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407

       “오, 끝났어?”

        

       내가 양손을 깍지 껴 머리 위로 쭉 늘리며 기지개를 켜자, 클레어가 방 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네. 결국 종일 붙잡고 있었습니다.”

        

       편집이라는 걸 해본 적이 없으니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비효율적이었다.

        

       이걸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의문을 품고 찾아보면 훨씬 편한 예시나 탬플릿이 있었다. 하지만 그걸 써먹고 잠시 뒤에 어떻게 했는지 잊어버려서 다시 검색을 해보고…… 그렇게 하느라 시간이 몇 시간이나 흘러버렸다.

        

       그렇게 완성한 분량은 겨우 5분 정도.

        

       요즘에는 짧은 영상이 더 인기 있는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몇 시간이나 붙잡고 있었는데 겨우 무료 저작권 음악 하나 끝날 정도의 시간의 영상이 나온 것은 조금 충격이었다.

        

       어려우리라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헤매게 될 줄이야.

        

       “먹고 해.”

        

       클레어가 그렇게 말하며 테이블에 올려준 건 과일이 잔뜩 올라와 있는 접시였다.

        

       대부분은 사과였고, 배가 조금 섞여 있었다.

        

       과일의 상태는 모두 제각각이었다. 대부분은 좀 과하게 깎여나갔다. 솔직히 일부는 ‘껍질을 깎았다’라기보다는 ‘조각했다’라는 말이 더 어울릴 정도였다.

        

       물론 나는 이 정도라도 깎을 수 있을지 없을지 의문이긴 했다만.

        

       “나 영상 봐도 돼?”

        

       “물론입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모니터 옆쪽의 자리로 옮겨갔다. 그리고 접시에 올려진 포크로 과일을 찍어 먹었다.

        

       맛있다.

        

       자취할 때는 과일은 거의 먹지 못했다. 과일 자체가 좀 비싸야지.

        

       그나마 먹을 때도 제철 과일을 최대한 싼 거로 골라 사 먹는 정도였다. 당연히 모양은 제각각이었고, 담아주는 봉투는 보통 투명 비닐봉지나 검은 비닐봉지였다.

        

       그때의 기억 때문이었는지, 따로 장을 보러 나갔던 애들이 상자에 곱게 포장된 과일을 잔뜩 사 왔을 때는 나도 모르게 흠칫 놀랐다. 자동차도, 캠핑용품도 아무렇지도 않게 사면서 고작 과일에 놀라는 내가 스스로도 조금 웃겼다.

        

       그래도 모양만 예쁜 게 아니라 과일 자체도 맛있는 것이, 왜 이런 과일이 팔리는지 알 것 같다.

        

       “오.”

        

       영상을 켜자 들려오는 예쁜 음악에 클레어가 감탄했다. 저 음악도 하나하나 다 들어보면서 분위기에 맞는 걸 고르느라 조금 시간이 걸렸다. 게다가 저작권도 확인해야 했고.

        

       우리가 영상을 찍을 때 특별히 개념을 잡고 찍었던 것은 아니라 대사는 없었다. 웃음소리가 들렸고, 뛰어다니며 소리치는 장면 정도는 있었지만.

        

       “다음에 찍을 때는 말이라도 조금 할 걸 그랬습니다.”

        

       “응. 영상은 좋긴 한데, 확실히 뭔가 스토리가 더 있으면 좋을 것 같긴 해.”

        

       “그렇다고 뭔가 꾸며서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지만요.”

        

       “쉬고 싶어서 간 곳이 촬영 장소가 되면 안 되니까.”

        

       클레어도 그 말에는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막이라도 넣을까요?”

        

       “음…… 어차피 첫 영상이고, 반응 정도나 보려고 올리는 거니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가장 큰 목적은 추억을 저장하는 거니까.”

        

       확실히 그렇지.

        

       나는 포크로 배를 찍어서 입에 넣었다.

        

       “음…….”

        

       5분 정도의 짧은 영상이 끝나고, 클레어가 팔짱을 낀 채 잠깐 고민에 잠겨있길래, 나는 아무 말도 없이 과일을 꾸준히 해치워나갔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만큼 편집할 자신은 없어.”

        

       클레어의 말에 시선을 돌려보니, 매우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언니 혼자 이걸 다 떠맡을 수는 없잖아. 안 그래도 우리가 신세 지고 있는 건데.”

        

       “저는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만?”

        

       “오늘도 몇 시간씩이나 여기 앉아 있었으면서?”

        

       뭐,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되는 거 아닌가?

        

       나는 별생각 없이 과일을 또 집어 먹었다.

        

       “우리 모두 나눠가질 추억이니까.”

        

       클레어는 가끔 이렇게 조금 간지러운 말을 했다.

        

       게다가 아주 진지하기까지 한 표정을 보니, 정말로 주인공 같은 느낌도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게임에서의 클레어가 생각나지 않을 정도다. 그 저폴리곤 캐릭터가 현실에 있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니 말 다한 거지.

        

       하지만 나는 그런 간지러운 대사를 좋아한다. 아직 중2병이 다 낫지 않은 모양이다.

        

       “그럼 다 같이 영상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어보도록 하죠. 다만 억지로 시킬 생각은 없습니다. 여기 있는 동안은 모두 편안한 마음으로 있었으면 해서요.”

        

       “……고마워.”

        

       클레어가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그런 말을 하길래, 나는 포크로 찍은 과일을 그대로 클레어의 입 안에 넣어주었다.

        

       *

        

       “와…….”

        

       그리고 그 영상에 가장 확실하게 반응한 사람은 다름 아닌 미아였다.

