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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09

     

    운명.

    그것은 세상을 이루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가장 거대하고도 완벽한 규칙.

    그것은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세상에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신에 의해 쓰임새가 정해져 이어져내린다는 절대적인 법칙이며, 또한 세계 그 자체가 지닌 수복력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느샌가, ‘자유’라는 이름하에 부정적인 의미로 변질되고 말았다.

    이는 어리석은 마법사와, 신을 버린 성녀가 손을 잡고 세상을 뒤집어버렸기 때문이겠지.

    허나 운명의 진정한 의미는 억압이 아닌 보호에 있다.

    본래 운명은 세상으로부터, 멸망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하기 위한 여신의 은총과도 같은 것.

    모든 생물에게 각각 역할과 무대를 안배해, 완벽하고도 낭비 없는 세계를 이루는 규율 그 자체다.

    하지만 그 멍청한 필멸의 존재들은 기껏해야 허상에 불과한 ‘자유’라는 사상을 쫓기 위해서 가장 완벽하고 지속적인 시스템 하나를 완전히 박살내고 만 것이다.

     

    그는 그 이야기가 특히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어리석은 짓의 피해 대부분은, 바로 자신이 받아들여야 했으니까.

    이후, 그는 어떤 것도 성공시킬 수 없게 되었다.

    그가 행하는 어떤 과업도, 노력도, 그를 둘러싼 운명들의 거부로 인해 모든 것이 허사가 된다.

    심지어, 생존하는 것 조차도 말이다.

    “또, 하나를 잃었군.”

    이걸로 벌써 두번째다.

    첫번째는 방심이 원인이라면, 두번째는?

    아마도, 기량의 차이가 확실하다고 봐야겠지.

    “…….”

    그는 천천히 눈을 떴다.

    곧 그의 머리를 짓누르는 듯 한 끔찍한 고통이 찾아오지만,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한 감각이기에 감흥은 없다.

    이런, 벌써 ‘운명’이 떨어져 가는 것인가?

    이건 예상보다 이르다.

    “계획의 완성을 조금 더 서둘러야겠군.”

    사람은 모두가 타인이 모르는 부분을 갖고 생활하고 있다.

    그런 것들 중에는 같이 살아보고 나서야 비로소 드러나는 부분도 있는 법이다.

    예를 들면, 매일 아침 다이튼은 일어나자마자 근성장을 위해 단백질 쉐이크를 만들어 먹는다던지, 루크는 의외로 쓰레기를 방에서 제때 치우지 않는다던지.

    -위이잉—.

    루크는 아침식사를 만들기 전, 다이튼이 여느때와 다름 없이 믹서기가 돌아가는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것을 바라보며 말한다.

    “또 그 요상한 음료인가? 내가 더 좋은 효능으로 만들어 줄 수 있다니까.”

    “됐거든? 난 이걸로 충분해.”

    근성장에 도움이 된다면야 뭐든 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눈 앞에서 벌레를 갈아넣는 걸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런 구역질나는 건 아무리 효능이 좋다고 해도 절대 입에 대고 싶지 않아.

    그렇게 생각하던 다이튼은 루크가 양 손에 가득 들고 나온 물체를 가리키며 묻는다.

    “그나저나, 방에서 뭘 그렇게 많이 갖고 내려오냐?”

    “버릴 것들.”

    루크가 방에서 갖고 나온 여기저기 찢어진 박스는 루크의 말대로, 딱 봐도 재사용이 불가능한 쓰레기들로 가득했다.

    휴지, 바스라져가는 낙엽, 털뭉치, 고장나고 분해된 마도기기였던 것으로 보이는 쓰레기더미들, 그리고 찢어진 또 다른 박스 조각들.

    문제라면, 그 양이 정말로 많았다는 거다.

    그 압도적인 양에 다이튼은 살짝 질린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넌 대체 방 안에 쓰레기를 얼마나 모아둔 거냐? 그렇게 넓지도 않으면서. 제때 좀 치우지.”

    “됐다, 불편하면 내가 알아서 치우니까. 그러니까 내 방에 들어와서 뭘 건드릴 생각일랑 하지도 마.”

    루크는 다이튼을 살짝 쏘아붙이듯 말했다.

    그에 다이튼은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리듯 대답한다.

    “그래, 알았다. 까칠하기는…”

    정말, 아무리 봐도 요새 사춘기라니까, 루크는.

    이제는 꼬치구이 하나에 눈물을 보이던 순수한 시절의 루크가 그립다.

    ‘일년도 안 지났는데 벌써 까마득하단 말이야.’

    그런데 무슨 상자 찢어진 게 저렇게 많지?

    짜증나는 일이라도 있었나?

    뭐, 그런 거라면 굳이 물어보고 싶은 생각은 없다.

    괜히 불똥이 튀면 귀찮을테니까.

    잠시후, 모아둔 쓰레기들을 집 밖에 버려두고 돌아온 루크는 방에 들어가지 않고 소파에 털썩 쓰러지듯 누우며 쿠션을 제 등에 댔다.

    이는 꼬리 때문에 소파에 눕는 자세가 불편하여 쿠션으로 꼬리가 옆으로 쉽게 빠져나올 수 있도록 등을 받치는 것이다.

    그러면서 루크는 쓰레기와 함께 가지고 내려왔던 노트패드를 꺼내들며 그것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디아나가 일어났는지 하품을 하며 걸어내려와서는 루크가 누워있는 소파 등받이 부분에 입을 붙이며 웅얼거리듯 말한다.

    “언니, 또 공부야?”

    “그래.”

