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409

        

         

       한편, 밖에 있는 이들이 선택하였듯 안에 있는 이들도 선택해야만 했다.

         

       “후우…. 모두 은 엄폐용 임시 바리케이드 만들고, 창가와 문 쪽으로 총구 고정하고 경계 서도록.”

         

       그들이 선택한 것은 바로 경계.

         

       알 수 없는 이유로 고립된 그들은 밖으로 나가는 것을 포기하였고, 대신에 건물에 있는 각종 물건을 쌓아 바리케이드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총구를 겨눌 수 있는 자그마한 구멍이나 거치대를 만들어놓고, 혹시 적이 쳐들어온다면 바로 발포할 수 있도록 긴장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그러한 그들의 모습은 경찰이 아니라 군인같이 보였다.

         

       ‘미치겠군.’

         

       하지만 겉으로는 그럴싸해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그들의 속은 썩어 문드러지고 있었다.

         

       창문과 문이 잠기고, 의자를 들어 깨려고 해도 깨지지 않는다.

       이건 명백한 이상 현상이었다.

         

       거기에 더해 창문은 무슨 검은 물감이라도 끼얹은 것처럼 새까맸고, CCTV는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과할 정도의 노이즈가 껴 있었다. 통신장비는 이미 진즉에 망가졌고, 이제는 스마트폰조차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았다.

         

       먹통.

         

       와이파이는 물론이고 데이터를 사용하는 것조차 불가능.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비치해놓은 위성 전화 역시 무언가 방해전파라도 받는 듯 신호가 제대로 전달되고 있지 않기까지 했으니, 그야말로 그들은 말 그대로 ‘고립’된 것이나 다름이 없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은 무기.

         

       경찰이 왜 이런 것까지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하냐며 투덜대며 가지고 다녔던 소총과 수류탄, 기관총 등의 개인 화기들.

         

       지금 그들은 경찰이 아닌 군인이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그래야만 했다.

         

       ‘적인가? 하지만 적이라면 굳이 이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나? 그냥 날려버리면 그만인데….’

         

       게다가 그들을 더더욱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알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이다.

         

       지금 이 상황을 누가 만든 것인지.

       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독도를 점거하려고?

         

       그렇다면 진즉에 군사가 들이닥쳐서 그들을 포박했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저 멀리 바다에서 함대가 포를 쏘든 미사일을 갈기든 해서 건물째로 날렸어야 했다. 하다못해 군인이 그들을 둘러싸고 당장 투항하라고, 목숨은 보장해주겠다고 외치기라도 했어야 한단 말이다.

         

       그런데 지금 상황을 보라.

         

       문을 잠그고, 창문을 잠그고, 창문을 가리고, 통신을 끊고.

         

       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이란 말인가?

         

       어차피 섬 전체를 가리는 게 아닌 이상 위성에는 찍히게 되어있다.

       그리고 설령 섬 전체에 연막을 피운다고 할지라도 요새 만드는 위성의 힘이라면 그 연막을 뚫고 안을 살펴볼 수 있기까지 하다.

       그러니 섬 전체에 이런 이상 현상이 일어난다기보다는, 이 건물에만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으로 맞는데….

         

       상식이라….

         

       대체 이런 짓거리를 벌일만한, 상식적인 이유란 무엇이란 말인가?

         

       덫으로 제 발로 들어와 붙잡힌 쥐를 감상하는 듯한 악취미가 아니고서야 왜 이런 짓거리를 하느냐 이 말이다!

         

       박정준 경감은 생각했다.

         

       지금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

       지금 상황에서 그들이 무사하기 위한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서.

       이 깜깜한 어둠 속에서 최선의 길을 찾기 위해서.

         

       그렇게 그는 머리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뇌를 혹사했고,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똑똑똑.

         

       의문의 방문자가 건물의 문을 두드릴 때까지 말이다.

         

       똑똑똑똑.

         

       규칙적인 노크 소리.

       문을 두드리는 소리.

         

       그 소리를 들은 모든 이들은 흠칫 놀라면서 소총을 부여잡았다.