        

       “마음에 드십니까?”

        

       앨리스도, 샤를로트도 눈을 빛내긴 했지만, 육성으로 탄성을 흘린 사람은 미아뿐이라 나는 미아에게 그렇게 물었다.

        

       “마법 같아서요.”

        

       그런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사진이야 극도로 세밀하게 그린 그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동영상은 이야기가 완전히 다르니까.

        

       우리 얼굴이 나오는 영상이라면 방송 중에 찍히는 모습도 있긴 했지만, 그 화면은 보통 아래에 작게 띄워둘 뿐이다. 게다가 구도가 아주 많이 바뀌지도 않고.

        

       게임 화면이야 사람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쉽게 눈치챌 수 있고, 영상미 좋은 영상이라면 영화도 있긴 하지만 우리 얼굴이 나오는 건 아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영상은 단순히 스마트폰으로 찍은 영상이 아닌, 커다란 센서를 가진 미러리스로 찍은 영상.

        

       카메라에 대해 잘은 모르는 상태로 적당히 찍었지만, 색감 자체가 워낙 예뻐서, 그리고 화질도 좋아서 영상이 정말 엄청나게 좋게 나왔다. 거기에 내가 어느 정도 보정까지 했으니 더 화려하게 보이는 것도 있고.

        

       아무래도 미아는 거기 반응한 것 같았다.

        

       “한번 배워보시겠습니까?”

        

       “네?”

        

       “저렇게 만드는 법이요.”

        

       내 말에 미아는 조금 주춤했다.

        

       “그래도 될까요?”

        

       “그래도 됩니다. 물론 저도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한 사람이라 자세하게 알려드릴 수는 없겠습니다만.”

        

       “배울게요!”

        

       으음.

        

       그렇게까지 반짝이는 눈으로 보면서 말하면 조금 부담스러운데.

        

       나도 초보니까 말이다.

        

       내가 조금 당황해서 시선을 들어보자, 클레어가 잘되었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어차피 돌아가려면 얼굴을 알려야 했고, 그러려면 영상도 많이 올려야 하니까.

        

       *

        

       영상을 올리고 나서도 방송 시작 전까지는 시간이 꽤 많이 남아 있었다. 우리가 별다른 홈페이지나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는 것은 아니었던지라 홍보는 없었다.

        

       하지만, 대체 어떤 알고리즘을 탔는지 영상에는 벌써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나 나름대로는 뿌듯하게 잘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영상이긴 했지만, 사실 그것 외에는 딱히 특별한 게 없는 영상이었는데도.

        

       “우리 외국인 아니냐는데?”

        

       앨리스가 댓글을 읽고 웃으며 말했다.

        

       “외국인인데 한국어 엄청 잘한다…… 뭐, 인식이 그럴 수밖에 없긴 하지. 밖에 돌아다닐 때마다 우리 외모가 튄다는 걸 느끼니까.”

        

       “아래쪽에는 코스프레가 아니냐는 말이 있네요.”

        

       샤를로트도 우리와 함께 꽤 오래 방송해서 이제는 그런 단어가 무슨 뜻인지 알고 있다.

        

       “다음 영상은 한국인이라는 영상을 올려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이 나라 이름치고는 특이한 이름까지 올리면 사람들이 더 많이 봐줄 테니까요.”

        

       샤를로트의 제안에 나는 진지하게 고민해보았다.

        

       “너무 노골적으로 나가면 오히려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으니, 오히려 티를 내지 않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외국인이 국뽕영상찍는다고 하는 인간이 나오면 그때쯤 공개하는 건 어떨까요?”

        

       “너다운 생각이네.”

        

       내 의견에 앨리스가 그렇게 대답해서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아니, 뭐, 칭찬이니까.”

        

       내가 순간 말을 잃은 걸 보고 앨리스가 얼른 그렇게 말했다.

        

       칭찬이라면야.

        

       “혹시 정말로 방송 섭외 요청이 들어오거나 하는 건 아니겠죠?”

        

       음.

        

       지난번에 클레어의 모습이 꽤 화자가 되었는데도 따로 연락이 온 적은 없으니…… 하지만 그건 우리 연락처가 공개되어있는 곳이 없어서 그럴지 모른다. 스트리밍 사이트에 영상을 올렸으니 그 사이트 이메일로 연락이 올지도 모르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TV 방송국의 요청이 온다면 응하시겠습니까?”

        

       아직은 김칫국 마시는 소리일지 모르지만, 혹시 모르는 거니까.

        

       그때 가서 결정하는 것보다는 미리 의견을 물어둬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 다섯 명은, 솔직히 말하자면 대단한 미인이 아닌가. 그리고 한 명 한 명 포지션이 꽤 확실했다.

        

       ……아이돌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런 여자 다섯 명이 모여서 살고 있으니 오히려 지금까지 방송하면서도 화제가 되지 않은 것이 이상한 수준 아닌가?

        

       “궁금하긴 하네.”

        

       클레어가 가장 먼저 대답했다.

        

       “언젠가 돌아가야 하니 주기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방송은 좀 그렇지만.”

        

       앨리스가 조건을 달았다.

        

       “인터뷰 정도라면…….”

        

       “맞아요. 인터뷰 정도라면 괜찮을 것 같네요.”

        

       샤를로트와 미아는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모두의 반응을 보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후에 연락받는 날이 오면, 가벼운 인터뷰 정도는 받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나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이제 영상을 하나 올렸을 뿐이니까.

        

       설마 고작 하루 만에 그렇게 어그로가 끌리겠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 아 아무리 그래도 로또 1등까지 당첨되겠어?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