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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07

    <407 – 진짜 공포>

     

    새끼크라켄이 우는소리에 분노를 억누른 부모크라켄은 커다란 다리를 천천히 내렸다.

    그 행위에 적의를 애써 내려앉히고 있음을 깨달은 레드마운틴 교수는 부적을 회수했다.

     

    구구구.

     

    배에 다가오는 것만으로도 보호막이 짓눌리며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찌그러지자 엘 드라코 교수의 부관마저도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교수 또한 체면을 생각해서 심사가 뒤틀린 표정으로 다리를 째려보고 있을 뿐, 속으로 진땀을 흘리기는 마찬가지였다.

     

    ‘거 더럽게 강하네. 이딴 다리가 몇 개나 동시에 덮쳐들면서 배를 내리치고 휘감고 밀치고 뒤집어엎으면 무슨 수로 버텨?’

     

    크라켄은 제 촉수에 새끼를 휘어감더니 자신이 소환된 소환진으로 그 거체를 되돌려 하강했다.

    살았다.

    등 뒤에 흐르던 식은땀으로 옷이 축축해진 것을 뒤늦게 자각할 정도로 집중되었던 정신이 풀어졌다.

     

    쿠구구구구

     

    소환진의 너머로 사라지기 시작하는 거대한 다리.

    그런데 부모크라켄의 다리에 매달린 새끼크라켄이 쉼없이 무옹무옹거리며 제 작은 촉수를 부단히도 움직이며 쫑알거려댄다.

     

    ‘싸한데…?’

     

    실전에서 단련된 <위기감지>가 경종을 울린다.

    하강하던 다리의 속도가 점차 느려진다.

    이윽고 촉수의 끝이 격노한 문어마냥 아주 격하게 흔들린다.

    저것이 인간의 언어로 의지를 표명하지 않아도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는 알 수 있다.

    유명한 대해적이라면 누구나 심해의 대괴수를 수족으로 부리는 것을 꿈꾸기에 크라켄의 언어를 한 번쯤은 연구해봤으니까.

     

    [내 새끼를 속인 걸로도 모자라 식량으로 삼으려고 한 인간들, 그냥 보내지는 않겠다!]

     

    “공격이다! 당장 방어역장을 최대로…!”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해저에서부터 일어나는 거대한 소용돌이.

    배가 휘청이며 기울고 해저 밑바닥까지 휩쓸리는 <심해대회전>이 촉수 하나의 힘으로 일어난다.

    물론 크라켄의 본체가 일으키는 것에 비하면 위력은 백분의 일도 안 된다.

    그러나 이곳은 간이시험을 위해 해안에 가까운 근해.

    해저 밑바닥까지의 거리도, 인근 암초까지의 거리도 모두 지나치게 가깝다.

     

    <비보 – 대결계의 방패>

    <수호법부>

     

    대해적의 비보와 대요녀의 법부가 동시에 배를 감싼 직후, 엄청난 충격이 이중으로 펼쳐진 보호막을 마구 난타하였다.

    크라켄의 다리는 소환진의 너머로 완전히 사라졌지만 대회전에 휩쓸려 바다 밑바닥까지 끌려가던 선박에는 희소식이 아니었다.

    밀려났던 물이 도로 차오르면서 사방에서 배를 짓누르듯이 물살이 덮쳐왔으니까.

     

    우지지지직!

     

    선박 전체에 커다란 균열이 일어났다.

    이건 버틸 수 없다.

    판단이 서기 무섭게 두 교수는 즉시 선박을 감싼 대형장막을 해제하고 모든 학생들을 감싸는 소형장막을 동시다발적으로 펼쳤다.

    구체 속에서 내동댕이쳐지며 표류하던 학생들이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물살에 떠밀려 해안선의 모래밭에 도착한 이후였다.

     

    “으윽, 면목 없습니다 선장님. 도중부터 기절했다가 같이 구출을 받다니.”

    “변명은 나중에 듣겠다. 그보다 학생이다. 학생이 줄어있으면 안 된다. 당장 수를 헤아려라!”

