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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1

       

       

       

       

       아아, 여기까지 오기 위해 얼마나 숱한 고생을 겪었던가. 

       

       아르를 데리고 온천에 오겠다는 일념 하나로 몇 날 며칠을 덜컹이는 마차 안에서 보냈던가. 

       

       ‘진짜 현대의 대중교통이 얼마나 그립던지.’

       

       아무리 버스, 메트로, 워크의 BMW라고 장난식으로 묶여 불린다지만, 그리고 실제로 출퇴근길 지옥철에 낑겨 타 보면 숨이 턱턱 막힌다고 하지만.

       

       ‘그래도 이 판타지 세계의 마차보다는 백 배 천 배 나아.’

       

       사람들이 자주 이용하는 닦인 길이라고는 하지만 그건 이곳 기준으로 닦인 길일 뿐.

       

       나는 현대의 교통 편의를 증진시킨 일등 공신이 바로 ‘포장 도로’라는 사실을 이곳에 빙의하고 나서야 뼈저리게 깨달았다. 

       

       ‘튼튼한 시골 청년 몸에, 마차 방석까지 있어서 비교적 편하게 온 건 맞지만…. 진짜 언제 덜컹거릴지 모르는 상태에서 간헐적으로 덜컹이는 게 가장 피로감을 유발한단 말이지.’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마지막 날쯤 되니 더 이상 뱃멀미를 하지 않게 된 뱃사람처럼 마차와 물아일체가 되어 흔들림을 크게 신경쓰지 않게 되는 경지에 이르기는 했으나, 그래도 몸에 피로가 누적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크으으으….”

       “쀼우우….”

       “크으으으으으….”

       “삐유우우우….”

       

       그간 쌓인 피로를 직접 입으로 뱉어내기라도 하듯, 나와 아르는 숨을 내쉴 때마다 한 맺힌 감탄사를 내뱉었다. 

       

       “아르야, 씨워어언해?”

       “쀼우!”

       

       아르는 더없이 행복한 듯, 뺨을 붉게 물들인 채로 나를 올려다 보며 환하게 웃었다. 

       

       ‘와….’

       

       아르의 그 환한 웃음을 보자, 나는 남았던 피로가 모두 녹아 내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보람차다.’

       

       왜 흔히 아버지들이 그렇게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하고 나서도 퇴근하고 웃으며 마중 나오는 자식만 보면 피로가 싹 사라진다고들 하는지 알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따로 살게 된 지는 좀 됐지만, 나 역시 아주 어렸을 때에는 아버지가 퇴근하실 때 현관에 마중을 나가서 안기곤 했었는데….

       

       ‘정작 아버지는 드시지도 않는 빵이나 과자, 아이스크림 같은 걸 사 오시고 내가 먹는 걸 바라보기만 하셨었지.’

       

       그땐 이 맛있는 걸 왜 안 드시지 하는 생각뿐이었는데, 그 마음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았다. 

       

       ‘그냥 저렇게 좋아하는 걸 보기만 해도 모든 걸 다 보상 받는 느낌이야.’

       

       물 아래에서 발을 동동동 구르며 나에게 다가와 쪼그만 몸을 기댄 아르는 연신 뀨우 소리를 냈다.

       

       “뀨우우…!”

       “응, 안아 줄까?”

       “뀨!”

       

       아르가 두 팔을 젤리가 보이게 쭈우욱 뻗자, 나는 입가에 함박웃음을 머금으며 아르를 안아 품에 데려왔다. 

       

       “뀨우.”

       

       나는 아르가 물 위에 좀 더 쉽게 떠 있을 수 있도록, 내 배 쪽에 머리를 기대게 하고 팔로는 느슨한 팔짱을 껴 아르가 발을 내 팔에 편히 올려놓을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좋지? 목욕탕에서는 이렇게 조금만 있어도 금방 물이 미지근해지는데, 여기는 계속 이렇게 후끈후끈해서 편하게 있을 수 있어.”

       “쀼우우!”

       

       아르는 행복한 얼굴로 내게 몸을 기대고 팔을 늘어뜨려 물 위에 둥둥 뜨게 한 상태로 눈을 지그시 감고 뀨 소리를 냈다. 

       

       “아이구. 귀엽네, 귀여워.”

       “저 복에 겨운 표정 보게. 허허허. 어린것이 벌써부터 뜨듯한 물을 좋아하는구먼.”

       

       느긋하게 씻고 수건을 머리에 두른 채 들어온 할아버지들은 온천에 들어오면서 우리를 보며 한마디씩 했다. 

       

       “허허, 그런데 내 알기로 지난번에 사역마 하나가 사고를 쳐서 사장이 잔뜩 화났다고 들었는데…. 그때 금지되지 않았었는감?”

       “그게, 저희는 어쩌다 보니 사장님한테 직접 허락을 받아서 들어올 수 있었어요.”

       “호오, 그렇구먼. 내 여기 토박이인데, 젊을 적에 다른 곳도 몇 번 가 봤지만 참말 여기만 한 온천이 읎어. 온 김에 잘 놀다 가게나, 젊은이. 아그도 잘 놀다 가려무나.”