    “언니는 맨날 공부만 해, 공부 언제 끝나?”

    “모른단다. 디아나, 공부엔 끝이없는 법이야.”

    “힝, 공부 재미 없어. 난 언니랑 놀고 싶은데… 오늘도 못 놀아?”

    루크는 최근 계속 공부만 하고 있어서 어제도 결국 파이리스하고만 놀았다.

    둘이서 하는 술래잡기도 재미있기는 하지만, 언니하고 노는 게 더 재밌는데.

    왜냐하면, 파이리스는 가끔 너무 반칙같이 잘 숨어서 싫다.

    언제는 거의 한시간동안 못 찾은 적도 있었으니까.

    “미안하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구나. 공부가 급해서. 노는 건 다음에 하자.”

    “후웅…”

    디아나는 울상을 지으며 슬프게 칭얼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그러나 루크의 시선은 여전히 함께 가져온 노트패드에 고정되어 있을 뿐이다.

    “헌데, 예르나는 이미 나갔나?”

    “뭐, 이제 복귀하기로 했으니까. 아마 어제 당직이라 아직 안 들어온 걸거야.”

    “그런가. 그랬군.”

    루크의 대답에 다이튼은 속으로 꽤 놀랐다.

    예르나가 어제 들어왔는지 안 들어왔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나보다.

    “야, 피곤하면 들어가서 누워. 불편하게 왜 소파에서 그래?”

    “기다리는 게 있어.”

    그러고보니, 루크가 입은 옷은 평소 자주 입는 외출복이었다.

    어제 걸 갈아입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아침에 갈아입은 건 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기다리는 게 있다는 걸 보면, 누가 오기로 했나?

    듣기로는 어제 친구네 집에서 꽤 재밌게 놀았다는 모양인데, 오늘은 또 어딜 나갈 일이 있나 보다.

    이번에도 친구인가?

    “누가 오기로 했나봐? 누군데?”

    “음, 그건-.”

    -띵동—.

    루크가 말을 끝내기 전에, 초인종이 울렸다.

    “뭐야, 이 시간에 누구지?”

    그 때, 루크의 표정이 눈에 띌 정도로 활짝 개이기 시작했다.

    “왔구만!”

    “뭐야, 네 손님이야?”

    “손님은 아닐세.”

    “응? 손님이 아니면 누군데?”

    “그건-.”

    그 순간, 그가 누른 초인종으로부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택배입니다—.

    “—택배라네.”

    “…그냥 처음부터 택배 기다리고 있다고 말을 하라고.”

    왜 자꾸 주어를 생략하는 건데, 이 자식.

    “음, 버릇 같은 거라네.”

    너무 오랜 세월을 주어를 숨긴 채 대화해 왔기 때문에 주어를 입 밖에 내기 전에 한번씩 브레이크가 걸린단 말이지, 자신이 딱히 그걸 원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다이튼은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거 진짜 악질적인거 알지?”

    주어가 있으면 한방에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을 괜히 빙빙 돌아가게 만들어서 시간을 낭비시킨단 말이다.

    종종 오해도 부르고!

    방금 전에도 택배가 온다는 걸 친구가 온다는 줄 알았지 않나?

    “음, 물론 현 시대상을 고려해본 관점에서는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고 있긴 하다만.”

    “그건 또 뭔 소리야.”

    루크는 어려운 말을 쓰면서 말을 또 빙빙 돌려대고 있었다.

    다이튼이 그것을 지적하자, 루크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면서 대꾸했다.

    “대충 알겠다는 뜻이라네. 그래도 조금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었을 것 아닌가?”

    그에 다이튼은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넌 그냥 성격이 문제인 것 같다…”

    그래, 옛날에는 이런 성격이 있을 줄 몰랐는데, 같이 살아보니까 이런 면도 있다.

    얘는 그냥 말을 똑바로 안 해.

    다이튼은 자신의 말에는 아랑곳 하지도 않고 손에서 펜을 현란하게 돌리며 현관으로 경쾌한 발걸음을 옮기는 루크의 모습을 보곤, 대체 뭘 샀길래 저렇게 기분이 좋아 보이는 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무슨 택밴데? 뭘 샀어?”

    “아, 그대가 필요하다고 했던 것일세.”

    루크의 대답에 다이튼은 루크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이며 지적하듯 말했다.

    “주어.”

    “아.”

    또 무심코 생략해버린 건가?

    정말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니까.

    루크는 멋쩍은 듯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했다.

    “그냥 냉장고일세.”

    “그래, 그렇게 한번에 말하면 얼마나 속 시원하고 좋-.”

    잠깐, 뭐라고?

    내가 잘못 들은 건가?

    “뭘 샀다고?”

    루크의 입에서 나온 물건이 순간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던 다이튼이 되묻자, 루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이번엔 제대로 말했는데? 냉장고.”

    “냉장고라고!?”

    지금 부모한테는 한마디 말도 안 하고, 10살 짜리가 냉장고를 샀다고?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건가?

    “허어-.”

    곧 다이튼은 이마를 짚었다.

    루크의 이런 면 역시, 같이 살아보지 않으면 볼 수 없는 부분이었다.

    “제정신이냐! 그런 건 미리미리 부모인 나랑 먼저 상의를 하고-.”

    그 순간, 루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다이튼의 말을 끊듯이 말했다.

    “내 돈인데 무슨 문제라도?”

    “아 그래?”

    다이튼의 표정이 급격하게 풀리기 시작했다.

    그럼 괜찮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어떻게보면 어린아이가 부모 몰래 백만원 단위의 결제를 한 상황이지만… 그게 아이 돈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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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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