         

       “그으……렇죠?”

         

       “다만, 어머님! 이 아니라면 또 이야기가 달라지기는 하겠습니다. 무인에게 한쪽 눈이 또 얼마나 중요한 것이겠습니까. 그러니 모성! 임을 알기에 뼈에 새긴 것이지, 그 아니라면 그냥 원수가 아니겠습니까?”

         

       청의 등줄기가 훅훅해졌다.

         

       왜 어머님이랑 자식만 똑똑히 힘을 줘서 발음하는데?

       이거 협박이지? 협박하고 있는 거지?

       아니, 무슨 자식 삼아달라고 협박해?

       세상에 자식 삼으라고 협박당하는 사람은 내가 최초 아냐?

         

       사실 그렇지는 않고, 왕위를 계승하는 중이 되기 위해 양자 삼으라고 협박받은 사람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청은 모른다.

       그러니 제 처지가 도대체 이게 무슨 기구한 운명인가, 이역만리 머나먼 땅까지 와서 내가 왜 이 꼴을 보고 있어야 하나.

         

       “음.”

         

       “어머니께서도 좋지 않으십니까? 말 잘 듣는 아들이 현경의 고수입니다. 착한 아들을 원하셔서 착한 아들이 되었으니, 다른 아들을 원하셔도 제가 그리 되겠습니다. 제 듣기로는 악인참을 그리 즐기신다던데. 말씀만 하십시오.”

         

       그에 청의 표정이 확 굳었다.

       무서운 건 무섭지만, 아닌 건 아닌 거다.

       양아들이 아니라 의남매 등등 가족사항 아니라 우정을 나누는 친구라고 해도 필요에 따라 취하고 내버려서는 안 되지 않나.

         

       “그건 또 무슨 개 같은 소리예요? 자식 삼아 달라고 안 했어요? 무슨 충성스러운 부하나 하인 모집이야? 부모는 부모일 뿐이고 자식은 자식 인생 살아야지. 자식이랍시고 옆에 끼고 부려먹으라고요? 그게 무슨 어머니야? 그럴 거면 일 없으니 가요. 내 별 소리를 다 듣겠네.”

         

       그에 지존 호소인의 미소가 짙어진다.

       좋은 기색은 아니었다.

         

       “이상하군요? 이미 어머니께서는 착한 아들이 되라고, 그래야 예뻐해 줄 것이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당신께선 착한 아들을 원하신 것이 아닙니까?”

         

       “아니, 그런 식으로 말하지는 않았잖아요. 자꾸 음해하네? 착하게 지내면 다음에 봐도 좋게 웃으면서 볼 거라고 했잖아요.”

         

       “나쁘게 지내면 미워하겠다는 말씀이시지 않습니까?”

         

       “아씨. 당연히 나쁜 놈이랑 친해지고 싶지 않은 게 당연하지. 그걸 뭘 지금.”

         

       청의 표정이 썩어들었다.

         

       “그쪽 말대로 뭐 어머니라 쳐요. 당연히 착하게 지내라고 하지. 착하게 지내서 무슨 내가 그쪽 덕이나 보자고 한 줄 알아요? 보니까 착한 일 많이 한 것 같은데, 해 보고 느끼는 거 없어요? 아까 그 발랑 까진 꼬맹이 같은 사람이 없었어요? 날 좋아해 주니까 나도 좋다, 이런 생각 안 들어요?”

         

       “그런 건.”

       

       돌연 지존 호소인의 눈동자가 떨린다.

       

       문득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얼굴들.

       정도와 깊이는 달라도 저를 보며 웃어주던 교인들의 표정, 정을 담아서 내어주는 그 시선들.

         

       그래. 분명 달랐다.

       지존으로 군림하던 때의 그 아양들과는 다른, 두려움 혹은 어떤 이익에 대한 욕심으로 번들거리던 시선과는 확연히 다른 온기가, 애정이, 믿음이 있었다.

