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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07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인가요?”

       

       화령이 외신을 반나절 안에 쓰러트리겠노라 이야기를 한 후 꽤 오랜 시간을 침묵하던 베니가 처음으로 꺼낸 말은 이랬다.

       

       “외신을. 이 세계의 모두가 힘을 합쳐도 쓰러트릴 수 없는 상대를 반나절 안에 쓰러트리겠다고요?”

       “잘 이해했구나. 그런데 왜 되묻는 것이냐?”

       “장난도 정도껏 하세요!”

       

       베니가 눈을 부라리면서 소리친다.

       

       농담도 적당히 하라고. 그런 게 될 리가 없지 않냐고.

       

       화령은 베니의 분노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그걸 옆에서 지켜보던 파이스는 베니가 어째서 화가 난 것인지를 이해했다.

       

       지금 그녀는 화령이 장난을 친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이 세상을 멸망으로 이끌고 있는 외신이라는 존재를 반나절 안에 쓰러트릴 수 있다곤 조금도 생각하지 않기에 화령이 자신에게 희망을 베풀어주는 척하며 가지고 노는 것이라 여긴 거겠지.

       

       그녀의 반응은 지극히 상식적이었다.

       

       생각해보라.

       

       이 세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맹자들이 힘을 합쳐도 상처 하나 내기 버거우며.

       

       여러 국가가 합세하며 군대를 만들어내고 찍어누르기는커녕 버티는 것조차 불가능한데다가.

       

       스스로가 지닌 권능만으로 세상을 잡아먹으려는 괴물을 반나절 안에 쓰러트리겠다니.

       

       저걸 어찌 진지하게 하는 말이라 생각하겠는가.

       

       “아무리 파이스님의 동료분이라도!…”

       “공주님.”

       

       허나 파이스는 알았다. 화령이 농담을 하지 않았다는 걸.

       

       오늘 낮. 화령이라는 사람의 경지를 옅게나마 보았기에.

       

       아피스 속에서 약화될 대로 약화된 육신으로도 세계를 찢어발기던 그 주먹을 보았기에.

       

       이 사람이 진심으로 반나절 안에 외신을 박살낼 생각이란 걸 이해했다.

       

       “저희의 상식으로 재단할 수 없는 분입니다. 제가 보증하지요.”

       

       파이스가 한 마디를 내뱉기 무섭게 베니가 눈을 깜빡이면서 화령을 쳐다본다.

       

       베니는 화령을 오늘 처음 보았기에 그녀가 정확히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

       

       그렇지만 파이스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안다.

       

       십수년에 달하는 세월 동안 여러 전장에서 함께한 파이스는 결코 이런 것을 가지고 장난을 칠 인간이 아니었다.

       

       “…진짜요? 정말 이 분이라면 외신을 쓰러트릴 수 있는 거에요?”

       “예. 그럴 겁니다. 그러니 공주님. 전선으로 저희를 데려다 주십시오. 저희가. 아니. 화령님께서 외신을 마주 볼 수 있도록.”

       

       *

       

       베니라는 녀석은 본인의 이야기를 조금도 믿어주지 않았다.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본래 발치 아래에 사는 이들은 자신의 시야 안에서 모든 걸 판단하는 법을 지어니.

       

       자신의 무지를 깨닫기도 못한 채 빼액 소리를 지르는 것이야 흔한 일이지.

       

       물론 이해가 된다고 해서 귀찮지 않은 건 아니었다. 내 이 세상에 들른 김에 겸사겸사 외신이라는 것을 박살내어 주겠다는 데 왜 한 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인지 원.

       

       중간에 파이스가 끼어들어서 적절히 말려주었기에 망정이지 그런 게 없었더라면 내 그 베니라는 녀석에게 강제로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야.

       

       “…강제로요?”

       “그래. 본인이 지닌 방대한 지식 중에서는 사람의 입을 여는 수많은 기술도 포함되어 있거든.”

       

       무림맹을 박살 낼 때가 혈교주를 잡아 죽이기 위해 이리저리 돌아다닐 적에 익힌 기술이 대부분인지라 대개 거친 기술들이다만 그 효능 하나만큼은 보장할 수 있지.

       

       “궁금하면 몇 가지 가르쳐 줄 수도 있다만?”

       “아뇨. 괜찮습니다.”

