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409

    <409 – 흔적을 뒤따라>

     

    생산학부 선배는 후회했다.

     

    ‘어린애한테 너무 심했나?’

     

    아니, 품어 마땅한 경계심이었다.

    애초에 저런 어린애가 휴학생전용구역에 배지도 없이 나타난 것부터 수상하지 않았던가.

    그렇지만 창밖에 놓았던 보급품에는 손도 대지 않고 떠난 것을 깨닫고 나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혹시 내가 오해를 한 건 아닐까?’

     

    정말로 순수하게 친한 언니가 걱정되어서 위험을 무릅쓰고 찾아온 1학년일지도 모르잖아.

    그런 무른 마음을 품는 그녀에게 같은 구역에 머무르던 동업자가 혀를 차며 충고했다.

     

    “정신 차려. 상대가 애라고 너무 이성을 잃었어.”

    “넌 그 애가 걱정되지도 않아? 아무리 포인트에 눈이 멀었다고 해도 인간다운 면모까지 잃을 필요는 없잖아.”

    “누군 인정이 없는 줄 알아? 만일 정식으로 한 학년을 끝마치고 출입하는 휴학생이라면 포인트대출 받는 법이라도 알려주면서 2학년에 진학하게 도왔어.”

    “근데 쟤한텐 왜 그래?”

    “그 애가 어떤 상황에 나타났는지도 잊었어? 지금은 학기 도중이야. 심지어 우리가 경험한 가장 심각한 재해에 준하는 엄청난 영역에 공기가 요동치는 와중에 요동치는 대기의 저편에서부터 나타났다고.”

     

    동업자의 말을 듣고 나서야 그녀는 자신이 깨닫지 못했던 사실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재해를 뚫고 다닐 정도의 실력자?”

    “그걸 넘어서 출입한 장본인이 재해를 일으킨 당사자일지도 모르지.”

    “설마. 아무리 그래도 너무 어려.”

    “눈에 보인 나이가 진짜라는 법은 있어?”

    “난… 그 애를 눈앞에 두고 대화를 나눴다고.”

    “눈앞에 두고도 깜빡 속을 정도로 엄청난 실력자일지도 모르지.”

     

    그건 정말… 상상만으로도 무서운 일이 아닌가.

    단독으로 재해를 일으킬 수 있는 실력자가 휴학생전용구역에 나타나다니.

    가뜩이나 지옥에 준하는 이곳에 새로운 마력재해가 더해질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애써 지탱해왔던 마음이 꺾이는 것이 느껴졌다.

    여긴 너무 위험하다.

    재능 없는 자들이 미련과 오기만을 품고 버텨낼 수 없을 정도로.

     

    “진급… 포기할까…?”

    “알아서해. 난 1년만 더 버텨볼 거니까.”

     

    동업자가 말은 그렇게 해도 무거운 표정으로 돌아서는 모습에서 그녀는 안전구역의 동료 한 명이 사라질 것임을 직감했다.

    마력재해로 변이를 일으키는 가시흙더미 위를 안전하게 오갈 수 있는 신발장인이 사라지다니.

    내달부터는 이곳에서 살아남기가 더 어려워지겠네.

    씁쓸한 마음을 꾹 접어 누르며 창밖에 내놓았던 보급품을 회수하려던 그녀의 손이 허공을 스쳤다.

     

    “어? 분명 여기에 있었는데.”

     

    감쪽같이 사라진 보급품.

    발자국 하나 남지 않은 지면.

    귀신이 곡할 노릇에 오싹함을 느끼는 그때, 안개 저편에서 새로운 출입자가 몇몇 더 나타났다.

    머리에서 잔뜩 피를 흘리면서도 날카로운 기세를 잃지 않는 동방검객.

    분한 기색을 감추지 않으며 거친 걸음을 내딛는 전신갑주를 입은 흑기사.

    하나같이 배지가 없는 학생들의 등장에 그녀는 아주 무서운 상상을 떠올렸다.

     

    ‘1학년이 그 강력한 재해급 마나파장을 뚫고 대거 나타날 리가 없잖아. 이거 배지 떼고 신입생 행세하는 까마득한 위에 기수 선배들 아니야?’