         

       그렇군.

       더는 정을 갈구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로구나.

       왜냐하면 이미 받고 있었으니까.

        

       “그렇군요.”

         

       지존 호소인은 문득 제 가슴 속을 가득 채워 숨통을 조이던 거대한 응어리가 스르륵 풀려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러자 지존의 미소가 미소답게 변한다.

       시퍼런 칼날처럼 사납기만 하던, 송곳니 드러낸 늑대처럼 입꼬리를 늘려놓기만 한 꼴이 아니라, 진짜 해맑은 아이처럼.

         

       청도 그 모습에 일단 마음을 놓았다.

       아주 잠깐동안만.

         

       지존 호소인의 표정이 아주 개구장이, 장난기 가득한 악동처럼 변했으니까.

         

       “이것이, 이것이야말로 어머니의 사랑이었군요.”

         

       “엑.”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자식이 사랑받기를 원하는 그 장엄한 사랑! 소자가 멍청했습니다. 하찮다니, 일신의 무위 따위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머니, 아아, 어머니. 역시 어머니께선 세상에 단 한 분, 어머니이십니다. 아들의 절을 받으십시오.”

         

       “아니, 갑자기 또 왜 이야기가 그쪽으로 흐르는데요? 그리고 방금 하찮다고-”

         

       “생각해보니, 자식이 꼭 인정받아야 그 자식인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어머니께서 훈육으로 새 사람을 빚으셨으니, 육신을 낳지 않더라도 새 사람을 세상에 낳아놓으신 바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니 저는 이미 당신의 자식입니다.”

         

       “아니, 그걸 왜 그쪽 마음대로-”

         

       “이미 저는 당신의 자식입니다. 당신의 허락까지 구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리고는 능글맞게 웃어대지 않는가.

         

       청이 어이가 없어 입만 뻐끔거렸다.

         

       그런데 뭐지? 진심인가?

       어째 조금 전까지와는 뭔가 태도의 결이 다르다고 할까.

       방금은 진짜 기어코 이루고야 말겠다고 하는 독기? 처절함? 욕심? 뭐 그런 지독한 집착이 엿보였다.

       하지만 이제는 이게 진심으로 하는 말인지 장난으로 하는 말인지 긴가민가한 수준으로 확 가벼워지고 만 것이다.

         

       그만큼이나 지존 호소인 역시 어떤 무게를 덜어낸 듯 후련해 보이기도 하고.

         

       “어릴 적부터 한 가지 소원이 있었는데, 세상 사람 거의 대부분이 가진 것을 아들이 혼자 없으니 얼마나 사무쳤겠습니까? 평생 소원이 하나 있는데, 바로 어머니를 소리쳐 불러보는 것이었습니다.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사실 허락하지 않으셔도 할 겁니다.”

         

       “그럼 굳이 물어보는 이유가-”

         

       “엄마.”

         

       순간 청의 온 전신 모든 피부에 소름이 쫙 내달으며 입에서는 끼야아악!! 순도 최대치 불순물 없는 순수한 비명이 터져 나오고 만다.

       저기 서역에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한 화백의 절규라는 작품을 형상화하면 바로 인간 서문청이 되리라.

         

       “히익, 그, 그거 하지마, 하지마요.”

         

       “엄마. 엄마! 햐, 세상에, 이거 좋군요? 엄마? 아니, 좋은 것을 어미 가진 자들만 쓰고 있었다니. 억울해서 지금껏 못 했던 만큼 해야겠습니다. 오십 평생을 못했으니 오십 년은 더 해야겠군. 괜찮지, 엄마?”

         

       그리고는 뭔가 깨달은 듯이 주먹으로 제 손바닥을 탁, 내리치는 것이 아닌가.

         

       “그렇군. 어머니는 거리감이 있고 불편한 존칭이지만, 엄마는 그야말로 엄마, 세상 가장 가까운 호칭, 마음이 편안해지는군.”