       아니, 그냥 부여잡는 게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방아쇠에 손을 가져다 댄 사람도 있었다.

       언제든 발포할 수 있도록 안전장치를 해제한 상태였기에, 잘못했다면 바로 총알이 문을 향해 날아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똑똑똑.

         

       그렇게 되었다면 저 노크 소리를 내는 사람은 벌집이 되었을 테지.

       문을 뚫고 지나간 총알이 저 사람의 몸에 틀어박혔을 테니까 말이다.

         

       똑똑똑.

         

       자신의 목숨이 경각에 달했음을 알기나 하는 것일까.

         

       건너편의 사람은 계속해서 노크했다.

         

       안에 사람이 있는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

       어서 반응하라고 재촉을 하듯 말이다.

         

       “누구십니까-!”

         

       박정준 경감은 노크 소리에 목소리를 높여 대꾸했다.

       목이 잠겨있는 것인지 살짝 삑사리가 나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름 위엄있는 느낌의 목소리였다.

         

       “끄으…. 도와주십시오.”

         

       그리고 그 위엄 있는 목소리에 대응하는 것은 힘없는 목소리.

         

       문 건너편에서는 앓는 소리를 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성의 것으로 추정되는 목소리에서는 도저히 숨길 수 없는 고통과 신음이 묻어나왔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데, 도움이 필요합니다. 도와주십시오…. 춥고 배고프고, 몸이 아프고….”

         

       목소리의 발음은 특이했다.

       고통을 이기지 못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어디 다치기라도 한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외국인이 한국어를 말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특유의 느낌일까?

         

       “…자세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자세…하아. 일단 들어가게 해주십시오. 설명, 해드리겠습니다.”

         

       “아니, 설명부터 해주십시오!”

         

       “아프고 힘든데…. 알겠습니다….”

         

       문밖의 존재는 박 경감의 재촉에 천천히 입을 열어 상황을 설명했다.

         

       배에 문제가 생겼고, 그 때문에 섬에 배가 좌초가 되었다는 것.

       그 과정에서 배에 움직일 수 없는 사람들이 잔뜩 생겼으며,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

       자신은 한국말을 할 수 있어서 아프고 배고픈데도 몸을 이끌고 여기까지 왔다는 것.

         

       “…흠.”

         

       박 경감은 목소리를 듣고 잠시 고민했다.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경찰 생활하면서 거짓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대는 인간을 수도 없이 보았다.

       그런 인간들을 밥 먹듯 상대했으니 거짓말을 구분하는 것 정도야 어려운 것도 없었다.

         

       목소리만 들을 수 있었으니 확실하지는 않으나….

       문밖의 존재는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문을 열어드리겠습니다.”

         

       “드, 들여보내 주시는 겁니까?”

         

       “예.”

         

       “들어가도 된다는 거지요?”

         

       “예.”

         

       “들어가겠습니다!”

         

       “…예?”

         

       그렇기에 박 경감은 그들을 안으로 들이고,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마음을 먹었는데….

         

       뭔가 이상하다.

         

       저 문밖의 존재가 하는 말이…조금 이상하다.

         

       뭐라고 해야 하나….

         

       묘하게 초점이 어긋난 듯한….

         

       …뭔가가 잘못된 듯한 느낌이다.

         

       ‘들어가도 된다…? 들어가겠다고…?’

         

       이상하다.

         

       아무리 외국인이 하는 말이라고는 하지만, 묘한 느낌이 든다.

         

       경비대가 문을 열어줘서 들어가는 게 아니라, 경비대가 허락해줬으니 자신들이 멋대로 들어가겠다는 듯한 말투이지 않은가.

         

       뭔가 묘한 느낌이었다.

         

       “…아니, 잠깐만. 기다려보세요. 문을 열어드릴 테니….”

         

       박 경감은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에 황급히 입을 열었다.

         

       지금에라도 뭔가 말을 덧붙이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 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덜컹.

       덜컹덜컹.

       덜컹덜컹 덜컹덜컹.

         

       이미 늦었다.