     

    대가는 레드마운틴 교수가 지불한다고 쳐도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이 죽는 일은 엘 드라코 교수에게도 좋지 않았다.

    1학년을 죽였다는 평판이 생긴 교수에게 고학년들은 어찌 강의를 들을 것이며, 수강생이 없으면 어찌 ‘할당량’을 채워 아카데미에서 해방되겠는가.

     

    ‘제발 한 명도 죽었다는 말은 하지 마라!’

     

    수를 헤아리는 교관들 앞에서 기도하듯이 속으로 외치는 엘 드라코 교수.

     

    “계산이 끝났습니다.”

    “…결과는?”

    “기존보다 배 이상 많은 인원이 확인되었습니다.”

    “뭐? 시발 줄면 줄었지 수가 왜 더 늘어나?”

    “어… 뫼르소해적단 때문이 아닐까요?”

    “분류를 해!”

     

    잠시 후, 열심히 수를 헤아리고 돌아온 교관이 어벙한 얼굴로 말했다.

     

    “뫼르소해적단을 제외하고 셈을 했는데 그래도 여전히 수가 더 많은데요?”

     

    아니 어떻게 수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늘어날 수가 있지?

     

    “아. 이런 멍청한 새끼. 2학년이랑 3학년이 쳐들어왔잖아! 그놈들도 빼고 다시 헤아려!”

     

    교관이 머리를 긁적이며 세 번째로 수를 다시 헤아렸다.

    그리고는 볼을 긁적이며 다시 네 번째로 수를 헤아렸다.

    결과를 확인하고 마법시계로 출석명부를 보고 결과를 다시 확인하고 마법시계로 출석명부를…

     

    “말을 해! 또 뭐가 문제인데!”

    “1학년만 헤아렸는데도 여전히 인원이 많은데요?”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황당함을 금치 못하는 교수에게 교관이 처음 보는 1학년들의 뒷덜미를 붙잡아 들어올렸다.

     

    “일단 명부에 없는 1학년입니다. 이놈 말고 다른 녀석들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1학년 상급반 소속이 상당수 보입니다.”

    “아니 과제하기도 바쁜 주말에 이 미친 것들은 왜 해안가에서 얼쩡거리다가 휩쓸려서 툭 튀어나오고 지랄이야? 돌아버리겠네. 부상은?”

    “공포에 걸려서 마비당한 상태로 해안가를 덮친 파도에 휩쓸려서 죄다 꼴이 말도 아닙니다.”

    “에푸… 에푸…”

    “가지가지 하는군. 물까지 먹어서 허우적거리고. 쯧. 명부에 없는 녀석들부터 살려내.”

     

    다 죽어가던 학생들을 회복시키고 나니 그나마 정신이 돌아온 학생이 쿨럭쿨럭 물을 뱉어내며 몸을 힘겹게 일으켰다.

     

    “너희들 뭐냐. 여기서 뭘 하고 있었냐?”

    “저희는…”

     

    덤으로 늘어난 인원은 자신들의 정체와 목적을 진술하였다.

    그들은 오크노디가 일을 벌이는 시간과 같은 때에 도비와 결판을 짓겠다고 나섰던 지젤이 동원한 상급반 일동이었다.

     

     

    * * *

     

     

    “함정인가?”

    “그래. 함정이야.”

     

    오크노디가 시험에 참석하는 시간.

    같은 시각, 다른 장소로 오크노디가 너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정보를 흘려낸 지젤.

    그의 함정에 빠진 도비는 상급반이 잔뜩 포진한 자리에 제 발로 나타났다.

     

    “일전에 도서관원정에서 신세를 졌던 분들도 계시는군요. 그때는 폐를 끼쳐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사과라면 오크노디의 이름을 팔아 수상한 짓을 저지르는 종말교단의 행보에 걸고 하세요.”

     

    아이린은 차가운 눈으로 도비를 노려보았다.