         

       “아니, 그쪽만 편하고 나는 불편한데요. 진짜, 농담이 아니라 제발 그거 하지 좀 마요. 와, 소름, 소름 돋은 거 안 보여요?”

         

       “흥. 내 맘입니다. 음. 마음에 들어. 엄마? 아들이 재롱 좀 떨겠습니다?”

         

       “돌겠네, 진짜.”

         

       청이 그리 말하며 시선을 돌린다.

       진짜 아들을 들이게 생겼는데, 그것도 나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 아들, 그것도 아니, 엄마는 무슨.

       

       “엄마.”

       

       듣자마자 다시 오소소 소름이 솟아난다.

         

       안 되겠다. 도움!

       별 도움은 안 될 것 같지만, 청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견포희에게 간절한 눈빛을 보낸다.

         

       “흑, 너무 감동적이야. 조카야, 나한테도 이모님이라고 딱딱하게 그러지 않아도 돼. 그냥 이모라고 해.”

         

       “네, 이모.”

         

       “존댓말도 좀 그런가? 원래 나이 적은 이모랑은 막 허물없이 지내고 그러잖아?”

         

       “알았어, 이모.”

         

       역시 전혀 도움은 안 되고.

       도움은커녕 저게 기름을 처붓고 있네!

         

       “그래서, 엄마. 아들이 오래 기다렸는데. 이제 이름을 좀 지어주면 안 될까?”

         

       “끄으, 그, 최소한 어머니라고 불러주면 안 될까요?”

         

       “격식 있는 편을 좋아하시나? 친구 같은 아들 좋지 않아?”

         

       “저는 그냥 아들이 안 좋아요. 싫어…….”

         

       “그건 기각. 천륜을 어찌 끊겠어? 하지만 어머니께서 원한다면. 존대도 써 드려요?”

         

       “그냥 평대로, 평대로 하자. 존대까지 막 들으면 진짜 진짜같으니까. 아, 속이 쓰리다.”

         

       “진짜 진짜 같으려면 존대로군요? 하지만 질색하시니 반존대로 절충하면 되겠네.”

         

       청이 오만상을 쓰며 머리를 꾹꾹 누른다.

       그에 지존 호소인이 펄쩍 뛴다.

         

       “그거 큰일, 앗! 배! 어머니 배가! 이건 회임, 언제 임신까지, 앗! 동생! 동생이군? 이제 본인에게 동생까지 생기는 건가!? 언제, 언제 나오는 거지?”

         

       그에 청이 쌍심지를 켰다.

         

       “이게 아주 뚫린 입이라고, 뭐가 어째? 그냥 밥 먹고 배 나온 거거든?”

         

       “부끄러워하실 필요 없으시고. 아니, 어떻게 밥 먹고 배가 이만큼 나오셔? 애초에 사람이 그렇게 먹는다고 배가 막 늘어나지도 않을뿐더러, 누가 그렇게 무식하고 미련하게 막 처먹는데?”

         

       “씹, 내가 처먹는데 뭐 보태준 거 있냐?”

         

       “에이, 어머니. 이미 가족이잖아? 동생, 동생이라. 좋군. 좋은 형이 되려면 뭘 해야 하지? 아니, 오빠인가? 의원은 뭐라 하지?”

         

       “진짜? 나 조카 또 생기는 거야?”

         

       이쯤 되면 현경이고 나발이고 청도 슬슬 부아가 치솟는다.

       그리고 강약약강의 촉으로 지존 호소인이 해를 끼치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이것들이 아주 쌍으로 지랄이네! 꺼져! 좀! 제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전화 소제목 변경합니당.
    다음화 보기


           


I Am This Murim’s Crazy B*tch

I Am This Murim’s Crazy B*tch

이 무림의 미친년은 나야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female character in a martial arts game I’ve played for the first time. I know absolutely nothing about Murim, though…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