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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1

       “아실. 데카르트 공녀가 너와 혼인하고 싶다는구나.”

         

       철렁. 데카르트 공녀라는 말에 순간 아실의 가슴이 확 내려앉았다.

         

       “…갑자기 제게 말입니까? 접점도 없었습니다만.”

       “그래. 데카르트 소 공작이 직접 보낸 터라 거절은 힘들 것 같구나.”

         

       아실은 말없이 프라이덴 후작이 건네준 서신을 들여다봤다. 내용은 이러했다.

         

       「아실 프라이덴과 데카르트 공녀의 약혼을 진행하고 싶소. 이 혼인을 받아들이면 프라이덴 후작가와의 교류를 더욱더 활성화할 것이고……」

         

       조건 대부분이 프라이덴 후작가에 이득이 되는 것들뿐이었다. 거절하면 바보인 수준. 가문의 이득이라면 무엇이든지 하는 아실에게 있어서 거절할 필요가 없는 제안이었다.

         

       “받아들이겠습니다.”

       “괜찮겠느냐.”

       “문제없습니다.”

         

       아버지, 프라이덴 후작이 저렇게 물어보는 이유는 데카르트 공녀의 악평이 자자하기 때문이겠지.

         

       아실은 웬만해서 사교계에서 퍼지는 소문을 그다지 믿는 편은 아니었다. 페르시아 소 공작이 동성애자라는 소문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으니까. 다만, 데카르트 공녀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직접 느낀 게 있어서 대부분의 소문이 진짜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아실이 알기론 싸움 개와 같다. 파티가 열리는 곳이라면 무조건 참석하고 꼭 거기서 싸움이 일어난다. 사교계에 관심이 많은 귀족이라면 데카르트 공녀를 모르는 게 이상한 수준.

         

       ‘하지만…….’

         

       가문의 막대한 도움이 된다면 이 정도야 참을 수 있다. 아실은 손해보다 돌아오는 게 더 많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바로 답장을 보내서 혼담을 주선하마.”

       “예. 그리 해주십시오.”

       “그래, 이만 나가보거라.”

         

       아실은 프라이덴 후작의 집무실을 나오며 피식 웃었다.

         

       ‘데카르트 공녀가 얼마나 미쳤는지 볼까.’

         

       그 여자가 아무리 미쳤다고 해도, 정신이 이상하다고 해도, 성질머리가 괴팍하다고 해도 혼인만 성사되면 아무것도 못 할 거다. 남편과 부인의 관계니 순종적으로 바뀌겠지.

         

       ‘자존심 강한 미친년을 내 입맛대로 바꿔보는 것도 꽤 재밌겠어. 정복감이 장난 아닐 거 같군.’

       

       아실의 입가에 음흉한 미소가 지어졌다. 프란체 데카르트를 굴릴 생각에.

         

         

       * * *

         

         

       시간이 흘러 아실은 데카르트 공작저로 향하는 마차에 탑승했다. 본래라면 여자 쪽에서 오는 게 맞지만, 그 데카르트 공작가니까 자신이 직접 가는 거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마차의 바퀴가 얼마나 돌아갔을까. 아실은 마침내 공작령에 들어왔다. 창밖을 둘러보니 괜히 공작령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표정에서 근심과 걱정은 찾아볼 수 없었고 거리는 깔끔했다. 건물도 대부분 신축이었으며 정기적인 관리가 잘되고 있었다.

         

       ‘데카르트 공작이 일에 미친 사람이라는 건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아실은 그동안 자신이 살고 있는 후작령이 제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든다고 생각했는데, 공작령을 보니 헛웃음이 나왔다.

         

       ‘여기가 정말 세 손가락 안에 들겠군.’

         

       프라이덴 후작가의 마부가 말했다.

         

       “도착했습니다.”

       “수고했네.”

         

       아실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마차에서 내렸다. 눈을 얕게 뜨고 공작가의 저택을 바라봤다. 크고 으리으리한 저택. 앞으로 다가가니 공작가의 기사들이 말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아실이오. 프라이덴 후작가에서 왔소. 증표는 여기 있고.”

       “확인했습니다. 문을 열어드리겠습니다.”

         

       철컹. 끼이익. 거대한 아치형 철창문이 열리고, 아실은 저택을 향해 걸어갔다. 입구에는 집사장으로 보이는 노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극진히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고맙군.”

         

       집사장은 허리 숙여 인사한 뒤, 데카르트 공녀가 기다리고 있다는 곳으로 안내해줬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공작가의 정원.

         

       “고생했네.”

       “아닙니다. 좋은 시간 되시길.”

         

       주변을 둘러봤다. 갖가지의 꽃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그 중심에는 햇빛을 막아주는 파라솔이 꽂힌 테이블이 떡하니 위치 해있었고, 거기에 소문의 데카르트 공녀가 앉아있었다.

         

       ‘저 사람이군.’

