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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07

   블랙 후드가 어쩌면 신계로 가는 열쇠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게 된 뒤.

   크라슈는 카란디스에게 배웅을 받고 있었다.

     

   포세우스에서의 일을 마쳤으니.

   바로 세피라의 공주, 세이랑 세피라를 만나러 가볼 생각이었다.

     

   “저 다음에 바로 다른 여자를 만나러 가시는 건가요?”

     

   카란디스가 질투심이 가득한 얼굴을 드러냈다.

   그것을 본 크라슈는 곧 헛웃음을 흘렸다.

     

   “카란디스, 입꼬리는 내리고 말해야지.”

   “아.”

     

   카란디스는 뒤늦게 자신이 크라슈를 놀리기 위해 한껏 기대감을 품은 입꼬리가 올라갔음을 자각했다.

   그녀는 헛기침하며 크라슈의 눈치를 살폈다.

     

   “그래도 질투하는 건 사실이라구요?”

   “세이랑한테?”

     

   크라슈로서는 오히려 기막힐 일이었다.

   그도 그럴게 세이랑과의 접점은 지난 5년간을 통틀어도 없을 지경이니까.

     

   “크라슈 님은 여자란 여자는 다 꼬시고 다니니까요.”

   “너희들한테 내 이미지가 어떻게 박혀 있는 건지 모르겠네.”

     

   좋아하는 사람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은 이해하긴 하겠지만.

   아서 때도 그렇고, 다른 이들에게 모두 그렇지는 않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크라슈 님의 전과는 벌써 저희가 증명했는걸요.”

     

   여기에 관해서는 크라슈도 입을 다물었다.

     

   크라슈의 아내는 네 명.

   카란디스는 천하십강에 오른 후 정식으로 입후보하겠다고 선언한 만큼 아직이긴 하나.

   그 수가 절대 적은 수는 아니었다.

     

   오죽하면 오랜만에 발하임을 찾아갔더니 때마침 있던 아버지께서 크라슈에게 직접 말하였다.

     

   「너무 문란한 삶은 자제하도록 해라.」

     

   발록에게 그런 말을 들을 줄 몰랐던 크라슈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 이전에 문란한 삶이라니.

   아무래도 아내 수가 이러니 그렇고 그런 상황이 많이 나오는 것은 부정할 수 없겠지만.

   일에 치여 사는 크라슈인 만큼 나름대로 절제하고 있다.

     

   그런데 아버지에게 문란한 삶을 자제하라고 들으니, 머리가 띵하고 울렸다.

     

   ‘아마 더는 늘리지 말라고 둘러 말씀하신 것 같지만.’

     

   설마 아버지에게 그런 조언을 듣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그러고 보니 크라슈 님, 발하임의 가주는 결국 누가 이어가게 되는 건가요?”

     

   그러던 도중 카란디스가 때마침 발하임 관련으로 질문해 왔다.

     

   크라슈가 용황이 되고 난 뒤.

   크라슈를 두고 여러 이야기가 나왔다.

     

   발하임의 다음 가주는 당연히 크라슈가 될 거라는 말부터 시작해.

   이미 이카루스의 단장까지 맡고 있는 크라슈가 발하임 가주까지 하는 건 일의 분담상 너무 과하지 않냐는 말까지.

     

   여러 말들이 오고 갔다.

   하지만 확실한 건 하나 있다.

     

   “난 관심 없어.”

     

   크라슈는 발하임 가주에 관해 딱히 관심이 없다.

   예전부터 그랬고, 지금까지도 그러했다.

     

   “그렇다면 다른 형제분들이 맡게 되는 건가요? 샬롯 님이라던가요.”

   “누님은.”

     

   크라슈가 잠시 말문을 멈췄다.

     

   “자리에는 관심이 없어 보여서.”

     

   샬롯은 자유롭다.

   지금도 세계를 유유자적 다니며 강자를 만나면 쓰러트리는 등.

   자신의 재능을 그야말로 마음껏 펼치고 있다.

     

   천하십강 자리에 오른 이들 중에서도 가장 자유로운 사람을 꼽자면 샬롯이라 할 수 있다.

     

   그런 그녀가 한자리에 묶여야 하는 가주 자리를 노린다?

   솔직히 거의 가능성이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물론 누님이니 확신은 못 하긴 하겠지만.”

   “아무래도 그렇죠.”

     

   정말 갑자기 그냥 자리에 관심 생겨서 냉큼 앉으려고 할지도 모르는 게 샬롯이라.

   크라슈도 섣불리 판단하기 애매하긴 했다.