     

    걱정이 차올랐던 자리에는 어느덧 공포심만이 남았다.

    동업자가 떠날 때 같이 여길 뜨자.

    오늘, 휴학생 두 명이 품던 진급의 꿈이 접혔다.

     

     

    * * *

     

     

    즈앙은 휴학생전용구역에서 대놓고 놓인 보급물자를 ‘현지조달’했다.

    관찰안으로 살펴봐도 벨로카시오의 계약사기 같은 기미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배들이 마음씨가 참 좋네.’

     

    덕분에 나침판이 가리키는 곳에 오크노디가 향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저긴… 마력재해?’

     

    키는 아카데미에서 제일 작은 주제에 그 작은 발걸음을 쫓기가 정말 힘들다.

    상여자 헤스티아보다도 터프해서 기가 질린다.

     

    ‘바보 아니야? 남들은 기를 써서라도 피하려는 마력재해를 제 발로 찾아가다니.’

     

    강한 의지를 품은 마법이 거듭 발동된 공간에는 의지가 그 땅과 공간에 각인되기 마련이다.

    그런 의지가 여럿 존재하고 서로 충돌하거든 해당 지역에는 주기적으로, 혹은 영구적으로 마력재해가 발생하고는 한다.

     

    즈앙은 대표적인 마력재해사례를 알고 있다.

    대요녀가 살던 천령산맥은 죽은 몬스터들의 혼령이 떠돌며 온갖 사건을 일으키는 <귀령곡>이라는 이름의 마력재해가 존재한다.

    산에서 길을 잃고 헤매며 실족사를 유발하는 생명체에게 적대적인 마력재해다.

    대해적이 은둔한 해적들의 쉼터 인근에는 인어들과 노예마법사들의 의지가 충돌하며 <악몽의 노래>라는 이름의 마력재해가 탄생했다.

    노래에 홀려 배를 몰면 반드시 배가 암초에 충돌하여 침몰하게 되는 귀머거리 조타수의 영입이 필수적인 마력재해다.

     

    ‘저긴 또 얼마나 위험할까?’

     

    뚫어져라 노려보다가 브론즈 교수의 강의에서 습득한 <안목>을 발휘했다.

     

    ━━━

    [멈추지 않는 모래바람]

    반경 1.5km 내에 한정된 국소적 이상현상.

    폐부를 파고드는 미세먼지에 의해 급속도로 심폐기능이 악화되며 사망할 위험이 높다.

    ━━━

     

    호흡을 멈추고 주파해야 한다.

    당연히 마나연공법을 익히지 못한 범인의 몸으로는 1분에서 2분 남짓은 버텨도 끝내 호흡이 다해 숨을 쉬고 미세먼지에 당할 장소다.

    마나연공법으로 대량의 산소를 주변공간에 포집한 뒤, 미세먼지와 격리된 자신만의 영역 내에서 호흡을 반복하는 수밖에 없다.

     

    ‘휴학생전용구역에 어째서 재학생이 출입해서는 안 되는지 이제야 알겠네.’

     

    이런 위험천만한 곳에 하급반 뜨내기가 어슬렁거리다가 휩쓸렸다가는 객사하기 딱 좋다.

     

    ‘오크노디나 내가 뜨내기는 아니지.’

     

    숨쉬듯이 가볍게 펼쳐내는 마나연공법이 주변의 공기를 끌어당긴다.

    암살자에게는 그리 낯선 일이 아니다.

    고지에서 뛰어내리며 착지할 때, 창문을 뚫고 뛰어들 때, 적의 눈앞에서 소리 없이 사라질 때.

    공기를 빼앗으면 소리가 전달되는 매개체를 박탈하여 은밀성을 확보할 수 있으니까.

    혼자만이 숨을 쉴 수 있는 영역이란 암살자에게 고독만큼 친숙하다.

     

    ‘너도 그렇겠지 오크노디?’

     

     

    * * *

     

     

    오크노디를 쫓아 즈앙이 마나재해에 뛰어들고 얼마 뒤, 거대한 기운이 닫혀가는 경계를 강제로 확장시키며 휴학생전용구역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화들짝 놀라 안전구역의 창문 안에서 밖을 내다보던 휴학생들이 침입자의 정체를 파악하고는 아주 대경실색을 하였다.