         

       드르륵.

       콰앙!

         

       박 경감이 다시 입을 열기도 전에 창문이 미친 듯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단단히 잠겨져 있던 것이 거짓말이라도 되는 것처럼 창문이 세차게 열리며 새까만 밖의 풍경을 드러내었다.

         

       터업.

         

       그리고 그렇게 열린 창문으로 손이 튀어나왔다.

         

       터업.

         

       튀어나온 손은 창문 유리를 붙잡았고, 창틀을 붙잡았고, 벽을 붙잡았고, 자신의 앞에 무언가를 잡으려는 듯 허공을 휘적거렸다. 그리고 그 팔은 계속해서 늘어나며 빼곡하게 공간을 점유했다.

         

       수십, 수백의 팔이 열린 창문으로 기어들어 온다.

       좁디좁은 창문이 유일한 출구라는 듯 뻗어오고, 이것저것 붙잡은 채 들어오려고 애를 쓴다.

         

       사람의 머리도 몸통도 없이, 손만이 가득 공간을 메운 채 그렇게 휘적거린다.

         

       그 모습은 마치…사람의 팔로 이루어진 말미잘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이었다.

         

       “씨발! 귀신이다!”

         

       그제야 경찰들은 자신을 건물에 가둔 것의 정체를 깨달았다.

         

       귀신.

         

       사람에게 해를 가하고, 사람을 홀리고, 사람을 괴롭히기를 좋아하는 것들.

         

       최전방에 가면 질리도록 볼 수 있는 괴물.

         

       귀신.

         

       “쏴!”

         

       그들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귀신을 향해 총기를 난사했다.

       들고 있는 소총이 마치 분무기라도 되는 것처럼 총알을 아낌없이 퍼부었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수류탄까지 던지려다가 이곳에 좁아터진 건물이라는 것을 깨닫고 흠칫 놀라며 바닥에 내려놓기까지 했다.

         

       [ 아아악! 팔, 팔. 내의 팔. 아이고야 내 팔! ]

         

       [ 끄아아 불로 지지는 것 같티 아프네! 아고야! ]

         

       그렇게 뿌려진 총알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려는 귀신의 팔을 찢고 부쉈다.

       귀신은 썩은 피를 흩뿌리며 팔이 조각나서 찢겼고, 그렇게 찢긴 팔은 마치 허상이었다는 것처럼 그대로 허공에 녹아들었다. 거기에 다친 단면에서는 썩은 피를 줄줄 흘려대었고, 고통 때문에 괴롭다는 듯 이리저리 꿈틀대기까지 했다.

         

       징그러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징그러운 모습이 오히려 경찰들에게는 희망으로 다가왔다.

         

       총알을 맞고 괴로워한다는 것은 곧, 물리적인 타격이 먹힌다는 것.

         

       “악귀가 되려고 하는 귀신이다! 물리력이 먹히니까 총알 아끼지 말고 계속 쏴!”

         

       경찰들은 희망을 품었다.

         

       자신이 들고 있는 총으로 저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희망.

       설령 들어오더라도 총알 세례를 퍼부어서 벌집을 만들어서 없애버릴 수 있다는 희망.

         

       경찰들은 그렇게 소총을 든 채 희망에 부풀었다.

         

       끼이이익.

         

       그리고 그 희망을 꺼트리는 것은 간과하고 있던 위협이라.

         

       그들이 귀신에게 집중하느라 잊고 있었던 정문이 조용히 열렸다.

         

       그리고 작게 만들어진 틈새 사이로 금속으로 만들어진 구체 여럿이 데굴데굴 굴러들어왔다.

         

       치이이이익-!

         

       건물 안으로 들어온 구체는 노란색 연기를 뿜어대며 순식간에 건물 안을 연기로 뒤덮었다.

         

       “으아아악!”

         

       “모두, 입 막아!”

         

       “방독면! 방독면!”

         

       “정신이 몽롱…해…진…끅.”

         

       그렇게 그들의 희망은 꺼졌다.

         

       이제 그들 역시도 선택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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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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