     

   “그럼, 역시 큰형님 분이 가주가 되시는 건가요?”

   “그럴 확률이 제일 높긴 해.”

     

   둘째인 릴리쉬도 가주 자리에는 큰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주천 기사단장 정도로도 충분히 만족한 덕분이다.

     

   그러니 크라슈가 가주에 관심 있지 않는 이상 큰 형인 라이가 받게 될 확률이 높았다.

     

   “저로서는 높은 사람이 취향이니 크라슈 님이 발하임 가주가 됐으면 하지만요.”

     

   카란디스가 크라슈에게 슬쩍 엉겨 붙어 오며 눈웃음쳤다.

   교태를 부리는 그녀를 보고, 크라슈는 짧게 웃었다.

     

   “그래? 그럼, 가주 하지 뭐.”

   “꺅, 멋져요! 크라슈 님!”

     

   죽이 척척 맞는 두 사람이다.

   카란디스와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눈 크라슈는 포세우스에서 준비해 준 텔레포트 장에 도착했다.

     

   이대로 바로 세이랑에게 가볼 작정이었다.

     

   “크라슈 님, 잘 다녀오세요.”

     

   카란디스가 크라슈를 배웅해 주자 그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에 볼 때는 천하십강이 되어 있을 거니까요!”

     

   그녀의 힘찬 말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다음에 만날 때는 정말로 천하십강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천하십강이 안 돼도 찾아와.”

     

   크라슈는 천하십강인 카란디스가 아니라 그녀 자체를 반기는 거니까.

   말의 뜻을 알아차린 카란디스는 묘한 얼굴로 크라슈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그대로 다가오더니 크라슈의 어깨를 잡고는 입에 대뜸 입을 맞췄다.

   아무런 무드도 없이 기습 공격당한 크라슈가 벙찐 표정을 짓자, 카란디스가 붉은 입술을 혀로 훑었다.

     

   “자꾸 이렇게 유혹하시면 보쌈해서 데려갈 거예요.”

     

   대체 무슨 유혹을 했다는 걸까.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카란디스가 그렇다고 하니, 그러려니 했다.

     

   “다음에 봐요!”

     

   그걸 끝으로 크라슈는 텔레포트 시설을 이용했다.

     

   잠시 후, 눈을 뜨자 보인 것은 세피라의 건물 입구였다.

     

   쪼르르르-

     

   동시에 에벨아스크의 시체쥐가 크라슈의 어깨를 타고 냉큼 올라왔다.

   시체쥐는 어느 때보다 생기 있게 귀를 쫑긋거리고 있었다.

     

   에벨아스크는 세이랑이 쓴 관능 소설의 극성팬이다.

   보아하니 세이랑을 만난다고 하니까 신이 난 모양이다.

     

   “오늘은 소설 이야기 안 할 거야.”

   “찌익!”

     

   크라슈가 단언하자 시체쥐가 성을 내며 크라슈의 볼을 물었다.

     

   “이게.”

     

   크라슈는 시체쥐를 낚아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에벨아스크 녀석 조만간에 만나서 궁둥짝이라도 때려줘야겠다.

     

   크라슈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세피라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거기서 걸어 나온 것은 크라슈도 아는 얼굴이었다.

     

   크림슨가든의 종이자 세피라의 2계급관.

   미르비스였다.

     

   “크림슨가든이랑 세피라를 손에 넣는 작전은 잘 진행 중이십니까?”

   “그런 일 없습니다.”

   

   크라슈가 능글맞게 묻자 미르비스는 큰일 날 소리 하지 말라며 크라슈를 다그쳤다. 

     

   “세이랑 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가시죠. 크라슈 님.”

     

   이제는 크라슈와 연이 길게 이어진 그녀다.

   그녀의 안내를 따라 크라슈가 걸음을 옮기자, 세피라의 내부 풍경이 보였다.

     

   “사람이 더 늘어났네요.”

     

   세피라의 일원은 예전보다 더 늘어나 있었다.

   세계가 대개척 시대를 맞이하며 세계 침식 전문 기관인 세피라도 새로운 변환점을 맞이했다.

     

   세계는 더 이상 금역이 아니라 일반 세계 침식과 주로 부딪치고 있다.

   새로운 세계 침식도 자주 발생하는 만큼 세피라의 정보가 대개척 시대에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시대에 맞춰 변하는 것이죠.”

     

   미르비스는 세피라가 무척이나 자랑스러워 보였다.

     

   그녀는 세피라를 위해 성심성의껏 일해왔다.

