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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09

       최종 던전이 호락호락한 난이도는 아니다.

        

       대부분의 일본산 RPG는 난이도를 올리면 적이 피 돼지가 되는데, 턴제 게임은 그게 액션 게임보다 훨씬 심하게 체감되는 편이다.

        

       한 번 때리고 다음 턴을 기다리는 시간이 있는 데다가, 내가 한 번 때리면 적도 확실하게 나를 한 번 때리기 때문이다.

        

       물론 스피드 특화 캐릭터를 육성해두거나 회피 특화 캐릭터를 육성해두면 큰 문제가 없지만.

        

       게다가 나는 이래 봬도 이 게임을 엄청 오랫동안 플레이해왔다. 적의 외모만 보아도 저놈한테 어떤 속성이 잘 먹힐지 대충 보인다.

        

       시리즈가 지날수록 100퍼센트 회피 같은 것은 불가능하도록 밸런스가 패치되지만, 뭐, 100퍼센트가 불가능하다고 80퍼센트의 확률도 불가능하다는 것은 아니니까.

        

       “오!”

        

       자기를 모티브로 한…… 아니, 모티브라고 해야 할까? 따지자면 모티브라기보다는 그냥 완전히 별개의 존재인 것 같은데 말이지.

        

       아무튼, 자기와 똑같은 ‘클레어’가 전면에 서서 거의 모든 마법을 대신 맞으며 회피로 피해버리는 것을 보고 클레어가 감탄했다.

        

       밸런스형 캐릭터는 모든 면에서 어중간하다는 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세팅만 제대로 하면 어느 상황에서도 앞으로 나설 수 있는 캐릭터라는 뜻이다.

        

       솔직히 잘해 회피율 70퍼센트는 조금 간당간당했지만. 그래도 운이 좋아서 어떻게든 해내고 있었다.

        

       [이걸 피하네ㅋㅋㅋㅋㅋ]

       [아 절반만 넘으면 아무튼 높은거라고ㅋㅋㅋ]

       [확률이 장난으로 보이냐]

        

       채팅창에서도 연속해 마법을 피하는 클레어를 보고 감탄하고 있었다.

        

       죽더라도 큰 문제는 없다. 같이 파티로 넣어둔 샤를로트도 밸런스형 캐릭터니까.

        

       둘 다 마법 물리 밸런스형 캐릭터라고 해서 용도가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다. 클레어는 스킬들이 모두 ‘공격’ 형태였다. 그래서 적의 조합이 마법 물리 동시에 있는 경우에 완전히 대응이 가능한 캐릭터다. 거기에 쓸만한 자기 버프 스킬도 있고.

        

       샤를로트도 기본적으로 공격형 캐릭터이긴 했지만, 스킬 중 하나가 광역 힐이었다. 미아의 힐에 비하면 회복도 자체는 상당히 떨어지는 편이지만, 그래도 비상시에는 유용하게 쓰인다.

        

       거기에 착용 마르마로스 중에는 ‘아이템을 범위기로’ 만들어주는 것도 있었고.

        

       그러니 이 파티에서는 샤를로트와 미아 둘 중 하나만 쓰러지지 않으면 나머지 캐릭터는 좀비처럼 다시 일으켜 싸우는 게 가능하다는 소리다.

        

       이번 편의 최종 던전은 제도 그 자체.

        

       민간인이 사라진 제도에서 황궁으로 가까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적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저 적들, 왕도의 지하에서 본 것과 거의 비슷하지 않은가요?”

        

       “정말이야. 전부 무언가에 씐 것 같은 짐승들. 역시 뒤에는 법국이 있는 걸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러면 실비아는 어떻게 된 거죠?”

        

       그러게.

        

       실비아가 사라진 뒤 이런 상황이 벌어졌으니, 실비아가 법국에 넘어갔다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굳이?

        

       저쪽 세상의 실비아는 결국 여신에게 붙을 생각을 하기라도 했다는 소린가?

        

       “계속 플레이해보면 알게 되겠죠.”

        

       나는 일단은 그렇게 대답했다.

        

       *

        

       그리고—

        

       [아하하하하!]

        

       “…….”

        

       모니터에 떠 있는, 미친 듯이 웃으며 검을 휘두르는 캐릭터를 나를 제외한 나머지 네 사람이 굉장히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응, 뭐.

        

       나야 이미 전작에서 본 모습이었으니 알고 있었지만, 소피아의 평소 모습을 기억하는 네 사람을 생각하면 이런 반응도 이해할만했다.

        

       “어…… 그러니까, 소피아?”

        

       “적어도 목소리는 소피아네.”

        

       클레어의 중얼거림에 앨리스가 침착하게 대답했다.

        

       “……뭔가 동질감이 느껴지네.”

        

       클레어가 중얼거렸다.

        

       그렇다.

        

       나름대로 평범하고 사람다운 모습을 보다가, 그 친구가 갑자기 웬 사이코패스로 묘사된 매체를 보게 된다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연하다.

        

       심지어 목소리까지 똑같지 않은가. 물론 게임 속 더빙은 일어로 되어있겠지만, 우리 귀에는 번역되어 들리니까.

        

       [선지자께서 주신 이 힘으로, 불신자인 너희들을 막아 보이겠다!]

        

       “…….”

        

       소피아가 이 자리에 없다는 것에 감사하자.

        

       아니, 아쉬워해야 하려나.

        

       소피아의 머리 뒤에서는 푸른 빛이 광배처럼 흘러나오고 있었다.

        

       [저 사람은……]

        

       레오는 그 소피아의 모습을 보고 조금 당황했다.

        

       [어째서, 분명 처음 보는 사람일 텐데.]

        

       그리고 그런 독백이 흘러나왔다.