    가뜩이나 평판이 안 좋은 오크노디에게 더 많은 악소문이 돌 여지를 만들다니 호된 꼴을 겪게 만들 이유로는 충분했다.

     

    “제 행보는 모두 종말의 순간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한 한 걸음. 어느 누구에게도 사과해야 마땅할 이유는 없습니다.”

    “제법 건방져졌군요. 그 몸의 흉험한 기세만큼이나.”

    “이제 저를 보내주시겠습니까?”

    “그럴 수는 없어요. 순순히 굽힐 수 없다면 힘으로라도 당신을 교정시켜드리죠.”

     

    아이린의 자신감 넘치는 발언에 다른 이들도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며 기세를 부풀렸다.

    그중에는 일전에 도비에게 패한 전적이 있었던 동방검객 싱이나 모브도 포함되어 있었다.

     

    “내 차례까지 오기나 할지 모르겠네.”

     

    해안가의 표지판 위에 걸터앉아 빙그르르 수리검을 돌리는 즈앙에 이르러서는 여유를 넘어선 따분함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나서기도 전에 이미 지젤, 이사벨, 손오천, 헤스티아, 도로시, 록펠 등의 면면을 떠올리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봐도 이 전력은 지나치게 과했으니까.

    그런데도 도비는 굽히지 않았다.

    겁을 너무 먹어서 실성이라도 한 걸까.

     

    “저를 오크노디 님의 곁에서 떼어놓겠다면… 당신들은 나의, 아니 세계의 적입니다. 종말을 앞당기는 파멸의 전령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요란한 외침.

    어디 할 테면 해보라고 남 일처럼 여유를 부리던 즈앙의 눈이 불에 덴 사람처럼 커졌다.

     

    <공포유발>

     

    급이 다르다.

    암살자로서 표적의 도주를 억제하기 위해, 몸부림을 쳐서 혈흔이 튀는 것을 막고자 그런 기능을 사용해온 적도 꽤 있었다.

    편리함을 위한 도구, 즈앙에게 공포유발이란 그런 존재였다.

    도비는 달랐다.

    그가 기능을 펼쳐내는 순간, 즈앙은 전신의 피부 위를 타고 오르는 벌레처럼 아주 불길하고도 끔찍한 공포를 느꼈다.

    이런 공포는 스승인 목숨도둑 륭 노사에게서도 받아본 적이 없다.

    굳이 빗대자면 오직 한 사람.

    암살자의 가슴에도 공포를 심어줄 수 있는 살아 움직이는 악몽, 사다코 교수뿐이다.

     

    ‘대체 무슨 짓을 해야 이런 공포유발이 가능하지?’

     

    사람을 죽이는 일을 생업으로 삼는 암살자인 그녀조차도 이 정도의 공포유발은 꿈도 못 꾼다.

    마족과 영혼을 건 계약이라도 저질렀나?

    아니, 그조차도 부족하다.

    크루즈선에서 보았던 마족계약자 로우.

    그 로우도 이만큼의 공포심을 선사하지는 못했다.

    이것은 수천의 생명보다 더욱 무거운 것을 빼앗을 수 있는 자에게만 허락된 공포유발이다.

     

    “마음이 꺾이는 절망을 부르는 힘. 두 번은 통하지 않는다.”

     

    즈앙조차 몸이 얼어붙은 와중, 무릎을 꿇고 헐떡이거나 엎드려 일어서지 못하는 학생들 사이로 한 사람이 이를 악물고 일어섰다.

    동방검객 싱.

    입가에서 흐르는 피는 고통으로 강제로 몸의 공포를 깨워버린 흔적이다.

    암살자의 무감과는 반대로 감각을 강제로 살려서 상태이상을 해제하는 전사들의 비술, <신체각성>!

     

    “이 흉험함… 한 번 제압하지 않고서는 좋게 넘어갈 수 없겠군요.”

     

    북부대공녀 아이린은 서릿발같은 얼굴에 냉기를 풀풀 풍기며 마법사들의 비술 <정신각성>으로 쓰러지려는 몸을 초월적인 정신력으로 강제로 일으켰다.