       “사양하지 않아도 괜찮다. 현대에서는 써먹기 어렵겠지만 이 곳처럼 힘으로 찍어 누를 수 있는 곳이라면 분명 유용히…”

       “정말 괜찮습니다.”

       

       파이스가 거절을 하기에 슬쩍 옆으로 고개를 돌렸더니 백호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여간 이 놈이고 저 놈이고. 본인이 힘들게 쌓아온 기술을 알려주겠다는데 감사하다 고개를 숙이지도 않고 단호히 거절이나 하다니.

       

       언젠가 기회가 생긴다면 저들의 몸에 본인의 심문기술이 얼마나 효율적인지를 직접 새겨줄 테다.

       

       “그보다 화령님. 정말로 반나절 안에 외신을 쓰러트릴 생각이신가요?”

       “반나절도 꽤 여유롭게 잡은 게다.”

       

       그 외신의 본체라는 것이 얼마나 강한지는 모르겠다만 아피스에서 보았던 외신의 재현보다 조금 더 강한 수준이라면 채 몇 분이 걸리지 않고 박살낼 수 있을 터.

       

       그것보다 훨씬 더 강하다 하여도 별 달라질 것은 없다. 몇 분짜리가 몇 십분 정도로 늘어날 뿐이니까.

       

       “결국 그 외신이라는 녀석은 자신의 힘을 믿고서 게으름을 부리는 오만한 녀석이지 않으냐. 그렇다면 길게 놀아 줄 이유도 없으니 적당히 건드리면서 힘을 확인한 후에 박살나면 그만일 터.”

       

       혹여나 그 놈이 신이라는 단어에 걸맞은 무언가를 지니고 있다면 그 시간이 좀 더 늘어날 수는 있겠지만 그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다.

       

       내 여태까지 스스로를 신이라 칭하는 녀석들을 꽤나 자주 만나 보았다마는 그 중에 진정 신다운 무언가를 보여준 녀석은 없었거든.

       

       “…화령님을 만나길 정말 잘했단 생각이 드네요.”

       “무얼. 이 정도를 가지고 그러느냐. 앞으로 더 절절히 느끼게 될 터인데.”

       

       그리 이야기를 해주며 왕국 안을 돌아다니고 있으려니 파이스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는 여러 사람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분명 파이스가 이 세계를 떠나고서 몇 년의 세월이 흘렀을 터이나 그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는 존재치 않았다.

       

       “파이스님!”

       “세상에. 용사님께서 돌아오시다니.”

       “우리는 살았어.”

       “신이시여.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파이스를 아는 모두는 그를 볼 때마다 감사와 경외를 표했으며 아무리 지쳐 있는 상태라 할지라도 그 눈에 희망을 담았다.

       

       그리 많은 이들을 만난 건 아니었지만 파이스라는 사람이 이 세계에서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가를 평가하기엔 이 정도면 족했다.

       

       파이스 스코비아라는 인간은. 과거 이 세계를 구원했던 용사는 이미 신앙의 대상이라 불러 마땅한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인망이 상당하구나.”

       

       그것이 놀라워 진심 반 농담 반으로 목소리를 내었더니 파이스가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아하하. 이래뵈도 용사이니까요. 멸망해가던 세계를 구원했으니 모두들 믿고 의지해 주시는 거죠.”

       “그 정도가 아닌 듯 하다만? 내 저들의 눈빛을 보면 알 수 있다. 저 중엔 네가 죽으라 그러면 기꺼이 죽기 위해 몸을 내던질 이도 있어.”

       

       다른 사람은 모르겠다만 본인을 알 수 있다. 과거 신앙의 대상으로써 한 종교에 머물렀으며 지금도 그 신앙을 물릴 방법을 찾아헤매는 본인이니 말이다.

       분명하다. 저들은 파이스가 자신들을 구원해 줄 것을 믿는다. 그렇기에 파이스가 죽으라 그런다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바치리라.

       

       “…그건.”

       

       내 말에 짐작가는 구석이 있는 것일까. 파이스가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조금 여유를 부리고 싶어졌다.

       

       과거 평범한 일반인이었으나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이 세계에 떨어진 자. 그리고 그 곳에서 무수한 시련을 이겨내고서 신앙의 대상이 된 자.

       

       본인과 방향성은 좀 다르긴 하다만 이만큼이나 닮은 구석이 있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지.