       “감사합니다.”

       “뀨우!”

       

       할아버지뿐 아니라 중년쯤 되는 사내들도 지나가며 아르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야, 저 귀여운 건 뭐야?”

       “처음엔 인형을 데려온 줄 알았더니 인형이 뀨 소릴 내고 있어.”

       “말 걸어 볼까…?”

       “예끼, 요즘 젊은이들 그런 거 예민한 거 몰라? 쉬러 왔는데 그냥 조용히 보고 지나가기나 하자고.”

       “보기만 해도 귀엽구만. 단순 여행객인가? 자주 오는 손님이면 나도 또 올 텐데….”

       

       보는 사람마다 말을 걸었으면 그건 그것대로 조금 곤란할 수 있었는데, 다행히 매너 있는 손님들은 지나가면서 힐끔힐끔 볼 뿐 휴식을 취하러 온 우리를 방해하지 않으려 해 주었다. 

       

       ‘근데 그래도 입구 쪽은 너무 어그로가 끌리는 것 같긴 하네. 좀 구석으로 옮겨야겠다.’

       

       온천에 들어왔다는 기쁨 탓에 입구와 가까운 쪽에 대뜸 들어와 자리를 잡고 있으니,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시선이 끌리는 건 당연한 일.

       

       “아르야, 쩌어기 안쪽으로 들어갈까?”

       “쀼우? 쀼!”

       

       따끈한 물에 자신의 온몸을 맡기고 무아지경에 빠져 있던 아르가 내 목소리에 곧바로 귀를 쫑긋 세우며 눈을 떴다. 

       

       “저기가 경치도 좋고 조용해서 좋을 것 같은데, 어때?”

       “쀼웃!”

       

       아르는 물 속에서 에너지 충전이라도 한 것처럼 금세 일어나, 내가 가리킨 곳을 향해 앞으로 팔을 쭈욱 뻗고 발로 물장구를 쳐 나아가기 시작했다. 

       

       물론 속도는 내가 걸어가는 속도보다도 느리긴 했지만, 저 작고 통통한 발을 물 속에서 열심히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절로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우리 아르 헤엄도 잘 치네?”

       

       나는 숨길 수 없는 미소를 입에 걸고, 아르와 눈높이를 맞추며 아르의 하찮은 헤엄 속도에 맞추어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읏차. 이러면 좀 더 편하지?”

       

       나는 물 속에 손을 넣어 아르의 배를 손바닥으로 가볍게 받쳐 주었다. 

       

       “쀼우!”

       

       아르의 말랑한 배를 받친 상태에서 살짝씩 어시스트를 해 가며 앞으로 나아가자, 아르는 점점 속도가 빨라지는 게 재미있는지 더 열심히 발로 물장구를 쳤다. 

       

       “자, 조금만 더!”

       “쀼웃!”

       

       아르는 내 응원에 점점 비장한 표정으로, 내가 말했던 목표 지점의 돌 하나를 향해 나아갔다. 

       

       “쀼우우!”

       

       귀여운 속도와는 별개로 표정에 깃든 기세만큼은 거의 선수권 대회에 출전한 수영 선수를 방불케 했다.

       

       ‘몰입하는 것도 귀여워 죽겠네.’

       

       뭐든지 하나에 꽂히면 열심히 할 때라 그런지 아르는 최선을 다해 목표 지점까지 나아갔고. 

       

       “쀼!”

       

       마지막 순간, 아르는 앞발을 뻗어 뽀짝한 젤리를 돌에 챡, 하고 댔다. 

       

       아르가 앞발을 떼자, 돌에는 아르의 발바닥 모양으로 마치 스탬프가 찍힌 것처럼 물 자국이 찍혀 있었다.

       

       “아이구, 잘했네. 우리 아르.”

       “뀨웃!”

       

       나는 뿌듯한 표정으로 완주 후 내게 안긴 아르를 쓰다듬으며 칭찬해 주었다. 

       

       “뀨우우.”

       

       나름 아르에게는 긴 거리를 수영으로 횡단한 후 조금 지친 듯, 아르는 따끈한 물에 몸을 담가 둥둥 뜬 채 추욱 풀어졌다. 

       

       나는 아르가 멀리 떠내려가지 않게만 살짝 잡아 둔 채, 상반신을 물 밖에 내놓고 하반신만을 담근 채 노천탕 특유의 시원한 공기를 한껏 들이마셨다. 

       

       ‘캬, 역시 노천탕은 이 맛이지.’

       

       평범한 실내 목욕탕은 반쯤 밀폐된 공간이나 마찬가지라, 뜨거운 물에 오래 몸을 담그고 있으면 답답한 기분도 들고 숨을 쉴 때도 시원한 느낌이 없다. 

       

       ‘실내라 습한 공기가 잘 빠져나가질 못하니까.’

       

       하지만 이렇게 하늘이 뻥 뚫린 노천탕은 습한 공기가 하늘로 즉시 날아가기 때문에 아래로는 내가 몸을 담근 만큼 따뜻하고, 위로는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휴식을 오랫동안 즐길 수가 있다. 