         

       길게 늘어진 붉은 머리카락. 에메랄드처럼 빛나는 녹음의 눈동자. 뚜렷한 이목구비에서 나오는 수려한 외모.

         

       아실은 데카르트 공녀를 이렇게 직접 가까이서 보는 건 처음이었다. 파티장에서 몇 번 보긴 했지만, 그것도 멀리서 본 것. 생각보다 아름다운 사람이라서 그런 것일까. 가까이서 지켜보니 왠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

         

       심호흡하는 아실.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고 걸음을 내디뎠다.

         

       “반갑습니다, 데카르트 공녀. 아실 프라이덴입니다.”

       “프란체 데카르트입니다.”

         

       고개를 올려 아실을 바라보는 녹음의 눈동자가 일렁였다. 아실의 가슴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남자로서 그녀에게 이끌리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이렇게 외모를 신경쓰는 줄은 몰랐는데.’

         

       뭐, 외모는 사람과 만났을 때 가장 처음으로 보이는 것이니까. 그럴 수 있다는 생각으로 아실은 자기합리화했다.

         

       “앉으십시오.”

       “예.”

         

       아실이 자리에 앉았다. 인제 보니 공녀의 뒤에는 기사 한 명이 그녀를 지키고 있었다.

         

       ‘호위기사인가 보군.’

         

       그런데 남녀가 혼약을 위해 만났는데 기사가 곁에 있는 게 맞는 건가?

         

       “호위기사를 데리고 계시는군요.”

         

       예의가 아니니 물려 보내라는 소리였다. 그 데카르트 공녀가 이걸 받아들일지는 모르겠지만.

         

       “죄송해요, 이 기사는 제 직속이라.”

         

       알아들었지만 받아들이진 않는 건가. 그렇게 큰일은 아니기에 아실은 그냥 이해하기로 했다. 괜히 따지고 들어봤자 좋을 일은 없을 테니.

         

       “뭐, 괜찮겠지요. 공녀의 호위기사니까요.”

       “네. 문제는 없을 거랍니다.”

         

       어색한 분위기. 프란체 데카르트도 이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먼저 입을 열었다.

         

       “프라이덴 영식께서는 취미가 어떻게 되시나요?”

         

       먼저 취미 얘기인가. 아실에겐 취미가 그다지 없다. 그냥 일, 일, 일이었으니까. 굳이 꼽자면 공부와 독서일까.

         

       “독서와 공부입니다. 영지의 업무를 봐야 하니까요.”

       “영지의 업무요…?”

       “예.”

       “프라이덴 영식께서는 삼남이 아니신가요?”

       “맞습니다.”

         

       프란체 데카르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으음. 삼남이 영지의 업무를 보신다니, 프라이덴 후작가는 유서 깊은 기사 가문이 아닌가요?”

         

       기사 가문이라는 소리에 아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맞습니다만.”

       “독서와 공부라, 의외네요. 저는 무조건 검술인 줄 알았답니다.”

       “…….”

         

       저 여자는 나에 대한 정보를 모르는 건가? 앞으로 남편과 부인의 관계가 될지도 모르는 사람인데 상대방의 조사도 하지 않을 줄이야. 하지만 그리 널리 알려진 정보는 아니기에 아실은 너그럽게 넘어가기로 했다. 모를 수도 있지.

         

       “하하, 제가 영지 관리에 관심이 많기도 하고, 가장 잘하는 일이라서요.”

         

       그러나 돌아온 반응은 시큰둥했다.

         

       “아쉽네요. 저는 기사 가문이라길래 기대했는데. 저는 검을 잘 쓰는 사람이 취향이거든요.”

         

       그녀의 말에 아실의 눈썹이 2차로 꿈틀거렸다. 제일 싫어하는 얘기가 검술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러시군요. 공녀님의 취미는 어떻게 되십니까?”

       “으음. 저는 공부와 검술 구경이네요.”

         

       또 검술. 점점 표정관리가 힘들어진다. 프란체 데카르트는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사업을 할 예정이라 경제와 경영에도 관심이 많아요. 아! 그리고 저는 강한 남자가 취향이거든요. 공작가의 기사들이 하는 검술 훈련 구경도 자주 하고요.”

         

       드디어 주제가 바뀌는 건가 싶었지만, 또 검술. 아실은 꾸욱 참았다. 여기서는 괜히 분위기를 망쳐봤자 도움이 될 게 없다. 여기서는 대화 주제를 돌린다.

         

       “사업을 하신다고요?”

       “네.”

       “음. 사업은 꽤나 어려우실 텐데.”

       “그런 소리는 많이 들었답니다.”

         

       프란체 데카르트가 찻잔을 들었다.

         

       “그래도 최근에 정말 잘 풀리고 있거든요. 내용은 아직 말씀드릴 수 없지만,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아요.”

