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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08

        

         

       갇혔다.

         

       건물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으니, 갇힌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러면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누가, 왜.

         

       그들을 가뒀단 말인가?

         

         

         

         

        * * *

         

         

         

       “알리프 람 밈 싸드.”

         

       바다 위에 뜨기를 멈춘 배에서는 불길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물에 있어야 하는 배.

       물에 있어야 하는 귀신.

         

       그 둘 모두가 뭍에 올라와 있으니, 이 어찌 괴이쩍은 일이 아닐 수 있으랴?

         

       “…가로되 실로 나의 주님께서는 드러나는 것이건 드러나지 않는 것이건 불결한 행위를 금하셨고, 죄와 사악한 범죄를 금하셨고, 하나님께서 부여하지 아니한 다른 것으로 하나님을 비유하는 것을 금하였고, 너희가 알지 못하는 것으로 하나님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금하셨으니. 너희 금기되고 부정한 것들을 행하는 자들아, 주님을 경외하고 순종하지 아니한 자들아. 하나님의 말씀대로 너희 이전의 지나간 사람들, 그리고 진과 함께 불지옥으로 들어가게 될지어다. 새로 들어가는 세대가 앞서 들어왔던 세대를 저주하는 말을 들을 것이고, 그 말을 들은 하나님이 진노하여 징벌을 배로 하게 되는 것까지 보고 겪게 될 것인즉 너희는 불구덩이에서 타오르게 될지어다.”

         

       사람을 기만하여 물속으로 끌어들여 잡아먹는 물귀신들에게 진성은 고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가슴을 접어 자신들을 하나님으로부터 감추려 하나, 그들이 옷을 입는다고 할지라도 그분께서는 그들이 숨기는 것과 드러내는 모든 것을 아시노라. 실로 그분께서는 가슴 안에 있는 것을 잘 아시노라. 하니 자비로우시고 자애로우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르노니. 너희는 추호도 숨기는 것 없이 진실하게 말하여 그분께 순종하고 그분을 경외하는 태도를 마땅히 보이라 할 것이라. 알리프 람 라. 이것은 말씀이 구체화한 성서에서 온 말이니라.”

         

       주언(呪言)을 외우며 귀신을 깎아 사람 비슷하게 만들고.

       주언(呪言)을 외우며 귀신의 성대를 깎아 사람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만들고.

       물귀신들의 사람을 기만하는 능력을 증폭시키고.

         

       그리하여 이 악귀들이 일시적으로나마 악령처럼 사람을 쉬이 홀릴 수 있게 만들었다.

         

       “자, 가라.”

         

       딸랑.

         

       진성은 방울을 흔들어 물귀신들을 배에서 내보냈다.

         

       죽여야 할 자를 죽이고, 살려도 될 자는 살리도록.

         

         

         

        * * *

         

         

         

       안개가 짙게 낀 날을 본 적이 있는가?

         

       안개라는 것은 매미 날개같이 아주 얇고 투명한 날개와 같다.

       하지만 그것이 셀 수도 없이 중첩된다면 여느 옷감과 다를 바 없이 반투명하게 변하고, 그 두께 역시 눈으로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굵어지기 마련이다.

         

       짙은 안개란 그런 것이다.

       손으로 만질 수 없는 얇고 투명한 안개가 겹겹이 겹치고, 그리하여 아무것도 볼 수 없게 가리는 것.

       불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새하얀 연기 안에 들어오기라도 한 것처럼 눈앞이 뿌옇게 변하고, 코에서는 안개가 품은 습기만이 느껴진다. 냄새를 품은 습기는 코안으로 들어와 다른 냄새를 맡지 못하게 방해하고, 소리마저 어디서 들려오는지 알 수 없게 만든다.

         

       시각을 막고, 후각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청각을 교란한다.

         

       그리하여 안개가 낀 날에는 토박이라도 길을 잃게 만들고, 솜씨 좋은 길잡이조차도 목숨을 거는 것을 각오해야만 하게 한다. 사냥꾼은 사냥감을 쫓는 평소의 입장과는 정반대로 사냥감으로 전락시키며, 배를 항해하는 사람이 길을 잃어버리게 만들어 바다를 표류하게 만든다.

         

       지금 이 안개가 바로 그러한 것이었다.

         

       지진 이후에 갑작스럽게 피어오른 안개.

         

       배를 근원으로 해서 피어오른 이 짙은 안개는, 너무나 짙어 배에 불이 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연기 특유의 냄새가 없고, 뜨겁지도 않으며, 오히려 습기를 잔뜩 머금은 것이 그들이 수도 없이 보고 겪었던 해무(海霧)였다.