     

    “현인은 겪기 전에 깨우치나 범인은 겪기 전엔 알지 못하니, 여러분 또한 저와 다르지 않은 범인이군요. 정 그러하다면 보여드려야만 하겠지요.”

     

    동조마법을 펼쳐 종말의 순간을 보여준다.

    하필이면 종말의 순간에 자폭으로 사망한 당사자에게 기억을 보여준다는 것이 꺼림칙하기는 했지만 도비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마치 새로운 챕터보스로 선정이라도 된 것처럼 다수의 강자들을 상대로 도비가 제 힘을 발휘하려던 순간이었다.

     

    ‘동조의 파장이 깨졌어!?’

     

    거대한 마나파장이 모든 마법의 작용을 강제로 파괴하였다.

    종말의 순간만큼은 아니어도 그때의 기억을 강제로 떠올리도록 만들기에는 충분할 정도의 위력이 담긴 힘이었다.

    그 힘의 주인은 크라켄.

     

    쿠구구구구!

     

    거대한 다리가 수면을 가르고 솟구치는 순간, 공포가 모든 학생의 몸을 강타했다.

     

    도비의 공포유발.

    크라켄의 광역피어.

     

    이중으로 펼쳐진 공포에 신체각성과 정신각성을 펼친 싱과 아이린, 암살자의 무감으로 공포심마저 지워 몸을 움직이던 즈앙조차 재차 몸이 얼어붙었다.

    억지로 떨쳐내기라도 할 수 있었던 도비의 것과 달리, 마나의 <중압감>에 떨쳐내는 행위조차 불가능한 광역피어.

    그 힘을 다 극복하기도 전에 수면 아래로 다리가 사라지더니 거대한 소용돌이가 해안 저편에서 일어났다.

    배가 휩쓸리고 휘청거리다 가라앉고 튕겨 나오는 대소동의 한복판.

    굉음과 함께 배가 터지면서 엄청난 높이의 헤일이 해안가를 덮쳐들었다.

     

    쾅!

     

    도비와 대치하던 학생들 모두가 파도에 휩쓸린 것은 두말 할 것도 없는 당연지사.

    결과적으로 해안선의 학생들은 전부 쓰러졌다.

     

    “콜록콜록…”

     

    날벼락을 맞은 심정으로 억울함에 치를 떨며 몸을 일으키는 즈앙.

    그녀의 눈에 흐릿하게 보이는 신형이 있었다.

    해안선 너머, 출입금지구역으로 우다다다 달려가는 기이할 정도로 빠른 걸음의 작은 아이.

     

    “오크노디…?”

     

    그녀의 걸음에는 망설임도 흔들림도 없었다.

    지금의 혼란을 전부 예상했다는 것처럼.

    모든 일이 계획대로 풀렸다는 듯이.

     

    ‘설마 방금 전의 그건, 식품도감수집용이라고 끌고 다녔던 촉수상자에 들어있던 것이 심해의대괴수 크라켄의 새끼…?’

     

    의아함은 이내 동요로, 동요는 경악으로 이어졌다.

    무엇을 위한 계획인지는 몰라도 지금 건 지나치게 위험한 짓이었다.

    아카데미 측에서의 징계가 따르는 것이 당연한 수순일 정도로.

    그만한 무리를 저질러서라도 침투하려는 장소는 어디이고 저 안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가.

    저것을 보지 못한다면 지금까지와 같은 일상이 이어지겠지.

    그러나 일상에 안주할 뿐이라면 언젠가 오크노디는 홀연히 자신의 곁에서 사라지리라는 그런 강한 예감이 들었다.

     

    “크읏…”

     

    공포에 얼어붙은 몸이 바위처럼 단단한 파도에 치이며 입은 부상을 억지로 외면한 채, 즈앙은 몸을 일으켰다.

    그 작은 걸음이 쫓는 대상은 물론 오크노디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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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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