         

       오호, 그게 사실이라면 프라이덴 후작가에도 많은 도움이 될 거다. 아무리 평판이 나쁘고 미친년이라고 소문이 났더라도, 데카르트의 공녀니까 성공할 확률이 높겠지.

         

       ‘이 혼인은 무조건 성사시켜야겠군.’

         

       아실이 말했다.

         

       “잘 풀려서 다행입니다. 혹시 프라이덴 후작령에 대해선 알고 계십니까? 모르신다면 제가 직접 소개해드리고 싶군요.”

         

       탁. 찻잔을 내려놓고 사람 좋은 미소를 짓는 프란체 데카르트.

         

       아실은 사실 소문이 과장된 게 아닐까 생각했다. 자신에 대해 조금 모를 뿐이지, 대화에서 기본적인 예의는 지키고 있다. 직접 눈앞에서 보니 그다지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은 안 들었다.

         

       프란체 데카르트가 말했다.

         

       “당연히 알고 있답니다. 유서 깊은 기사 가문이 다스리는 좋은 땅이죠. 아, 그러고 보니 바렌베르크와 전쟁이 일어났을 때도 선봉장에 섰다고 들었어요. 프라이덴 영식도 전쟁이 일어났을 때 선봉에 서셨나요?”

         

       아실은 아차, 싶었다. 주제를 돌리겠다고 한 게 이렇게 다시 돌아올 줄이야. 되도록 기사 얘기나 검 얘기는 피하고 싶은데.

         

       “저는 그때 일이 있어서 나가지 못했습니다. 후작령을 돌봐야 하니까요.”

         

       그리 말하고 머쓱 웃는 아실. 언젠가는 알 테지만, 지금은 자신이 검을 못 쓴다는 사실은 숨기고 싶었다. 프라이덴 후작가에선 별말은 하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좋은 기억은 가지고 있지 않으니.

         

       “아쉽네요. 프라이덴 영식의 활약을 듣고 싶었는데. 혹시 제 호위기사와 검을 맞대며 검술을 한 번 보여주실 수 있으신가요? 제 남편이 될 사람의 검 실력을 보고 싶네요.”

         

       3차로 눈썹이 꿈틀거리는 아실. 더이상 표정관리도 힘들어진다. 이 공녀는 사실 아실의 실력을 알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검술에 관해서 집요하게 파고든다.

         

       처음부터 모욕하기 위해 부른 건가?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럴 것이, 굳이 요청을 해놓고 모욕을 줄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냥 순수하게 검을 좋아하는 건가.’

         

       아실은 그리 생각하고 좋게 풀어나가기로 했다.

         

       “죄송하지만 검을 챙겨오지 않아서요.”

       “아, 검이라면 공작가에서 빌려드릴 수 있어요.”

         

       이 공녀님이…….

         

       “사실 몸 상태도 그다지 좋지 않아서…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보여드리겠습니다.”

         

       프란체 데카르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눈썹을 일그러트렸다.

         

       “혹시 프라이덴 영식은 검에 자신이 없으신가요?”

       “…예?”

       “아까부터 검 이야기는 계속 피하시는 것 같아서요.”

         

       ……괜히 사교계를 휘어잡은 게 아니군. 그 짧은 대화에서 사고를 읽을 줄이야. 아실은 그녀의 사교 능력에 조금 감탄했다.

         

       “아닙니다. 그럴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 말에 뒤에서 피식 웃는 호위기사. 저자를 보니 아실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너는 뭐 때문에 웃는 거지? 나를 비웃는 건가?”

       “아닙니다.”

         

       프란체 데카르트가 제지했다.

         

       “괜히 호위기사에게 화풀이하지 마시고요.”

       “…화풀이는 아닙니다만.”

       “대화를 해보니 알 것 같아요.”

       “뭘 말입니까?”

         

       아실을 측은하게 바라보는 프란체 데카르트.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불쌍하셔라.”

       “…뭐가 말입니까?”

         

       아실은 점점 대화가 불쾌해지기 시작했다. 이 사람은 처음부터 자신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게 목적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사실, 눈치채고 있었어요. 영식께서 검을 못 쓰신다는 걸요. 프라이덴 가문의 사람들은 전부 검이라면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인데… 영식만 검을 못 쓴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군요.”

         

       아실의 눈이 동그래졌다. 얼굴은 붉어졌으며 목에는 핏대가 올라왔다. 동정은 아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다.

         

       “지금 저를 동정하시는 겁니까?”

       “네? 아니요, 그럴 생각은…….”

       “처음부터 알고 계셨다고 하셨죠? 이걸 위해서 대화를 이쪽으로 유도하신 겁니까?”

         

       프란체 데카르트는 피식 웃었다.

         

       “역시 검을 못 쓰셨군요. 혹시나 해서 찔러본 것인데.”

         

       아실은 자신의 정신에서 무언가 뚝,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참아왔던 화가 폭발하기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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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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