         

       갑자기 오밤중에 피어나는 안개라.

         

       참으로 불길하고 기이한 일이 아닌가.

         

       게다가 더 기이한 것은, 이 안개에 무슨 힘이라도 있는 것인지 전자기기를 죄다 망가뜨려 버렸다는 것.

       초소에 설치된 CCTV는 노이즈만 나오고 있었고, 무전기는 잡음이 찌지직거리게 했다. 게다가 습기를 얼마나 머금고 있는 것인지 초소의 벽면에 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했으며, 조금 전까지 메말랐던 땅은 축축하게 젖어서 비 온 직후의 땅을 보는 듯했다. 게다가 초소 옆에 자라난 풀들이 물을 머금어 기분이 좋다는 듯 생기를 잔뜩 뿜고 있는 것을 보라.

         

       이것은 그냥 안개가 아니라, 한차례 퍼부을 소나기가 연기처럼 퍼져 땅에 내려온 것이랑 비슷한 느낌이었다.

         

       “이런 제기랄, 야간투시경도 안 먹히네…. 저놈의 배를 볼 수가 없어. 가까이 가서 확인할 수도 없고…. 돌겠네.”

         

       그리고 그 안개 속에서 공포에 떨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초소에 근무를 서고 있던 둘.

         

       가장 먼저 배를 발견한 사람들이며, 배가 섬에 부딪힐 것 같아 보이자 가장 먼저 몸을 웅크리고 충격에 대비한 사람들이기도 했다.

         

       “이상한 연기 흘러나올 때 빨리 도망칠걸. 젠장. 대체 여기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답시고….”

         

       둘은 지금 이 안개가 배에서 피어오르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배가 섬에서 부딪친 후, 배에서 피어나는 안개라?

         

       그게 범상찮은 것일 리가 없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군사용 연막이나 어떤 화학반응으로 인해 피어난 안개일 가능성이 컸으니까.

       그 때문에 그들은 초소 안에 비치된 방독면을 부랴부랴 착용하기까지 했다.

         

       저 안개인지 화학물질 범벅으로 만들어진 연기인지 모를 것을 함부로 마셨다가 고통 속에서 죽어 나가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못 갈 건 뻔하니…. 그냥 있자고. 어차피 돌아가봤자 욕밖에 더 먹겠지. 여기서 그냥 대기하고 있다가, 그래도 할 일은 했다는 인상 심어주는 것이 백배 낫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과는 달리 안개는 정말로 아무런 해가 없는, 바닷물을 재료로 삼아 피어오른 안개일 뿐이었다.

         

       사람의 감각을 교란하는 힘밖에 없는 평범한 현상.

       과하게 습기를 머금기는 했으나 단지 그뿐.

       전자기기를 순식간에 무력화시키기는커녕, 오랜 접촉으로 부식이라도 시킬 수 있으면 다행인 수준의 안개였다.

         

       다만 그 안개가 품은 것이 위험한 것이었을 뿐이다.

         

       “…려 주세….”

         

       짙은 안개가 품은 그림자가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안개로 들어가 형체를 숨겼고, 조각된 성대를 진동시키며 소리를 내질렀다.

       그 목소리는 사람의 관심을 자연스럽게 끄는 힘이 있었고, 안개가 품은 습기가 아니더라도 묘하게 질척거리고 끈적거리는 느낌을 주었다.

         

       “도…세요–”

         

       짙은 안개 속에서 메아리가 퍼진다면 이런 느낌일까?

         

       소리가 이곳에서 부딪치고, 저기서 부딪치고.

       그렇게 방향감각을 상실한 소리가 사방에서 튕기고 또 튕기며 사람의 귀에 들어간다.

         

       그 소리는 조각나 그 본모습을 유추하기 힘들었고, 어디서 왔는지조차 알기 힘들었다.

         

       왠지 모르게 음산한 소리.

       하지만 다급한 감정이 그대로 묻어있는 소리.

       사람의 귀를 절로 쫑긋거리게 만들고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소리.

         

       하여 그 소리에 관심을 두게 되는 순간, 소리는 조금씩 커진다.

         

       “도—주세요—”

         

       마치 볼륨을 아주 조금씩 올리는 것처럼.

       아주 조금씩, 사람의 감각을 날카롭게 벼리듯이.

         

       그렇게 소리는 점차 또렷해진다.

         

       그리고 그 소리는 마침내 사람의 귀에 또렷하게 꽂힌다.

         

       “도와주세요—!”

         

       사람의 이성적인 면모를 잃게 만드는 내용을 담고서.

         

       “뭐, 뭐? 야. 너 들었냐?”

         

       “예. 들었습니다…. 도와달라고….”