        

       역시 이 세계관은 전작에서 이어지기는 하는 모양이다.

        

       [대체 그 선지자라는 자가 누구지?]

        

       앨리스가 분개하여 앞으로 나서며 물었지만,

        

       [너희 같은 불신자, 이단자들에게 알려줄 것은 없어.]

        

       소피아는 씩 썩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단상 위에서 뛰어내렸다.

        

       [저쪽 세상에서 오셨으면 소피아도 만나보셨겠네요.]

        

       “네, 물론입니다.”

        

       채팅에서 그런 질문이 나와 내가 대답했다.

        

       당연히 진지하게 믿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우리의 ‘컨셉’이 먹혀들어 가고 있기는 하다는 증거였다.

        

       “그저 평범하게 좋아하는 소년이 있는 소녀였죠.”

        

       “그러게. 마지막 전투가 끝나면 잘될지 궁금했었는데.”

        

       클레어가 중얼거렸다.

        

       “그때 엄청나게 분개하시지 않았습니까?”

        

       “언니가 레오와 연결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그랬던 거야. 레오가 언니 말고 다른 사람이랑 사귀는 건 아무 상관 없어. 물론 좀 제대로 된 사람이어야겠지만.”

        

       “소피아는 제대로 된 사람이었다는 거네.”

        

       앨리스가 웃으며 물었다.

        

       “응? 그야 당연하지. 소피아가 저런 성격이었다면 반대했겠지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ㅋㅋㅋㅋ]

       [중2병 없는 소피아…]

       [상상이 안간다]

        

       나도 원래 제일 싫어하던 캐릭터가 소피아였으니까, 뭐.

        

       “마지막에는 우리와 함께 싸우기까지 했으니까요.”

        

       “상냥하고 좋은 사람이었는데요…….”

        

       샤를로트와 미아까지 소피아를 보면서 한마디씩 했다.

        

       하긴, 생각해보면 원작에서도 자기 실력을 믿고 그런 성격이 된 것이었으니, 아예 ‘선지자’한테 선택까지 받았으니 오죽할까.

        

       ……어째 이 게임의 ‘선지자’가 실비아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나는 일단은 조용히 게임을 계속해나갔다.

        

       *

        

       [내가 쓰러지더라도…… 그분은…….]

        

       소피아가 그런 말을 남기고 정신을 잃었다.

        

       이 게임이 캐릭터를 함부로 죽이는 시리즈가 아니라 다행이었다. 안 그랬으면 소피아가 사망하고 스토리의 비극성이 강조될 뻔했으니까.

        

       내가 아제르나에서 소피아를 만나본 적이 없었다면 오히려 속이 시원했겠지만, 아무래도 알고 지내던 사람을 죽이는 것은 가상의 세계더라도 조금 거부감이 있었다.

        

       함께 게임을 하던 애들도 점점 조용해졌다.

        

       그래픽은 여전히 크게 발전하지 않았지만, 음악만큼은 발군인 시리즈다. 스산하고 음울하면서도 서글픈 배경음악을 들으니 조금만 있으면 매우 중요한 장면이 나올 거라는 걸 느낀 모양이었다.

        

       그리고—

        

       [실비아!]

        

       게임 속의 앨리스가 외쳤다.

        

       [언니!?]

        

       그리고 클레어도.

        

       주인공 일행이 올려다보는 높은 단상 위에는 실비아가 있었다.

        

       하지만, 평소와는 복장이 판이하게 달랐다.

        

       소매가 길게 늘어지는, 보통 이런 게임에서 ‘종교’와 관련된 사람이 입을 법한 신성한 의복.

        

       물론 그 와중에도 아래는 치마 형태였고 옆트임이 양쪽으로 있어서 다리는 시원하게 드러나 보이긴 했지만, 어쨌든.

        

       [오셨군요.]

        

       [실비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어째서 여기에서, 그런 복장을—]

        

       레오가 나서며 그렇게 묻다가, 입을 다물었다.

        

       실비아의 머리 뒤에서 완성된 지보가 떠오르고 있었다.

        

       하나의 거대한 톱니바퀴.

        

       이내 그 톱니바퀴는 실비아의 머리 뒤에 떠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방사형으로 마치 야간 사진의 조명의 빛이 갈라지는 것처럼 길게 갈라지는 빛은, 그 자체로 종교화에서 보이는 광배와 같아 보였다.

        

       푸른 빛의 광배.

        

       신성하지만 동시에 불길해 보이는.

        

       “오.”

        

       나는 정말 오랜만에 감탄했다.

        

       “이번 편은 꽤 돈을 많이 쓴 모양입니다.”

        

       [모션에서 그렇게 욕을 먹어서ㅋㅋㅋㅋㅋ]

       [그런데 그래픽은 여전히……]

        

       이펙트가 향상된 것이나 모션이 조금은 개선되었다는 걸 게임을 하면서 느꼈었는데, 중요 컷신에서 모든 등장인물의 움직임에 모션캡처를 사용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캐릭터가 계단을 올라가면 계단 위의 투명한 언덕을 타고 미끄러져 올라가는 것처럼 보이는 시리즈다. 그런데 캐릭터가 계단을 하나하나 밟아 내려오는 모습을 보면 당연히 감탄사가 나올 수밖에.

        

       “이런 장면을 이전에도 좀 넣어줬다면 좋았겠습니다만.”

        

       [ㄹㅇㅋㅋ]

       [아 이게 한계라고 돈이 부족하다고]

       [눈곱만큼씩 성장하니까 다다다다다음편에선 더 좋아질듯]

        

       “그때까지 시리즈가 계속 나오는 겁니까?”

        

       물론 나는 대답하면서도 계속 나올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안 나오면 오히려 섭섭할 것 같은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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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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