     

    “전부 배지가 없어.”

    “1학년이 저렇게나 많이 휴학생전용구역에 들어왔다고? 뭐야 대체. 견학이라도 하는 거야?”

    “바보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 견학은 덜떨어진 하급반들한테나 필요하지. 저것들이 어딜 봐서 그런 하급반으로 보여?”

     

    배지가 없는 1학년이지만 실력은 3학년이나 다름없게 느껴지는 학생들.

    그 면면들을 보며 휴학생들은 충격적인 가설에 도달하였다.

     

    “저거, 정말로 1학년이 맞아?”

    “무슨 뜻이야?”

    “학년을 구분하는 배지. 그걸 떼어내어서 학년을 숨기지 말라는 법이 있어?”

     

    그런 법은 없다.

    배지는 후배들에게 귀찮게 까불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에서 다는 것.

    경고를 할 마음이 없다면, 역으로 속일 마음이 가득하다면 의도적으로 배지를 달지 않을 수도 있다.

     

    ‘실력을 숨긴 4학년들이 들이닥쳤나? 교수도 입구에서 경계를 열고 있고. 설마 이거, 단체로 졸업과제를 하러 쳐들어온 건가!?’

     

    휴학생들을 공포에 떨게 만든 당사자들은 물론 전원 1학년이었다.

     

    “오크노디라는 꼬맹이는 너희와 같은 기수의 학생이다. 동기의 유대를 발휘해서 어떻게든 찾아내라. 레드마운틴 교수의 호신부가 지속되는 한, 마력재해의 초입에서는 따라잡을 수 있을 거다.”

    “교수님은 함께 들어가지 않으십니까?”

    “육지에서 내 마나제어술은 그리 높지 않다. 힘으로 경계에 구멍을 뚫고 버틸 수는 있어도 내 거대한 마나에 마력재해가 요동치는 것을 막지는 못해. 추적의 흔적을 남기려면 너희 1학년들이 들어가서 직접 오크노디를 건져내야 한다.”

     

    늘어난 학생들 사이에 정작 있어야 할 오크노디가 없어졌음을 깨달은 엘 드라코 교수는 즉시 마력흔을 추적하였고 오크노디가 휴학생전용구역으로 향했음을 간파했다.

    마력재해가 소용돌이치는 저곳에서 오크노디의 흔적을 추적하기란 쉽지 않다.

    애초에 그는 해적.

    육지에서의 추적은 약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1학년들을 대거 동원했다.

    동원당한 당사자들도 부름을 거부하지 않았다.

     

    “오크노디는 우리가 해안가에서 도비와 싸우던 것도 알고 있었을까?”

    “알든 모르든 크라켄이 날뛴 덕분에 도비 그 녀석의 마법이 강제로 취소되었다. 이번에도 우리는 쥐방울 녀석의 도움을 받았다고.”

    “…그렇지. 그런 오크노디가 위험한 곳에 발을 들였다면 우리도 목숨을 걸고 건져내야해.”

     

    애초에 오크노디를 위해서 도비를 혼쭐내려던 이들이 오크노디의 실종을 외면할 리가 없다.

    다행히도 마력재해가 들끓는 혼란스러운 지역에서도 추적에 필요한 흔적이 발견되었다.

     

    “찾았어. 여기에 오크노디의 것으로 추정되는 작은 사이즈의 발자국이 있어.”

     

    북부대공녀 아이린이 가리킨 자국을 본 모브가 고개를 저었다.

     

    “틀렸습니다. 오크노디의 발자국은 그보다 10mm는 더 작습니다.”

    “깡통 녀석의 말이 맞다. 여기서는 오크노디의 체취가 나지 않는군.”

     

    모브의 말에 맞장구를 치는 싱을 보며 아이린은 충격을 받았다.

    저 녀석들, 오크노디를 정말로 잘 아는구나.

    같은 이유로 지젤과 이사벨, 손오천은 두 사람을 대단히 수상쩍게 여겼다.

    저 녀석들, 오크노디를 왜 저렇게 잘 알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수상할 정도로 수상한 남학생들

    오늘도 다음편이 있습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