         

       심상치 않은 내용.

       짧은 말에 담겨 있는 다급한 느낌.

         

       경계 근무를 서고 있던 둘은 그 말에 당황했다.

         

       그리고 그들의 당황을 시작으로, 소리가 또렷하게 변해 그들의 귀에 꽂혔다.

         

       “사람 살려요-!”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 도움이 필요해요!”

         

       살려달라.

       도와달라.

         

       도움을 요청하는 목소리.

         

       “아, 이런 미친….”

         

       저 안에 담겨 있는 절실한 감정을 보라.

       물에 빠진 사람이 물을 마셔가며 외치는 것 같이 진실하고, 다급한 느낌이다.

         

       저 말을 듣고 있자면 당장이라도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달려가서 그들을 도와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실제로 김이창 경장의 옆에 있는 신입은 금방이라도 달려갈 것처럼 몸을 움찔거리고 있었다.

         

       만약 김이창 경장이 그의 옆에 있지 않았다면 저 신입 놈은 아무 생각 없이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가서 무작정 구하려 했겠지.

         

       아니, 그가 처음부터 경찰이었다면 저들을 구하러 바로 뛰어갔을 수도 있다.

       경찰은 사람을 구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존재였으니까.

         

       하지만 그는 군인 생활을 해보았다.

       군인 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명령을 지키는 것.

         

       정해진 곳을 벗어나지 않고, 멋대로 행동하지 않으며, 부품으로의 역할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

         

       지금 그가 해야 하는 것은 경계.

         

       그는 이 초소를 지켜야만 했다.

         

       그게 그에게 주어진 임무였으니까.

         

       ‘이런 빌어먹을….’

         

       농땡이?

       그래. 쳤다.

         

       하지만 경계에 조금 소홀했을 뿐이지, 경계를 아예 땡땡이치진 않았다.

       그는 적어도 초소를 지키고 있었으며, 거기서 벗어나려 한 적은 없다.

         

       그것이 바로 그의 역할이며, 그에게 하달된 임무였으니까.

         

       게다가 지금은 비상 상황.

       이 자리를 지켜야만 한다.

         

       그런데 저 목소리를 따라간다면….

       저 사람들을 구하러 간다면….

         

       “야.”

         

       김이창 경장은 고민을 거듭하다가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우리는 여기 경계 서야 해. 알지?”

         

       “…예.”

         

       그는 방독면을 쓴 채 신입에게 물었다.

       신입은 그의 물음에 담긴 뜻을 읽었는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실제로 사람 빠져도 우리가 구하는 거 아니잖아. 당장 비상 상황 알려서 구조할 사람 불러서 구하게 하잖아. 경계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 건데. 그렇지?”

         

       “…예.”

         

       짧은 대답에서 묻어나오는 불만.

         

       김이창 경장은 신입의 대답에 쓴웃음을 지었다.

         

       “우리가 군인이라면 여기를 지키는 게 정답이야. 저 사람들이야 나중에 구조대가 오던, 다른 사람들이 구하건 할 테니까.”

         

       “예….”

         

       “그런데 말이야.”

         

       퍼억!

         

       김이창 경장은 말을 잠시 멈추더니 총을 뒤로 메었다.

       그리곤 신입의 등을 팍 쳐서 정신이 번쩍 들게 했다.

         

       “우리는 경찰이니까 사람 구조하는 게 맞겠지? 안 그러냐?”

         

       끼익.

         

       그는 천천히 초소 문을 열고 나갔다.

         

       “씨발 왜 이탈했냐고 하면 사람 구하러 갔다고 하자고. 뭐…. 군법으로 처벌받아서 육군 교도소에 가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욕먹고 징계받고 감봉당하고…. 뭐 그 정도 아니겠냐? 고작 그 정도로 사람 구하면 싸게 먹히는 거지 뭐.”

         

       그의 선택은 사람을 구하는 것.

       

       “뭐 어차피 받을 거, 조금 더 받으면 그만이지. 야, 가자.”

       

       김이창 경장은 신입과 함께 짙은 안개를 뚫고 사람을 구하러 향했다.

         

       『 …그분께서는 엿새 동안에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고 물 위의 권좌에 앉으시어 너희가 선을 행하는지를 시험하시노라. 어려울 때 믿음으로 인내하고 은혜를 받을 때면 선을 실천하는 자들에게는 큰 보상이 주어지니 그것이 곧 천국이라. 믿음을 갖고 선을 행하며 주님에게 겸허한 자들은 천국을 얻을 것이요, 생명을 얻으리라. 』

         

       둘의 선택은 그러하였다.

         

       그들은 곧 자신이 선택한 끝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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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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