       

       그래서 호기심이 생겼다.

       

       “파이스.”

       “네?”

       “오늘의 일이 끝난다면 내 나중에 그대에게 몇 가지를 물을 것이다. 그 때에 솔직하게 대답할 것이라 약조할 수 있겠느냐?”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물어보고는 싶다만 지금 이 녀석의 표정을 보아하니 지금은 무얼 묻는다 하여도 제대로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지 않구나.

       

       그래서 내 특별히 나중을 기약해주겠노라 이야기했더니 파이스가 미소를 지었다.

       

       “그거 사망 플래그인데요. 화령님.”

       “본인에게 미신이 의미를 지니리라 생각하느냐?”

       “그냥 그렇다는 거죠 뭐.”

       

       어깨를 으쓱이면서 대답을 한 후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파이스는 이내 한숨을 쉬듯이 내게 답했다.

       

       “뭐든 물어보세요. 이 세상을 구해주신다면 그 정도 대가는 지불해야죠.”

       

       *

       

       공주님께서 우리에게 내어주신 이동수단은 와이번이었다.

       

       왕궁에서 이동수단으로 사용하는 녀석이 아니라 과거 내가 직접 길들였으며 긴 여정을 넘어서는 동안 항상 내 곁을 지켜주었던 놈.

       

       분명 돌아가기 전에 원래 있던 자리로 돌려보냈을 텐데 왜 왕궁을 지키고 있었던 걸까.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파이스는 녀석의 얼굴을 마주한 것이 너무도 반가웠다.

       

       중간에 와이번이 화령을 두려워 해 태우길 거부하는 사태가 일어나긴 했다만 다행히 그 사태는 백호의 희생으로 무마되었다. 동물의 모습으로 변한 백호가 화령을 태워 주기로 했기에.

       

       백호의 등에 자리 잡은 화령을 확인한 후 파이스는 와이번을 타고 하늘로 날아 올랐다.

       

       어디 의지할 빛 하나 없는 여정이었지만 그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과거 세상을 구하기 위한 여정에 함께했던 와이번은 어둠 속에서도 제 빛을 찾을 줄 알았으니까.

       

       그렇게 무작정 어두운 하늘을 날아가길 얼마나 했을까. 저 멀리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수많은 마법이 착탄하는 소리.

       

       생과 사의 가운데에서 필사적으로 내질러지는 무수히 많은 목소리.

       

       냉병기들이 오고 가며 적이 죽고 아군이 죽는 소리.

       

       파이스는 이 소리가 무엇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이것은 전쟁의 소리였다.

       

       몇 년이 지난 후에서야 마주한 소리에 파이스의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영웅이라 불릴 지언정 그 또한 인간. 전장의 한 가운데로 향하면서 긴장하지 않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몇 년이란 공백기를 거친 후의 일이라면 더더욱.

       

       “먼저 가마.”

       

       파이스가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다스리던 그 때에 그의 귓가를 스치듯 화령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내 정신을 차린 파이스는 화령에게 기다려달라 말하려 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백호의 등에 타고 있었던 그녀는 이미 자취를 감추어버렸으니까.

       

       “너무 제멋대로시라니까!”

       

       파이스는 투정을 내지르면서 눈에 마력을 집중했다.

       

       저 먼 곳의 풍경을 눈에 담기 위해서.

       

       얼마 지나지 않아 파이스는 화령의 모습을 포착하는 데 성공했다.

       

       그녀는 어느새 전장의 한 가운데에 도달해서는 특유의 무심한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그러다 무엇이 마음에 안 드는 지 살짝 눈살을 찌푸린 화령은 느릿하게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딛었다.

       

       그건 멀리서 보기엔 그저 평범한 걸음에 불과했다.

       

       허나 그 걸음이 불러온 현상은 전혀 평범하다고 할 수 없었다.

       

       거대한 전장에 펼쳐져 있던 마물들이 짓뭉개지는 광경을 어찌 평범하다 이야기하겠는가.

       

       가만 그 모습을 지켜보던 파이스는 잠시 굳어있다가 이내 헛웃음과 함께 힘없는 목소리를 냈다.

       

       “제가 싸울 기회가 있기는 할까요?”

       “있겠냐?”

       “그렇겠죠.”

       

       그럼 화령님께서 하실 물음에 답할 준비나 해야겠네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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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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