   이런 부분을 알았기에 세피라의 장로들도 미르비스를 2계급관에 앉힌 거겠지.

     

   잠시 후 미르비스가 세이랑의 방에 도달했다.

   그녀는 크라슈 대신 문을 두드려 손님이 왔음을 알렸다.

     

   “세이랑 님, 크라슈 님이 오셨습니다.”

   “들어오세요.”

     

   안에서는 이미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 들어오라는 세이랑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미르비스가 문을 열자, 세이랑의 방이 보였다.

   어딘가 은은한 복숭아 향이 크라슈의 코끝을 간질였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우뚝 서 있는 장승 같은 사람이 크라슈의 눈에 들어왔다.

     

   천구성, 블라비.

   전 세대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노괴이자 세이랑의 호위인 그가 그곳에 서 있었다.

     

   “와, 오랜만이네요. 크라슈 님.”

     

   그리고 그런 그의 옆에 복숭앗빛의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소녀가 크라슈를 반겼다.

     

   세이랑 세피라.

   점성술사 가문인 세피라의 공주님 되시겠다.

     

   “오랜만입니다.”

     

   크라슈가 인사하자 세이랑이 면사포 넘어 입꼬리를 올렸다.

     

   “이제 다 끝난 일이라고, 약속을 지키시지 않을 줄 알았더니 소녀를 제때 찾아오셨네요.”

   “제가 기억력이 좋거든요.”

     

   세이랑과의 거래.

   천살성을 받는 대신, 크라슈가 회귀 전 보았던 그녀의 죽음을 막아 주겠다는 조건.

     

   그런 세이랑의 죽음이 경고된 날짜가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물론 이는 사실 이미 해결된 일이라 봐도 무방했다.

   세이랑을 죽이는 건 어디까지나 익시온의 일원이다.

     

   세이랑의 죽음을 기폭으로 블라비를 폭주시켜 세계 침식자를 사냥하게 한 뒤.

   검존이 결국 블라비를 막기 위해 나서게 하도록 만들어진 계획이니까.

     

   그러니 지금에 이르러서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다.

     

   이를 세이랑도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는지.

   그날이 다가왔음에도 구태여 크라슈를 찾지 않은 것이다.

     

   “본론부터 바로 이야기하실까요?”

     

   아니나 다를까, 세이랑은 이 이야기는 뒷전으로 미뤄뒀다.

   그녀도 크라슈가 다른 목적이 있어 찾아온 걸 잘 알고 있었다.

     

   “예, 신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크라슈는 세이랑 앞에 있는 의자를 빼어 앉았다.

     

   “얼마 전 물의 신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크라슈는 라그나로크부터 시작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세이랑에게 전했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세이랑은 곧 턱을 누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점성술사인 그녀이니 무언가 짐작 가는 게 있을 거라 판단하고 기다린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드디어 생각을 마친 세이랑이 입을 열었다.

     

   “일단 라그나로크와 관련한 이야기가 저희 역대 세피라 공주들의 예언 속에 있기는 해요.”

     

   크라슈의 눈이 뜨여졌다.

   역시 세피라다.

     

   “문제는 그게.”

   “다른 문제가 있습니까?”

   “으음, 예언에 의하면 라그나로크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 기준이에요.”

   “예?”

     

   다음 말을 듣고, 크라슈가 눈을 깜빡였다.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람.

     

   “그게 무슨.”

   “과거를 보는 게 아니라 예언이니까요. 예언은 어디까지나 미래에 있을 일을 어림짐작하는 능력이지 과거를 보는 능력은 아니에요.”

     

   세이랑도 이 부분이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크라슈도 세이랑을 따라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얼마 후, 한 가지 사실이 떠오른 크라슈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말입니다. 미래에 또 라그나로크 같은 일이 일어나는 거 아닙니까?”

     

   크라슈가 질문하자 침묵하던 세이랑의 눈이 서서히 떠졌다.

     

   “아.”

     

   그리고 곧 그녀 또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자각했다.

     

   “잠깐, 잠깐만요. 그렇지만 예언 속, 라그나로크에서 신들의 힘을 뺏는 자는 도둑이 될 거라 했어요.”

     

   크라슈에게 블랙 후드를 부여한 도둑의 신은 이미 신계로 넘어갔다.

   그렇다면 신들의 힘을 빼앗는 도둑은 누구인가.

     

   크라슈와 세이랑의 눈이 딱 마주쳤다.

     

   어쩌면 예언 속 도둑의 주인공은.

     

   크라슈일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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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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