       

       마치 이불을 덮고 에어컨을 켠 것 같은 행복감이라고 할까.

       아니, 지금의 행복감은 그것의 두 배, 세 배는 되는 것 같다.

       

       “뀨우우.”

       

       아르 역시 배를 위쪽으로 까 뒤집고 물 위에 누워 둥둥 떠 있으면서, 몸의 앞쪽 절반은 시원한 공기를 맞고 아래쪽은 따뜻한 물로 데워지는 천국을 맛보고 있었다. 

       

       “아, 좋다….”

       

       마침 돌로 만들어 둔 층계도, 여기 걸터 앉아 있으면 하반신이 적당히 잠기고 상반신은 뒤로 기댈 수 있도록 설계가 되어 있었다. 

       

       ‘피로가 싹 풀린다….’

       

       그렇게 돌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있는데, 문득 뒤쪽에서 사람의 말소리가 들려 왔다. 

       

       ‘…뒤쪽?’

       

       아르와 함께 도착한 이곳은 사실상 가장 구석이니, 뒤쪽에서 말소리가 들린다는 건….

       

       “너도 봤니? 아까 입장 줄 서려는데 앞에서 뭐라뭐라 하다가 사장님이랑 아는 사이인지 입장하더라?”

       “어, 난 못 봤어.”

       “뭔데, 뭔데?”

       “아아, 아까 어떤 사람이 사역마를 데려와서 입장하려고 하더라고.”

       

       …뜨끔.

       

       역시나 내 생각대로, 뒤쪽의 나무 울타리 건너편에서는 방금 입장한 여자들 몇 명이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심지어 그 주제가, 아무래도 우리 아르인 것 같고.

       

       “사역마? 으, 그건 좀 무서운데. 이따가 로비 나갔는데 있는 거 아니야…?”

       “후후, 그게 말이지. 그 사역마 내가 봤는데, 무섭긴커녕 귀여워 죽겠더라.”

       “…사역마가 귀엽다고?”

       “응, 직접 보면 너도 내 말 바로 이해할 걸?”

       “네 표정 보니까 궁금하긴 하네. 얼마나 귀여우면 벌써 입꼬리가 귀에 걸리려고 하냐?”

       “히히, 이따 로비에서 꼭 봤음 좋겠다.”

       “어떻게 생겼는데 그래?”

       “종은 잘 모르겠어. 와이번 같이 생기긴 했는데…. 처음에 입장 불가라고 하니까 막 계약자 품에 안겨서 펑펑 울더라고. 걔한텐 미안하지만 우는 것도 귀여웠어….”

       “아, 네가 자꾸 그러니까 나도 보고 싶은데?”

       “나도!”

       

       일단 아르 보고 귀엽다고 해 주는 건 고맙긴 한데….

       

       ‘이거 이렇게 계속 엿들어도 되는 건가.’

       

       물론 나는 잘못한 게 아무것도 없다. 

       그저 다른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아르와 온천욕을 즐기고 싶어 구석으로 왔을 뿐. 

       

       나무 울타리 너머로 말소리가 들려 오는 걸 어쩌겠는가. 

       

       ‘그렇다고 자리를 옮기기에는 지금 상태가 너무나도 안락해….’

       

       이렇게 편한 자세로 눈을 감고 있으려니 정말 천국이 따로 없다. 

       

       원래 온천에서는 너무 오래 몸을 담그고 있는 걸 권장하지는 않지만….

       

       “조오금만 더 있다가 나가야겠어…. 너도 그게 좋지, 아르야?”

       

       나지막이 뱉은 말에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나는 슬며시 눈을 떴다. 

       

       “…아르야?”

       

       그러고 보니 어느새 손끝에 닿는 범위에 있던 아르의 몸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제야 눈을 번쩍 뜬 나는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발자국.’

       

       옆의 돌을 보니 아르가 돌 층계를 밟고 올라간 쬐그만 물 발자국이 보였다. 

       

       ‘얼마 되지 않았어.’

       

       물이 마르기도 전.

       

       나는 바로 물에서 일어나 발자국을 쫓아갔다. 

       

       하지만, 나는 곧 굳이 쫓아갈 필요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 발자국은 바로 뒤의 나무 울타리 밑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그 울타리에는 딱 아르가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맙소사.’

       

       아까부터 처음 보는 건 다 해 보고 싶고 처음 보는 곳은 다 가 보고 싶던, 호기심 천국 속 아르를 봤을 때부터 조심했어야 했다.

       

       더 늦기 전에 내가 아르를 부르려는 순간.

       

       “꺄아! 얘야, 얘! 내가 말했던 사역마!”

       “뭐야, 언제 들어온 거야?”

       “귀여워어어어!”

       “얘야, 이리 온!”

       “쀼, 쀼우우?!”

       

       갑작스런 환영에 당황한 아르의 쀼우 소리가 건너편에서 들려 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드디어 뽀짝말랑한 아르가 표지로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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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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